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호 사람과 상황]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김주련 대표
50년 동안 매일 뭔가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국교회 성도들은 매일 경건의 시간(Quiet Time)을 갖겠다는 열정으로 반세기 동안 큐티(QT)를 해왔다. 이는 1973년부터 격월간 큐티지 〈매일성경〉을 만들어온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이하 성서유니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뭔가를 합니다. … 어떤 날은 문득, 종일 괜한 일을 하진 않았는지 반성도 하고, 종일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다 허비한 것은 아닌지 자책할 때도 있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매일 뭔가를 계속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충분히 잘한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본지 369호(2021년 8월호) ‘그림책으로 우리의 안부를’의 한 대목이다. 이 글의 필자 김주련 대표는 매일 반복하는 일들, 반복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유익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가 이런 믿음을 갖게 된 배경에는 스물두 살부터 이어진 성경 묵상 습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매일 성경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서있는 곳은 어디인지 알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성서유니온에서 22년간 실무자로 일하고 있다. 2000년에 〈매일성경〉 편집자로 일을 시작해서 편집부장과 출판부장을 맡았고, 2017년부터는 성서유니온 대표로 임기를 보내고 있다. 성서유니온이 설립되고 〈매일성경〉이 발행된 지 50년 되는 해를 맞아 김주련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한국교회 성도들과 함께 성경을 묵상해온 날들을 돌아보고 그동안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커버스토리 주제인 배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인터뷰는 8월 4일 서울 송파동 성서유니온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꾸준한 성경 읽기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자세로 성경을 삶 속으로 가져와 적용하는지 등을 물었다.
- 올해는 성서유니온이 설립한 지 50년 되는 해입니다. 대표님은 오랫동안 출판국에서 〈매일성경〉을 제작해 오셨는데요. 50주년을 맞이하는 소회가 궁금합니다.
〈매일성경〉을 만들 때는 매일의 성경 해설을 담은 내용을 편집해야 했기 때문에 매번 할딱고개를 넘는 것처럼 1년에 여섯 번의 마감만 잘 넘기자는 마음으로 지내온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그 순간을 잘 메꾸어나가자, 하루라도 건성으로 지나가지 않도록 최선의 수고를 담아 빠뜨리지 않고 잘 채워나가자 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마치 이번 책 하나 끝내면 다 끝나는 것처럼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던 거죠.
그런데 대표직을 맡아 일하면서 마침 성서유니온 설립 5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일은 좋아하지만 큰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은 경험도 없고 즐기지도 않아서 많이 부담도 되고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49주년이었던 지난해 초부터 희년에 대해 공부도 하고, 좌담회도 하고, 워크숍도 하면서 성서유니온 운동이 조국 교회 안에서 왜 필요했고, 또 지금도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면서 차분하게 50주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새롭게, 처음 시작할 때 확신했던 말씀을 붙잡을 때임을 확인하고 있죠. 무엇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교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매일성경〉은 1973년부터 출간된 성경 묵상 자료집입니다. 당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큐티(QT)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매일성경〉이 한국 최초의 큐티지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성서유니온이 설립되기 전 1968년에 호주 성서유니온과 동아시아 성서유니온 지부가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와 연계하여 만든 〈일용할 양식〉이 먼저 발간되었습니다. 그러다 1972년 한국성서유니온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성경을 묵상할 수 있는 〈매일성경〉이 발간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OMF 선교사로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했던 피터 패티슨(배도선) 선교사님의 기도 편지에 한국교회 모습이 잘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런 내용입니다. “당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기도는 새벽기도와 주일설교로 매우 강렬하다. 전도와 기도와 헌신과 베풂에 대해 선교사들이 많이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신앙의 열정은 있지만 그 열정을 뒷받침할 만한 성도 개개인의 말씀 중심의 삶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안에 있는 신앙과 삶의 괴리를 성서유니온 운동이 메울 수 있을 것 같다.” 1970년대 한국교회가 부흥회와 사경회로 큰 부흥을 이루면서 교인들 수가 많이 늘어났지만, 실제 개인이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일은 적었는데, 〈매일성경〉이 바로 그 신앙과 삶의 벌어진 간격을 메꿔나가기 시작한 것이지요.
