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호 무브먼트 투게더 2] 제주교도소에서 온 한 평화 활동가의 초대장

   
▲ ⓒ복음과상황

안녕하십니까?

한라산 중턱의 교도소에서 인사드립니다.

지난 3월 7일 기도를 드리기 위해 해군기지 안에 있는 구럼비 바위에 들어간 일로 다시 구속되었습니다. 3월 7일은 해군이 군사기지를 세우기 위해서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기 시작한 지 8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세 차례 방문 신청을 하였으나 거절당했고, 저는 결국 기지 철조망을 훼손한 후 기지 안의 일부 보존된 구럼비 바위에 가서 예전에 늘 그랬듯 제주도가 군사기지 없는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도록, 강정마을 공동체가 진실 안에서 화해하고 회복되도록 기도드렸습니다.

저는 군대와 무기로는 평화를 만들 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칼로 흥하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치신 예수님도 같은 입장일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일로 인해서 4월 3일 군형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습니다. 이날은 3만 명이 넘는 무고한 제주도 주민들이 우리 군인과 경찰에 의해 희생당한 비극적인 역사를 추념하는 날이었고, 음력으로는 제 생일이었습니다. 밖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환한 봄날이었습니다. 제 아내가 불구속기소를 간절히 호소하였지만, 그날 저는 면회조차 거부된 채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생애 다섯 번째였고, 모두 제주 해군기지 반대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옥중에서 매일 아침 산상수훈을 묵상합니다. 말씀을 읽으며 음울한 감옥에서도 빛을 발하는 글자들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했으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 나라가 둘로 나뉘어 70년이 넘도록 가족이 서로 왕래할 수 없는 나라. 헌법에는 한반도 전체가 우리나라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갈 수도 없고 가서도 안 되는 북한을 두고 국민들이 진영으로 나뉘어 매일 다투는 나라. 자기 나라에 외국 군대가 들어와 주민들을 내쫓고 천만 평이 넘는 땅을 차지한 채 매년 수조 원의 주둔비를 강요받는 나라에서 안녕히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이런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습니다. 모순으로 가득한 분단된 나라의 이 뒤틀린 현실 속에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 채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수 없을 겁니다.

거짓 평화의 최면에서 깨어나는 여행
저는 여러분을 이런 거짓 평화의 최면에서 깨어나는 여행으로 초대합니다. 제주도로 오십시오! 흔하게 찾는 올레길로 초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춰진 어두운 역사의 흔적 속에서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며 우리나라 탄생의 비밀을 추적하고 우리의 국민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행입니다.

먼저 봉개동 4·3 평화기념관과 희생자 묘역을 방문해주십시오. 여러분은 이곳에서 해방 이후 대한민국 출범의 첫 단추가 어떻게, 왜 잘못 끼워졌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발생한 여순반란사건과 지리산 빨치산 투쟁, 6·25 동란이 연속적으로 잘못 끼워진 역사의 단추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기념관의 첫 관문에 누워있는 백비는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던집니다. 그 비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여러분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써야 합니다.

제주도의 남서쪽 모슬포의 알뜨르 비행장도 꼭 들러주십시오. 이 비행장은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교두보였습니다. 제주도는 전쟁을 위한 항공모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만일 알뜨르라는 중간 기착지가 없었다면 일본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은 중국을 공습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제주도의 군사기지는 30만 명의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킨 난징대학살로 이어진 일본의 대중국 침략 전쟁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은 텅 비어버린 옛 제로센 가미카제 전투기들의 격납고 안에서, 전쟁으로 희생당한 무고한 시민들의 소리 없는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기서 몇 발자국만 옮기면 낮은 언덕이 있습니다. 섯알오름입니다. 그 아래 계곡에서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들이 칠월칠석날 밤 들판에 뚝뚝 떨어뜨린 고무신들을 가슴에 품고, 초라한 만벵디 공동묘지의 부서진 비석의 비문을 다시 모자이크 모으듯 모아 그 뜻을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비문이 유족들만의 비문이 아니라 분단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우리 국민 모두의 비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뜨르 벌판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사계의 해안도로를 따라 동편으로 30분 정도 달리다 보면, 한라산이 보듬고 있는 양지바른 바닷가마을 강정에 이르게 됩니다.

역사의 역설, 강정마을
강정마을에는 맑고 깨끗한 시내 둘이 흐릅니다. 큰 내 강정천이 샘솟는 냇길이소는 은밀하게 감추어진 비경입니다. 냇길이소 곁에는 제주도민들의 민속신앙의 뿌리인 당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육신과 영혼을 위한 두 개의 샘이 마을 공동체를 만든 것입니다. 이 원형을 극적으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강정천이 바다와 맞닿은 곳에서 구럼비 바위는 시작됩니다. 그 길이는 1km가 넘고, 폭은 300m가 넘는 거대한 너럭바위입니다. 저는 그 바위를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 앞에는 범섬, 문섬, 섶섬이 푸른 바다에 돛배처럼 떠 있고 뒤로는 눈 덮인 한라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답고 웅장한 바위였습니다. 바위 위에는 삼다수라고 속칭하는 맑고 깨끗한 용천수가 샘솟았고, 여기저기에 선녀들이 목욕을 했을 법한 탕들이 고여 있습니다.

