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호 돈을 모아보자] ‘보편 증세’ 주장하는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안창남 교수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국세청 직원 중 최초로 해외 박사학위(파리 제2대학 법학박사)를 받았으며, 전 세계 세 원의 합리적 배분을 통한 균형 발전을 꾀하는 월드텍스 연구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국세청 직원 중 최초로 해외 박사학위(파리 제2대학 법학박사)를 받았으며, 전 세계 세 원의 합리적 배분을 통한 균형 발전을 꾀하는 월드텍스 연구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여기서 고양이는 ‘유권자’, 방울은 ‘증세’다.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수·진보를 막론한 대선 후보들은 기본소득, 공공연금 개혁, 일자리, 의료급여 등 복지 공약을 외치고 있지만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즉 어떻게 나랏돈을 모을 것인지는 난제일 수밖에 없다. 세금 인상을 환영하는 유권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안창남 교수를 비롯한 세금 전문가들은 증세, 그것도 ‘보편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왜 보편증세인가. 그리고 어떤 경험이나 사회 시스템이 ‘복지 확대는 원하되 세금 납부는 꺼리는’ 현상을 낳았는가. 모두 한국의 세금 체계와 유권자가 평소 세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과 연결된다. 본지 292호(2015년 3월호) ‘사람과 상황’에 소개된 바 있는 안 교수를 7년 만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1월 4일 일산 한 찻집에서 진행했다.

- 코로나가 국가재정에 대한 국민 관심도를 키운 것 같다. 많은 사람에게 재난지원금, 손실보상금, 방역지원금 등이 지급되었지만, 사각지대도 넓었고 금액이 턱없이 부족했다.

건전한 가정은 번 돈의 범위 내에서 지출하는데, 국가재정도 마찬가지다. 쓸 범위를 정하고 세금을 알맞게 거두면 된다. 물론 코로나처럼 긴급한 상황에서는 예외적으로 지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 특별히 타격이 큰 영세자영업자가 기본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상해주는 등 여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임을 고려한다면 통일 비용을 비축해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필요한 예산보다 조금 더 돈을 걷어야 한다.

- 의제별 운동 가운데 계속해서 증세 필요성을 주장한 대표적 영역이 공공연금이다. 소득 양극화를 완화할 목적으로 설계한 공공연금은 불충분하다는 점과 지속가능성이 문제시된다. 특히 국민연금은 향후 재정 소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민이 실제로 부담해야 할 몫보다 적게 내고 있어 미래세대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을 73세 정도로 예상해 국민연금을 설계한 것이 문제다. 현재는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이 83세다. 아직 국민연금이 흑자인 것은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2041년부터 적자로 전환되어 2057년에 고갈된다. 어떻게 적자를 메울지 지금부터라도 고민해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누린 베이비부머 세대와 달리, 그 부모 세대는 많은 고생을 했지만 경제 발전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 세대에 대해서는 이들이 낸 적립금보다 정부가 더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연금은 미래세대가 내는 것을 현세대가 미리 받아 누리는 구조다. 인구가 계속 줄어든다면 미래세대는 보상받을 길이 없게 된다.

-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앞지르는 자연감소가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향후 세금을 ‘누구’에게 걷을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국토면적에 맞는 적정인구가 얼마인지는 논외로 하고 말하자면, 출생아 수가 40만 명은 돼야 국방도 유지되고 세수도 확보할 수 있다. 2021년 출생아 수는 27만 명 정도다. 부족한 10만 명은 미국처럼 젊은 층의 이민자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남북한 통일이 이뤄지면 인구가 8천만 명 정도 된다. 정치나 군사가 아닌 경제의 눈으로만 보면, 북한은 남한보다 상대적으로 노동가능인구가 많아 서로 윈-윈이 가능하다. 그런데 헌법에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규정(제4조)은 있지만 정작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은 미미한 실정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 ‘통일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얼마나 호응할지가 문제일 듯싶다. 당장 ‘세금’이라는 키워드를 포털사이트에 입력해보면, 연관 검색어로 ‘절세’ ‘세금폭탄’ ‘합법적으로 세금 안 내는 법’ 등이 나온다. 한국 사회는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고, 스스로를 피동적 납세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우리 사회가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는 북유럽 국가처럼 세금을 많이 내면 그만큼 복지로 돌아온다는 점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2020년 기준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4%, 국민부담률은 28%인데, 이 얘기는 근로소득이 100만 원이면 세금으로 20만 원, 4대 보험료를 포함하면 28만 원 정도 낸다는 의미다. 그런데 같은 시기 OECD 주요국들 국민 부담률은 프랑스의 경우 45%가 넘고, 북유럽은 그보다 높은 세금을 내고 있다(덴마크 46.5%). 우리보다 약 1.5배 더 내는 거다. 왜 이 나라 국민은 반발하지 않을까. 자기 부모 세대가 세금을 많이 내고 은퇴 후 연금을 받아 큰 불편 없이 사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세대 역시 추후 높은 복지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확신하니까, 현재 세금 부담이 크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별다른 저항 없이 감내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복지국가를 막 시작하는 단계다. 세금이나 연금을 내오기는 했지만, 실제 이를 누리는 세대를 아직 보지 못했다. 한국 의료보험이 세계적으로 잘되어 있다지만, 사각지대가 있고 베이비부머 세대가 아직 병원을 잘 가지 않는 나이라 의료 혜택을 실감 나게 받고 있지 않다. 그들이 은퇴하지도 않았으니 국민연금 수령도 아직이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재난지원금을 받거나 복지 혜택이 늘어나는 것을 실감하고 있으니, 조금씩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세금을 내니까 돌아온다’ ‘조금 더 세금을 내면 더 돌아오겠지’라는 식으로.

