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호 에디터가 고른 책]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만날 때마다 책을 두 권씩 사주셨다. 한 달에 두세 번 보는 할아버지 손에 늘 들려있던 영풍문고 봉투는 어린 나를 설레게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책에 그림이 적어지고 글자가 늘어나는 것이 반가웠다. 줄어든 그림의 비중만큼 어른이 되는 것 같아 우쭐했다.
어른인 체하고 싶던 어린 허영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도통 그림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질주하듯 책을 읽어야 직성이 풀렸던 나로서는 허무맹랑한 그림들로 질주가 버벅거리는 일이 답답했다. 그림에서 무언가 울림을 느끼고 답을 얻어내야 할 듯한 부담감이 무거웠지만 ‘색깔이 알록달록하네’ 같은 건조한 감상만 차오르곤 했다.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책으로의 발길을 끊게 된 나를 비웃거나 나무라지 않고 ‘으늑한 손길’로 초대한다. 아기가 잠들기 전 그림책 한 권 펼쳐두고 손가락으로 요리조리 가리키며 읽어주는 엄마 목소리만큼 상냥하고 명랑하다.
나는 과거 여러 번 좌절을 경험한 취업 준비를 또다시 눈앞에 두고 있다. 떠밀리듯 앞에 서면서도 뛰어들기 무서워 두 눈 질끈 감는 요즘이다. 이런 내게, 책 속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 이야기가 닿았다. 나처럼 아직 마주하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먹고 숨은 존재들을 그림책에서 마주하고 보니 어떤 공감의 말을 들었을 때보다도 심각함이 덜어지며 한결 마음이 가볍다. 자기 계발도, 자소서 수정도 안 하며 소설 읽고 에세이 쓰는 스스로가 한심한데. 《구덩이》 주인공이 반복하는 삽질을 그 자체로 의미 있다 말하는 이 책은 꼭 내 매일의 딴짓을 축하해주는 것 같다. 마음이 녹아 눈물이 찔끔 났다.
이 책은 그림책으로 영혼의 ‘안녕’을 묻는다. 진심이 담긴 ‘안녕’이 또 생각나 앞으로 종종 그림책을 들춰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자 낯선 그림책을 마주하면 뭘 느껴야 하는지 잘 몰라 그림에 걸려 넘어진 채로 주저앉아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저자처럼 많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기야, 《나도 사자야!》 그림을 통해 청랑하게 책을 읽어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끝까지 나를 격려하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나다움’이라는 말에는 ‘너처럼’이라는 말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너처럼 먹어야 하고, 너처럼 입어야 하고, 너처럼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 나여서 이렇게 먹어도 되고, 이렇게 말해도 되고, 이런 글을 써도 괜찮은 거죠. 나니까요.”
이유진 객원기자 goscon@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