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호 에디터가 고른 책]
“고통의 깊이가 내 말의 능력을 뒤덮어 버렸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해야 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기도할 다른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던 그때, 뼛속까지 지치고 영혼이 소진되어 오직 기도를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던 그때, 나는 밤기도로 고개를 돌렸다.”
일상의 순간들에 대한 신학적 통찰을 담은 《오늘이라는 예배》(IVP)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주목을 받은 성공회 사제 티시 해리슨 워런의 신간이다. 예전과 교회 전통의 바탕 위에서 그림자 드리운 인생길을 헤쳐가는 법에 대하여 감성적인 어조로 이야기한다. 특히나 급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잇따라 유산을 겪는 등 저자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밤기도’의 서사에 맞춰 진솔하게 풀어내는데, 잔잔한 울림이 있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인 ‘밤기도’는 ‘컴플린’(Compline)이라는 “하루 중 가장 마지막에 드리는 기도 예식”이다. “밤 시간을 위해 만들어진 기도 예배”로, 이때 올리는 기도문은 성공회 기도서에 수록돼있다. 일하는 이, 파수하는 이, 우는 이, 잠자는 이, 병든 이, 피곤한 이, 죽어가는 이, 고난을 겪는 이, 고통에 시달리는 이, 기뻐하는 이를 위한 간구로 채워져 어두운 밤을 거쳐갈 수밖에 없는 ‘취약한’ 인생들을 위로한다.
‘기도문’을 붙들고 기도하는 전통은 예전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한국의 대다수 교회에는 생소할 수 있다. 기도를 오래도록 해본 이들이라면, 고된 인생살이에 지쳐본 이들이라면 ‘기도의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해봤으리라. 그럴 때 신앙인으로서 붙들 수 있는 공동의 기도가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며 깨닫게 된다.
백미는 저자의 이야기와 함께 곁들여진 여러 신앙인의 경험과 묵상이다. 끝에 실린 미주는 관심을 끄는 저서들로 가득했고, 부록으로 수록된 6주 과정의 ‘토론을 위한 질문과 실천 제안’은 절박하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추동했다. “지치고 신앙이 시들었을 때, 나는 교회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 기도는 우리가 쓰러졌을 때 치유자에게로 우리를 실어다 주는 환자용 들것이다.”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