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호 커버스토리] 복음과상황 에디터 4인 좌담회

〈복음과상황〉 에디터들이 ‘공정’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평소 뉴스와 같은 매체에서 마주한 ‘공정 담론’에 대한 견해부터 입시 문제, 지역 격차, 교회 이야기 등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에디터들의 개인 경험을 토대로 다소 주관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도 오갔다. 나아가 공정 담론이 주목하지 않는 지점이 무엇인지도 가늠해보았다. 가볍게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지만 워낙 ‘핫한’ 이슈라서 그런지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좌담은 5월 4일, 복상 모임방 ‘서로마당’에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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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동석: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에서 나온 이 발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웃음) 현 정부 시기에 공정 이슈가 계속해서 사회를 흔들어놓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간 공정 담론이 그때그때 이슈를 타고 소모적으로 다뤄지는 감도 없지 않아서 자조적으로도 반응하게 된다.

민호: 대통령 취임사 때의 발언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 장대한 선언이 아니었을까. ‘완벽한 공정’이라는 게 있을까. 만약 누군가 공정한 룰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의 말에 빈틈이 없는지 따져볼 것 같다. 반대로 누군가 공정이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터부시한다면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공정이라는 말이 그렇다. 현실과 거리감이 커서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동석: 이 사회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듯하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지방 중에서도 작은 어촌인 삼천포에서 자랐다. 수도권에서 관계하게 된 지인과 삼천포에서 관계하게 된 지인이 처한 상황을 비교할 때 불공정한 현실을 체감한다. 서울에서는 일반 직장인이 그냥 받는 월급만으로 평생 벌어서도 집을 못 구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부동산 불로소득 등으로 큰 차익을 내는 이들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이야기되고, ‘갭투자’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관련 기사의 댓글만 봐도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혜: 공정 이슈를 마주할 때 드는 생각은 ‘또 시작이네’다. 너무 시니컬한 반응인가.(웃음) 기득권을 가진 소수가 나머지 다수의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로 절차적 공정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들리기도 한다. 9-10분위에 속하는 학생이 과반을 차지하는 서울대에서 조국 사태 때 ‘공정하지 않다’며 촛불을 든 것, 고려대 안암캠퍼스 학생들이 세종캠퍼스 학생의 시위 참여에 문제 제기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지치기도 했다. ‘공정’을 내세우지만 학벌주의에 지나지 않는 현상이다. 최근 많은 이의 공분을 일으킨 전·월세 상한제 시행 직전에 월세를 인상한 민주당 의원들 모습이라든지, LH 투기 사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부동산 문제를 다루지 못했는데, 최근 기독교 잡지인 복상에서 왜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느냐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거나 연재물로 논의를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현실적으로 ‘공정’ 개념이 오작동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범진: 조지프 피시킨의 《병목사회》(문예출판사, 2016)에서는 ‘기회의 불평등’을 다룬다. 한정된 기회를 얻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리는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며 공정한 사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병목현상이 생기는 사회구조에서는 그 어떤 균등 분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하나의 시험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경우, 모든 사람이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획일적인 경로를 추구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민호: 동의한다. 시험이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는 구조가 ‘공정’이 멈추는 지점 같다.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일자리의 경우, 높은 점수를 받거나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자격을 부여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 이경숙의 《시험국민의 탄생》(푸른역사, 2017)은 시험이 어떻게 생겨나 변화했는지를 다룬다. 시험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탁해 서열화 장치로 작동한다고 지적하는데, 저자는 실력 하나만 묻겠다는 논리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또 다른 차별이라고 말한다. 사회·경제·문화의 차별은 그대로 둔 채, 사회적 약자에게 구조의 문제를 뛰어넘어 실력을 입증하라는 것은 사회적 폭력이라는 설명이다.

다혜: 주변에 국가고시나 고시에 준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직업을 꿈꿨지만 고민도 않고 포기한 이들이 있다. 시험을 준비하려면 취업을 유예하고 오랜 시간 공부해야 한다. 가족들이 이 점을 이해해주어야 하고 경제적 여건도 뒷받침돼야 한다. 또 시험이라는 평가 자체에 대한 의문도 있다. 고시나 공기업, 공무원 등 블라인드로 채용할 때도 명문대 학생들이 많이 붙는다. 문제 풀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합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험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집중력도 가정형편 등 환경에 따라 다르지 않나.

동석: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 2018)을 보면, ‘입시-공채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온다. 합격이 어떻게 신분이 되어 계급화를 만들어내는지를 분석한다. 우리 사회에는 시험이 가장 공정한 평가 방식이라는 태도가 만연해있다. 이 책은 이를 매우 한국적인 생각이라고 언급한다. 해외의 경우 다른 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합격 수기를 분석해놓은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고시생들은 수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에 몰두하면서 계급화, 엘리트주의를 체화하고 이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인식을 강화한다.

