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호 중독과 안정 사이]


불안하다. 요즈음 코로나19 때문만이 아니다. 사실 이전부터 불안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결혼하고, 이사하고, 퇴사하고, 이직했다. 불안을 떨쳐버리고 안정을 찾으려는 결심과 행동이었지만 이내 불안은 다시 시작됐다. 불안과 안정 사이의 괴리는 우리 대화의 주요한 주제였고, 함께 살아온 날 동안 겪은 갈등의 핵심이기도 하다.

30여 년 동안 따로 살며 겪었던 일들을, 3년 동안 함께 살며 배로 겪은 느낌이다. 그 과정에서 안정에 대한 간절한 욕망을 발견했다. 운동가로 살면서 여행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안정은 마치 원래부터 우리 삶의 목표인 것처럼 되어 있었다.

‘중독’에 관해 대화하고 그것을 글로 써보라는 요청을 받고, ‘불안’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이것은 실체가 없는 안정에 매달리는 것도 하나의 중독이니, 벗어나려고 하기보다 그냥 생긴 대로 사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어째 좀 ‘거시기’한 글이다.

불안했던, 불안한, 불안할 것들
제민 : 내가 올해 2월에 이직했잖아. 그때 사실 좀 불안했던 것 같아. 퇴사는 결심했는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부터 시작해서, ‘일을 할 수 있을까?’까지,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
진영 :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있었고, 그동안 계속 일했으니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빨리 일을 구했어?
제민 : 일을 안 한다는 것이 좀 불안했어. 이게 ‘일 중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시다시피, 중독은 스스로 중독이 아니라고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제민 : 일을 안 하는 것, 경제활동을 안 하는 것, 더 솔직히 말해서 돈을 못 버는 상황이 어떻게,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하더라고. 그래서 쉴 생각이 없었고 엄두도 나지 않았어. 다행히 일하고 싶은 곳에서 사람을 뽑길래 얼른 지원했고 일하게 됐지.
진영 :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나?
제민 : 나만 가장이니? 진영이는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지?

저 말은 장항준 감독이 MBC예능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했던 말이다. 결혼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아내 김은희 작가에게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일하기를 망설이자 다그치듯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나만 가장이니? 은희는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지?” 그 장면을 보고 끅끅끅끅 웃었던 제민은, 종종 진영에게 저렇게 말한다. 농담이라면서.

제민 : 농담이고. 뭐 그런 책임감도 당연히 있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뭐랄까? 자본주의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나, 더는 나를 불러주는 곳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청나게 크더라고.
진영 : 하긴 나도 퇴사할 때 그랬던 거 같아.

진영은 제민과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퇴사 선배’다.

진영 :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어진 거 같아서 불안했어. 더 구체적으로는 ‘내 자리’가 없는 상황이 적응이 안 되더라고. 결혼하기 전에는, 집에 내 방이 있고 회사에 내 자리가 있었는데 그게 한꺼번에 다 사라지니까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라서 불안했어. 사회적 위치가 사라진 느낌 같다고나 할까?
제민 : 퇴사 전후에 입장이 완전 정반대네? 당신이 퇴사할 때는 내가 ‘좀 쉬고 천천히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막 그랬었잖아. 그런데 하루인가 이틀밖에 안 쉬고, 바로 그다음부터 도서관으로, 카페로 공부하러 출근했잖아?
진영 : 내 집인데 내 자리가 없어서 집에 있기 싫더라고. 신혼집은 주방, 거실, 침실, 옷방… 이렇게 기능적으로 구분해놓게 되잖아? 혼자 살 때는 ‘내 방’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었는데 말이야. 오히려 밖으로 나가니까 내 자리가 있더라고. 그래서 매일 도서관으로, 아니면 카페로 출근하듯이 나가서 퇴근 시간에 맞춰서 귀가했지.
제민 : 나는 완전 ‘집돌이’여서, 만약에 쉬었으면 완전 집에만 있었을 거야.
진영 : 집돌이가 왜 안 쉬고, 바로 일을 시작했냐고?
제민 : 말했잖아. 불안했다고.

퇴사와 이직, 즉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며,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불안을 자연스레 꺼내놓게 됐다. 이야기는 사슬처럼 돌고 돌아 계속 불안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불안의 요소는 또 있었다. 무궁무진하다고 할까.

   
▲ 이야기를 나누는 제민(좌)과 진영(우). (이하 사진: 진영·제민 제공)

왜 자꾸 불안할까? 안정될 순 없을까?
진영 : 가장 구체적인 불안은 내년 봄 전세 만기야. 보증금을 안 올리지는 않겠지?

안 올리지는 않겠지? 연이은 부정 표현은 강한 긍정적 기대를 전제한 갈망이다.

