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호 사람과 상황] 평화운동가로 살며, 기도하며, 싸우는 정선녀 강정마을 공소회장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공소회장님이 나서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

지난 7월 말 제주평화순례 기간 중 강정마을에서 어려운 상황이 생기자 현지 활동가가 한 말이다. 당시 ‘해군기지 반대’ 등 구호가 적힌 깃발을 “새것으로 바꾸지 말라”면서 정작 “걸려 있는 깃발은 그대로 두라”고 한 주민의 말뜻은 무엇이었을까. 이 말은 국책 사업으로 해군기지 건설이 결정된 지 13년간 여러 아픔을 겪었을 이곳 주민들의 복잡한 마음을 방증하는 것 같았다. 마을 주민이 막아서는 일을 ‘공소회장님’이 나서면 어떻게든 될 거라니, ‘대체 어떤 분이기에?’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선녀(세례명 잔 다르크·62세·제주교구 서귀복자본당) 공소회장은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다. 원래는 제주 동쪽에 위치한 섬 우도의 공소회장으로 있다가 2012년 강정마을에 공소(신부나 수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규모의 가톨릭 예배소 또는 구역)가 설립될 때 이곳에 왔다. 그때부터 공소 신자들뿐 아니라 활동가, 주민들과 함께 투쟁하며 평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4,800일이 넘는 오랜 시간 이어지는 투쟁의 힘듦을 앞서 얘기할 법도 한데, 그는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여기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곳”이며 “이곳은 복음을 살아내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오는 곳”이라 말했다.

정선녀 공소회장은 제주4·3을 직접 겪은 산증인이기도 하다. 당시 그의 아버지가 총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을 고스란히 느꼈다. 제주에서 태어나 살면서 두 번이나 국가권력에 의해 주민들이 희생되는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일들을 생생하게 회상하며 두 경험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했다. 4·3으로 인해 말 못하고 산속에서 죽어간 이들의 영혼이 강정마을 현장에도 함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었다.

신앙인인 그가 제주에서, 강정에서 공소회장으로 마주한 상황은 무엇인지 자세히 듣고자 인터뷰를 청했다. 인터뷰는 그의 자택에서 진행했다.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강정마을의 공소회장을 맡고 있다. 공소는 천주교 작은 공동체를 뜻한다. 얼마 전까지는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의 센터장이기도 했다. 센터는 강정마을에 들어선 해군기지와 군사주의적인 정신에 반대하는 방문자들과 연대하고 환대하는 공간이다. 연대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잠을 자고 가기도 하고, 강정마을이 투쟁한 역사를 살펴볼 수도 있다.

센터장이었을 때와 현재 하는 일이 많이 다른가.
내가 센터장일 때는 ‘생명’과 ‘평화’가 비전이었다. 군사문화는 반생명적이다. 그동안 군사문화와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학살되고 희생되었는지 일깨우고, 호소하고, 설득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바다에 군 기지가 들어서자 바다가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은 비록 마을 곳곳이 군사벨트로 지정되어 공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계속 땅의 흙과 접촉하면서 생명을 키워내는 일을 한다. 그게 일과 중 중요한 일이다. 아침에 백배 기도를 올리고 난 다음 텃밭을 정리하며 농사일을 한다. 또, 미사를 드리고 인간띠잇기를 하고 다시 오후에는 농사를 짓는다.

"지금 남아있는 그룹, 활동가 중에는 개신교인들이 많다. 아마 마을 주민들은 연대하는 사람들이나 활동가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저들은 어떻게 먹고사나, 뭐 때문에 여기 와 있나’ 궁금해할 것 같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확신이 있지 않나. 생명과 평화는 결코 무기로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확신 말이다. 그래서 몇몇 주민들은 우리를 굉장히 깍듯하게 대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일을 저들이 대신 싸워주니까 욕하면 안 된다’면서 우리를 변호해주는 주민들도 있다." (이하 정선녀 공소회장) ⓒ복음과상황 정민호
"지금 남아있는 그룹, 활동가 중에는 개신교인들이 많다. 아마 마을 주민들은 연대하는 사람들이나 활동가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저들은 어떻게 먹고사나, 뭐 때문에 여기 와 있나’ 궁금해할 것 같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확신이 있지 않나. 생명과 평화는 결코 무기로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확신 말이다. 그래서 몇몇 주민들은 우리를 굉장히 깍듯하게 대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일을 저들이 대신 싸워주니까 욕하면 안 된다’면서 우리를 변호해주는 주민들도 있다." (이하 정선녀 공소회장) ⓒ복음과상황 정민호

