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호 현장과 사람]
매주 화요일이면 명동 세종호텔 노조 농성장 앞에서 기도회가 열립니다. 세종호텔 노조는 올해 12월이면 해고당한 지 3년이 되는데요. 항상 먼발치에서 인사드리다가, 더 늦기 전에 복상을 통해 이분들의 목소리를 들려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기도회에 늘 참석하시는 김란희 선생님(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께 인터뷰를 부탁드렸습니다. 김란희 선생님은 농성장 천막에서 차분하면서도 분명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 독자분들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명동역 10번 출구에 위치한 세종호텔에서 2021년 12월 10일에 해고된 해고노동자 김란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신앙생활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저는 3대가 기독교 집안이었어요.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자랐는데요. 그 시골 동네의 교회가 저에게는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있어요. 교회는 저에게 놀이터이자 안식처 같은 느낌이었죠. 유년 시절 그 교회를 쭉 다녔어요. 여름성경학교도 기억나네요. 교회 10주년, 20주년, 30주년 큰 행사 때마다 자매들과 함께 갔어요.
- 성인이 된 이후에도 방문하실 정도면 교회에 대한 애정이 크셨네요.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으신가요?
교회가 처음 건축되던 시절인데요. 건축이 시작되기 전에 터만 잡아놓은 상태에서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나고요. 여름성경학교 때 선생님들이 연합 교사 교육을 받으러 가셔서 노래를 배워 와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는데요. 찬송 부르기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소소한 기억이 많이 남아있어요.
- 세종호텔에 입사하신 지 올해로 31년이 지나셨네요. 처음 세종호텔에 입사하시던 때가 기억나시죠? 제 기억에 1990년대는 호텔리어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시기 같거든요.
제가 호텔 경영을 전공했지만, 호텔이나 여행사에 들어가면 주일을 못 지키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호텔을 가지 않았어요. 구로 공단에 있는 가죽옷 만드는 회사에 다녔어요. 근데 거기가 수출하는 회사라 업무량이 많아 밤낮없이 일하게 되었죠. 새벽까지 일하다 코피를 쏟기도 했고요. 몸이 너무 힘들어 그만뒀는데 친구가 세종호텔을 소개해줬어요. 면접을 보고 왔더니, 세종호텔 안에 교회가 있다는 거예요. 잘됐다 싶었고, 제가 또 기독교인이라고 하니까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1993년 1월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의 노동 역사를 다뤘던 기사를 보니 해고를 당하시기 전부터 이미 주명건 회장 측으로부터 인사 이동 피해를 많이 당하셨더라고요.
입사했을 때는 비서로 발령받았어요. 회장(주명건, 설립자 큰아들)과 사장(주장건, 설립자 작은아들) 각 1명씩, 두 명의 비서가 있었는데 저는 회장실과 사장실이 아닌 중역실 비서로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있었다가, 나중에 IMF 때 회사가 어렵지 않은데도 IMF 핑계를 대면서 권고사직을 시키곤 했습니다.
- 그때부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세종호텔 경영권 분쟁은 부모 형제간 싸움이었어요. 주명건과 나머지 가족들의 싸움이었는데요. 당시 소송 문제에서 주명건이 자신은 세종호텔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거짓 증언을 했었어요. 그래서 설립자 측 요청으로 법정에 가서 주명건이 세종호텔에 출근하고 업무를 봤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주명건의 타깃이 되었던 거죠. 그렇게 권력에서 쫓겨났던 주명건이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해고가 쉽지 않은 시절이었잖아요. 해고는 못 하니 인사 발령으로 저를 학대했어요. 비서실과 인사과에서 주로 일했던 저를 결국 가장 노동강도가 심한 객실 룸메이드로 발령 냈어요. 아마도 스스로 나가겠거니 했겠죠.
- 2021년 12월, 세종호텔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를 이유로 12명을 해고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그때 28년을 일한 세종호텔에서 해고를 당하셨는데요. 벌써 3년이 지나 1,000일이 훌쩍 지났네요. 혹시라도 이번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게 될 분들을 위해 해고 과정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세종호텔은 1966년 12월 창립되어 올해가 58주년인 호텔이에요. IMF 전에는 직원이 450명 정도였고, 대부분 정규직이었어요. 경비와 주차요원까지 모든 부서가 정규직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하나씩 용역으로 전환되더라고요. 당시 설립자 가족들 소송 비용만 해도 한 해에 몇 억이 들었거든요. 실은 회사를 어렵게 하는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경영에는 관심 없고 싸움에만 몰두하는 설립자 가족 아닐까요?
당시만 해도 세종호텔이 망하리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세종호텔은 세종대학교 재단인 대양학원 수익 사업체거든요. 연세우유나 건국우유 같은 곳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더 잘될 거예요. 세종호텔에서 나는 수입을 세종대학교로 가져가서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건물이나 설비를 정비하는 등 재단에 나누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런데 설립자 가족 간 싸움이 진행되면서 망가지고 돈을 못 버는 문제가 커졌어요. 그 가운데 노조원들만 어떻게든 해고하려 들었던 것이 저희가 겪은 일들입니다.
처음에는 15명이 해고되었는데, 그중 3명이 희망퇴직을 해서 결국 12명이 남았죠. 지금은 전 위원장 포함해서 8명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동조합이 쪼그라든 이유는요, 2007년에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몇 년 후 세종호텔에도 복수노조가 생겼어요. 복수노조는 어용노조가 많잖아요. 당시 저희에게 넘어오라고 회유하더군요. 민주노조에 있으면 불이익을 받을 거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했어요. 그게 현실이 되더라고요. 저희 같은 경우 항상 감시당하고 인사 기준을 비틀어서 매년 연봉 책정을 할 때 저성과자가 되도록 만들었어요.
