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호 사람과상황] 이재근 경주YMCA 원자력아카데미 원장·현지 주민 인터뷰

지난 2월 27일 새벽, 원자력안전위원회는 30년 수명을 다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수명 연장을 결정했다. 표결에 반대하는 두 명의 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7명의 위원 전원이 수명 연장에 찬성, 낡은 원전은 곧 재가동된다. 월성 1호기 인근 주민들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충격이 아직 선명한데, 재가동 결정이 났다는 게 쉬이 믿기지 않는다. 수백 명의 주민들이 생업을 접고 세 차례나 서울에 올라와 집회와 기자회견을 갖고 월성 1호기 폐로를 요청했었다.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월성 1~4호기, 신월성 1, 2호기가 있는 곳은 불국사로 유명한 경주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관광객은 급격하게 줄었다. 최근 월성원전 인근 주민 83명은 갑상선 질환의 원인이 원전에 있다고 보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걸었다(원전 인근 1~15km에 5년 이상 거주한 548명의 갑상선암 확정자들이 한수원을 상대로 집단 소송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주는 고준위핵폐기물까지 떠안아야 할 운명이다.
 

   
▲ 이재근 경주YMCA 원자력아카데미 원장 ⓒ김승범


3월의 마지막 날, 원전과 관련한 모든 갈등이 엉켜있는 경주를 찾았다. 문화유산의 고도(古都) 경주에 핵발전소로 인한 상흔을 취재하러 오다니…. 서울역에서 2시간10분만에 도착한 신경주역 주변은 황량하기 그지없었고, 비가 내려 음침한 느낌마저 들었다. 취재팀을 맞은 이는 이재근 원장(53, 경주YMCA 원자력아카데미)이었다.

“경주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시려면 더 일찍 오셨어야죠!”

오전 11시께 도착.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이 원장은 둘러볼 곳이 많다며 시계를 거듭 확인했다. 시간 계산이 잘 나오지 않았는지 그는 계획된 자신의 인터뷰는 최대한 짧게 하고, 부족한 인터뷰는 여러 ‘현장’을 둘러보는 이동시간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자신의 이야기보다 경주시민들의 다양한 입장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첫 인터뷰는 그가 개척하여 목회하는 다사랑교회에서 진행했다.

- 언제부터 원전 문제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첫 직장이 경주YMCA이었습니다. 1993년도였죠. 90년대 후반에 월성원전 주변에서 기형 송아지가 많이 나왔습니다. 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 때문일 것이다, 판단했는데 그 송아지들을 원전 측에서 바로 사들이니까 원인규명은 못했죠. 그때부터 원전 반대 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맞는 분들과 1999년 11월 1일에 경주환경운동연합을 창립해 사무국장을 맡았습니다. 그러다 2010년엔 경주YMCA 사무총장으로 복귀했어요. 근데 제가 2007년 12월에 이 교회를 개척했거든요. 겸직하는 게 힘들어서 지금은 목회하면서, 경주YMCA 원자력아카데미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 원장님이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실 때, 이곳 경주에서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처리장(방폐장) 유치 주민투표가 있었습니다. 89.5% 압도적인 찬성률로 경쟁지역을 제치고 유치에 성공했는데요.
상당히 큰 충격이었죠. 멍했습니다. 나는 경주 토박이는 아니지만 경주가 좋아서 경주로 왔는데 큰 실망이었죠. 월성원전이 처음 들어설 때야 박정희 군사독재 때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방폐장이 들어서는 건 막아야 했는데 주민 10명 중 9명이 찬성을 한 겁니다. 중·저준위 방폐장 받아들이면 고준위 방폐장도 들어오게 된다는 등 방폐장의 위험성에 관해 주민들에게 나름 알린다고 알렸거든요. 그런데 결과가 왜 그랬을까 들여다보니 결국엔 주민들이 경제적인 보상을 따라간 거였습니다. 표면상으로는 경주가 관광도시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경제적으로 아주 피폐합니다. 정부가 경제 마케팅으로 주민들을 호도했고, 많은 주민들이 거기에 넘어갔습니다. 지금은 경주시민들이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약속들을 지키지 않고, 지킨다 해도 주민 개개인에게 피부로 와 닿는 경제적 도움은 없기 때문이죠.