해군기지가 들어선 후, 마을은 어떤 상황인가.
해군기지가 들어오기 전엔 물때가 되면 해녀들이 바다로 나갔다. 바다로 나가면 바구니가 넘칠 정도로 해산물을 주워올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은 해녀들이 한 달에 두세 번씩 바다 작업을 한다. 현재 강정 바다에는 군사기지가 들어선 이후로 해초가 싹 사라졌다. 해녀들은 원래 자신만만하고 기가 센 사람들인데 그 당당하던 사람들이 기가 죽었다. 그게 너무 슬프다. 해녀들이 예전에는 ‘우리가 나라를 위해 바다를 내놨는데 너희들은 쓸데없이 데모나 한다’고 욕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다에 물건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해군기지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어지지도 않고 계속 있으니까 불편해진 것이다. 어부들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업을 그만두었다. 어촌계에 가입한 선주들이 몇 없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평생 농사를 지은 사람들은 땅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만, 외지에서 생활하는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생활비, 교육비를 구하기 위해 쉽게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게 부모들의 땅이다. 그래서 땅을 팔아버린 사람이 많다.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진 것인가?
먹고살기 어려운 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서로가 불편해진 것이다. 해군기지 찬성과 반대가 가족 간, 친척 간의 문제가 되기도 하고, 해녀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마을의 모든 공동체가 깨졌다. 정말 비극이다.

그런 상황을 들으니, 공소를 통해 신앙 공동체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마을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마을의 이런 갈등이 시작될 때부터 천주교와 개신교는 맹렬하게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지금 남아있는 그룹, 활동가 중에는 개신교인들이 많다. 아마 마을 주민들은 연대하는 사람들이나 활동가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저들은 어떻게 먹고사나, 뭐 때문에 여기 와 있나’ 궁금해할 것 같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확신이 있지 않나. 생명과 평화는 결코 무기로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확신 말이다. 그래서 몇몇 주민들은 우리를 굉장히 깍듯하게 대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일을 저들이 대신 싸워주니까 욕하면 안 된다’면서 우리를 변호해주는 주민들도 있다.

"2020년 1월 정기총회에서 ‘향약’이 만들어졌는데 ‘2007년 이전에 이곳을 본적지로 둔 사람만 마을 주민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2007년 이후에 강정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나, 여기 거주하면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주민 자격을 박탈하는 일이었다. 그날 회의가 끝난 뒤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제주 사람인 것이 부끄럽다고. 후손들이 보면 여러분들이 지금 선택한 결정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2020년 1월 정기총회에서 ‘향약’이 만들어졌는데 ‘2007년 이전에 이곳을 본적지로 둔 사람만 마을 주민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2007년 이후에 강정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나, 여기 거주하면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주민 자격을 박탈하는 일이었다. 그날 회의가 끝난 뒤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제주 사람인 것이 부끄럽다고. 후손들이 보면 여러분들이 지금 선택한 결정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아까 깃발을 교체하는 중에 어떤 주민께서 당신 집 앞마당에 있는 깃발은 교체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있는 건 둬도 되는데 새로 교체하지는 말라고. 그때 활동가 한 명이 ‘공소회장님이 나서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하던데….
깃발을 교체하지 말라고 한 주민이 누구인지 안다. 내가 나중에 얘기하면 된다. 그 사람은 집 앞 농로가 도로로 바뀌면서 굉장히 많이 시달렸다. 집 앞 도로에 차들이 들어서고 세워져 있으면 가끔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내게 연락을 한다.

