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호 잠깐 독서]
풍성한 은혜의 복음을 깨닫기 원한다면
‘바울 연구의 분기점’으로 평가받는 대작 《바울과 선물》을 정리·요약하고, 더욱 선명한 이해를 돕고자 추가·확장한 책이다. 저자인 영국 더럼 대학교 존 M. G. 바클레이 석좌교수가 목회자·평신도를 위해 절반도 안 되는 분량으로 요약한 내용을 담은 1~9장, 이를 바탕으로 고린도전후서를 주해하는 10~11장, 저자의 견해와 여러 관점을 비교·대조·평가하는 12장, ‘은혜 신학’이 오늘날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설명한 13장으로 구성돼있다. 옮긴이가 쓴 《바울과 선물》 서평이 부록으로 실렸다.
바울이 깨달았듯, 문화의 ‘아비투스’ 속에 깊이 뿌리내린, 상속받은 사회적 기준들을 깨뜨려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가정들을 전복시키는 십자가의 신학을, 그리고 가치의 모든 표준을 재조정하는 은혜의 신학을 주장했다. 이 은혜의 신학은 계층적 장벽을 깨트리는 사람들에 의해서, 인종적 차별에 도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가치를 분명히 보여준 사람들에 의해서 가장 분명히 나타났다. … 바울의 은혜 신학은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 인종차별, 남녀차별, 그리고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데 있어서 풍성한 자원이 된다. (333쪽)
코로나 시대에 붙잡아야 할 신앙의 정수
104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세계 성공회 공동체를 이끌었던 신학자 로완 윌리엄스가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쓴 묵상 모음집이다. 팬데믹 상황을 맞아 다양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추슬렀던 한 지역 교회의 소식지에 기고한 짧은 글들을 묶은 것이다. 총 26편의 글과 만날 수 있다. 세계의 혼란과 삶의 위기가 불러오는 복잡한 질문들을 신앙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통해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스도교 복음은 우리가 언제나 공동의 실패로, 공동의 연약함, 취약함, 공동의 불안으로 엮여 있다고 반복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 때, 자기, 상대의 실패와 연약함, 취약함을 부정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 신앙은 오히려 우리의 공통된 연약함과 취약함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길,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길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두려움에 남을 짓밟고서라도 나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우리는 모두 서로가 필요함을, 내 이웃의 안전, 안녕이 곧 내 삶의 안전, 안녕과 직결된 문제임을 깨달을 것을 요구합니다. (194-195쪽)
홀로코스트 시대의 신앙고백
네덜란드 유대인 에티 힐레숨(1914-1943)은 스물아홉 살에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에티는 ‘신 없는’ 시대 가운데 절망하지 않고 신에 의지하여 고통 속에서도 믿음과 용기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쫓기는 삶’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동포들과 운명을 함께하고자 도망치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에티가 남긴 일기와 편지들을 정리한 책이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일에서 내가 면제된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은 살아남아서 해야 할 일이 많고 남에게 줄 것이 많기 때문에 숨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계속 말한다. 하지만 내가 남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 줄 수 있다는 걸 안다. 친구들과 함께 여기에 있든 강제수용소에 있든 상관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하기에는 자기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순전히 교만일 뿐이다. 그리고 만일 신도 내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신다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겪어야만 하는 고통을 나도 함께 겪은 후에도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 내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어떻게 죽는가에 의해 내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가 밝혀질 것이다. (p. 487) (147쪽)
‘어디서’라는 물음으로 성경을 살피다
간과되기 쉬운 지리(장소)야말로 적법한 해석학의 범주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주석. 예수가 태어날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1세기 이스라엘 땅의 기후와 지리는 어떠했는지, 예수의 비유에서 자주 쓰인 땅·겨자씨·누룩·포도나무·농부 등은 당시에 어떤 의미였는지 등을 이스라엘의 문화와 사회, 지리, 고고학적 발견들로 설명한다.
예수의 무덤이 위치한 장소로는 두 곳이 거론된다. 성묘 교회로 보는 견해의 역사는 여러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동산 무덤 또는 고든의 갈보리로 보는 견해는 비교적 최근 것이며, 1800년대에 처음 제시되었다.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은 전자를 선호하며, 프로테스탄트 신자들 중에도 전자를 선호하는 이가 많다. 물론 후자를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역사와 고고학은 전자를 뒷받침한다. … 현재 예루살렘 옛 성벽 안쪽(그러나 예수 당시에는 성벽 바깥)에 위치한 성묘 교회 부지는 적어도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어머니 헬레나 시대 이후로 존중되어 왔다. 예수의 십자가를 헬레네가 발견했다는 이야기의 역사성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십자가 처형 당시부터 콘스탄티누스가 성묘 교회를 짓기까지 계속 있었던 증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43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