- 그런 결정을 한 주민들을 원망하진 않았나요? 시민단체 책임자로서 허무감도 컸을 텐데요.
많은 주민들이 경제적 이윤이 많은 쪽을 택합니다. 경주에 골프장이 우후죽순 세워질 때도 반대운동을 많이 했어요. 특히 골프장은 환경적으로 큰 이슈잖아요.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선택을 합니다. 실은 주민들을 향한 원망보다는 시민단체에 대한 실망이 더 컸어요. 그때 방폐장 투표결과 나온 후에 환경운동연합 본부에서 우리 쪽에 ‘내사’를 나온 겁니다. 경주환경운동연합이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는 거죠. 이재근 사무총장이 신학공부 하느라 일을 열심히 안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정말, 엄청난 상처가 났습니다, 그때…. 

- ‘동지’들로부터 당한 일이라 더 큰 아픔이 되었던 거군요.
적지 않은 운동가들에게 아주 안 좋은 버릇이 있습니다. 자기 이념이나 뜻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매우 공격적으로 맞서는 성향이죠. 운동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시민단체 일하면서 월급으로 1백만 원 이상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운동의 결말이 결국은 ‘보상’으로 끝나는 걸 보면서 참 허무했습니다. 원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지역사회 보상으로 ‘해결’이 될 겁니다. 사회변혁을 위해 운동을 하는 건데, 변혁은커녕 결론은 항상 ‘보상’이니 운동가에겐 남는 게 없습니다.
 

   
▲ 경주의 핵발전소 관련 스크랩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는 이재근 원장 ⓒ복음과상황 오지은


- 그런 허무감이 혹시 교회를 개척한 것과 연관이 있나요? 경주YMCA 사무총장을 겸임하다가 내려놓으셨는데요.
저에게 사회운동가의 길은 실망만 안겼습니다. 피폐해진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이 더 근본에 다가서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목양능력은 별로 없긴 하지만, 그래도 목회철학은 ‘현장 중심’에 두고 있어요. 현장에서 민초들과 함께 아픔과 애환을 같이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이 장기적으론 사회변혁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인지요?
맞습니다. 제 영혼이 먼저 행복하지 않으면 목회를 접어야겠지요. 삶 속에서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그랬듯, 저도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설교합니다. 그런데 제가 영성이 별로 없어서 걱정입니다. 깊은 영성으로 우리 교인들을 섬기고 싶은데, 밖에서 해야 할 일도 있으니 너무 미안합니다. 영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 교인들은 얼마나 되나요?
출석 교인이 34명 정도입니다. 이중 주일학교 아이들이 9명이고요. 일흔 살 넘은 어르신들도 계시고, 시내에서 오는 젊은이들도 좀 됩니다. 시골교회치곤 많은 편이죠.

- 경주YMCA 원자력아카데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요? ‘편견과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 상생과 대안으로!’라는 표어가 눈에 띄던데요.
원자력 문제와 관련해서 주민들도 찬핵, 반핵 둘로 나뉘니까 중간지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예상 밖으로 폭발적인 인기였어요. 수강 인원을 30명으로 제한했고, 2년 간 4기까지 120명의 수료생을 배출했습니다. 아카데미는 약 10여 차례의 강의로 구성되는데 찬핵 강사, 반핵 강사, 원자력전문가 등 골고루 초빙합니다.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한수원의 후원을 받고 있으니까요. 저를 욕하던 분도 직접 와서 아카데미 분위기를 보고는 오해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주민들이 원전을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일단은 중립지대를 만들어서 공부하고 토론해보는 장을 마련해보자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반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수원 사람들하고는 같이 밥도 안 먹으려고 하는데,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 원자력에 대한 양쪽 입장과 정보를 얻은 수료생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일단 원전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월성 1호기의 수명을 연장하면 큰일이 나겠다는 판단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죠. 물론, 어떤 분들은 원전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울진, 고리, 영광 등 원전이 가동 중인 지자체의 주민들은 원전에 관한 기초 이론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찬핵이든 반핵이든 올바른 정보를 주는 게 순서라는 거죠. 회색주의자다, 변절자다, 욕먹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월성 1호기가 재가동될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월성 1호기는 폐쇄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원전을 짓는 기술만 익혔지, 해체하는 기술은 없지 않습니까? 이번에 월성 1호기를 폐쇄하면서 원전 해체기술을 익혔으면, 그 기술을 전 세계로 수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월성 1호기가 3년 째 멈춰있었는데 우리 에너지 수급에 아무 문제없었잖아요. 이번에 연장해봐야 8년밖에 못 돌리는데 투자금액, 보상금액 감안하면 경제성도 없습니다. 월성 1호기 재가동을 못하면, 수명이 다 되어가는 다른 원전들의 연장이 어려워지니 기를 쓰고 연장하는 겁니다.

