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호 에디터가 고른 책]
요즘 들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뽐내는 책보다 오랜 시간의 성실한 걸음을 기록한 책에 더 끌린다. 핫하고 센세이셔널한 주장이 저자의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되는 사례를 몇 번 목격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20년 넘게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의 책은 일단 믿고 보게 된다. 더구나 그의 첫 단독 저서라면? 주저 없이 새해 첫 책으로 지성근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소장의 《새로운 일상신학이 온다》를 읽은 이유다.
저자는 20년 넘게 ‘일상신학’을 연구하고 실천해왔다. ‘신자의 삶에서 일상은 보냄 받은 곳이자 일터요, 사명의 공간’이라는 전제로 우리 일상의 의미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 위에서 펼쳐낸다. 특히 누구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개념, 즉 일과 사역, 복음, 신학, 영성, 교회, 선교 등에 대한 정리는 저자가 오랜 동역자들과 함께 교류하며 녹여낸 내용이라서 쉽게 읽히면서도 핵심을 향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서 제자도를 위해 온갖 노력으로 안으로 열심히 채우려 하지 말고, 우리 존재가 삼위 하나님의 충만에 이미 잠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내 속에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우리는 신앙을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해해야 합니다.”
무려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정해주는 이 책이 쉽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간결한 체계 덕분이다. 저자의 오랜 시행착오에 따라 중요한 내용만 추려지고, 그 알짬이 담백하고 매끄러운 문장에 담겼다. 꼭 추천 대상을 꼽으라면, 새로이 시작되는, 그래서 신앙과 경험의 맥락이 서로 다른 신자가 모인 신앙공동체(이를 테면, 10여 년째 부흥과 소멸을 거듭하는 작은 교회의 청년부)다. 분명 이 책을 통해 신앙의 핵심 개념을 정리하며 공통의 지평 위에서 만날 것이다(모든 챕터의 끝에 ‘개인과 그룹을 위한 기초 성경 공부’가 실렸다).
신자를 조롱하거나 복음을 과시하던 번뜩이는 무리가 떠난 자리에서, 적당한 보폭으로 오랜 세월 자기다운 사역 여정을 써나가는 이들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래서 이 책이 참 좋았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