강동석 기자 ⓒ복음과상황<br>
강동석 기자 ⓒ복음과상황

―학교교육을 받을 때 ‘공정’을 고민해본 적 있었나.

다혜: 학교 다닐 때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내면화한 것이 ‘공정’이라는 개념과 맞닿아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교사들이 있었는데, 지방 학교로 부임해 현장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싶다. 계속 지방에서 일반 학교교육을 받아왔기에 서울 상황과 교육의 질을 실제로 비교하지는 못하겠다. 대학 온 이후에 비수도권 지역과의 입시 정보 격차가 분명히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방 교사들은 상대적으로 대학 입시 전형을 세밀히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천종의 《학종유감》(카시오페아)을 읽어보니, 수도권 학생들도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으로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동석: ‘획일화한 평가 시스템으로 개개인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뒤늦게 문예창작과 입시를 준비했기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고 모두가 저마다의 관심사를 갖고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하지 않나. 내가 살았던 삼천포는 수도권까지 비교 대상으로 삼지 않고 주변 도시하고만 비교해봐도 교육·문화의 영역에서 기반이 많이 부족했다. 영화관 하나 없었으니까. 교사들이 자녀를 주변 도시로 유학 보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서울 중심적인 한국에서 전국 단위로 비교해보면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한 번의 대학 입시가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현 상황은 문제가 많다.

범진: 나도 할 말이 많지만, 지방에서 교육받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말을 아끼게 된다. 그나마 서울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교회 용어로 ‘은혜’라는 생각도 든다. 다른 이에게 “은혜로 여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 스스로 ‘혜택받았구나’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민호: 나는 학창 시절, 그 ‘은혜’라는 것을 0%로 여겼다.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심해서. 수능을 앞두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싫어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시험에 저항하고 싶었는데, 학원에서 들은 말에 설득당했다. 한국에서 명문대 진학은 젊은 날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느냐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더라. 그렇게 입시에 몰두할 수 있었다. 명문대 진학이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공식이 내 안에 생긴 것이다.

다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미국 사회 공정 문제를 다룬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와이즈베리, 2020)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 지점이 떠오른다. 무엇을 ‘능력’으로 규정할 때 그 주체는 사회라는 것. 저마다 갖고 있는 능력의 종류가 다르면 가치평가와 보상이 차이가 나지 않나. 손흥민급으로 축구를 잘하는 것과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빵을 잘 만드는 것은 동일하게 평가받지 못한다. 축구가 인기 종목이 아닌 시대라면, 제빵 실력이 더 중요한 사회였다면 상황은 많이 다르겠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한 운의 작용을 간과하게 한다. 성공한 사람은 운이 아닌 실력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쉽고, 실패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했다며 스스로를 책망하기 쉽다. 오히려 신분이 명확했던 사회에서는 개인의 성취를 오롯이 능력 때문이었다고 주장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 흥미로웠다.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이매진, 2020)가 가정하는 세계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다혜 기자&nbsp;ⓒ복음과상황
김다혜 기자 ⓒ복음과상황

―개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 경험이 있나.

다혜: 취업을 준비할 때, 면접 자리에서 ‘남자 친구가 있는지’ ‘결혼 계획이 있는지’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당시 면접관들을 기다리며 비혼 관련 서적을 읽고 있었고 여성이 질문을 던져서 차별적 발언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적절한 질문도 아니었던 것 같다. ‘사상검증’ 느낌이라…. 그래서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관련 기사가 나왔을 때 유의 깊게 읽었다. 한편, 내가 학생 때 친구들에 비해 영어에 흥미가 있는 편이었던 게 떠올랐다. 여유로운 형편은 아니었지만, 영어 사교육을 받았고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집에 오시면 학습한 부분을 확인해주셨다. 영미권에 오래 살았던 친구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신경을 써주시는 부모님이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재능을 발견하는 것도 환경이 조성돼야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석: 서울에 살다보니,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나 동생들 소식을 전해듣거나 그들을 만날 때 여러 생각이 사로잡힌다. 서울 중심적으로 논의되는 ‘공정 담론’에서 벗어난 이들이기도 하다. 가난한 형편으로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도 있고, 힘들게 노동하는 케이스도 있다. 지방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최저시급을 보장받지 못하는 일자리도 많다. 임용고시 등을 한없이 준비하는 이들도 본다.