- 그러나 증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세금 누수를 막은 후' 논의하자고 한다. 예결위 ‘밀실 예산 심사’, 지역구 의원들의 ‘쪽지 예산’, 대규모 국책 사업, 특수활동비 등에서 발생하는 세금 누수는 물론 조세 회피나 탈세 문제 등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증세와 세금 누수 막기 운동은 ‘함께 가야’ 하는 문제다. 세금 누수를 막을 책무도, 지출만큼 세금을 걷거나 더 거두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책무도 똑같이 정부의 역할이다. 시민단체 또한 나라가 세금을 어떻게 쓰는지, 예산 편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만 따져도 2,836억 2,600만 원 정도다(국회예산정책처, 〈2022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 이 돈은 우리가 낸 세금인데, 여기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조세 회피와 탈세 문제는 기독교인들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교인들 이야기 들어보면 양도소득세, 상속세, 증여세를 불법적으로 회피하는 방법을 거리낌 없이 말한다. 회사 차나 회사 카드를 가족이 사적으로 사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목사 본인부터 떳떳하게 세금 내고 교인들에게도 세금을 잘 내라고 해야 하는데, 종교인 과세를 시행하는 일도 힘겹지 않았나. 기독교인의 세금 납부는 자신이 속한 나라와 사회에 대한 나눔과 봉사의 구체적인 표징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 증세와 세금 누수 막기가 함께 가야 한다면 왜 ‘보편 증세’인가. ‘부자 증세’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간 세법이 바뀌어 명목상으로는 부자 증세가 이뤄졌다. 지난해부터 소득세 최고세율이 45%가 되었는데 지방세(국세의 10%)까지 포함하면 49.5%에 이른다. 법인세도 2018년도부터 최고세율이 기존 22%에서 25%로 올랐다. 실효세율로 따지면 높은 편은 아니지만, OECD 국가들의 최근 전반적인 추세가 법인세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맞다. 부동산 보유세와 거래세도 높아졌고 상속세, 증여세도 높은 편이다. 내년부터 주식 양도에 대해서도 모두 과세를 한다. 소득세, 법인세는 이제 증세 여지가 좁다.

- 증세한다면 부가가치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인가.

그렇다. 소득세, 법인세, 부가세가 우리나라 전체 세입 중 80%를 차지한다. 소득세와 법인세는 이미 부자 증세가 이뤄졌다. 그런데 1977년도에 도입된 부가세율만 오르지 않았다. 그때가 10%였는데, 지금도 10%다. 당시 프랑스 부가세율도 10%였지만 지금은 20%까지 올랐다. 스웨덴, 덴마크는 25%에 달한다. 게다가 한국은 부가세 면세 범위가 유럽이나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너무 넓다. 세율도 낮고 과세 대상도 좁다. 유럽 사람들에게 한국의 부가세 시스템을 설명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 OECD 주요국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부가세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들 간 빈부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 균형 잡힌 나라들은 소득세나 법인세 부담을 줄이고 간접세를 올린다. 월 소득이 어느 정도 균등한 경우에는 쉽게 징수할 수 있는 부가세율을 더 올리면 된다. 그러면 다른 세금을 복잡하게 걷을 필요가 적어진다. 아직 우리는 그런 단계가 아니다. 더욱 심해지는 빈부격차를 고려한다면 간접세가 직접세보다 높아지는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당장은 부가세율을 올리기보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비합리적인 부분을 고쳐 상당 세수를 확보하고 취약계층에 사용하는 일이 우선이다. 부가세 면세 범위를 축소하되 갑자기 과세로 전환하면 충격이 크니까 기본세율보다 낮게 적용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이러한 복수세율 체계는 국제적 추세이다.

