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호 사람과 상황] ‘미래 교회의 르네상스’ 주장하는 나사렛대 김성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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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창조질서의 원리로 볼 때 장애도 개성이다’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천안 나사렛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쳐온 김성원 교수가 쓴 《재활신학 서설: 장애도 개성이다》(인간과복지)다. 《장애학의 도전》(오월의봄), 《난치의 상상력》(동녘), 《그냥, 사람》(봄날의책),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 등, 장애를 ‘개인의 손상’이 아닌 ‘억압적 사회구조’ 문제로 접근하는 서적이 연이어 나오는 요즘이면 모르겠는데, 출간 시점이 2005년이다. ‘장애신학’ ‘장애인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저술들이 나왔지만, 대부분 이후의 일이고 지금까지도 교계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재활신학’이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구적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어, 커버스토리 주제로 ‘교회와 장애인’을 다루게 됐을 때 김 교수를 떠올렸다.

인터뷰 전 조사해보니, 《호모 데우스》(김영사)와 《공정하다는 착각》(와이즈베리)에 대한 분석비평 논문 등 최신 담론에 꾸준히 귀를 기울인 흔적이 드러나는 여러 작업물이 나왔다. 김성원 교수는 ‘포스트모던 정통주의 신학’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차세대 신학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사렛성결회(이하 ‘나사렛’) 출신으로, 나사렛은 미국의 ‘웨슬리안 성결 운동’에 기반해 1908년 세워진 교단이다. 세계적 교세가 250만 명에, 168개국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으며, 가톨릭교회와 비슷하게 하나로 연결돼있다. 6인 집단 지도 체제로서 중앙감독제를 국제 정치 시스템으로 채택하고 있다.

김성원 교수가 몸담아온 나사렛대는 재활복지 특성화 대학으로 유명하다. 장애인을 위한 제도가 잘 구축돼있고, 시설도 전국적인 수준이라 타 대학교에 비해 장애인 학생 비중이 상당히 높다. 그의 ‘재활신학’ 작업도 학교 상황과 연관이 있었다. 김 교수는 미국 미드아메리카 나사렛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나사렛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 학위를, 시카고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Th.M.) 학위를 받았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해 철학자 화이트헤드와 성리학자 퇴계를 비교하는 논문으로 신학 박사(Th.D.) 학위를 취득했다. 2021학년도 1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하는 그를 5월 25일, 나사렛대 대학원장실에서 만났다. ‘재활신학’ 이야기와 함께 포스트모던 시대 신학의 가능성에 대해 들었다. ‘미래 교회의 르네상스’를 주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사렛대학교 나사렛관. ⓒ복음과상황 정민호 

- ‘포스트모던 정통주의 신학’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학적 배경이 궁금하다.

철학적 신학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비교종교철학에 관심이 많은 로버트 네빌 교수에게 박사 지도를 받았다. 그는 서양 중심 사유에서 벗어나 동양 성리학과 불교 등을 섭렵해 하이브리드로 형이상학을 전개한다.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지구촌 신학 사상을 강조한다. 미국과 유럽의 유수한 대학에서 이 작업을 하고 있다. 동양 사상을 모르면 국제적으로 최고 학자가 못 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나도 공부하면서 시야가 트였다.

철학적 배경은 화이트헤드다. 유기체 철학자로, 헤겔과 로고스 영향을 받았으며, 전통 철학과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우주론 등을 공부한 인물이다. 과학철학과 전통적 형이상학을 융복합해서 스케일이 크다. 첨단 물리학자들이 쓴 요즘 과학책들에서도 화이트헤드에 공감하는 표현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복음주의에서 내 신학적 입장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화이트헤드 사상은 철학이지만 복음주의와 충분히 매치할 수 있다.

