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호 묵상 스케치 - 개혁신앙의 뿌리]
체코의 교회 개혁자 얀 후스가 설교했던 베들레헴 채플에 의미심장한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을 보면 위쪽에 존 위클리프가 부싯돌로 불꽃을 일으키고 있고, 중간에 후스가 초를 켜고 있으며 아래쪽에 마르틴 루터가 횃불을 들고 있다. 이는 위클리프의 개혁 정신이 후스를 거치며 확산하고 루터에 이르러서 마침내 환하게 세상을 비추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때가 차매” 일어난 교회 개혁을 염원하는 외침이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었다.
1483년 독일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난 루터는 아이제나흐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후 1501년 에르푸르트 대학에 진학하였다. 법률가를 꿈꾸던 루터가 1505년 7월 17일 돌연 에르푸르트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도사가 되기로 한 계기가 2주 전 경험한 소위 ‘폭풍우 사건’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의 인생 항로가 갑작스레 바뀐 것만은 확실하다.
루터는 1505년부터 1511년 비텐베르크로 떠나기까지 에르푸르트 수도원에서 살았다. 이 수도원은 루터가 ‘어떻게 해야 나의 양심이 죄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안고 영적 불안과 고민 속에서 몸부림쳤던 영혼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수도원은 현재 에르푸르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적 건물이다. 〔그림1〕은 2017년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수도원 옛 건물과 연결하여 새롭게 건축한 부분이다. 수도원을 방문하면 안내자를 따라 루터의 방, 수도사의 방, 고서로 가득한 작은 도서관, 수도원 회랑 등을 돌아볼 수 있다.1)
비텐베르크에서 루터는 수도사에서 교회 개혁자로 변신하였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내건 ‘95개 논제’는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1521년 1월 루터는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했고, 곧이어 황제 카를 5세로부터 제국의회가 열리는 보름스로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받았다. 1521년 4월 18일, 황제와 제국 앞에서 입장 철회를 요구받은 루터는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습니다. 양심을 거스르는 일은 안전하지도 옳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고백하며 이를 거부하였다. 루터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으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순간이었다. 〔그림2〕는 당시 제국의회가 열렸던 보름스 대성당이다. 보름스를 방문한다면 이 대성당과 루터가 열흘 동안 머물렀던 집, 종교개혁자 기념 조형물이 있는 공원을 꼭 찾아가서 나의 양심은 무엇에 붙들려 있는지 정직하게 실존적 물음을 던져보길 바란다.
보름스를 떠난 루터는 교황과 황제 모두에게 버림받은 몸이었다. 누가 루터를 당장 죽여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다행히 비텐베르크의 영주 현자 프리드리히가 도움을 주어 루터는 자신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아이제나흐의 산 위에 있는 성채인 바르트부르크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림3〕이 바로 그곳이며, 루터는 1521년 5월부터 1522년 3월까지 이 성의 작은 방에 숨어 지내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직면하며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옳은 방향인지를 물었다. 루터는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곳을 “나의 밧모섬”이라고 불렀다. 〔그림3〕 건물 안에 루터의 방이 있다. “말씀에 사로잡힌 양심” 루터는 이곳에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이후 종교개혁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근대 독일어 형성에도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1505년 수도복을 입은 루터가 16년 만에 수도사복을 벗은 곳도 바로 여기였다. 바르트부르크의 작은 방이야말로 루터가 종교개혁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루터의 밧모섬”이었다.
1) 순례자를 위한 숙소도 마련되어 있으니 루터의 정신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껴보기를 원한다면 꼭 숙박하길 바란다. 찾는 사람이 많아 일찍 예약해야 한다. (https://www.augustinerkloster.de)
그림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글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Th.M.)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개혁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