- 원자력 관련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여해 경주에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서게 될 것을 우려해 목소리를 높이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2005년 방폐장 유치 투표 이후 거의 말을 안 하고 살았습니다만, 계속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당신네들이 찬성한 일이니 한 번 당해봐라” 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방폐장 문제는 심각한 일입니다. 사실 중·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에는 특별법에 따라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설 수 없습니다. 현재 월성원전의 고준위핵폐기물은 1992년 4월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넘게 노상에 임시저장 중입니다. ‘임시저장’이라는 말이 참 무색합니다. 관련법도 없어요. 2055년까지 ‘임시저장’이 계속될 겁니다. 그리고 2055년 후엔 그게 어디로 가겠습니까? 아마 경주에서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 고준위핵폐기물이 노상에 저장되어 있다고 했는데, 천재지변이나 미사일 등의 폭격에도 안전한 건가요?
울진, 고리, 영광의 원전들은 고준위핵폐기물을 수조에 보관합니다. 월성은 수조와 노상(콘크리트)에 보관합니다. 한수원 사람들은 전혀 심각하게 생각을 안 합니다. 안전하다는 거죠.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 큰 틀에서의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해요. 다음 세대로 떠넘기지 말고 우리 시대에 꼭 해결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이재근 원장의 공식 인터뷰는 끝이 났다.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라며 그가 먼저 일어섰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다음 목적지까지는 46km, 1시간 30분정도가 걸린다. 이 원장은 그곳에 가면 경주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에 반대하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가 시위했던 분들이다.

취재팀을 태우고 운전하는 중에도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방폐장을 짓는 조건으로 정부가 약속했던 건물이었다. 그중에는 한수원 본사도 있었는데, 그는 “본사가 내려와봐야 심장 역할은 결국 서울에서 하게 될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정작 주민들이 원했던 특목고, 종합병원 등의 공약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방폐장 대가로 받은 3천억 원은 주로 가진 자들의 논리에 의해 사용되었고, 현재 530억 원만 남은 상태다.

- 지금 조건에서 다시 투표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아마 역전될 겁니다. 이제 주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아요. 허리 피고 살 수 있게 해준다던 사탕 발린 이야기들이 다 거짓말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을 99.9%가 지지합니다. 아주 독특한 분위기죠.

- 강원도 삼척에서는 지난해 열린 원전유치 주민투표에서 반대표가 84.97% 나왔습니다.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해안이 지금 원자력발전소로 쑥대밭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중에 남은 곳이 강원도밖에 더 있나요? 우리 아름다운 자연을 지켜야죠. 강원도 동해안이라도 지켜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주 시내를 빠져나온 지 15분쯤 되었을까, 이 원장이 기다렸다는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길이 바로 유홍준 교수가 극찬한 길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사회운동가로서 20여 년 동안 경주 구석구석을 누빈 이 원장의 말을 보증하듯 창밖으로 장관이 펼쳐졌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에서 이 길을 이렇게 평했다.

“불과 30킬로미터의 짧은 거리이지만 이 길은 산과 호수, 고갯마루와 계곡, 넓은 들판과 강,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조국강산의 모든 아름다움의 전형을 축소하여 보여준다. … 경주를 떠나 대왕암에 이르기까지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천년 넘은 나이의 유물과 아마도 그보다 더 오랜 나이를 지녔을 오솔길을 보면서 나는 능히 한 권 분량의 미술사적 사실과 그 의의를 떠올리곤 한다.”(212-213쪽)

인류는 이 아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 창밖을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생각이 스쳤다.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길을 통과하고 있었지만, 원전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 중이기도 했다.

