[365호 잠깐 독서]
복음보다 종교에 몰두하는 교회를 성찰하며
20세기를 대표하는 평신도 신학자이자 활동가인 윌리엄 스트링펠로우의 공식적인 첫 번째 저작. ‘복음’을 따르지 않고 ‘종교’가 되려 하는 오늘날의 교회에 맞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원서가 출간된 지 60년 가량 되었음에도 그의 문제의식과 진단은 여전히 강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온전한 삶, 세상에서의 삶과 교회에서의 삶이 상호침투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지다. 때때로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옷, 식생활, 개인 윤리 같은 외적인 모습은 표지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지닌 힘, 혹은 능력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점에 있다. …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빛뿐만 아니라 어둠이 있음을 안다. 그리스도인은 전쟁과 질병, 가난, 고통, 탐욕, 증오가 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평화와 건강, 안전, 사랑과 용서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스도인이 알지 못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부인해야 하는 극단적인 인간 경험이란 없다. (94-95쪽)
지금 예수를 다시 읽어야 할 이유
해방신학자 김근수가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고 정리한 책.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종교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예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수가 살던 역사 현실부터 유다교, 가난한 사람, 한반도까지 네 주제를 중심으로 예수를 살펴본다. 역사 속 예수의 말과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에서 비슷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의 죽음을 순전히 종교 문제나 정치 문제로 해설하긴 어렵다. 예수는 유다교 지배층의 종교적 이해와 로마 군대의 정치적 이해가 얽혀 처형됐다. 유다교 지배층은 로마 군대에게 그나마 제한적으로 보장받던 종교의자유를 지키기 위해 예수라는 화근을 없애려 했다. 빌라도 총독은 점령지 유다 지역에서 로마제국의 평화를 지키려 했다. (298쪽)
기독교 신학자가 말하는 금융 자본주의 현실
현대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관계를 다룬 2016년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을 엮은 책. 저자는 현대의 금융 지배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문화형식을 관찰하며, 기독교 신앙과 실천이 어떻게 오늘날의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 형식을 거스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기독교의 신학적 자원을 의존하며, 경제 불평등, 구조적인 불완전 고용과 실업, 자본주의의 불안정한 호황과 불황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기독교에서 과거와 미래가 지금 우리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긴급한 임무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노력은, 금융 지배 자본주의에서 현재와 관계 맺는 방식처럼 현재 순간의 시간적 차원을 고갈시키지 않는다.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일은 일생의 과업, 즉 삶 전체―우리의 모든 과거와 미래―를 규정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맨 처음부터 하는 것처럼 매일 다시 시작될 필요가 있음에도 말이다. 금융 지배 자본주의에서 폭리를 취하는 행위의 짧은 시간 지평과는 완전히 반대로, 여기서 우리의 시간 지평은 아주 길다. (151쪽)
장애신학으로 읽는 성경
장애신학에 대한 개념이 생소했을 시기, 전작 《장애신학》을 쓴 저자는 이후 학계에서 10여 년간 축적된 새로운 장애신학 연구를 소개하고자 이 책을 펴냈다. 성경 각 권에서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살피면서, 장애신학 관점에서 신구약을 조망한다.
즉 들을 수 있는 사람이나 못 듣는 사람이나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의 한 요소라는 것이다. 볼 수 있는 사람이나 보지 못하는 사람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들 모두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으로서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창세기) 4장 11절을 합리적으로 이해한다면 결국 장애를 축복이라든지 또는 저주라는 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장애는 인간 사회의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이다. 그러니까 4장 11절을 인간의 다양성이란 틀에서 보고 하나님이 이 모든 인간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시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3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