왜 굳이 공소회장님에게 연락을 하는 건가.
내가 이웃이니까 당연히 내게 연락이 온다. 우리는 싸울 일이 있어도 합리적으로 싸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다.

"그렇게 1조 원 이상이 투입된 해군기지 안에 있는 크루즈터미널엔 크루즈선이 딱 두 번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도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머물렀는데, 강정마을에는 아무런 경제적 이익이 되지 않았다. 관리하는 데만 해도 몇십 억 원이 들어가는 크루즈터미널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크루즈선이 들어올지도 알 수 없는 곳에 또 큰돈을 들여 수리를 하고 있다. 그 돈이 다 낭비되고 있다. 그밖에도 정부 지원 사업이 현금이 아니라 철근 등 자재로 들어오는데, 그것도 관리가 소홀하다. 하천 정비작업에 들어가는 철근들이 썩어가고 있고 공사도 중단되었다. " ⓒ복음과상황 정민호
"그렇게 1조 원 이상이 투입된 해군기지 안에 있는 크루즈터미널엔 크루즈선이 딱 두 번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도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머물렀는데, 강정마을에는 아무런 경제적 이익이 되지 않았다. 관리하는 데만 해도 몇십 억 원이 들어가는 크루즈터미널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크루즈선이 들어올지도 알 수 없는 곳에 또 큰돈을 들여 수리를 하고 있다. 그 돈이 다 낭비되고 있다. 그밖에도 정부 지원 사업이 현금이 아니라 철근 등 자재로 들어오는데, 그것도 관리가 소홀하다. 하천 정비작업에 들어가는 철근들이 썩어가고 있고 공사도 중단되었다. " ⓒ복음과상황 정민호

최근에도 마을 주민들 사이에 어려움이 있나.
4년 전, 마을의 새로운 회장단이 선출되었다. 2020년 1월 정기총회에서 ‘향약’이 만들어졌는데 ‘2007년 이전에 이곳을 본적지로 둔 사람만 마을 주민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2007년 이후에 강정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나, 여기 거주하면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주민 자격을 박탈하는 일이었다. 그날 회의가 끝난 뒤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제주 사람인 것이 부끄럽다고. 후손들이 보면 여러분들이 지금 선택한 결정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기준을 2007년 전후로 구분하는 향약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왜 이런 향약을 만들었냐고 하니까, 마을에 들어온 수익금을 나누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런 거 하나도 바라지 않는다, 수익금 안 줘도 좋으니까 마을 주민으로만 인정하라고.

어떤 수익금인가.
해군기지 보상금으로 나오는 돈이다.

마을 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새로운 마을 회장단을 선출할 때 투표를 못 했다. 주민 자격이 없으니까 마을 안건에 대해서도 제안이나 의견 표명 등으로 참여할 수 없다. 여기 거주하고 있는 활동가 40명이 제외되니까 새 회장단으로 해군기지를 수용하는 입장인 사람들이 운영위원이 되고 감사가 되었다. 투표가 있는 날, 본적지는 강정이지만 이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와서 투표하기도 했다. 새로운 회장단이 세워지면서 마을회관 4층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던 활동가들이 다 쫓겨났다.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어이없는 일들을 많이 겪었을 것 같다.
그렇다. 그렇게 1조 원 이상이 투입된 해군기지 안에 있는 크루즈터미널엔 크루즈선이 딱 두 번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도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머물렀는데, 강정마을에는 아무런 경제적 이익이 되지 않았다. 관리하는 데만 해도 몇십 억 원이 들어가는 크루즈터미널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크루즈선이 들어올지도 알 수 없는 곳에 또 큰돈을 들여 수리를 하고 있다. 그 돈이 다 낭비되고 있다. 그밖에도 정부 지원 사업이 현금이 아니라 철근 등 자재로 들어오는데, 그것도 관리가 소홀하다. 하천 정비작업에 들어가는 철근들이 썩어가고 있고 공사도 중단되었다. 해군기지와 크루즈터미널이 들어오는 것은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사업인데도 그 과정은 효율적이지도, 전문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마을 전체의 비전과 마을 공동체, 해안 생태계 등 관련 전문가가 나서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

그런 문제들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일단 마을회장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처음부터 이곳이 절대 보존지역에서 해제되고, 불법적으로 이뤄진 이 모든 행정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라고 했다.