나는 전통적 보수주의 신학, 특히 교의학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차세대를 위한 신학을 고민하면서 ‘포스트모던 정통주의 신학’을 연구해왔다. 과학에 관심이 많아, 과학사상연구회에 15년 넘게 참여하면서 한 달에 한 권씩 과학 사상과 관련한 책을 꾸준히 읽어왔다. 과학 자체에 전문가라고 할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눈이 열려서 논문이나 책을 쓸 때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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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활신학 서설’로, 단행본 《장애도 개성이다》를 2005년에 출간한 바 있다. 어떻게 연구를 시작했나.

나사렛대 조교수가 되고 나서 조금 이른 시기에 교무처장을 맡아, 당시 학교에서 추진하던 재활복지 특성화를 돕게 됐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아들을 잃은 백위열 총장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신학과·목회학과만 있는 상황에서 선교재활학과·영어선교학과 등을 만들자는 이야기였는데, 그냥 장애인들만 데려와서 선교할 게 아니라면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재활복지 관련 교수들을 모시면서, 신학 분야 기초 연구로 진행한 것이다. 앞선 작업으로 에모리 대학의 낸시 아이스렌드가 주창한 장애신학이 있었다. 에모리의 학풍은 내가 공부한 보스턴과 색깔이 달랐다. 내가 복음주의 배경이기도 하니, 해방신학과 더불어 철학 전반의 흐름을 섞어 해설하는 식으로 재활신학을 전개했다. 서양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 해외에 갈 때마다 자료들을 리서치했다.

- ‘창조질서의 원리로 볼 때에 장애도 개성으로 보아야 한다’를 핵심 주장으로 내세우는데,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에게 생소한 내용이지 싶다.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창조질서’란 하나님이 우주를 관장하고 이끌어간다는 의미다. 나는 최근의 과학철학자들이 언급하는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화이트헤드 유기체 철학과 연계돼있다. 뭐든지 하나가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모두 연결·관련돼 있으며, 유기체적으로 전체가 합생하며 전개되는 프로세스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라는 말이다.

물리학자들은 자연/물리 질서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원리를 신적 요소로 봤다. 세상이 그냥 흘러가지 않고 패턴·질서가 있다는 생각이다. 모두가 이유를 갖고 서로 연관돼있어 장애인을 무의미하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로 볼 수 없다. 하지지체장애인은 달리기가 불편할 뿐이고, 다른 역량이 존재한다. 시각장애인은 촉각이 예민해서 비장애인이 못하는 일을 능숙하게 해내기도 한다. 어떤 가치를 측정하고 계산할 때 하나의 잣대로만 보면 높낮이가 생긴다. 창조질서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보면 오케스트레이션이고, 모든 것에 의미와 가치가 있기에 기능적으로 서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장애인·비장애인 모두 자기 나름대로 세계관을 갖고 호불호를 판단할 줄 안다. 사회에서 경제 생산성, 미적 기준으로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야를 넓혀 이해의 폭이 늘어나면 사회가 조화로운 방향으로 더 좋게 변화할 수 있어서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인간으로서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장애도 개성으로 보고, 장애인과 같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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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신학’ ‘장애인신학’ 이름으로 전개된 논의들이 있다. 왜 장애신학이 아닌 ‘재활신학’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궁금하다.

‘장애’라는 말을 선호하지 않은 것은 뉘앙스 때문이다. ‘disabled theology’라고 하면, ‘장애의 신학’, 즉 신학에 장애가 있다는 말이 된다. 나사렛대 휴먼재활학부 김종인 교수는 장애를 ‘differently abled’라고 주장한다. 데리다가 말한 ‘차연성’으로, 차별이 아니라 차이의 관점에서 장애에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르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활성화하자는 차원에서 ‘재활’이다. 장애인의 사회통합화 등을 고려했을 때 이 용어가 더 적합한 면이 있다.