저는 바다 위 평상을 깔아놓은 듯한 그 거대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 백 마리가 넘는 돌고래 떼가 하늘로 뛰어오르며 자유롭게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장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돌고래들을 볼 때마다, 길조를 만난 듯한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저에게 구럼비는 하늘로 향한 아름답고 거룩한 제단으로 보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절대보존구역으로 보호받는 이 바위를 2012년 3월 7일 폭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날 구럼비와 함께 피폭되리라는 마음으로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제가 바위에 이르기 전 폭파는 시작되었고 그 파장이 물속에서 제 가슴에 울려왔습니다. 바윗돌이 가슴을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군대는 구럼비를 폭파하고 포클레인으로 남은 바위를 부수어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은 후 해군기지를 세웠습니다. 저는 이 미친 짓을 막기 위해 투쟁하였고, 검찰에 의해 ‘정의와 평화를 빙자하여 국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질적인 자’라는 이름으로 기소당하여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강정의 제주 해군기지는 우리 국민이 지난 역사를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역사의 역설을 가르쳐줍니다. 70년 전 알뜨르 군사기지의 폐허 위에서 오늘날 새로이 건설된 강정의 해군기지로 인해 앞으로 흘리게 될 무고한 시민들의 피 냄새를 맡지 못한 겁니다. 그들의 절규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듣지 못하는 예언자요, 보지 못하는 선견자들과 같을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역사를 더듬어 넘어가길
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 중이던 미·소 간에 해빙 분위기가 조성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주도에 ‘봄’이 찾아왔었습니다. 당시 해외에 흩어져 있던 제주도 출신의 학자들과 현인들이 제주도에 모여 미래를 위한 지혜로운 이정표들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는 제주도가 군사기지 없는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제주도가 한반도의 부속도서라는 주변부 의식에서 벗어나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심지라는 주체적인 의식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그렇기 때문에 제주도에 군사기지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과 대화의 장을 만들라고 권고했습니다. 네 번째는 제주도민들이 스스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섯 번째는 제주도민들이 평화를 통해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찾으라는 충고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주도는 이 현자들의 지혜로운 지침을 잊은 채 30년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소중한 이정표가 비단 제주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세계 최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도는 한반도호라는 더 큰 운명 공동체를 이끄는 예인선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는 그저 입에 발린 빈 구호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역사 해석을 위한 핵심코드이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예언자적 전망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제주도 평화 기행으로 초대하는 이유는 이 아름답고 슬픈 제주도에서 우리나라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더듬어가며 우리 시대가 넘어서지 못하는 지평을 넘어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펼쳐 나가야 할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함께 꿈꾸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비행기 안에서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을 듣는 순간, 여러분이 탄 비행기의 바퀴는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4·3의 시신들 위를 구르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밟고 넘어올 이 이름 없는 주검들이 다시는 전쟁도 폭력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고귀한 희생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지금은 허울뿐인 ‘세계 평화의 섬’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제주 평화 순례에 초대합니다.

“ᄒᆞᆫ저옵서예!”
 

2020. 6. 10.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

 

 

※ 2020 제주평화순례 ‘평화야! 제주 가자!’

■ 일시: 2020. 7. 20(월) ~ 7. 23(목) 3박 4일
■ 장소: 제주 강정마을, 비자림로 등
■ 주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청년아카데미, 성서광주, 성서대구, 성서대전, 성서한국, 새맘교회, 새벽이슬, 생명평화연대, 평화누리, 한빛누리, 청어람ARMC
■ 대상: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소망하는 활동가, 목회자(선착순 50명)
■ 참가비: 15만 원(항공료 및 집결을 위한 교통비 별도)
■ 후원: 복음과상황
■ 참가신청: http://bitly.kr/FuMjZI68ra 등록 후 입금계좌로 참가비 납입.
■ 입금계좌: 국민은행 762301-04-143907(예금주: 새벽이슬)
■ 문의: 02-734-0208(성서한국)

* 7월 20일(월) 오후 4시까지 제주 강정마을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타에 도착하셔야 합니다


 

송강호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 박사 학위(Th.D.)를 받았다. 사단법인 개척자들 대표, 분쟁지역 파견 선교사 담당 간사 등을 섬겼으며, 현재 평화활동가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강정 평화 서신》(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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