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호 묵상 스케치 - 개혁신앙의 뿌리]

〔그림1〕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요구하십시오.<br>
〔그림1〕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요구하십시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한복판에는 체코의 개혁자 얀 후스(c.1371-1415)를 기념하는 동상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림1〕의 후스는 루터보다 한 세기 먼저 태어나 로마가톨릭교회에 개혁을 요구하다 화형을 당한 순교자이다. 그는 프라하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공부를 했고, 이후 프라하 대학 신학부 학장으로서 가르치기도 하였다. 후스는 일찍이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 불리는 잉글랜드의 존 위클리프(c.1320s-1384)에게 깊은 영향을 받아, 로마가톨릭교회가 근본으로부터 개혁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후스는 주저인 《교회》에서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며, 교회의 기초인 반석 또한 로마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임을 역설하였다. 이 확신이 후스로 하여금 복음의 대변인, 교회 개혁의 주창자가 되도록 이끌었다. 결국 그는 1415년 7월 6일 로마가톨릭교회 콘스탄츠공의회 결정에 따라 순교자의 면류관을 쓰게 되었다.

〔그림1〕 후스 기념 동상은 라디슬라프 샬로운(Ladislav Saloun)의 작품이다. 후스가 순교의 제물이 된 지 정확히 500주년이던 1915년 7월 6일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비탄에 빠진 체코 민중들 사이에 우뚝 서있는 후스는 체코 민족의 자부심이다. 지금도 체코는 후스의 순교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키고 있다. 거짓과 불의 앞에서 끝까지 진리를 외치며 당당하게 순교한 후스의 용기와 기상이야말로 체코인들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사표(師表)이다. 기념 조형물 전면 아래에는 후스가 콘스탄츠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 적힌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요구하십시오.” 후스는 사도신경을 해설하면서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여! 그대는 진리를 찾아 나서고, 진리를 듣고, 진리를 배우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지키고, 죽기까지 진리를 증언하십시오”라고 권면한다. 후스는 복음의 진리를 지키는 좁고도 험한 길을 걸었고, 화형 장작더미 앞에서도 복음의 진리를 당당하게 외친 종교개혁의 선구자였다.

〔그림2〕 후스는 1402년 베들레헴 채플 설교자로 임명된 후 10여 년 동안 바로 여기에서 3,000번 이상 설교하였다.&nbsp;
〔그림2〕 후스는 1402년 베들레헴 채플 설교자로 임명된 후 10여 년 동안 바로 여기에서 3,000번 이상 설교하였다. 

〔그림2〕는 프라하에 있는 베들레헴 채플이다. 후스는 1402년 베들레헴 채플 설교자로 임명된 후 10여 년 동안 바로 여기에서 3,000번 이상 설교하였다. 이곳에서 후스는 로마교회가 강요하는 라틴어가 아니라 민중들이 사용하는 체코어로 설교하였고, 체코어로 기도하였으며, 체코어로 된 찬송을 만들어 함께 찬양하였다. 그뿐 아니라 로마교회가 성찬에서 빵만 나누어주는 것을 비판하고, 빵과 함께 포도주를 분배하였다. 이후 포도주 잔은 후스를 따르는 사람들의 상징이 되었다. 채플 내부 벽면에는 설교하는 후스, 체코어 회중찬송, 화형을 당하는 후스 등이 그려져 있다. 채플 한쪽에는 후스 순교 600주년이던 2015년 7월 6일 기념 예배를 드리면서 타종했던 종이 걸려있다. 그 앞에 서면 양심을 울리는 소리, 타성에 젖은 신앙에 경종을 울리는 소리가 우리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다.

후스는 죽었지만 후스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후스가 찾고, 지키고, 따르고자 했던 진리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 곧 후스파가 생겨났다. 그들 또한 스승인 후스처럼 모진 박해를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복음의 진리 안에 거하고자 하였다. 15세기 보헤미아 형제단이나 18세기 모라비아 형제단도 후스의 정신을 따라 진리의 길을 걷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후스의 정신을 따라 살고자 몸부림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빨간 뾰족지붕의 도시 프라하, 백탑의 도시 프라하, 카프카·모차르트·드보르자크·스메타나를 매혹시킨 예술의 도시 프라하는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중 하나이다. 그러나 후스를 모른다면 프라하를 온전히 본 것도, 경험한 것도 아니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우뚝 서있는 후스, 베들레헴 채플에서 목청 높여 진리를 외치는 후스를 만나는 일이야말로 프라하를 진정으로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그림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Th.M.)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개혁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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