그러다 2016년에 저희 전 노조위원장이었던 김상진 위원장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저희가 투쟁에 더 열을 올리게 됐어요. 그렇게 2019년, 코로나가 왔어요. 회사는 IMF 때 그랬듯이 코로나를 핑계로 또다시 직원들을 잘라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해고될 줄 몰랐는데 결국은 회사의 의지대로 해고되고 말았어요.
- 계속해서 이 힘든 시간을 버텨 오셨는데요. 이 시간들 속에서 기독교 신앙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사실 저는 김상진 위원장이 해고되기 전까지만 해도 노조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싸우고 투쟁하는 거 좋아하지 않잖아요. 제가 민주노조를 탈퇴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김상진 전 위원장이 싸우는 모습이 너무 고단해 보였어요. 같이 싸우자는 청에, 여러 핑계로 이리저리 뺐는데 막상 제가 해고자가 되니까 같이 싸워주지 못했던 게 미안하더라고요.
솔직히 저는 해고될지 몰랐어요. 마음속에는 기독교인으로 말씀도 보고 새벽기도도 나가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막상 해고돼서 크게 실망했죠. 하나님 원망도 많이 했고요. 왜 내게 이 길을 택하게 했는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해고 전까지 저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많이 경험했어요. 긴 회사 생활 동안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아무리 힘든 곳에 발령 나도 저는 항상 피할 바위가 되셨던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그런데 해고가 되니까 그것도 싫어졌어요. 한참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모태신앙이지만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어요. 그러다 투쟁하면서 조금씩 깨닫는 것들이 생겨났어요. 생각하는 게 달라지기도 하고요. 제 안에 이전과 다른 면들이 생기더라고요.
- 세종호텔 투쟁 과정에서 교회가 행하는 모습들이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움과 문제의식으로 다가오셨다는 말씀을 현장 기도회 때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으세요. 교회들이 사회현상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고 하셨는데요.
아직도 이 문제는 저한테 풀리지 않은 질문이기도 한데요. 제가 섬기는 교회도 선교후원금 내달라는 식의 광고는 많은데, 이태원 참사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기였지만, 아무도 그 주간 주일에 세월호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를 안 꺼내시는 거예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목사님이 언급해주면 좋겠는데,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친하게 어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끼리만 사랑을 주고받는 집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무엇보다 교회가 노동문제에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3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 농성장을 한번 방문해주신 적이 있었어요. 해고당했다고 목사님께 말씀드렸더니 기도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사모님과 구역장이 같이 와주셨는데요. 그 이후 한 번도 안 오셨어요. 제가 비록 교회 안에서 크게 비중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성도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한 번쯤 물어봐줄 수 있잖아요. 요즘 많이 어렵냐고 한마디만 물어봐줘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될 것 같거든요. 그냥 그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때가 있어요. 예전의 저와 지금의 제가 조금 다르다보니까 이질감이 생겨서 그런 걸까요? 교회 안에서도 제가 이단아가 된 것처럼 느껴져서 교회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 해고되신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요즘은 어떤 마음이 가장 많이 드세요?
다행히 남편과 가족들은 저의 투쟁을 지지하고 응원해줘서 마음은 편해요. 그런데 너무 오래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마음의 여유가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에요. 언젠가는 떠나간 동료들과 내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데 지금 해고자로 있는 상태에서 만나고 싶지 않더라고요. 복직하고 나서 당당히 만나고 싶어요. 해고가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내가 세상에 진 것도 아니죠. 하지만 이기고 돌아와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지금은 투쟁하는 사람들 외에는 주변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하고 있어요. 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만약 제가 이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저도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교회당 안에서만 봉사하는 사람으로 지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투쟁을 하면서 다른 현장에 연대하러 가는데요. 쿠팡 노동자분들도 있고, 옵티칼도 있고 또 내가 다 모르지만 싸우고 있는 동지들이 너무 많아요. 다 외로운 사람들이잖아요. 예전이라면 그런 사람들의 아픔과 눈물을 알지 못했을 거예요. 이제는 소중한 연대 동지들이 오히려 제가 과거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보다 더 진정으로 나와 함께 가는 사람들이구나 싶어요.
- 세종호텔 복직 투쟁의 향후 계획과 중요한 일정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12월 10일이면 해고된 지 만 3년이 돼요. 3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이 시간을 견뎌왔다는 게 한편으로는 대견하네요. 12월에 대법원 선고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소문으로는 저희가 지금까지 모든 재판에서 다 지고 왔기 때문에 뒤집힐 일은 없다라고들 하시더라고요. 그럼에도 대법원에서 제발 뒤집히기를 바라고 있어요. 대법원 선고가 어떻든, 이후 투쟁 향방이 어떻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투쟁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재정 마련입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면 가족들이 너무 큰 고통이기 때문에 저희가 어느 정도 생계비를 가져가야 하거든요. 지금까지 싸우면서 들었던 법률 비용도 있어서 7명이 투쟁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천만 원 이상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재정 마련을 위해 매년 3월에는 후원 주점도 하고, 가을에는 추석에 맞춰 물품 판매도 하고 있죠. 투쟁을 위한 재정을 마련하는 일이 저희에게는 큰 과제 중 하나입니다.
- 마지막으로, 같은 노동자이자 그리스도 신앙을 가진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5)는 성경 말씀도 있잖아요. 교회 안에서는 저희가 다 같은 형제와 자매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소통할 수 있을 텐데요. 사회문제를 끌어들이면 그냥 불통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교회가 사회문제나 현상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기회가 되면 아픔이 있는 곳에 찾아가 위로해주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올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절 연합예배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합니다. 이곳을 클릭하시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예배에 대한 정보를 보실 수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성탄절 연합예배에도 함께 연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진행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