도착한 곳은 양남면 해안가에 위치한 음식점이었다. 이 음식점을 운영하는 월성원전1호기 동경주대책위원회 김승욱 공동사무국장(44)이 우리를 맞았다. 동경주대책위는 양남면·양북면·감포읍 등 월성원전 주변 3개 읍·면 주민들로 구성됐다. 월성1호기의 재가동이 결정된 이후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하는 등 강경한 입장이 보도되어 왔으나, 김 국장은 이날 한풀 꺾인 현장 분위기를 털어놨다. 지나치게 솔직한 대답은 ‘포기’인지 ‘초월’인지 헷갈렸다. 다음은 김 국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월성1호기동경주대책위원회 김승욱 공동사무국장 ⓒ김승범


- 월성1호기의 연장이 결정되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은 어떻게 진행할 예정입니까?
처음엔 반대를 위해 시위를 했는데, 지역 정서상 이제 협상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릴 도와주던 김익중 동국대 교수나 시민단체 분들에게도 재가동 결정이 나버리면 지역 정서상 시위를 계속 이어가기가 어렵다고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 ‘지역 정서’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정부가 결정한 것은 ‘법’이 되잖아요. 주민들은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래서 법 안에서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할 수는 있지만, 이미 정해진 법을 뒤엎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할 주민들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삼척이나 영덕같이 새롭게 원전이 들어서는 지역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릅니다. 이미 원전이 가동되는 지역의 주민들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2, 3호기도 계속 돌아가는 상황이고 방폐장도 2단계 공사가 곧 들어가는데…. 월성1호기 가동 안 한다고 우리가 원전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왕 원전 받은 거 우리가 계속 떠안는 게 국가적으로는 나을지도 몰라요. 삼척이나 영덕 주민들은 정말 잘 결정해야 합니다. 사탕 발린 이야기들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번 받아들이고 나면 우리처럼 벗어날 수가 없어요.

- 경주에서 나고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원전이 들어오던 때부터 지금까지 지역의 변화를 지켜봐왔을 텐데요.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자연환경 속에서 누리던 것들을 잃어서 안타까워요. 원전 없이 좀 가난하게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원자력 회사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들은 또 다르게 생각하겠죠. 지역 청년들도 거기서 일하고 있는데, 그들에겐 가족들 먹여 살리는 좋은 직장 아니겠습니까? 무엇이 좋다, 나쁘다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네요.

- 앞으로의 계획은 협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셨는데요.
강단 없는 모습이라 비판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는 원전 때문에 피해가 막심한 분들에게 보상금이 10원이라도 더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속물처럼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죠. 저는 그래도 음식점 운영하며 그럭저럭 살고 있지만, 농사짓는 분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거니까요. 고향을 떠나서 살아야 하는 분들은 또 얼마나 막막하겠습니까? 그런 분들 위해서라도 보상금 더 받아내야죠.

- 아쉬운 마음은 없습니까?
똑똑하고 힘도 있는 서울시민들이 좀 나서줬으면 했어요. 법 만드는 사람들 다 중앙에, 서울에 있잖아요. 그분들이 잘하면 우리 같은 촌놈들이 서울까지 올라가서 데모할 필요 없잖아요. 데모해서 될 일도 아니고. 힘 있는 분들이 이런 법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원전 수명 연장했다가 사고 터지면, 연장 결정한 사람들을 연좌제로 자손만대로 다 조지는 법이요. 그래야 결정하는 사람들이 경제논리에 안 놀아나고 책임 있는 결정 내리지 않겠어요? 그래야 위험하다는 보고서 내용 살짝 고쳐서 안전하다고 거짓말 하는 짓 안 하지 않겠어요?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월성원전 주변지역 이주대책위원회. 8개월 째 한수원 월성원자력홍보관 옆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중이다. 약 70여 명이 시작했고, 지금은 50명 정도가 남았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니 열 분이 조금 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앉아 있었다. 취재를 왔다고 하자 몇 분이 더 들어왔다. 질문을 건넬 틈도 없이 성토가 이어졌다. 포문을 연 것은 이주대책위원회 김승환 부위원장(65)이었다.

“여기는 사람 살 곳이 아니야. 지가 형성도 안 된다니까요. 후쿠시마 이후에 여기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한수원은 법대로 1,000야드(914m)까지만 관리구역이니 그밖에 사는 주민들에 대해선 보상이나 이주의 의무가 없다고 하는데, 방사능이 어디 914미터까지만 미치고 그 뒤부터는 깨끗이 없어진답니까? 신고리 쪽은 관리구역 밖에 있던 120세대를 이주시킨 사례가 있어요. 법이 지켜내지 못하는 국민의 생존권을 주장하려고 여기에 많은 분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겁니다.”
 

