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호 묵상 스케치 - 개혁신앙의 뿌리]

〔그림1〕 칼뱅은 1541년부터 1564년 숨을 거둘 때까지 23년 동안 제네바의 목회자·개혁자·교육자로 살았다.
〔그림1〕 칼뱅은 1541년부터 1564년 숨을 거둘 때까지 23년 동안 제네바의 목회자·개혁자·교육자로 살았다.

〔그림1〕은 칼뱅이 사역했던 제네바 생 피에르 교회다. 1538년 4월 제네바를 떠났던 칼뱅이 3년 7개월 만인 1541년 9월에 생 피에르 교회 목회자로 귀환했다. 칼뱅은 이때부터 1564년 5월 27일 숨을 거둘 때까지 23년 동안 제네바의 목회자·개혁자·교육자로 살았다. 2년 남짓한 제네바 1차 사역(1536-1538)까지 합치면 25년간 제네바에서 사역한 셈이다. 이로써 제네바는 칼뱅의 도시가 되었고, 칼뱅은 제네바의 영혼이 되었다.

정면이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빼닮은 생 피에르 교회는 이름 그대로 ‘성 베드로’를 기념하는 교회이다. 1160년 착공하여 1232년 완공된 건축물이다. 그 후 여러 차례 증개축하면서 시대에 따른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합되었다.

칼뱅은 이 예배당 안에 있는 설교단에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역설했다. 설교단 근처에는 그가 사용했다는 ‘칼뱅 의자’가 놓여있다.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 칭의와 성화, 교회의 개혁과 사회의 변화 모두를 강조했던 칼뱅의 통전적 노력은 제네바를 종교개혁의 모범 도시로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로마가 가톨릭교회에서 갖는 중심적 위치에 견주어, 제네바를 ‘프로테스탄티즘의 로마’라 부르기까지 했다.

칼뱅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신앙고백서, 교리문답서, 예배예식서, 교회헌법을 제시했고 제네바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목회자와 평신도가 동수로 구성된 치리 기구인 ‘콩시스투아르’를 만들었다.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종합구빈원’과 ‘프랑스기금’을 설치하고, 다음 세대 교육을 위해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하면서 명실상부 제네바를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도시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1556년 제네바를 방문한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존 녹스는 이 도시를 가리켜 “사도 시대 이후 가장 완벽한 그리스도의 학교”라며 감탄했다. 녹스는 칼뱅과 함께 제네바에서 개혁운동을 펼치다가 1559년 고국인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서 1560년 스코틀랜드 의회에 ‘신앙고백서’와 ‘교회치리서’를 제시했다. 의회가 이를 수용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역사상 최초의 장로교 국가가 되었다.

생 피에르 교회를 방문한다면 오른편에 있는 ‘칼뱅 강당’과 왼편에 있는 ‘종교개혁 기념 박물관’도 함께 둘러보길 바란다. 칼뱅 강당은 칼뱅이 성경을 가르치던 곳인데, 영어권 피난민들이 녹스와 함께 예배했던 예배당이기도 하다. 그래서 ‘녹스 채플’이라고도 불린다. 종교개혁 기념 박물관에서는 제네바 종교개혁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생 피에르 교회에서 가까운 ‘칼뱅 거리’에서는 칼뱅이 1543년부터 1564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던 자택도 볼 수 있다.

〔그림2〕 제네바 구시가지 성벽 아래쪽 바스티옹 공원 벽면에 세워진 종교개혁 기념 조형물 중 일부이다.
〔그림2〕 제네바 구시가지 성벽 아래쪽 바스티옹 공원 벽면에 세워진 종교개혁 기념 조형물 중 일부이다.

〔그림2〕는 제네바 구시가지 성벽 아래쪽 바스티옹 공원 벽면에 세워진 종교개혁 기념 조형물 중 일부이다. 이 조형물은 칼뱅 탄생 400주년이자 제네바 아카데미 설립 350주년이 되는 1909년에 착공하여 1917년에 완성되었다. 길이 100m, 높이 10m의 거대한 기념비 한복판에 네 명의 개혁자가 서있다. 그리고 파렐, 칼뱅, 베자, 녹스의 이름이 보인다. 제네바 종교개혁에 끼친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해 칼뱅 석상은 다른 석상보다 조금 더 크게, 조금 더 앞에 세워졌다. 석상들 아래에는 ‘ⅠΗΣ’라는 모노그램이 보이는데, 그리스어로 예수 그리스도(ΙΗΣΟΓΣ ΧΡΙΣΤΟΣ)를 뜻하는 단어의 앞 글자들을 따왔다. 네 석상 좌우에는 종교개혁과 연관된 다양한 인물들이 조각되었으며, 제네바 종교개혁 표어인 ‘Post Tenebras Lux’(어둠 후에 빛)라는 라틴어가 새겨졌다.

칼뱅은 프랑스인이지만 스위스 제네바의 개혁자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따라서 칼뱅의 무덤도 제네바의 플랭팔레 공립묘지에 있다. 칼뱅 후계자인 테오도뤼스 베자가 장례식 때 바친 송가(頌歌) 한 구절이 칼뱅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존경하는 칼뱅이 먼지로 돌아가나니
그에게서 덕을 배울지라.
퇴락하는 로마가 가장 두려워할 그가
이제 선인들의 통곡 속에 숨졌도다.
비열한 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그가
너무나도 초라하고 조그만 무덤 속에 누워있구나.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채로.

그림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Th.M.)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개혁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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