애초 정부가 시작한 일이 아닌가.
맞다. 정부가 져야 할 책임도 있다. 2018년에는 해군기지에서 국제 관함식이 열렸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집회신고를 하고 정문 앞에서 매일 시위를 했다. 들어올 땐 헬리콥터로 오더니 나갈 때는 주민들의 집회 장소를 피해갔다. 나는 차를 타고 대통령이 지나갈 길을 찾아다녔는데 검은색 차가 따라오더라. 교차로에서 만나보니 내가 아는 경찰이었다. 왜 나를 따라오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나를 담당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렇게 다니다가 대통령이 지나가는 길을 직감적으로 찾았다.

그래서 대통령을 만났나?
만날 수 없게 경찰들이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버렸다.

대통령을 만나면 뭐라고 하려 했나?
진상규명, 진상규명, 진상규명. 강정은 태풍경보가 아니라 주의보만 내려도 배들이 다 피하는 곳이다. 지리적으로 태풍이 오는 입구라 그렇다. 그래서 방송사 기상캐스터들이 태풍이 올 때마다 여기 와서 바다를 보면서 중계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 해군기지와 크루즈터미널이 들어선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결정이다. 환경영향 평가도 잘못되었다. 강정 바다는 남방큰돌고래와 맹꽁이, 붉은발말똥게, 제주새뱅이 등 정부 지정 보호 종들이 살던 곳이었다. 군기지 공사 이후 조류 변화로 그들의 터전이 위협받고 연산호 군락은 대부분 폐사했다. 잘못된 일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강정은 태풍경보가 아니라 주의보만 내려도 배들이 다 피하는 곳이다. 지리적으로 태풍이 오는 입구라 그렇다. 그래서 방송사 기상캐스터들이 태풍이 올 때마다 여기 와서 바다를 보면서 중계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 해군기지와 크루즈터미널이 들어선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결정이다. 환경영향 평가도 잘못되었다. 강정 바다는 남방큰돌고래와 맹꽁이, 붉은발말똥게, 제주새뱅이 등 정부 지정 보호 종들이 살던 곳이었다. 군기지 공사 이후 조류 변화로 그들의 터전이 위협받고 연산호 군락은 대부분 폐사했다. 잘못된 일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강정은 태풍경보가 아니라 주의보만 내려도 배들이 다 피하는 곳이다. 지리적으로 태풍이 오는 입구라 그렇다. 그래서 방송사 기상캐스터들이 태풍이 올 때마다 여기 와서 바다를 보면서 중계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 해군기지와 크루즈터미널이 들어선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결정이다. 환경영향 평가도 잘못되었다. 강정 바다는 남방큰돌고래와 맹꽁이, 붉은발말똥게, 제주새뱅이 등 정부 지정 보호 종들이 살던 곳이었다. 군기지 공사 이후 조류 변화로 그들의 터전이 위협받고 연산호 군락은 대부분 폐사했다. 잘못된 일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그런데도 제주평화순례 간담회에서 ‘이곳이 예수님 말씀으로 살아가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렇다. 난 신부님 수녀님이 계시지 않는 공소, 이 작은 교회 안에서 산 지 30년이 넘었다. 강정마을에 온 지 8년이 되었는데 예수님 말씀이 살아나고, 가슴이 뛰는 걸 느낀다. 이렇게 복음의 기쁨을 남에게 나눌 기회가 무한정 주어지는 곳이 흔치 않다. 정의에 대해서도 이렇게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이 없다. 이 현장에는 선과 악이 확실하다. 타협이 있을 수 없는 곳이다. 예수님 말씀은 이곳에서 그날그날 복된 소리 그 자체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나처럼 기쁘게 듣는 사람, 가슴이 뛰는 소리로 듣는 사람들이 있다.

