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호 커버스토리]

▲ 아우구스트 프랑케

‘유사 개신교’와 디아코니아
‘유사 개신교’라는 용어는 종교개혁 이후 30년 전쟁(1618-1648년 독일에서 일어난 신·구교간의 종교전쟁)을 통해 본래의 개신교 정신에서 멀어졌던 17세기 중반의 개신교를 표현한 용어이다. 성직자 중심주의 및 업적을 통한 구원에 뿌리를 둔 가톨릭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나온 개신교가 가톨릭과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면서 다시 개혁 이전의 옛 옷을 걸치게 되었다며 ‘유사 개신교’라 불렸던 것이다. 개신교도 가톨릭도 아닌 모호한, 그 뿌리를 알 수 없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한국 개신교는 진정한 의미의 개신교인가? 오히려 중세 이전의 부패했던 가톨릭교회와 30년 전쟁 이후의 ‘유사 개신교’를 더 닮았다. ‘한국 개신교회 안에는 교황이 여러 명 있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믿음의 척도는 헌금의 액수’라는 타령도 나온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 개신교가 보여준 최고의 이벤트는 단연 대형교회의 세습이다. 성직과 교회를 매매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교회법을 어기고 버젓이 교회를 자기 자식에게 넘겨준다. 이런 교회가 자신의 정당성 유지를 위해 이벤트를 벌이면서 디아코니아를 선교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거대한 복지재단을 운영하면서 자신들의 교회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랑 실천을 하고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는 이벤트성 행사를 벌인다. 불법을 감추기 위해 외적으로 선행을 뽐내는 격이다. 이처럼 디아코니아를 홍보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는 마치 군부 세력이 폭력으로 권력을 잡은 뒤 자신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위장하기 위해 선심성 복지제도를 장착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사탄과 적그리스도의 짓이다.   

종교개혁으로 태동한 개신교의 디아코니아적 의미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이제까지의 그리스도교 역사는 주로 교권과 교리전승사에 기대어 서술되었다. 그 결과 디아코니아의 역사는 주류 교회사의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배제되었다. 한국교회의 여러 기형적인 승리주의나 성장주의에 경도된 오늘의 모습은 이러한 역사 이해의 결과물이다. 이제 올바른 역사 서술의 관점에 있어 면밀한 조정이 필요하다. 번영과 성장 그리고 물신주의적 ‘바알 디아코니아’와, 고난과 장애와 광야 그리고 약자에 정향된 ‘야훼 디아코니아’에 대한 분명한 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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