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호 스무살의 인문학]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름도 잔인한 세계대전이 지나고 세상을 지배한 것은,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상처와, 함께 찾아온 허탈함이었습니다. 인류가 신뢰했던 최첨단 과학은 분홍빛 미래를 약속할 것만 같았지만 순식간에 핵무기가 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고, 폐허 속에서 당시 사람들은 무얼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그저 막막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믿을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 현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잿더미 속에서 부활의 싹을 틔워야 한다는 부담이었겠지요.

그래서 시인 T. S. 엘리엇은 생명이 깃들지 못하는 20세기의 문명을 상징하는 그의 시 〈황무지〉에서 노래합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고요. 잔혹한 전쟁 끝에 밀어닥친 허탈함과 무력감을 억지로 이겨내고 발전의 싹을 틔워야 하는 전쟁 후의 시간을, 재생의 고통을 이겨낼 수 없는 이들에게 재생을 요구하는, 그리하여 진정한 재생이 아니라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만 주는 황무지의 4월로 비유하는 것이겠지요.

이미 펼쳐진 비극의 잔혹함을 되돌릴 수 없으나 반드시 그 잔상을 떠올리며 상처를 치유해야 함을, 차갑게 얼어붙은 땅을 무겁게 녹이며 일어서는 4월을 새싹의 고통으로 읽어 내는 것은, 세계대전을 교과서에서 익힌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벌써 2주년임을 믿을 수 없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4월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 참혹한 일이 21세기의 문명국에서 버젓이 벌어졌다는 걸 외면하고 싶지만, 가만히 있고 싶지만, 이제는 그만 잊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세월호. 4월은 여전히 가장 잔인한 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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