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호 비하인드 커버스토리] 옥편의 밑줄 긋기

   
▲ 영화 〈옥자〉 포스터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느라 영화 <옥자>(2017)를 보았습니다.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는데 여지껏 보지 않은 건, 포스터에서 감지되던 공포에 대한 예감 탓이었습니다. 동물의 몸 위로 솟은 높다란 공장 굴뚝, 거기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딱 거기서 멈췄지요. 영화를 보며 밤을 지샌 적이 숱하지만, 공포영화는 한 뼘 눈길조차 준 적 없거든요.  

일 때문에 보게 된 건, 영화 <옥자> 말고도 더 있습니다. 《육식의 달레마》(루아크)와 《묻다》(책공장더불어)입니다. <옥자>와 《묻다》에서 본 장면과 사진은 두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잔상이 남아 있습니다. 《육식의 딜레마》는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장보기에 대한 딜레마를 안겨 주었습니다. 

<옥자>는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슈퍼돼지 옥자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온 산골 소녀 미자 사이의 우정을 그려냅니다. 딱 거기까지였다면 애니멀-휴먼 감동 스토리로 끝났을 텐데, 슈퍼돼지 옥자의 ‘저작권자’인 거대 기업 미란도의 글로벌 마케팅 이벤트가 시작되면서 영화는 동화에서 추격 액션으로, 이어서 (다분히 ‘개인적’ 기준으로 보아) 호러로 바뀝니다. 가장 인상적인(‘충격적인’) 장면은 옥자가 미란도의 ‘공장’으로 보내진 뒤부터였는데, 마치 ‘다큐’처럼 다가왔습니다. 컴퓨터그래픽이 지워진 돼지가 옥자 대신 거기 있다면, (아직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영락없이 공장식 대규모 사육장 아니면 도축장이겠다 싶었거든요. 

또 하나 미란도의 경영자 루시를 비롯한 임원들이 옥자와 같은 슈퍼돼지를 부를 때마다 ‘제품’(product)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장면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에게 동물은 포드 시스템(Ford system)에 맞춰 찍어내는 전자제품처럼 규격화된 상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거지요. <옥자>는 CG와 상상력으로 가득 찬 영화지만, 도리어 현실을 자꾸만 생각나게 해 으스스한 영화입니다.   

   
▲ 《육식의 딜레마》 표지


《육식의 딜레마》는 수십 년간 외식산업 전문가로 일했던 지은이가 대규모 공장식 축산 시스템으로 성장해온 육류산업의 어두운 그늘을 비추는 책입니다. “우리가 먹는 소, 닭, 돼지는 어디에서 오는”지, 그로 인해 생겨나는 환경파괴나 노동착취, 항생제 남용 등 인간뿐 아니라 뭇 생명에게 해악이 되는 문제들을 고발하면서, 독자에게 소비자이자 세계 시민으로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을 촉구합니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저렴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으로 인간의 식생활을 책임지겠다는 육류기업들이 도리어 인간의 건강과 사회를 위협하는 역설을 구체적인 자료와 데이터,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보여줍니다. 공장식 축산의 진화(1장), 가축과 질병(3장), 환경비용(4장), 임금·노동자·안전(6장), 식품 사기(8장) 등 몇 장만 골라 읽어도 소비자로서 육류 소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표지를 보는 짧은 시간 동안 의아함이 오싹함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는 책 《묻다》는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이 부제입니다. 부제를 보고 나서 다시 표지 사진으로 눈길을 옮기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진초록 얼룩이 밴 듯 발그스름한 사진은, 살처분 동물 매몰지 지표면과 거기서 피어난 곰팡이로 채워져 있습니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2,654마리의 동물을 파묻은 지 3년이 지나 촬영한 건데도요. 그러니까 이 책은 사진작가인 지은이가 전국의 가축 살처분 매몰지 100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 현장을 사진과 글로 생생하게 담아낸 르포이자 고발서입니다. 여지껏 읽은 가장 묵직하고 충격적인 울림을 남기는 ‘포토 에세이집’일지도 모르겠군요. 

한 편의 영화와 두 권의 책을 통해 경험한 앎은 힘이 되지 않고 고스란히 짐으로 남았습니다. 예기치 못한 딜레마 상황에서 아주 사소한 결단을 하나 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몰려옵니다. 

■ 《육식의 딜레마》에 밑줄 긋기
“항생제를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은 항생제를 남용하면 새로운 병원균이 나타날 수 있다고 1940년대에 경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육류산업은(제약산업도) 그 경고를 무시했다. 소량의 항생제를 먹이면 가축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고 이윤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를 항생제를 조금씩 먹이다 보니 또다른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항생제를 먹인 가축이 더 빨리 자란 것이다! 기적이 일어난 듯했다. … 소는 3년이 아니라 18개월 만에, 돼지는 18-20개월이 아니라 10개월 만에, 닭은 26주가 아니라 7주 만에 다 자랐다.”(22-23쪽, ‘1장_공장식 축산의 진화’에서)

“축산업의 지나친 항생제 사용으로 생기는 걱정스러운 문제가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메티실린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황색포도상구균, 곧 MRSA균에 양성반응을 보이는 사람과 가축, 특히 돼지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 MRSA균은 사람에게서 동물로, 다시 사람으로 병균이 전파된 첫 사례인데, 이는 대중에게 무척 위험한 일이다.”(69쪽, ‘3장_가축과 질병’에서)

   
▲ 《묻다》 표지

■ 《묻다》에 밑줄 긋기
“갈라진 틈 사이로 솜뭉치 같은 곰팡이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농장 주인이 환기도 시키고, 새 흙도 가져다 부었지만 허사였다. 곰팡이는 보란 듯이 모래와 흙더미를 부둥켜안고 억세게 퍼져 나갔다. 저 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혐오와 공포가 동시에 밀려들었다. … 어쩌면 내가 4,799곳의 매몰지 중 최악인 곳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 여전히 비닐에 덮여 있는 매몰지들이 떠올랐다.”(65쪽, ‘100/4799’에서)

“1년 뒤, 내가 처음으로 갔던 매몰지인 비닐하우스에 다시 찾아갔다. 부추를 키우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입구에는 판매할 부추를 담을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작년에 찍은 사진을 꺼내 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그때 드문드문 자라고 있던 풀이, 사실은 풀이 아니라 부추였다는 것을. 부추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가늘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부추는 데치거나 끓여서도 먹지만 생으로도 무쳐서 먹는다. 이렇게 곰팡이 핀 땅에서 자란 부추는 누구의 식탁에 오르게 될까? 불안과 불감 위에서 펼쳐지는 근면한 작물 재배에 분노와 두려움이 일었다.”(120쪽, ‘부메랑’에서)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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