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호 에디터가 고른 책]
어떤 외국 저자에 대한 신뢰할 만한 번역자가 있다는 사실은 독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복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저자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최고의 가이드를 가진 셈이니까. 그런 저자-역자의 조합 앞에서는 지갑이 허물없이 열리고 만다. 나에겐 필립 로스-정영목, J. M. 쿳시-왕은철, 옌롄커-김태성이 그렇다.
이 책 저자는 ‘C. S. 루이스 전문 번역가’라는 수식어로 소개되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커버 to 커버’로 읽은 몇 권의 루이스 책 중에 저자가 옮긴 책은 없다. 발췌독이라도 한 경우를 찾자면, 《오독》 정도일까. 그래도 루이스-홍종락 조합을 향한 ‘믿음’은 주변 지인들을 통해 몇 번 들은 바 있다.
나도 이 책 저자인 홍종락 작가가 누구보다 신뢰할 만한 번역자라는 사실은 추호도 의심해본 적 없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내 소장 도서 중 적어도 열 권이 넘는 기독교책에 ‘홍종락’이라는 이름 석 자가 역자로 박혀있으며, 그중엔 눈물 흘리며 읽은 인생책도 몇 권 포함된다.
이 책에 손이 간 것은, 번역자를 향한 믿음과 당장 필요한 루이스 책만 몇 권 읽는 것으로 주변 마니아들의 ‘전도’를 피해간 내 청개구리 심보에 대한 반성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한번 독파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이 책을 분기점 및 가이드 삼아 한 권 두 권 늦게나마 읽어가보려 한다.
이 책은 C. S. 루이스 세계에 흠뻑 젖어든 이가 루이스를 ‘씹고, 뜯고, 맛본’ 뒤 사골까지 우려낸 ‘서사의 서사’다. 저자가 《오리지널 에필로그 – 번역가 홍종락의 C. S. 루이스 에세이》 출간 이후에 루이스를 주제로 연재한 각종 글과 루이스 독서모임을 진행하며 정리한 내용 등을 모아 펴낸 것이다.
저자가, 신참 악마에게 보내는 고참 악마의 편지 형식으로 쓰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패러디해서 ‘지옥 직속 한국 유혹자 관리팀장’을 맡은 악마로 ‘빙의’(?)하여 쓴 서평(《이야기에 관하여》)은 킬킬대며 읽었고, 루이스 삶과 사상에 덧대어 풀어낸 신앙 에세이에선 따뜻한 에너지를 받았다. 중간중간 들어간 장소 사진과 캡션으로 적힌 루이스의 사연은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여러 수고 어린 우정을 헤아리게 했다. 루이스도 천국에서 기뻐하며 보고 있지 않을까.
강동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