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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 여성, 교회 다니는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342호 커버스토리]
[342호] 2019년 04월 29일 (월) 11:33:21 어떤 사람 goscon@goscon.co.kr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오랫동안 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답 없이 고민만 많고, 그때그때 투덜거리기나 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냥, 내 생각을 솔직하게 쓰기로 했다. 나는 2019년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여성이고, 20대 후반 청년이고, 끊임없이 진로 고민을 하며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고, 기혼자이지만 자녀 계획이 없고,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교회 공동체에 어떻게 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교회 청년이다.

   
 

20대 초반 여성인 내가 2011년의 한국 사회를 겪어온 것
2011년 가을, 평소처럼 친구와 점심을 먹고 학교 도서관에 가기 전에 화장실에 갔다. 사람이 거의 없는 지하층이긴 한데 워낙 익숙한 학교 화장실이니까 별 생각 없이 혼자 들어갔고, 한쪽 칸에는 수리중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어서 다른 쪽 칸에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쎄한 기분이 들었다. 벽 너머엔 남자화장실이 있었는데 그쪽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뭔가를 밟고 올라서는 것 같았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을 입고 돌아섰는데 벽에 난 구멍을 통해 핸드폰을 쥔 손이 들어와 있었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그 칸에서 나왔고, 불투명한 유리문(화장실 입구)을 통해 누군가가 도망가는 것이 보였는데 그가 되돌아와 나를 해코지할까 봐 화장실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밖으로 나와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그제야 다리 힘이 풀리고 눈물이 났다.

선배 언니들이 대신 나서서 교수님들을 만나고 범인을 잡는 과정을 도와줬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마무리는 나 혼자 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교수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고, 나는 범인이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것과, 그가 한 행동은 범죄이자 정신병이므로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꼭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교수는 방학 중에 다시 나를 학교에 불러서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설명해주었다. 벽에 난 구멍은 예전에 양쪽 화장실에서 외부로 나가는 환풍구가 있던 자리인데, 환풍구를 철거하고 막아놨던 판이 훼손되어 있었고, 사건 후에 다시 막았다고 했다. 범인은 같은 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는데, 나는 그로부터 ‘부끄러운 마음으로 회개하고 있다’는 식상한 사과문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내가 그와 마주치지 않도록 2년 정학을 시켰고 다시 복학하려면 정신과 진료 기록을 가져오도록 하는 징계를 내렸다고 했다. 어차피 군대를 가야 하니 그 기간 동안 갔다 오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이 일을 다시 문제 삼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내밀었다.

이 사건에서 내 잘못은 하나도 없었지만 이 일이 알려진다면 여자인 나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얘기해주는 사람도 있어서 가까운 몇 명 외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벌어진 사소하지 않은 사건은 조용하게, 개인적인 일로 묻혔다. 이 일 자체로도 힘들었지만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남자 교수와 단 둘이 연구실에 앉아서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내 손으로 합의서에 서명을 했던 그 순간이 너무 수치스럽고 굴욕적이어서 오랫동안 괴로웠다.

사실 이런 식의 크고 작은 일들은 내가 살아오는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이 겪었다. 여성혐오는 너무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워서, 어떤 때에는 나조차도 별 거 아닌 일로 여기면서 지나가 버릴 때가 많았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다 말했다가는 ‘이상한 여자’나 ‘예민한 여자’가 되어 불이익을 당하는 모습들을 주변에서 보면서 나는 참는 방식으로, 내 몸과 마음이 느끼는 것을 억누르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억누르면서 나를 지켜왔던 것 같다.

20대 후반인 내가 2019년 한국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사회에 여성혐오가 이슈화되면서 수많은 고백과 고발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전까지는 ‘나’만 참으면 조용히 지나갈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던) 일들이 결코, 개인적이지도 않고 사소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공포, 불안, 위협, 수치심, 불쾌감 등을 느꼈던 나의 경험들이 대다수 여성에게 있었던 공통된 경험들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일상적으로 겪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나와 다른 성별을 가진 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나는 흥얼거리던 노래도, 오랜만에 펼쳐본 책의 문장도,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하던 옷도 불편해졌다. 일상적인 선택을 할 때에도 고민하게 되었다. 불편함,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과거의 경험들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었고, 그 시간들을 보내온 나를 진심으로 위로하며 자유로워졌다. 비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적이라고 이제라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서른을 앞둔 요즘은 자다가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많아졌다. 어릴 때는 서른쯤 되면 어느 정도 인생의 방향이 잡혀 있는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내가 스물아홉이 되어 보니 내 나이는 인생의 방향을 잡기는커녕 이도 저도 아닌 참 애매한 나이인 것 같다. 어디에서든 막내는 아니지만, 연륜, 경력 같은 걸 내세울 수도 없는 나이.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조금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이 아니면 더 늦을 것 같아서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주는 나이. 가진 것은 없는데,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생겨서 벌써부터 도전을 망설이게 되는 나이이다.

