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호 메멘토 0416: 내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법 12]

   
▲ ⓒ복음과상황

창현이를 잃고 2년 반이 지난 지금, ‘내가 가는 길에 과연 주님은 동행하고 계실까’ 생각하곤 한다. 어떨 땐 함께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땐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2년 반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자기 일처럼 유가족들과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들 같아 감사하다가도, 너무나 정당하고 간절한 요구가 권력의 힘에 의해 매번 짓밟히는 경험을 할 때면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이라도 우리 유가족의 요구가 관철되었다면 그 경험으로 더 힘내서 싸움에 임할 수 있을 텐데, 2년 반 동안 정부를 이겨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으니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 거다.

‘내 인생은 이렇게 싸우다 끝나겠구나’ 생각도 들었다. 처음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참 비참한 인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불의한 세상과 맞서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고, 끝없이 싸움을 거는 엄마의 모습을 하나님도, 창현이도 싫어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나오니 한국교회의 실체가 보였다
창현 아빠나 나나 생업을 접고 진상규명에 매달리면서 기존에 다니던 교회와는 멀어졌다. 교회 안에서 듣는 말씀은 결국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게 하나님의 축복이며, 축복받는 비결은 교회출석 잘하고 헌금 잘 내고 봉사 잘하고 목사님 말 잘 듣고 등등…. 삶의 전부였던 자식을 억울하게 잃고 그 진상을 밝혀달라고 정부와 싸우고 있는 나에게 교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다.

그 좋은 은혜도, 감격스런 찬양도, 하나님의 축복도, 천국도, 더 이상 사모할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억지로라도 감사의 이유를 찾아가며 은혜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썼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마음속은 불의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하나님께 대한 의심과 섭섭함으로 가득한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교회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외식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방법은 교회를 나오는 길밖에 없었다.

교회를 나와서 보니 한국교회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말은 무수히 많으나 영향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본질은 무시한 채 교회 몸짓 불리기나 세 과시하는 걸 더 자랑스럽게 여기고, 성도 개개인의 삶보다는 교회 덩치 키우기에 더 매달리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 같아 보였다.

부활 후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였다. 일주일이면 각 교회 강단을 통해 엄청난 양의 설교를 쏟아내기만 할 뿐, 그 말씀을 잘 소화하고 있는지 상관 않고 계속 먹이기만 한다. 그 훌륭한 말씀 때문에 탈이 나진 않았는지, 아프진 않은지 확인 한 번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니 무조건 먹으란다.

베드로에게 부탁하신 양을 먹이고 양을 치는 모습은 아흔아홉 마리의 건강한 양을 놔두고 대열에서 낙오된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모습이 아닐까. 예수님은 대열에서 낙오된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향해 몸과 마음이 달려가는데, 교회는 건강한 다수인 아흔아홉 마리를 치켜세우며 자랑스러워하며 자기들만의 잔치에 취해 있는 것 같다.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사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기들을 인도 할 신이라며 축제를 벌였던 모습처럼.

‘신앙인 유가족’으로서 나의 싸움은…
신앙인 유가족으로서 나의 싸움은 진실을 덮으려는 정부와의 싸움이기도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이미 권력이 되어 버린 교회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초기 대한민국 전체가 통째로 흔들리는 통렬함이 있었던 며칠간의 분위기는, 목사님들이 재 가운데 앉아 마음을 찢는 회개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 노란리본을 다는 건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사진: 최순화 님 제공)

그러나 1주일도 안되어 막말하는 목사님이 나왔고, 교회의 ‘만능해결사’ 하나님의 뜻이 등장했다. 2년 넘게 전국을 다니며 진실을 알렸고 함께해주실 것을 호소했지만 큰 교회일수록 문은 열리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9월 26일부터 4일 동안 안산에서 예장(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가 열리던 현장으로 찾아갔다.

