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왜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응답되지 않는 기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최근 마음 한쪽에 내려앉은 말이자, 한 번쯤 진지하게 다뤄보고 싶었던 물음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아주 명확한 해답을 찾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일은 욕심이겠지요. 답 없는 문제를 끊임없이 묻고 따지며 읽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앞선 물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생겨납니다. 신형철이 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는 ‘사고’와의 비교를 통해 ‘사건’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고에서는 사실의 확인이, 사건에서는 진실의 추출이 관건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사고가 일어나면 최선을 다해 되돌려야 하거니와 이를 ‘복구’라 한다. 그러나 사건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사건이라면, 진실의 압력 때문에 그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무리하게 되돌릴 경우 그것은 ‘퇴행’이 되고 만다.”
신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 일도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건’을 겪은 뒤에는 하나님을 향할 수밖에 없는 숱한 질문들이 따라옵니다. 2023년 새해를 맞는 이번 호는 이 질문들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었습니다.
커버스토리는 이번 기획의 동기가 된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를 본 3인(조주영·박준용·홍참빛)의 좌담으로 시작합니다. 좌담에 참여한 이들은 영화를 통해 신의 전능과 무능에 관한 경험, 기독교인에 대한 은유 등을 살핍니다.
이어지는 글(‘이 신학자는 예수를 떠난 나를 위로한다’)은 이유진 객원기자가 썼습니다. 2022년 7월부터 6개월간 취재, 잡지 제작/발송, 과월호 자료 정리 등을 도와온 그는 객원기자로 보내는 마지막 달을 맞아 커버스토리 지면 한 꼭지를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스승인 조직신학자 이용주 교수를 만나 본인이 가진 솔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질문을 받아든 이용주 교수는 예수를 떠났다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신의 그늘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결국 신의 뜻을 알 수 없고, 신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는 어차피 신과의 관계 속에 있으며, 불합리한 현실과 관계 속에서 그저 서로 위로하기를 애쓸 뿐이라고 말이지요.
커버스토리를 맺는 글은 본인만의 방식으로 기도해온 조희선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소수자가 차별을 겪는 불합리하고 슬픈 현실에서 중보하고 기도하는 자세를 소개합니다. 결국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 역시 질문을 던지며 누군가와 슬픔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일뿐이겠지요.
부디 오늘날 우리가 던지는 삶의 물음들이 나중에 돌아볼 때 필요한 과정으로 기억되기를, 질문을 나누는 일이 서로에게 위로로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