- 성경을 읽고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일은 지금도 교회의 큰 관심사입니다. 교인들이 큐티를 통해 얻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매일성경〉과 함께하는 성경묵상운동은 다름 아닌,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는 삶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매 순간 하나님의 생각에 맞춰서 자기 생각과 삶의 행동을 조율해나가는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매일성경〉 묵상은 여기에서 나의 나날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닿는 순간이고, 그 말씀과 접속한 이상 여기에서 나의 일상의 궤적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새롭게 이동되는 경험을 갖게 되겠지요. 저는 자주 성경 묵상을 음식을 섭취하는 것으로 비유하는데요. 우리가 어떤 음식을 섭취하면 그 음식이 우리 속에 들어가 소화되어 얼굴이 환해지든지 배를 앓든지 어떤 변화를 일으키잖아요. 이처럼 말씀 묵상은 우리 삶에 분명한 변화를 일으키게 되어있다는 것이죠. 어떤 때는 오늘 읽은 말씀이 오늘 당장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엔 평생이 걸리는 지난한 여정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점진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음식 섭취가 생명 유지에 필수불가결하듯이 하나님 나라 자녀에게 하나님 나라의 양식인 말씀 섭취 또한 절대적인 것이지요.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자녀니까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살지요.
- 미취학 아동이 부모님과 같이할 수 있는 〈큐티아이〉부터 〈어린이 매일성경〉, 〈청소년 매일성경〉, 〈매일성경 순〉, 〈시니어 매일성경〉, 〈묵상과 설교〉 등 연령에 맞춰 다양한 큐티지를 내고 있습니다.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발간하고 있나요?
말씀 묵상이 음식 섭취처럼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면 모든 연령,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다 필요하지요. 그래서 성서유니온은 모든 연령에 맞춰서 묵상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전 연령이 성경의 같은 본문을 읽지만 미취학 어린이는 한두 구절, 어린이는 5-10절, 청소년 이상은 10-20절을 묵상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령별로 미취학 어린이는 성경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기, 어린이는 성경 읽기에 습관 들이기, 청소년은 성경을 이해하기, 성인은 성경을 살아가기에 성경 읽기의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 교회에서 보면 청년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성경이 매력적인 책으로 여겨지지 않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청년 문화는 아무래도 ‘답정너’식의 획일적인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교회가 여기 확실한 것이 있다고 무조건 외치기보다는, 흔들리면서 엠마오로 걸어가는 두 제자 곁에 다가선 부활하신 주님의 배역을 이어가는 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두 제자는 아침에 빈 무덤을 보고 와서 부활 소식을 전해주는 여성들의 밝은 메시지를 듣고도 회의와 불신 속에서 이제 복음 이야기는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식으로 엠마오로 가고 있었죠. 그때 제자들 곁에 다가서서 선지자의 글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경을 풀어주시던 주님의 역할이 지금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 성경 읽기의 성숙한 태도를 고민하게 됩니다. 바른 성경 읽기 자세란 무엇일까요?
성서유니온의 로고에 ‘바이블 인게이지먼트’(Bible Engagement)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요. 이는 성경과의 연결을 통해 성경이 밝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의미 있는 만남을 지속해서 가지며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대해 야고보서 1:17-25에 기록된 4R(네 가지 행동)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Receive(말씀을 받음), Reflect(말씀을 묵상함), Remember(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음), Respond(말씀을 실천함)입니다. 그러니까 매일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생각하고, 그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오늘 내 삶의 배역을 찾아내며 살아가는 일을 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참여적인 독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내 일상의 일들에 성경이 관여하도록 열어놓는 것이죠. 매일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이 내 삶을 툭툭 건드리며 어떤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이죠.
저는 아침 식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새물결)를 보면 아침 식사를 한다는 것은 어젯밤과 오늘의 단절, 하루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해요. 아침은 오늘 내게 새롭게 주어진 하루를 선물로 받는 시간이잖아요. 아침에 성경을 묵상한다는 건 유한한 공간에 갇혀있는 유한한 존재인 사람이, 거창할 수 있지만 무한한 영원의 세계에 접속하는 일입니다. 내가 성경을 펼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 연결되는 그런 시간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도 앞으로 몸을 기울이잖아요. 성경을 읽을 때도 이렇게 자세를 기울여야 하죠. 성경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는 몸짓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자연스러운 자세인 것 같아요.