- ‘재활’ 측면에서 장애를 개성으로 받아들여 건강하게 소화할 수도 있겠지만, 외려 장애인 당사자들이 ‘장애도 개성이다’라는 주장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 인식도 바뀌어야 하지만, 장애인에게도 의식의 재활이 필요하다. 항상 사회에서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내 자녀가 장애인을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나도 마음이 아주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만나고 식사하면서 인간 됨됨이를 볼 것이다. 서로 어떻게 사랑하는지, 한 식구가 되기 위한 가능성을 살필 것이다. 비장애인의 경우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 의식이 하나 돼야 사위든, 며느리든 되지 않겠나. 어울리고 깊이 사귀면 장애가 보이지 않는다. 장애를 인식하지 않은 채로 대하게 된다. 인간관계가 그렇다.

과거 ‘지적장애도 개성인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고, 완벽하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모든 현상을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지적장애도 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더스틴 호프만이 영화 〈레인맨〉(1988)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연기하는데, 기억력이 비상한 인물로 나온다.

장애에 대한 유명한 구절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요한복음 9장에 선천적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묻자, 예수님이 대답하지 않았나. 부모 잘못도, 본인 잘못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했다. 한쪽에서 보면 약점일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다. 입체적 시야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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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에는 유전자 기술로 장애 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더라.

미래학에서 유전자 기술에 대해 걱정하기도 한다. 충분히 검증됐을 때 특별한 환경에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윤리적 차원에서 이야기한다. 장애의 한계는 미래에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다. 유전자 디자인 영역에서 주장하는 것을 보면, 디자인을 한 번 하면 대대로 내려간다. 잘못돼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대로 내려가니까 위험성이 크다. 배아(embryo) 단계에서 유전자 검사를 하면, 태어날 때 어떤 장애를 갖고 있을지, 살면서 언제쯤 어떤 장애가 일어날지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러면 미리 편집해 정상화할 수 있고, 아예 낳지 않는 등 여러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윤리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노화의 종말》(부키)을 쓴 하버드 유전학 교수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유전자 편집과 세포 재프로그래밍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며, 시간문제라고 주장한다. 인간에게 약 2만 5천 개의 유전자가 있는데, 유전자는 그대로고 세포만 노화현상을 겪는다. 장애 문제를 유전자 편집을 통해 언젠가는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장밋빛 주장을 한다.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시간이 걸릴지 모르나 그런 시대가 온다고 본다. 인간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220년 이상을 살지 못한다는 견해도 있다. 모든 장애가 해결될지는 수수께끼다.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유전자 분야와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계급 차가 더욱 커져 극단적인 이원화 상황으로 갈 것이라 본다. 반면, 미국의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일정 기간 양극화가 발생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평균화가 온다고 말한다. 컴퓨터가 나왔을 때 소수가 소유하다가 이제는 웬만하면 다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 세대를 넘기지 않고 결국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 한국교회 장애인 사역이 앞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돼야 한다고 보나.

한국교회의 장애인 사역은 열악하다. 지원이 필요한데,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힘든 것이 현실이라 안타깝다. 또한, 지체장애인 사역은 상대적으로 수월한데, 문제는 시각장애·청각장애 사역을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우리 신학대학원 같은 경우, 청각장애인 한 사람을 지원하려면 두 사람만큼 등록금이 든다. 학부와 달리, 석사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추가 도우미로 임용해서 수업을 듣고 과제도 같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역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수어통역이나 자막 등을 지원해줘야 한다. 청각장애인이 예배할 수 있는 교회가 별로 없어서 아쉬운 점이 많다. 계속 헌금하고 투자해야 하는 영역이다. 기성 교회들이 나서서 헌신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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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신학을 꾸준히 탐구하면서, 오늘날 기독교의 복음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돼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해왔다. 앞으로 신학은 교회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모더니티를 강조하던 시기에는 개인과 인권, 이성과 지식이 중요했다. 하지만 모더니티는 한계에 왔고, 이제 포스트모던 시대다. 사람들이 변했다.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느낌 좋은 것에 끌린다. 오늘 어디 가서 누구와 무엇을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는지에 더 가치를 부여한다. 개인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떤지를 비롯해 공동체가 무척 중요해졌다. ‘혼밥 시대’라고들 하지만, 동아리나 소그룹이 활성화되고 있다.