- 부가세보다 소득세 면세점을 낮추는 일도 시급하지 않나. 2019년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37%에 달하는데.

소득세 면세점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지만, 이 비율을 낮추는 일 자체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37%는 총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한 통계로,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 등을 포함한 값이다. 문제는 한국은 비정규직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2021년 8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중 38.4%)이다. 이들이 일부러 세금을 안 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면세자 비율이 높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근로자 사이에서도 임금격차가 너무 크고, 빈자가 무척이나 많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를 어떻게 해소할지 고민해야 한다.

소득세 면세자가 늘어난 다른 원인으로는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대한 조세 저항 때문이기도 했다. 이를 무마하고자 근로소득 세액공제 등 각종 혜택이 들어온 결과, 근로소득자 중 납부자 수가 급감했다. 이 부분은 개정할 필요가 있고, 그러면 면세자 비율은 20%대로 줄어든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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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박근혜 정부의 원 세법개정안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사실 부자 증세를 도모한 성격이 있었는데, ‘세금 폭탄’ ‘서민 증세’라며 반발이 일어났다. 결국 세제를 늘려 추가적인 재정 적자 요소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세금 폭탄’이나 ‘서민 증세’ 프레임만큼이나 자주 부각되어온 것이 ‘무상 복지’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무상’이라는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보편 복지’라고 해야 옳다. 학생들은 무료 급식을 이용하지만, 이미 부모들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값이 치러졌다. 가난한 사람도 소비할 경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가세 10%를 낸다. ‘무상 복지’는 정부가 정말 아무 대가 없이 공짜로 준다는 얘긴데, 그야말로 포퓰리즘적인 단어다. 무상으로 복지가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해오지 않았나.

- 한국 복지 수준을 체감하게 하는 것은 주거 문제다. 특히 이번 정권에서 어느 때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부동산 대책이 서른 번 가까이 나오기도 했다. 현 부동산 세제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나.

우선 부동산 그 자체가 아닌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거래하는 ‘사람’에 대한 징벌적 조세가 되었다는 점이다. 재산이 아닌 사람을 ‘응징’할 목적으로 과세하면 정책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고, 세제가 복잡해지며 세율이 가파르게 올라 조세 저항이 일어나기 쉽다.

다음으로 세법 개정 이전 거래 재산에도 소급 적용을 한다는 점이다. 언제부터 다주택자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겠다고 한다면 그날부터 취득한 주택에만 적용하고, 기존 주택은 이전 세법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야 맞다. 세법은 세금 부담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도세와 거래세 강화이다. 높은 양도세와 취득세 등 거래세 강화 때문에 부동산 거래 ‘동결 효과’가 일어났다.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와 양도세를 낮춰 거래가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은 집값과 상관없이 1가구 1주택 실거주자에 대해서는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양도세, 종부세 없이 재산세만 부과한다.

- 금리 인하 및 코로나 지원금, 지난해 사상 최대였던 무역 흑자 등으로 늘어난 화폐 유동성 문제, 집을 불로소득,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더 근본적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최근 부동산 문제는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이 증가되었고 적정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막대한 자금이 부동산에 몰렸다고 본다. 이처럼 수요는 증가하는데 공급이 뒷받침하지 못하니 값은 오를 수밖에. 더군다나 세금 때문에 거래가 안 되니,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시장에서 거래가 되어야 적정한 값(시가)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현재 부동산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다. 실제 거주하고 있는 1가구 1주택에 대한 세금 간섭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 대신 불필요한 주택을 보유하려는 욕구에는 보유세 강화를 통해 경고하되, 이들에게 있는 주택이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거래세는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부동산 가격은 연착(soft landing)하지 않을까. 그러나 생각해볼 것은, 세제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 어떤 이유에서인가.

집값은 ‘지방화’해야 하는 문제이지, 세금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는 부동산이 한쪽에 다 집중되는 상황이다. 특히 서울 강남에. 모든 것을 세금으로 잡으려고 하는 ‘세금 만능주의’가 만연하지만, 세금과 세법 역할은 내가 거래할 때 그에 대한 값을 치르는 것이다. 거래한 사람을 혼내주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세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환수해야 한다. 위헌 여지를 제거한 주택소유상한제와 같은 다른 법이 필요하다. 덧붙여 공공기관이나 대학의 지방 이전을 병행할 경우, 강남 아파트는 실수요자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임대료 안정을 위해 공공기관 매입이 개인 임대보다 많아져야 하고 그 질도 우수해야 한다. 프랑스는 임대주택이 한국과 달리 일반 아파트와 외견상 큰 차이가 없다. 정부가 신설 주택의 30% 정도는 서민 임대주택을 하라고 권장하는데, 지방자치단체에 거절 권한이 있다. 그러나 거절하는 순간 정부는 보조금을 끊어버린다. 국가보조금이 줄면 주민들이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는데, 이를 감당하면 임대주택 신설을 거절할 수 있다.