정민호 기자&nbsp;ⓒ복음과상황
정민호 기자 ⓒ복음과상황

―‘공정’의 의미가 저마다 다를 것 같다. 포인트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민호: 공정을 두 가지로 표현하는 기사를 봤다. 구조적 차별을 보정하지 않으면 불공정하다는 ‘보편 원리’와 노력만큼 보상해야 한다는 ‘비례 원리’다. 지금까지의 ‘공정 담론’은 능력주의에 기반한 ‘비례 원리’에 치중돼있다.

동석: 공정을 논할 때 절차적 부분을 많이 언급한다. 그런데 절차와 기회와 결과의 공정은 각각 다른 의미다. 이를테면, 절차와 기회의 공정이 그대로 결과의 공정으로 이어지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는 가치 있는 일을 그에 맞게 대가로 보상하기보다, 얼마나 버느냐가 가치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보상이 있기에 가치를 두는 게 당연시된다. 소위 억대 연봉을 받는 이들이 사회에 산출하는 가치가 그만큼 공공선에 부합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반면, 환경미화원은 코로나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필수노동자인데, 그에 걸맞게 대우하고 있는가?

다혜: 《공정하다는 착각》은 절차·기회·결과의 공정을 모두 보장하기도 어렵지만, 보장돼서 직업과 보수가 개인의 능력·재능에 완전히 비례하게 돼도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지 딴죽을 건다. 능력주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여전히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가 존재할 텐데, 이때 승자는 패자에게, 패자는 스스로에게 어떤 마음을 품을까? 샌델은 능력주의의 이상은 계층의 ‘이동성’이지 ‘평등’이 아니라고 말한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민호: 《세습 중산층 사회》(생각의힘, 2020)의 저자 조귀동은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을 나눠서 오늘날 현실을 이야기한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을 포함해서 비율로 따지면 전자는 22~23%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구조에서 나머지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탈락자’로 전락하는 셈이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일자리를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복상에 들어가려고 준비할 때 첫 일자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경쟁에서 승자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동일노동동일임금’ 등의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일하는 것은 가혹하다. 모두가 존엄성을 지키며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범진: 《병목사회》는 돈·권력으로 ‘줄 세우기’ 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인간의 행복이 존중받는 다원화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가능하더라도 방향성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차별금지법을 병목현상 개선을 위한 방법으로 언급한다는 사실이다. 인종·성별·국적·연령·장애 등에 근거해 기회를 제한하는 병목을 무너뜨리면 단순히 ‘비교적 공정한 사회’가 아닌 다양한 경로와 다양한 기회가 열리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회의 병목현상을 개선하는 일은 의미가 있지만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병목현상 자체를 무너뜨리는 상상력과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기독교에서는 ‘공정’이라는 단어가 어떤 식으로 언급되는 것 같나.

동석: 설교 시간에 ‘공정하신 하나님’이라고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나님이 공정하신 분이니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신앙에 기대어 순응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되기도 하는데, 이보다 사회가 더 공정한 방향으로 가는 데 교회가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고민하는 쪽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회 이슈에 진보적인 교회는 희년사상을 비롯해 성경 속 정의와 공평 문제를 이야기한다. 성경의 하나님 나라 담론에 기대어보면, 성경이 말하는 바는 대단히 급진적이다. 그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기독교인으로서 현실의 불공정에는 눈감고 기득권 편에 서서 사회의 불공정한 질서를 옹호하는 방향으로는 나아가기란 어렵겠다.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한 교회 세습 문제도 ‘공정’ 관점에서 볼 수 있겠다. 이 사회도 조귀동의 논의처럼 ‘세습 중산층 사회’인데, 교회에서 세습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오히려 교회 세습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로 ‘공정 담론’을 들고나오는 분도 봤다. 목사 자녀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답답할 따름이다.

민호: ‘공정’과 ‘교회’를 키워드 삼아 검색해보니, 11년 전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이 《공정국가》(개마고원, 2010)를 냈을 당시 인터뷰가 나오더라. 그는 ‘토지정의’ 운동가로서 토지 소유에 따른 불로소득을 문제 삼는다. 그러면서 불로소득 환수 제도를 제안한다. 11년 전 기사가 포털사이트 상위에 나오는 것만 봐도 그동안 교회가 ‘공정 담론’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외에는 코로나 이후 교회 모임을 정부가 금지하는 것이 공정한가 하는 글도 있었다. 이것도 공정 논의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