성경 학습 중심의 모더니티 교회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다양한 교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사람들 취향에 맞추는 일이 중요해졌다. 다양한 소그룹 형태를 만들어 사역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일에 등산해서 산 위에서 예배하자고 하면, 거기서 예배하고 간증하고 전도하면서 도시락을 먹을 수도 있어야 한다. 물론 주일에는 안식하며 교회에서 예배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교회가 계층 구조적이고 직분 중심적인 기존 방식을 고집하면 할수록 점점 더 제한을 받을 것이다. 수평적 기능의 관계, 공감적 시스템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변화해야 한다.

신학도 마찬가지다. 수정주의 신학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트레이시는 많은 사람이 논리 차원에서 성경 진리를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강조해야 하는 것은 영적 미학이라고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논리적 타당성을 따졌을 때 안 맞다. 하지만 감동적이고 멋있는 것이다. 자꾸 논리를 내세우면서 주입식으로 진리라고 하면 설득하기 힘들다. 예술 작품을 느끼듯 직관·감성 등을 통한 ‘아름다움’을 강조해야 한다. 예배는 아름다운 것이다. 영적 체험에는 지성 작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온몸으로 실질적 차원에서 영적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것이 ‘신적 소통’의 핵심이다. 

포스트모던 신학에 마크 테일러의 무신학(A/Theology)이 있는데, 그에게는 객관적인 신학 언어로 묘사된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의 주장과도 비슷하다. 하나님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 존재하고 저기 존재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존재하는 존재 이상의 존재이면서 온 우주에 내재한다. 한마디로, 자꾸만 모더니티 방식대로 신학적·교리적으로 지나치게 정의하면서 객관화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신적 소통을 통해 영적 미학의 심연을 섭렵하게 하는 일이 차세대 신학의 임무다.

교리의 명제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객관적·시스템적 해석을 넘어 영성의 미학적 차원을 강조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리·언어·논리·지식 중심주의 신학을 넘어서야 한다. 감성을 포함해 영적 아름다움의 세계를 다뤄야 한다. 아울러 기독교 신학은 과학 사상도 활용해야 한다. 이 시대는 디지털 기술로 문명의 혁명적 패러다임 변화를 겪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디지털 혁명이 맞물린 상황을 소화해 신학 연구와 사역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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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 과학 사상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말인가.

과거에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에 전도하기 위해 히브리 메시아를 그리스어 ‘로고스’로 표현했다. 로고스는 당시 그리스에서 자연 질서, 자연법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그 개념을 그대로 쓰지 않고,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우주 질서를 이야기하면서 활용했기에 그리스 문화권에서 기독교를 수용적으로 받아들였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성경의 은총론을 잘 이해할 수 있게끔 신플라주의를 활용했는데, 전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을 통해 신학을 집대성하여 설명했다. 처음에는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타당성이 크다는 사실이 드러나 가톨릭신학 기반이 됐다. 이 덕분에 가톨릭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고 본다.

차세대 사역을 위해서는 교회가 과학기술 문명을 소화해야 한다. 과학 사상을 공부해보면, 성경 속 초자연적 사건보다 더 신비스럽고 구름을 잡는 듯한 이야기가 많다. 이를테면, 전자는 벽을 뚫고 나가 정보·이미지를 전달한다. 시공간이 실제로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도 논쟁이 있다. 보통 우주는 빅뱅으로 시작됐다고들 생각한다. 스티븐 호킹은 빅뱅이 시작하는 시간을 ‘가상적 시간’이라고 말한다. 변화에 대한 과학적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빅뱅을 믿는다. 하지만 가상 시간 혹은 가상 공간에서 언제 어떻게 시간이 시작됐다는 말인가. 지금도 모른다. 그래서 다중우주론을 받아들이는 물리학자도 많다.