- 이재명 대선 후보는 부동산 관련 세제 완화와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도입 추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앞서 이 후보는 기본소득 재원으로 탄소세, 로봇세 등 신규 세목도 언급한 바 있는데, 이외에 어떤 조달 방법이 있을까.

소득세나 부가세에서 비과세나 감면이 너무 많은 항목을 조정하는 방법이 있다. 유예된 가상화폐 등 가상 자산에 대한 소득에도 과세하는 방법도 있으나 언제부터 과세할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하에 묻힌 돈에 대한 자금 출처를 조사할 수 있는 화폐 개혁도 하나의 방안이지만, 적절한 시기는 내가 판단할 영역은 아니다. 유로로 화폐 개혁을 한 뒤에 프랑을 쓰던 시절보다 물가 앙등이 적었다는 프랑스 뉴스를 보긴 했으나 그 실증 분석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지는 잘 모르겠다.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는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게 아니어서 단정할 수 없지만,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기본소득을 지급하되 재원 마련을 국토보유세로 하겠다는 취지다. 불필요한 저항을 줄이려면 과세 대상과 세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는 심도 있게 해야 한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세금 전문가로서 평소 어떤 세제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나.

우리나라 기부금 제도. 기부하는 입장에서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오늘 세무서를 찾아가 10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하면 이 돈이 어디서 나왔냐고 따질 것이다. 절차상 필요한 과정이지만,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이 기본자세라는 점이 문제다. 우리 세법은 기부를 이용해 탈세하려 한다는 선입견이 강하다. 과거 故 황필상 박사의 ‘수원 교차로 사건’이 있지 않았나. 황 박사는 모교에 수원 교차로 주식 180억 원어치를 기부했지만, 당시 세법 조항 때문에 증여세로 225억 원을 물을 뻔했다. 다행히 대법원에서 겨우 풀어졌는데, 이때 한 방송국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해당 대법원 판례 해석을 묻더라. 솔직히 판례가 너무 어려워 나도 읽어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대법원은 선한 사람 입장에서 세법 규정을 해석한 것 같다고 했다.

돈을 더 낼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성숙한 사회이다. 많은 돈을 갖고 있으면 기쁘게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국가가 만들어줘야 한다. 나는 기부금만큼은 세액공제가 아닌 소득공제로 환원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러면 많이 기부할수록 세금 혜택이 늘어난다. 기부가 잘 일어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뜻에 따라 기부하면서 사회적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 자긍심은 중산층 이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내가 유학했던 프랑스에서는 학부모에게 필요한 학교 예산과 정부 지원금을 밝히면서 아이들 교육이나 급식의 질을 올리기 위해 기부금을 내달라고 하는데, 형편이 어려워 세금이 적은 사람도 기부 방식으로 국가 운영에 작게나마 참여할 수 있다.

- 약한 사람과 연대한다는 자긍심(선별주의), 더 냈더니 그만큼 돌아온다는 경험(보편주의). 이 두 가지 균형을 갖춘 시스템이 중요할 것 같다.

균형을 맞추는 일은 정부 관료들 몫이고, 제도를 잘 디자인할 수 있게 돕는 것은 나 같은 전문가들 몫이다. 연대세의 대표적 사례가 프랑스에서 처음 도입한 공항세다. 출국세를 걷어 아프리카 질병 치료 지원을 했는데, 현재는 전 세계 국가가 공항에서 출국할 때마다 이 기금을 걷는다. 이런 연대세가 국제적으로 확대됐으면 좋겠다. 내가 10여 년 전에 조직한 월드텍스연구회도 같은 취지에서 활동 중인데, 이곳의 아이디어가 OECD·G20 포괄적 이행체계(IF) 합의로 내년에 시행될 디지털세에 일부 반영되었다. 대략 세계적으로 100대 그룹이 대상이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전 세계 균형 발전을 위해 적용 대상 기업을 확대했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는 약자, 가난한 자를 위해 모두가 함께한다는 연대 의식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연대할 수 있는 고리를 우리가 제도로 만들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고리를 만드는 것이 함께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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