당시 안산 세월호 분향소 내 기독교 예배실에서는 전국에서 모이는 목사님들을 만날 기회다 싶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총회 장소에 세월호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책자를 만들고 리본, 뱃지, 스티커를 넣어 포장해서 세월호 부스 앞을 지나가는 대부분의 목사님, 장로님들께 준비한 책과 선물을 내밀었다.

그냥 받아가시거나 거절하시거나 대부분 두 가지 반응을 보이셨는데, 어느 한 목사님의 반응이 잊히질 않는다. 책과 선물을 내밀며 꼭 한번 읽어달라고 하자 대뜸 하시는 말씀이, “세월호 이거 너무 잘못됐다”라는 거였다. 뭐가 잘못된 거냐고 되물으니 “돈을 그렇게 많이 받았으면서 왜 이러냐”고 하셨다. 내가 유가족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이 책을 읽어보시면 오해가 풀릴 거라고 얘기했지만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으니 들을 얘기 없다며 도망치듯 사라지셨다. (그 순간 들을 귀가 없는 현직 대통령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반인이면 몰라도 목사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그런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이냐고 물어야 정상일 텐데, 다짜고짜 돈 많이 받아놓고 왜 이러느냐 따지면서 유가족의 일을 유가족인 나보다 더 잘 아신단다.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하는 카톡이 교회 안에 정기적으로 돌고 있다는데 그걸 그대로 믿으시는 모양이다. 믿음도 좋으시지….

세월호 특조위가 청문회를 통해 밝혀낸 사실 중에는 유가족을 폄하하는 SNS 소식과 카톡이 어떻게 생성되고 확산되는지를 밝혀낸 것도 있다. 세월호 유가족 폄훼글이 아주 짧은 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건, 2012년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에 이용된 것과 같은 프로그램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유가족을 폄훼하는 글을 쓰면 그 글에 댓글은 달지 않고 퍼 나르기만 하는 수십 명이 있고, 또 그 수십 명의 글을 퍼 나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런 과정을 거쳐 그 글은 전국으로 퍼지고 잘 짜인 교회 네트워크 망을 통해 전 교인들에게 퍼지고….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이 언론에 부각될 때면 어김없이 그 똑같은 카톡이 또 돈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것을 알 텐데도 그대로 믿는 모양이다.

세월호의 진실을 덮으려는 자들은…
세월호의 진실을 덮으려는 저들은 힘도 있고, 돈도 많고, 권력도 갖고 있고, 언론도 쥐고 있다. 시간도 저들의 편이고, 교회도 역시 저들의 편에 서 있다. 그러나 강자인 저들은 거짓을 원하고 약자인 우리는 진실을 원한다. 진실은 있는 그대로를 말해주는 거지만, 거짓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엔 어떠할까?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 거짓이 승리하는 걸 용납하실까? 내가 그리는 그림은, 돈과 권력을 거머쥐고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재물삼아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치부하고 있는 저들은 자기가 부린 꾀에 스스로 넘어지는 모습이다.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 만든 장대에 자기가 매달린 하만처럼.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하실 거 같다. 진실을 찾는 이 험난한 길을 기꺼이 함께 가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읽곤 한다. 어디를 가든 세월호를 알리는 옷을 입고 세월호 목걸이에 팔찌에 가방에…, 어디든 노란리본을 달고 차에는 리본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나와 비슷한 모양새를 한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난다. 그래서 매번 지는 싸움을 하면서도 오늘도 노란리본으로 시비를 건다.

노란리본을 다는 건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거라고.
노란리본을 다는 건 돈보다 생명을 택하는 거라고.
노란리본을 다는 건 진실이 승리하길 바라는 거라고.
노란리본을 다는 건 십자가를 잊지 않았다는 거라고. 

 

최순화
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의 엄마. 현재 다니는 교회는 없고 주일이면 분향소를 자주 찾아주시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거나 초대하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평소에는 분향소 내 기독교 예배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