우리 존재 자체가 진짜인가 하는 물음도 있다. 살아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몸에 있는 원자 혹은 쿼크(quark, 양성자·중성자 같은 소립자를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기본적인 입자)는 같은데, 무엇이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것일까.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가 생사의 기준이라면, ‘생명은 의식뿐’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이 경우 죽음은 의식만 없는 상태다. 2020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로저 펜로즈와 애리조나 대학 심리학 교수 스튜어트 해머로프는 의식이 있다고 본다. 의식 세계가 있으니 수학을 생각하고 서로 대화한다는 말이다. 슈퍼 의식, 우주 의식까지 이야기한다. 이 우주 의식이 물리 질서와 우주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드는 것인데, 신의 경륜적 요소로 본다. 경이로운 일 아닌가.

경이로움을 보는 순간, 그 세계로 들어가면 곧 신앙의 세계가 열린다. 성경은 유대 전통에서 인간이 우주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계시해준 것이다. 문자적으로 볼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과학 사상을 어느 정도 소화해야 차세대를 위한 포스트모던 정통주의 신학의 작업이 가능하다.

대부분 목회자·신학자는 미래 사회에 종교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하지만 철학자 데리다는 ‘고등종교의 회귀’라는 표현을 썼고, 미래 종교를 낙관적으로 보는 미래학자도 적지 않다. 인류는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식으로 말하면, ‘초월적 깊은 놀이’에 훨씬 깊이 들어갈 것이다. 종교 내지는 삶의 의미 등에 깊은 관심을 둘 것이라 보는데, 나도 의견이 같다. ‘미래 교회의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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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 미래 교회의 르네상스?

앞으로는 AI 로봇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포함해 인간의 일 중 상당 부분을 대체할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도 《노동의 종말》(민음사)에서 앞으로 노동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먹는 문제도 거의 해결되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 스티븐 핑커는 2030년이 오면 빈곤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영양 측면에서는 배고픈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고, 의식주조차 과학기술 문명이 해결할 것이고, 웨어러블 건강 진단기로 몸 상태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어서 병원에 갈 필요가 상당히 줄어든다면 어떨까. 시간이 많이 생긴다. 리프킨은 시간이 많은 인류는 초월적 깊은 놀이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러 철학과 종교를 비교할 것이다. 종교의 경우 경전을 놓고 비교할 것인데, 내 생각에는 미래에 기독교가 가치 경쟁에서 승리할 듯싶다. 불교도 타당성이 상당하지만, 허무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허무한 것을 추구할 것 같지는 않다. 이제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줄어드는 추세다. 유전자와 DNA를 보면 생명이 그렇게 허무하지는 않다. 비교신학·과학신학 내지는 여러 담론이 자동으로 비중 있게 등장할 것이다. 이것이 모여 교회 부흥으로 이어지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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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 앞으로의 계획은.

논문과 책을 쓰면서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일이 학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사회에 별로 기여하지 못한 것 같다.(웃음) 27년간 학교에 있었는데, 이제 퇴직한다. 퇴직 후 저술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올여름에 《악의 미래》라는 책을 내려 한다. 경제학·정치학·사회학 담론을 가져오면서 ‘악’과 관련한 도덕철학 문제를 다뤘다. 디지털 혁명으로 통제 불능의 시대, 정부가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이 동시다발적으로 성장해 제어하지 못하는 때가 올 것이다. 통제 불능 시대에는 윤리가 매우 중요하다. 장애인과 노인 등 액세스가 힘든 사람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숨어서 해킹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에는 협력·공생의 과학 윤리가 핵심이라고 제시했다.

오케스트레이션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약자가 평등하게 대우받는 미래 사회를 위한 협력·공생을 담은 글을 꾸준히 쓰려 한다. 올해 안에 《미래 교회의 르네상스》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미래 세대를 위한 제자 훈련 교재도 구상하고 있다. 앞으로 저술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사회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한다면 보람이 크겠다. 

진행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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