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호 에디터가 고른 책]
문학과 생물학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면, 인간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대표작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DNA, 유전자, 염색체 등 생물학적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 설명한다. 문학작품을 생물학으로 읽어내는 시도다. 자칫 잘못하면 참신하기만 하고 어설프게 보일 수 있는 이 작업이 진지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자가 분자세포생물학·생화학·혈액학으로 골수 안 미세환경의 정체와 역할을 규명하는 연구를 해온 프로 생물학자이자,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세계에 심취한 자칭 ‘문학 덕후’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가 알고 있는 생물학적 지식은 카라마조프가의 배다른 아들들이 누굴 닮았는지, 그들 사이에는 어떤 유전적 요인이 있는지를 따져가면서 하나씩 소개된다. DNA, 유전자, 유전체, 게놈, 염색체, 복제 오류와 돌연변이 등 생물학 개념이 어렵지 않게 읽히는 점이 흥미롭다. 생명체가 탄생할 때 유전학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졌을 법한 생물학적 궁금증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저자는 과연 인간이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논하며, 인간이 가장 진보되거나 고등한 존재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간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도 인간의 입장과 기준에서만 해당하는 얘기라는 것이다. 그는 우월함 대신 ‘인간다움’을 말한다.
“나에게 생명의 가장 놀랍고도 신비한 특징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다양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와 자식도 다른데,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는 얼마나 많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다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한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영역에서 쉽게 ‘닮음’과 ‘다름’을 말하고, 사람을 규정짓곤 한다. 이 책은 그런 기준들이 생물학적 관점으로 봤을 때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책을 통해 생물학 개념들을 완벽히 깨우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낯선 방식으로 ‘인간다움’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