진영 : 갑자기 우리 연봉의 두세 배를 올려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돼. 지금은 보증금 인상분에 대한 대출도 제한되었기 때문에 갑자기 큰돈을 마련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면 방법이라도 찾아볼 텐데, 임대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할지, 올린다면 얼마나 올릴지에 대해 임차인은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제민 : 그분, 그 선생님은 부자시니까 보증금을 올리지 않으실 거야.
진영 :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제민 : 아니.

잠시 대화가 중단됐다. 진지하게 대화할 때나, 함께 원고를 써야 할 때는, 결코 장난을 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제민 : 미안해.
진영 : 집중해줘.
제민 : 응.

잠시 끊긴 대화가 속개되었다.

제민 : 우리가 작년에 베를린 갔을 때 물어보니까, 독일은 집을 계약하는 건 되게 어렵지만 일단 한 번 계약하면 임차인이 원할 때까지 살 수 있다고 해서 엄청나게 부러워했잖아. 우리나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독일은 집을 임대할 때, 계약 과정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을 면접까지 한다고 한다. 임차인 후보들이 시간대별로 와서 면접을 본다고. 굉장히 빡빡해 보이지만, 계약을 맺으면 그때부터는 임대인이라고 함부로 임차인을 내보낼 수 없고 임차인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거의 영구적인 거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되게 부럽다.

진영 : 2년마다 조건에 맞는 집을 찾고, 계약하고, 이사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건 상당히 소모적인 일이야. 그러다 보니 실제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기간은 1년 정도밖에 안 되는 거고. 이사비용뿐 아니라 감정적, 정신적, 신체적 소모를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사는 안 가고 싶어. 안 갈 수가 없어서 문제지.
제민 : 우리도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또다시 집을 찾아보게 됐잖아. 틈틈이 계속 조건에 맞는 집이 있는지 말이야. 만약에 내 집이 있으면 안정적일까? 그래서 다들 부동산 부동산 그러나?
진영 :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내 집’에 대한 환상이 있지. 불안하니까. 그런데 부동산은 주거 안정의 목적도 있지만, 현대인들에게는 노후 대책의 수단이기도 해. 노년에 사회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니까, 개인이 스스로 준비할 수밖에 없는데, 여러 해 동안 나름의 ‘검증’받은 방법이 부동산인 거지. 주변에 부동산으로 시세 차익을 얻은 사람들 이야기 많이 듣게 되잖아? 그러면 ‘혹시 나도?’라고 생각하게 되고 마치 손에 잡힐 듯한 거지.

   
▲ 몇 해 전 밀월여행으로 간 조지아에서 찍은 사진.

제민 : 대한민국이 부동산 공화국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어? 모두가 다 부동산으로 인한 ‘신분 상승’을 욕망하지만,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거지.
진영 : 나는 부동산을 노후 대책으로 마련하시는 분들과 여러 개의 부동산을 소유하면서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작전세력’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 온갖 편법을 활용해서 부동산을 ‘줍줍’하시는 분들 보면, 부동산을 권력으로 삼아서 안전한 주거환경에 대한 인간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것처럼 여겨지거든.
제민 :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노동임금은 그대로인데 부동산만 터무니없이 상승하는 게 문제야. 집을 구입하는 가격뿐 아니라 전월세 임대차 가격을 포함해서 집값 상승은 당연한 건데, ‘최저시급 1만 원’은 절대 반대! 사람들의 모순이라고 봐.
진영 : 나는 ‘앞으로 뭐해 먹고, 어떻게 살지?’ 하는 문제도 걱정이 돼. 지금은 우리 둘 다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데, 우리가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연금이나, 2만 원씩 부금하고 있는 주택종합청약저축, 특약 없는 실비보험으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제민 : 이건 약간 딴소린데…

딴소리의 자유는 언제나 보장되어야 한다!

제민 : 일할 때도 마찬가지야. 전에 일했던 시민단체나 지금 일하고 있는 녹색당이나, 자기 소유의 건물을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지금도 생각하거든. 단순히 임대료 걱정을 안 하는 것뿐 아니라, 공간을 소유하고 활용할 때 내놓을 수 있는 임팩트가 다르다고 생각해. 코워킹(coworking) 스페이스를 만들어서 다른 단체들과 협업을 하거나, 유튜브를 촬영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공유한다거나, 최소한 강연장을 만들어서 저렴하게 공유해도 운동 전반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진영 : 그거 당신이 여러 번 이야기 했었지, ‘시민자산화’?
제민 : 응. 예전에는 운동 단체가 부동산을 소유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 않아. 그리고 꾸준히 운동력을 발휘하는 단체들을 보면 다 자기 소유의 건물을 갖고 안정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거든. 시민자산화 이야기가 나온 지도 꽤 됐는데 나서는 사람은 없고, 내가 나서기에는 힘이 없어 원통하기 이를 데가 없다. 로또 살까?
진영 : …. (님의 침묵)

일만큼 불안한 것은 집, 사무실, 즉 공간에 대한 불안이다. 입을 것, 먹을 것과 함께 살 곳은 인간 삶에 필수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구할 돈은 어찌어찌하면 벌 수 있겠는데, 살 곳을 마련할 돈을 버는 건 굉장히 어렵다. 내가 일해서 버는 돈보다 살 곳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뛰어오르기 때문에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안정 중독 벗어나려면 어떻게… 안 된다고?
제민 : 큰일 났다!
진영 : 왜? 왜?
제민 : 주제가 중독인데, 불안 얘기만 하고 있잖아! 어떻게! 불안해!
진영 : 아휴, 쫌…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불안했다.