   
▲ 이주대책위원회 천막 내외부 ⓒ김승범

 

   
▲ 이주대책위원회 농성 천막에서 100미터쯤 걸어가자 핵발전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승범


천막에 모인 이들은 공통적으로 후쿠시마 사태 이후에 눈이 뜨였다고 했다. 관광객은 급격하게 줄었고, 부동산 거래도 전무해졌다. 마을 중심에 있던 상가건물이 텅텅 비는 것은 시간 문제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건강이었다. 자신이나 가족 중에 암환자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원전 주변지역(5km) 이내에 거주하는 여성의 경우 갑상선암 발병률이 원거리(30Km) 거주 여성보다 2.5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입증하는 듯했다.

한 할머니는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물도 제대로 못 먹는데 어떻게 살아가요. 지금까지 삼중수소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손자를 키울 수 있겠어요.” 삼중수소는 중수소가 핵분열 할 때 생기는 중성자와 결합해 만들어진다. 중수로는 경수로에 비해 삼중수소를 많게는 몇 십 배 이상 더 내보낸다. 원자로에서 생긴 삼중수소 중 약 40%는 수증기 형태로, 나머지 60%는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와 함께 액체로 배출된다. 입자가 아주 작아 완벽하게 걸러낼 수 없다.
 

   
▲ 원전에 가깝게 살수록 삼중수소에 더 노출된다. 3월 21일 방송된 KBS2 <추적60분> 방송화면 갈무리


문제는 우리 몸이 삼중수소와 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에 따르면, 삼중수소는 체액 속을 돌아다니며 단백질, 유전자, DNA 등의 분자를 공격해 흠집을 낸다. 한수원은 삼중수소 배출은 인정하지만 기준치 이하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전문가들 의견도 엇갈린다. 그러나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능이라도 수시로 피폭될 경우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만큼, 안전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원전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일수록 소변에서 다량의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

갑자기 누군가 분에 차 외쳤다.

“삼중수소가 위험하다는 보도가 나가면 나라에서 건강검진이라도 해줘야지. 집집마다 암환자 있다고 방송에 나가도 해결을 안 해줘. 억울하고 분해! 시골에 살고, 말주변이 없는 게 한이야. 우리는 김정은이 나라 사람인가? 우리도 국민이라고!”

월성 원전이 처음 지어질 때, 건설 특수를 회상하는 이도 있었다.

“30년 전에 박정희 대통령님이 이곳에 원전을 지었을 때는 아주 좋았다고. 사람들도 많이 드나들고.”

당시 원전 건설 특수를 누렸던 주민들 중에는 경주 시내에 으리으리한 건물을 지은 사람도 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듭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일을 꾸미는 사람도 있다. 이주대책위를 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수’마저 구하기 어려운 불안한 상황이다.

농성 천막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취재팀의 다음 목적지가 한수원 홍보팀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때였다. 다소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입 아프게 얘기하면 뭐해! 이 사람들 홍보팀 간다네?” 상황을 지켜보던 김정섭 대책위 위원장(70)이 입을 뗐다.

“기자 양반, 다른 기자들이 여기 들렸다가도 홍보팀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우리가 했던 이야기는 쏙 빼고 홍보팀 얘기로만 기사를 쓰더라고. 한두 번 당한 게 아니야. 그게 불안해서 그래.” 

   
▲ 주민 김해준 씨(72)는 "억울하고 애통하다. 자식들에게 이 천막과 데모밖에 물려줄 게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이주대책위 농성 천막을 나와 한수원 홍보관 건물에 들어서자 홍보팀장이 우리를 맞았다. 한나절 만에 듣는 서울말이 매우 낯설었다. 천막 여론에 깊이 감정이입이 되었던 터라 독기를 품고 질문을 쏟아 붓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 “노력하고 있다” “전문가를 믿어 달라” 등 한수원의 보도자료나 홈페이지에 적힌 안내 이상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가족들 먹여 살리는 좋은 직장이 아니겠습니까?” 경주토박이 김승욱 사무국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신경주역으로 돌아오는 길, 이재근 원장은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말고 여기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해달라”고 당부했으나, 이 고약한 상황도 결국 ‘보상’으로 매듭지어질 걸 생각하니 아찔했다. 아니, 반대로 원전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은 그 어떤 ‘보상’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아찔하게 다가왔다. 

진행_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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