- 선교회나 교회, 단체에서 이뤄지는 ‘신앙 교육’은 학교나 가정에서 이뤄지는 ‘교육’과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신앙 교육에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저는 교육이 다름 아닌 포즈를 익히게 해주는 일이라 생각해요. 오래전 신학교 다닐 때 읽은 하워드 헨드릭스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생명의말씀사)에서 그를 교회학교로 인도한 ‘월트’라는 멘토를 만난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어려운 형편에서 자라며 동네에서 구슬치기 대장 노릇을 하던 헨드릭스에게 어느 날 월트가 다가와 같이 구슬치기를 하면서 놀아준 것이죠. 그런데 어느 날 월트는 헨드릭스의 구슬을 다 따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헨드릭스의 마음까지 따버리고 말았습니다. 헨드릭스는 월트의 모든 포즈에 매료되어 그를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좋은 성경교사로 성장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나면서 사역하는 내내 학생들이든지, 청년들이든지 나와 함께하는 동안 내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떤 가르침보다도 좋은 포즈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포즈,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포즈, 책을 읽고 대화하는 포즈, 어려움을 만났을 때 몸으로 나타나는 어떤 포즈…. 이런 포즈들이 우리의 신앙 교육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동안 한국교회는 신앙 교육, 성경 읽기에 대한 노력을 강조하다 보니 성경 읽기 외의 배움은 신경 쓰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그동안 성경 읽기를 열심히 했으니 이제는 성경 외에 다른 것에도 관심을 두자는 접근은 피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통·번역에서 국어를 제대로 할 줄 알아야 외국어를 훌륭하게 옮길 수 있듯이 먼저는 성경 읽기에 대한 노력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평생토록 읽고 읽어야 할 말씀이니까요. 성경을 알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성경을 제대로 읽으려면 성경이 보여주는 모든 창조세계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위해 그들에 관해 기록된 이야기들과 그들이 기록한 무수한 이야기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자연세계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있듯이 저는 사람들이 창작한 모든 작품 역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해있다고 여깁니다. 때로는 왜곡된 렌즈로 비춰주는 것 같아 염려하는 분도 있지만 그런 다채로운 작업이 결국은 우리의 아는 바를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읽기와 함께 시와 소설, 그림과 음악 등에 깊은 배움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매일성경〉을 제작하면서 신앙의 언어를 고민했다고 하셨습니다. 신앙 언어를 어떻게 일상 언어로 옮기면 좋을지 고민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이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리가 대화할 때 상대방이 진부한 말을 하거나 당연한 의미를 반복해서 말하면, 보통 ‘공자님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는 관형적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자님 같은 소리로 하고 있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했어요. “생명의 능력에 참여합시다” “열심히 신앙생활 합시다” “주만 바라봅시다” 등 말들이 지속해서 반복되어 울려 퍼집니다. 그런데 〈매일성경〉을 편집하면서 그런 문장을 자연스럽게 반복하게 되는 걸 발견하고 ‘우리 역시 공자님 같은 소리 하고 있구나’ 하는 반성을 했어요. 그러면서 편집자들과 함께 고민하게 된 것이죠. 성경의 언어를 지금 우리의 언어로 다시 번역해서 풀어주는 일이 필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천국의 언어가 저 너머 피안의 세계에서 쓰이는 말이 아니라 오늘 우리 일상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건과 행동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옮기는 일을 하자는 얘기였죠. 그래서 오늘 자(2022년 8월 4일) 〈매일성경〉 본문인 레위기 19장을 통해 묵상한 ‘거룩’이라는 단어로 예를 들자면, ‘거룩’이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일 속에서, 가난한 자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자리에서 실질적으로 깨달아지는 말임을 나누고 싶었던 거죠. 이런 고민 없이 계속해서 공자님 같은 소리만 하게 될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 안에서만 맴도는 게토화된 언어로 고립될 수 있습니다.
- 교회 안에서만 맴도는 게토화된 언어를 버리고 일상의 언어를 공유하기 위해, 교인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믿는 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할게”라고 말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할 뿐 아니라 그 기도의 응답을 위해 내가 어떤 행동을 실제로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뜻》(성서유니온)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 제럴드 싯처는 그의 책 《하나님의 침묵》(성서유니온)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우리 기도에 응답하기로 선택하실 수 있기 때문에 기도는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는 무대에 우리가 올라서야 한다는 말이지요. 우리의 돈과 시간이 실제로 그 기도 응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아,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이 나를 위해 저렇게 아낌없는 수고를 한다는 말이구나’ 하고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새롭게 재생산하며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되는 것이죠.