나는 20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진지하게 내 인생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선택을 했다. 학부 1학년을 마치고 전공 선택을 할 때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시간표대로, 또 다수가 선택하는 대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해야 할 때에도 나는 다수의 선택을 따라 가장 많은 사람이 지원하는 전공을 선택했고, 그때의 선택은 내게 타임머신을 탈 기회가 생긴다면 되돌리고 싶은 선택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를 잘 몰라서 했던 후회스러운 선택이었지, 상황에 밀려서 억지로 했던 선택은 아니었다.

두 번째로 했던 선택은 3년 넘게 해오던 전공 관련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부모님 집에 살고 있어서 특별한 생활비가 필요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언제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 실제로 지원을 받지는 않았고, 파트타임 알바로 적은 비용을 벌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불안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선택이 조금 쉬웠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많은 선택을 해왔다. 결혼을 했지만 자녀는 낳지 않을 것이고, 몇 번 이직을 하였고,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는 4년차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고, 뭔가를 선택하기에 앞서 새로운 상상을 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진로 고민이 불안감으로 가득한 괴로운 고민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즐거운 일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하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일이 있는데, 먼저 그 일을 위해서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다. 그렇지만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려면 어떻게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선택을 가로막는다. 그렇게 공부를 한다고 해도 이후에 먹고살 생각을 하면 더욱 막막하다. 높은 임대료, 임차인과 개인 창작자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혹은 보호해주지 않는) 법과 제도를 생각하면 꿈틀대던 의욕이 사라진다. 보장되지 않은 미래를 위하여 시간과 큰 비용을 지불할 만큼의 안정감이 없을수록 선택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잠깐 일을 쉬거나 다른 일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면, 모든 일에 노동자들의 수고가 ‘제대로 매겨진 값’이 지불된다면, 어떤 일을 하다가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기반이 있다면,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는 일이 지금보다는 설렘으로 가득 찬 즐거운 선택이 되지 않을까?

청년인 내가 2019년 한국교회를 다닌다는 것
몇 년 전에 늦잠을 자서 원래 다니던 교회에는 가지 못하고 집 근처 대형교회에 갔던 적이 있다. 처음 온 청년을 따뜻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들의 안내를 받으며 예배실에 들어갔다. 설교가 끝나고 기도 시간이 되었는데 목사님 입에서 ‘세월호’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다. 한국 대형교회에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의외였는데, 뒤따라오는 문장은 이러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침체된 이 나라의 경기를 회복하여주시고.” (그러면 그렇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이나,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나 슬픔에 잠긴 유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건 ‘때문에’ 침체된 경제를 위한 기도라니…. 역시나 하는 마음과, 교회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프고 화가 났다.

얼마 전에는 아빠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면서 요즘 회사에서 겪은 힘든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내 얘기를 들은 아빠는 직장 생활을 하면 원래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난다면서, “그래도 우리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니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회사는 우리의 선교지라는 생각으로 섬기라”라는 말을 하셨다. 그 얘기를 들은 순간 나는 서글프고 답답해졌다. 한국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이, 노동자들이 평생 부당한 대우를 당하면서도 거기에 제대로 항의하거나 개선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평생을 바쳐서 성실한 노동자로, 신실한 교인으로 살아온 아빠가 불쌍했다. 노동법이니 인권이니 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을 ‘이기적인 젊은 세대’로밖에 볼 줄 모르는 교회 어른들의 생각이 그들에겐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그래도 여러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는 교회이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 중에서는 교회가 사회문제에 침묵하거나, 잘못된 권력을 옹호하는 짓에 질려서 전에 다니던 교회를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교회의 잘못된 권력 구조나 비리에 맞서서 항의하거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나섰다가 쫓겨나다시피 교회를 나온 이들도 많다.

우리 교회는 교인들 연령이 젊은 편이기도 하지만, 성별, 연령의 다양성을 존중하고자 노력을 많이 한다. 나와 친구들은 그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청년들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교회 어른들을 본 적이 없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는 요즘 다시 교회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내가 언제까지 이 교회에 다닐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우리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 공동체로 함께 사는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몇 년 전부터 공동주택을 짓고, 근처로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두 번째 공동주택을 지을 때 교회도 마침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몇 번의 간담회 끝에 이사를 결정하였다. 교회가 이사를 가면서 이사나 자취, 결혼을 하게 될 때 교회 근처로 집을 구하여 ‘마을 공동체’에 속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일단 그 지역에 살지 않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에는 속할 수가 없다. 집에서 교회까지 가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려서 작년엔 진지하게 이사를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나와 남편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은 편인데, 교회가 있는 지역은 최근에 땅값이 많이 오른 동네라 훨씬 많은 것을 포기해야 그곳에 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는 낳지 않기로 하였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교회 어른들은 나에게 당연하게 ‘좋은 소식’을 물어보신다. 이전까지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정상가족’의 틀이 깨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교회에는 여전히 ‘정상가족’ 중심적인 부분이 많이 있다.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거나, 여러 이유로 (혹은 별 이유가 없이) 비혼, 비자녀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어떻게 앞으로 교회 공동체에 속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어떤 사람(필명)
일을 하고 있지만 그만두고 싶고,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다. 그냥 그런, 어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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