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호 묵상 스케치 - 개혁신앙의 뿌리]
피에르 발도는 종교개혁의 선구자다. 종교개혁의 주창자 루터보다 350년 앞서, ‘종교개혁의 새벽별’ 위클리프보다 200년 앞서서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 개혁을 요구하고 ‘오직 성서’라는 원리를 확립한 인물이다. 로마가톨릭의 교권이 절정에 달했던 12세기, 프랑스 리옹 출신인 발도는 맘몬에 사로잡힌 교회를 비판하면서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다. ‘하나님이냐, 맘몬이냐’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머뭇거림 없이 하나님 편을 택했다. 그는 부유한 상인이었지만 모든 재산을 빈자에게 나누어주며 제자도의 모습을 보여줬고,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났다. 이들은 ‘리옹의 가난한 자들’ 혹은 ‘발도(왈도)파’로 불리었다.
독일 보름스에 있는 종교개혁기념공원을 방문하면 한가운데 루터가 우뚝 서있고, 그 아래 루터를 둘러싸고 네 사람이 앉아있다. 이들은 종교개혁의 길을 예비한 선배들이다. 시대순으로 보면 발도, 위클리프, 후스, 사보나롤라가 그 주인공이다. 그중 가장 대선배인 사람이 바로 발도다. 〔그림1〕에 나오는 발도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해어진 옷과 구멍 난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전대도, 두 벌 옷도, 여유분의 신발도 없이 주님을 위한 가난을 스스로 택했던 발도 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를 ‘가난의 사도’라 칭송하지만, 사실 프란체스코보다 40년이나 먼저 자발적 가난의 이상을 품고 사도로 살았던 인물이 발도다. 발도파는 복음을 뒷전으로 제쳐두고 탐욕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로마교회에 너무나 불편하고 성가신 존재였다.
〔그림1〕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발도가 성서를 들고 가리키는 모습이다. 발도는 성서를 자국어인 프랑스어로 번역한 최초의 인물이다. 중세 천년 동안 가톨릭교회는 히에로니무스가 번역한 라틴어 불가타 성서만을 고집했다. 라틴어 외에 다른 언어로 성서를 번역하는 일을 이단적 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은 라틴어를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든지 읽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그 뜻대로 살 수 있다고 믿었기에, 자신이 살던 프랑스 남부 방언으로 신약성서를 번역했다. ‘오직 성서’와 ‘만인제사장설’이 종교개혁의 중심 원리라면, 이것을 가장 먼저 실천적으로 보여준 선구적 인물이 바로 발도다.
발도파는 교회의 안일과 향락을 비판하고, 누구든지 성서를 읽고 가르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마가톨릭 교권주의자들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1215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제4차 라테란공의회에서 발도파를 이단으로 규정했고, 그때부터 발도파에 대한 모진 박해가 이어졌다. 발도파는 박해를 피해 알프스산맥으로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발도파는 권력의 중심인 파리에서 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떨어진 프랑스 남부 지역의 산으로 몸을 피했다.
〔그림2〕는 프랑스 남쪽 뤼베롱 산악 지역에 위치한 메랭돌이라는 작은 마을의 산성이다. 16세기에 들어오면서 뤼베롱 지역에서는 발도파를 투옥·고문·화형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1545년 메랭돌을 비롯한 주변 마을에 피신한 3,000명 이상의 발도파 교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 소식을 듣고 선배 파렐에게 보낸 편지에서 “박해자들이 얼마나 야만적이며 잔인했던지, 나는 그 생각을 할 때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아! 무슨 말로 이 당혹감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썼다. 오늘날 그리 높지 않은 산성에 올라가면 발도파 신자들이 게시해놓은 명판이 있다.
1545년 4월 18일, 왕의 군대에 의해 메랭돌 마을이 불타고 파괴되었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에서 온 발도의 후예들은 1978년 이 현장에 발도파 기념 명판을 게시한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필자는 두 차례 메랭돌 산성을 방문했는데, 발도파 순교자들의 역사 앞에서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림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글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Th.M.)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개혁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