- 대표님은 시를 쓰고 문학 작품을 읽는 것에도 관심이 많으십니다. 본지에 실렸던 ‘그림책으로 우리의 안부를’ 연재를 보면 그림책 외에도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인용하셨는데요. 문학을 많이 읽고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성경 읽기를 즐겨 하기 전에 시와 소설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영화 〈책도둑〉(2013)의 내용처럼 저도 견딜 수 없이 외로웠던 시절에 책이 유일한 등불이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책 속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새로운 이야기와 만나는 재미가 현실의 어려움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스물두 살쯤 성경 읽기의 매력에 빠지면서 한 10년 동안은 거의 성경만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 이야기와 중첩되는 문학작품들이 생겨나면서 다시 시와 소설을 탐독했고, 지금은 저 혼자만의 오락거리가 된 것처럼 그런 시간을 아무런 목표 없이 그냥 흡족하게 좋아합니다. 시 쓰는 일은 사실 부끄럽고요. 실제로는 시 읽기를 좋아해서 그저 읽기만 했는데요. 7년 전쯤 우연히 팬심으로 김소연 시인 수업에 참여했다가 시집까지 내게 되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웃음) 그 후로 5년 동안은 거의 시를 못 쓰고 있지만, 다시 쓰고 싶다는 마음은 계속 지니고 있습니다.
- 본지 2015년 12월호에 그림을 배우는 이야기를 담은 대표님의 글이 실렸는데요. 그림 그리는 일은 계속 이어가고 있으신가요?
제가 2015년에 많은 것을 했네요.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아마도 그때 출판국장으로 있으면서 어떤 문제로 아주 힘들었는데, 마냥 걷고 읽고 쓰고 그리는 일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특히 두세 시간 한 사물을 집중해서 보고 묘사하는 그림의 매력이 좋아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그림을 그리며 몸으로 마음을 추스르지 않았나 싶어요. 그때 구입해놓은 색연필과 그림 도구들이 지금도 자주 저를 유혹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라고 달래는 중입니다.
- 현재는 성서유니온의 대표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읽고 그리고 계십니다. 단체를 살피는 역할은 어떤가요?
저는 기질상 행정가와 거리가 좀 먼 편입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면서 주변 사람들도 같이 좋아해주고 했는데, 대표라는 행정직을 감당하면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누가 뭐라 하면 ‘그냥 그러라고 해, 괜찮아’라고 하면서 무심한 편이었어요. 대표직은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 많아서 매번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할지 상관하고 개입하며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몸에 버거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썩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대표가 되었을 때 묵상한 〈매일성경〉 본문이 열왕기상이었는데요. 최고의 평화는 사람들이 각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그 열매를 즐기는 것이라는 내용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저희 소속 간사님들이 각 지역에서 또 모든 부서에서 각기 자기 일에서 그 일의 열매로 흡족한 삶을 살기를 소원했습니다. 본부에서 획일화된 어떤 기획안을 만들어 보내기보다 자기 자리에서 제 은사를 따라 마음껏 일하고 그 일의 열매로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기를 바란 것이죠.
- 여성이고 비목회자로서 대표직을 맡고 계십니다. 이사회나 리더십 중에는 남성 목회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내부에서 겪는 고민이나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저는 스물다섯 살 때부터 중고등부 전도사를 하면서 비교적 남성 목회자들과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또 정치와 야구 경기 관람 등에 관심이 많아서 청년 시절부터 남성들과 대화하는 일에도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비교적 적었는데, 선교단체에서 비목회자로 겪는 어려움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럴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는 사실 스스로는 비목회자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한국교회 문화에서 비목회자인 저와 함께 일해야 하는 분들이 난감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러나 성서유니온 안에서는 저희 국제대표도 여성이고, 많은 나라의 대표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 대표라 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인기 연재의 필자로서 복음과상황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복음과상황’이라고 하면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잘 이어가는 일일 것 같아요. 저는 그 사이, ‘과’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복음과 상황 사이의 그 ‘과’를 충일하게 살아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복음을 우리의 상황 속으로 잘 가져오고, 상황을 복음 속으로 잘 연결해주는 ‘과’의 자리에 복음과상황 독자들이 계시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갈수록 복음과 상황이 부딪히는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그 ‘과’를 점점 넓혀가는 일을 하다 보면 그 사이에서 복음과 상황이 여유 있게 넘나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보면 거기가 경계잖아요. 경계를 넓혀놓으면 훨씬 자유롭게 숨쉬기가 좋을 듯해요. 또 경계를 넓혀놓으면 그 경계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질 듯합니다. 함민복 시인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시도 있는데, 복음과 상황 사이에서 ‘과’를 꽃피우면 좋겠습니다.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