제민 : 여보, 안정되면 불안이 없어질까?
진영 : 여보, 안정이란 거는 없어.
제민 : 뭣이?
진영 : 안정은 개념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체는 없어.
제민 : 그게 무슨 말이야?
진영 : 이사 걱정 없는 내 집, 월세 나오는 내 건물, 상승하는 연봉, 때에 맞는 이직, 유망한 자격증 등을 소유하면 안정된 생활이 보장될까? 물론 일시적이고 제한된 안정 상태를 경험할 수는 있겠지만 완벽하고 항구적인 안정이 가능하겠냐고. 어느 작가의 표현대로 수평선은 개념으로 존재하지 실체는 없는 것처럼, ‘안정’이라는 것도 실체 없는 개념인 거지. 불안을 숙명으로 안고 있는 인간이 봤을 때 저 멀리 안정이라는 게 있는 거 같지만, 실제로 안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쩌면 완벽한 안정은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해.
제민 : 그럼 인간은 왜 살아야 해?
진영 :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 태어날 때부터 ‘나는 이런 이런 소명을 가지고 태어나서 살아야지’라는 다짐이 불가능하잖아. 태어난 게 내 의지와 노력이 아니니까 그냥 사는 거지.
제민 : 너무 염세주의적인 대답 아니야?
진영 : 글쎄. 나는 이게 사실이라는 거야. 존재하지 않는 안정을 추구하면서,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고 좋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 일종의 ‘안정 중독’이랄까.

어라? 글 제목 나왔다. 안정 중독!

진영 : 불안은 인간의 속성이야. 모든 인간은 살아있는 한 불안하잖아. 그러니까 불안을 견디면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면서 사는 것 같아. 마치 서핑보드에 올랐을 때 흔들흔들 거리다가 아주 잠깐 균형을 잡고 파도를 타잖아. 안정이라고 느끼는 게 그런 순간 아닐까? 그러다가 균형을 잃으면 불안이 견딜 수 없이 크게 다가오고, 또 그러면 불안을 삭제하려고 발버둥 치게 되고. 알긴 알겠는데 벗어나기는 어려운 함정 같아.
제민 : 그 말에 동의가 된다. 그럼 실체 없는 안정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태어났으니까 그냥 살아가는 거라면, 생긴 대로, 생겨난 대로 살면 좋겠다.
진영 : 예전에는 내가 태어난 목적이 반드시 있고, 그래서 모든 사건마다 의미가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제민 : 목적이 이끄는 삶? 40일짜리 그거?
진영 : 그런데 설명이 안 되는 사건을 당하면서 ‘의미 과잉’에서 한발 물러서게 된 것 같아. 지금은 살아있으니까 살아가는 느낌이야. 상상해보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션을 주시고 우리를 ‘미션 컴플릿트’(소명 완수)라는 대답만 가능한 존재로 만드셨을까? 나는 아니라고 봐. 실체 없는 불안과 안정의 변주를 견디면서, 그저 나도 모르게 태어난 삶을 살아내는 거, 그랬으면 좋겠어.

안정 중독. 얻어걸린 듯해서 천만다행인 이 말을 글의 제목에 넣어야겠다고 서로 얘기했다. 글의 맺음은 어떻게 할까. 자기도 모르게 안정을 추구하며, 실체 없는 안정을 찾아 자기도 모르는 곳으로 내달리는 것에 경종을 울리고 그 중독적 행태에서 벗어나자고 마구 호소를 해볼까? 대개의 글은 그렇게 전개되고 맺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생각하고, 우리를 생각하면, 그렇게 말할 자신이 솔직히 없다. 그래서 우리 둘의 이야기를 풀어쓴 이 글은 그렇게 끝맺지 않기로 한다. 그냥 우리부터 불안과 안정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그리고 생겨난 대로 살기로 다짐해본다. 생긴 대로 살아도 불안을 견딜 수 있고, 덜 불안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을 갖기로 해본다. 성서는 사랑과 함께, 믿음과 소망이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거라고 했으니까.

 

 


진영·제민
결혼주례 선생님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 기층활동가로 살다가 만나서 결혼했다. 얼마 전 결혼 1,000일을 통과했다. 진영은 낮에는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밤에는 집 한 켠에 마련한 작업실 ‘자연스럽게’를 운영한다. 제민은 낮에는 정치를 하고, 밤에는 정치학을 공부한다. 둘 다 몸과 먹는 것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을 초대해 얼굴을 보며 밥 먹는 시간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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