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호 커버스토리]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가 ‘무’로부터가 아니라 심연의 어두운 얼굴(혼돈)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창세기가 보여주는 천부적인 형상은 그 어떤 우월주의와도 무관하고, 오히려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창조성을 의미한다. 창조는 땅에게 식물을 내라고 명하는 형식, 즉 ‘Let~be~’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땅이 그 본연의 역량으로 식물을 내라고 하신다. ‘그대로 되도록 하는 역량’. 그것이 바로 창조의 역량이다. 모든 존재가 그 본연의 모습으로 되어갈 수 있도록 하는 창조다.1)

슬픈 우리를 위한 두 가지 중보

나이가 하는 일이 있다. 그 일은 어쩌면 소수의 혜택받은 사람이기에 가능했다. 나는 ‘인간 중심 사회’에서 인간,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비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며 경제 규모 세계 10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충분한 교육을 받았고 적어도 주거 걱정과 끼니 걱정 없이 지낸다. 그러나 세상 곳곳에는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가 알 수 없는 차별, 혐오, 고통을 겪는 생명들이 있다. 요즘 내가 하는 기도 두 가지만 옮긴다.

하나. 장애인은 세계 최대의 소수자 집단이다. 2011년 세계보건기구 발표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15%가 신체장애나 정신장애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등록’된 인구는 전체의 5.1%, 국민 20명 중 1명이다. 그러나 통계는 우리가 느끼는 것과 거리가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다른 학교 혹은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밖으로 잘 나돌지 않는다. 온통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시설들로는 이동이 불편하고, 쏟아지는 차별적 시선이 싫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장애를 가진다는 것은 ‘모자란 것’이라는 메시지를 발하는 세계, 장애에 대해 ‘관대’할 수는 있지만 결국은 그것을 ‘본질적으로 부정적’이라고 보는 세계로 나오게 된다. (피오나 캠벨)2)

중증장애인은 많은 경우 시설에 (갇혀)있다. 가족의 짐이 된다고 느껴지는 순간 선택권과 기한 없이 시설에 맡겨진다. 대부분의 시설 수준은 형편없다. 한 방에 여러 명이 지낸다. 이들은 개인 생활이 보장될 수 없다. 직원들이 출근해있는 동안 먹고 치우고 씻고 용변 보는 일을 끝내야 한다. 위생이나 심리적 욕구들이 무시된다. 물리적, 성적 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설 바깥 사람들이 당연히 갖는 자유가 박탈된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먹고 잠들 자유, 외출할 자유, 그리고 서로 동의한 성관계를 가질 자유 등등.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난해 12월 3일부터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활동 지원,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 등을 촉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전개해왔다. 어떤 이들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겠다며 그들을 지지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들이 옳지 않다고 했다. 당장에 입는 손해와 불편이 더 큰 것이다. 이 간극을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

장애인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장애인은 시민이 아닙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는 자격이 없다’고 답했다. 장애인이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가 되는 순간 ‘시민의 자격’을 박탈했다. 이는 마치 장애인이 행동의 주체가 아니라 사회복지 ‘대상’이 되는 것이 그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장애여성공감, 《시설사회》)

둘. 동물들이 신음한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에는 10억 마리 이상의 양, 10억 마리의 돼지, 10억 마리 이상의 소, 250억 마리 이상의 닭이 있다. 가축화된 동물들로, 자연스러운 숫자가 아니다. 일련의 야만적이고 매우 잔인하며 점점 더 잔인해지는 관행에 의한 결과다. 닭의 자연 수명은 7~12년, 소는 20~25년이지만, 사람은 가축화한 닭과 소를 몇 주에서 몇 개월 만에 도살한다. 생후 3개월이면 몸무게가 최대가 되니 더는 살려둘 필요가 없다. 낙농업은 동물을 자기들 뜻대로 생산하기 위한 수단들을 개발했다. 동물에게서 우유를 계속 얻으려면 젖을 빨 새끼가 있어야 하지만 새끼가 젖을 독점하면 안 된다. 출생 직후 새끼를 도살하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에게서 떼어낸다. 암송아지는 젖소로 길러지고 수송아지는 육류산업에 넘겨진다. 어미로부터 분리된 송아지는 자기 몸보다 그리 크지 않은 우리에 갇힌다. 근육이 강해지지 않아 부드럽고 즙이 많은 스테이크가 된다. 대략 4개월 후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품종개량의 결과, 젖소 유방은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젖을 생산한다. 가능한 한 젖을 오래 짜기 위해 출산 후 60~120일 강제 임신을 당한다. 거의 항상 임신 중이다. 새끼에게 먹일 훨씬 많은 젖을 생산하다 보니 35%는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유방염을 앓는다. 거대하고 무거운 유방을 지탱하며 젖소의 60% 이상이 다리를 절고 있다. 그리고는 보통 약 5년 뒤 도살된다. 주검으로 비로소 신음을 끝낸다.

상업적으로 사육되는 닭 25% 가까이가 몸으로 지탱하기 힘든 가슴을 갖게 되었다. 저렴한 고기와 달걀에 대한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성장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다. 뼈와 관절은 몸무게를 버티기 힘들어 고통스럽다. 산란이 유일한 역할인 배터리 케이지의 암탉들은 잠도 자지 못한 채, 1년에 250개 정도 달걀을 생산해낸다. 암탉이 버틸 수 있다고 추정되는 달걀은 60개다. 지속적으로 달걀을 낳다 보니 골다공증에 취약하다.

돼지의 다리는 체중을 지탱하기엔 너무 약해졌다. 돼지의 코에서 큼지막한 살덩이를 잘라내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을 때마다 심한 통증을 느낀다. 냄새도 맡지 못해 먹을거리도 길도 찾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돼지는 전적으로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암퇘지들은 지속적인 임신 혹은 보육 상태로 있다. 우리는 너무 좁아 제대로 설 수조차 없는 경우가 많고, 다음 번식주기가 시작될 때까지 옆으로 누워있게 되기도 한다.

농장 동물들은 흔히 타박상, 농양, 진물, 골절, 질 혹은 생식기관 이상, 만성 정신질환을 겪는다. 당연히 구제역, 조류독감 등 질병에 약하다. 질병이생기면 병에 걸리지 않은 동물들까지 살처분된다. 국가나 지역에 따라 닭은 이산화탄소 가스로 안락사되고, 육계나 칠면조는 물거품 속에서 질식사당한다. 죽기까지 3분에서 7분 정도 걸린다. 이런 식으로 풍요로운 문명과 인권이 꽃피었다.3)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1508).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br>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1508).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작지 않은 문제가 있는데 평안하다. 잠을 자지 못할 줄 알았는데 잔다. 기도하지 않는데(글쎄, 기도란 뭘까?) 하나님으로 가득하다. 괜찮다. 쉽지 않은 일들이 지나갔다. 결국은 견뎌냈다. 오랫동안 아팠고 얼마 전부터 남편에게도 여러 질병이 찾아오면서 내 또래 노인들에게 남겨진 건 결국 질병과 이별임을 깨달았다. 이전보다는 상황을 초연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이가 하는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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