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호 묵상 스케치 - 개혁신앙의 뿌리]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는 루터와 함께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이끈 쌍두마차 중 한 사람이다. 루터로부터 루터교회가 출발했다면, 츠빙글리로부터는 개혁교회가 시작되었다. ‘개혁교회의 아버지’ 츠빙글리는 1484년 스위스 장크트갈렌주에 속한 토겐부르크 지방의 빌트하우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베른·빈·바젤에서 수학하였다. 1506년 바젤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같은 해 로마가톨릭교회 사제로 서품되었다. 글라루스(1506-1516)와 아인지델른(1516-1518)에서 12년 동안 사목 활동을 펼쳤다. 그러다 1519년 취리히 그로스뮌스터(대성당)으로 부임하면서 종교개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1531년 제2차 카펠전투1)에서 죽기까지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로서 치열하게 살았다.

16세기 사람들은 흑사병으로 고통을 겪었다. 츠빙글리가 그로스뮌스터에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519년 8월경 취리히에 흑사병이 발발하여 도시 인구 중 3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는 참사가 벌어졌다. 목회자로서 환자들을 심방하며 돌보던 츠빙글리도 앓아눕고 말았다. 거의 두 달 동안 사투를 벌이면서 썼던 그의 시가 지금도 전해진다.

주님, 나를 도우소서.
나의 힘, 나의 반석이시여
문밖에서는
죽음이 문 두드리는 소리

나를 위해 못 박히신
당신의 손을 높이 들어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나를 구원하소서.

그러나 당신의 음성이
내 생애의 한낮인 지금이라도
내 영혼을 부르신다면
나는 순종하겠나이다.

신앙과 소망 안에서
이 땅을 포기하고
천국을 얻고자 하나니
나는 당신의 것이니이다.

〔그림1〕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개혁교회 전통 근간이 이곳에서 마련되었다.
〔그림1〕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개혁교회 전통 근간이 이곳에서 마련되었다.

〔그림1〕은 츠빙글리 개혁의 중심지인 취리히 그로스뮌스터다. 이곳이 개혁교회의 요람이다. 바로 여기에서 로마가톨릭교회나 루터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츠빙글리의 ‘연속 강해설교’가 시작되었고, 목회자들이 모여 성경을 연구하는 ‘예언모임’(prophezei)이 열렸고, 루터 성경(1534)보다 3년 먼저 독일어로 된 취리히 성경(1531)이 나왔고, 세례와 성찬을 포함한 예배 개혁이 이루어졌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개혁교회 전통 근간이 이곳에서 마련되었다. 교회당 남쪽 ‘츠빙글리 문’이라 불리는 청동문에는 츠빙글리의 생애가 24개 작품으로 표현되어있다. 교회당 내부 앞쪽에는 세례반과 취리히 성경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림2〕 이곳에서 로마가톨릭교회 측과 츠빙글리 및 동료들이 청중 수백 명을 앞에 두고 공개 논쟁을 벌였다.<br>
〔그림2〕 이곳에서 로마가톨릭교회 측과 츠빙글리 및 동료들이 청중 수백 명을 앞에 두고 공개 논쟁을 벌였다.

〔그림2〕는 구(舊) 취리히 시청사다. 1523년 1월과 10월 이곳에서 로마가톨릭교회 측과 츠빙글리 및 동료들이 청중 수백 명을 앞에 두고 공개 논쟁을 벌였다. 논쟁의 원인은 1522년에 벌어진 ‘소시지 사건’이었다. 출판업자 프로샤우어를 비롯한 몇 사람이 사순절 기간 소시지를 먹은 일이 알려지자 가톨릭 측에서는 사순절 육식 금지 전통을 어겼다며 처벌을 주장했다. 츠빙글리는 그 전통이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또 하나님이 주신 음식은 무엇이든 먹을 자유가 있다며 반박했다. 하지만 공개 논쟁이 시작되자 츠빙글리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전면적 개혁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이때 제시된 내용이 츠빙글리의 개혁 청사진인 ‘67개 논제’이다.

루터의 개혁이 ‘95개 논제’에서 비롯되었다면, 츠빙글리의 개혁은 ‘67개 논제’로 시작되었다. 둘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95개 논제’가 학자들 간 토론을 위해 라틴어로 기록되었다면, ‘67개 논제’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독일어로 작성되었다. 전자가 면벌부라는 신학 주제에 집중했다면, 후자는 종교·사회·정치 주제들까지 포괄한다. 이것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이 취리히 시민들을 위한 목회적 관심에서 출발했으며, 공동체 문제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었음을 보여준다.

■ 주

1) 1529년과 1531년 스위스 취리히 남방의 카펠에서 개신교와 가톨릭 간에 벌어진 두 차례의 종교전쟁.


그림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Th.M.)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개혁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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