다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다. 능력주의 사고가 서구 문화의 도덕적 직관에 뿌리박혀 있는데, 이것이 성서신학과 밀접하게 연결돼있다는 지적이다. 샌델에 따르면, 성서에 나타난 능력주의는 모든 행위에 대한 보상과 처벌이 신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사고방식이다. 창세기·출애굽기에 나타난 징벌적 신의 모습이 그렇다. 반면, 욥기의 신은 욥과 친구들이 펼치는 징벌적 능력주의 가설을 부정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원론과 루터의 은총론은 구원 문제를 개인의 노력이 아닌 신의 은총에 기대지만, 근면을 구원의 조건이 아닌 징표로 언급한 칼뱅의 예정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 의도와 달리 노력을 구원의 조건처럼 여기는 데 영향을 줬다고 지적한다. 초기 자본주의 정신을 만든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와 근면주의가 결과적으로 자수성가론과 승리주의 윤리를 장려했다는 말이다.

동석: 어쩌면 교회만큼이나 다양한 계층이 모이는 곳도 드물다. 교회가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공정 문제에 있어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슬프다.

이범진 편집장&nbsp;ⓒ복음과상황
이범진 편집장 ⓒ복음과상황

―교회에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범진: 사실 능력주의가 만연한 교회 현실은 인정하지만, 교회 밖 사회보다 심한 수준인지는 잘 모르겠다. 신앙을 기준으로 서로 존중하는 교회 공동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예배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죄인임을 진실하게 고백하는 공동체라면, 능력주의를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역량이 모일 것 같다.

동석: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기획위원장이 지적하듯이, 대형 교회가 엘리트 인맥 만들기의 장으로 쓰이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교회가 양극화 문제를 더욱 부추기고, 신자유주의 질서를 강화하는 쪽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시혜적으로 하는 사회봉사를 내세우며 덮을 일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공정하신 하나님’을 내세운다면 양극화한 구조를 고착화하자는 말밖에 안 된다. 코로나 시기를 보내며 ‘교회가 이익집단이 돼버렸구나’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성경에는 포도원 품꾼 비유도 있고, 가난한 자를 위해 남은 이삭을 내버려두는 식으로 배려하는 내용도 있다. 성경에는 공정 담론의 맹점을 드러내고 기저에 자리한 능력주의를 훼파할 메시지도 많다. 한국교회가 성장일로에 있을 때 승리주의를 옹호하고 능력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내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방식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사례가 자기 비움의 십자가 아닌가. 힘과 권력에 대한 추구로 전지전능의 개념이 잘못 쓰이기도 한다. 재정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의 가치를 드러내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바울의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되짚어봐야 한다. 교회가 할 역할이 적지 않은데, 코로나 시기를 보내며 사회적 신뢰가 더 떨어지는 것 같다.

민호: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운의 작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나. 자신의 성취를 당연시하는 이들에게 소득격차와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기독교의 ‘빚진 자 의식’과도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 공정 담론에 교회가 의미 있게 참여할 지점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호 필자 구성이 좋다고 생각한다.(웃음)

―‘비하인드’처럼 가볍게 논의하려 했는데, 이야기가 길어졌다. 커버스토리 기획이 ‘공정 담론이 놓친 것’에 주목하는데, 하나씩 말해보면 좋겠다. ‘공정 담론’에는 무엇이 없나.

동석: ‘공정 담론’에는 희망이 없다.(웃음)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무엇을 위해 공정하기 원하는지 묻고 싶다. 모두가 말하는 공정이 과연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로 가는 길을 전제하고 있는지 말이다. 공정이 전제되더라도 모두가 나 혼자 잘사는 길, 소수의 승리만을 이야기한다면, 무엇을 위한 공정인지 물어야 하겠다.

민호: ‘공정 담론’에는 공동체가 없다. 배타성을 내세우는 집단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같은 사회를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잔인하게도 능력과 행운은 사람마다 너무 다르다. 능력/무력, 행운/불운을 공동체가 함께 감수하고 나눠 누릴 수 있다면 공정 담론을 둘러싼 싸움이 이토록 힘겹지 않았을 것 같다.

다혜: ‘공정 담론’에는 나만 있고 ‘너’가 없다. 취업을 준비할 때 남들처럼 토익과 오픽 시험을 치면서 의문을 가져본 적 없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두 시험 모두 시각장애나 청각장애가 있으면 시험을 치는 것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직무와 상관없이 영어 자격증을 너도 나도 따는 취업 준비 현장이 장애인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겠다고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며 깨달았다. ‘나’의 입장에서 나보다 가진 자의 공정 담론에 분노하거나 냉소하면서도 공정 담론에서 언급조차 안 되는 이들의 시각은 놓쳤다는 생각이 들더라. 

범진: ‘공정 담론’에는 은혜가 없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웃음)

정리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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