공소회장님은 제주4·3을 직접 겪으셨다고 들었다. 4·3의 기억이 강정 평화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많은 영향이 아니라 영향 그 자체이다. 나는 운이 좋아서 교회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미군정이 들어서 있을 때부터 우리 제주가 겪은 일들이 너무 비인권적이라는 게 명명백백하게 보였다. 우리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얘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50년 동안 숨도 못 쉬고 살았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70년 동안 민주주의의 삶을 살아간 한국의 많은 민주열사들 덕분이라고 본다. 예전에 백배 기도나 미사, 인간띠잇기를 할 때 전쟁 같았을 때가 있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4·3 때 말 못하고 산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그 영혼들이 지금 우리와 같이 있지 않을까? 민주열사들이나 4·3 피해자들이 오늘날 이 자리에 살아 돌아온다면 우리와 백번 맞절을 하고 인간띠잇기를 하고 그럴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빨갱이로 내몰아 죽인 너희가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행복해할 것 같다. 제주도의 굿 문화는 제주4·3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억울한 죽음을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고 속으로 곪아터질 때 굿판의 무당을 통해 그걸 꺼내놓고 풀어놓은 것이다.

"생명력이 온전히 살아 있는 생태에 완전한 평화가 있다. 온전한 인간의 권리가 살아 있고, 각자의 의견을 사람답게 들어주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곳이 완전한 평화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 생태가 박살나고 있다. 생태가 박살나면 사람이 살 수 없다. 생물이 살지 못하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가 살지 못하면 인간의 권리는 누가 주장하나. 내 주변의 생태와 삶, 유기물들이 서로 공생하고 공존하는 유기순환적인 삶 속에 내가 한 부분이라는 걸 인정하고 살 때 평화가 실현된다. 다른 인간의 권리를 무시하고 나의 권리만 찾을 때 평화는 깨진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생명력이 온전히 살아 있는 생태에 완전한 평화가 있다. 온전한 인간의 권리가 살아 있고, 각자의 의견을 사람답게 들어주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곳이 완전한 평화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 생태가 박살나고 있다. 생태가 박살나면 사람이 살 수 없다. 생물이 살지 못하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가 살지 못하면 인간의 권리는 누가 주장하나. 내 주변의 생태와 삶, 유기물들이 서로 공생하고 공존하는 유기순환적인 삶 속에 내가 한 부분이라는 걸 인정하고 살 때 평화가 실현된다. 다른 인간의 권리를 무시하고 나의 권리만 찾을 때 평화는 깨진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기지 반대운동을 오래하면서 지치지 않는가.
욕심내서 일할 때는 지친다. 싸우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 스스로 조화롭지 않을 때는 싸움이 굉장히 거칠어진다. 내가 싸우는 대상이 군대에 속한 개인이 아니다. 이걸 확실히 해야 한다. 우리는 군인들에게 험한 표현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존중받아야 하며, 사랑받는 누군가의 가족이다. 난 우리의 행동이 이곳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에게도 유익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공소회장님의 에너지원은 무엇인가.
하느님이다. 그리고 나의 모델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지금 오면 1순위로 이곳에 올 것 같다. 여기만큼 형편 없는 곳이 없다.

공소회장님이 생각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평화는 어떤 ‘생명력이 있는 상황’이다. 생명력이 온전히 살아 있는 생태에 완전한 평화가 있다. 온전한 인간의 권리가 살아 있고, 각자의 의견을 사람답게 들어주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곳이 완전한 평화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 생태가 박살나고 있다. 생태가 박살나면 사람이 살 수 없다. 생물이 살지 못하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가 살지 못하면 인간의 권리는 누가 주장하나. 내 주변의 생태와 삶, 유기물들이 서로 공생하고 공존하는 유기순환적인 삶 속에 내가 한 부분이라는 걸 인정하고 살 때 평화가 실현된다. 다른 인간의 권리를 무시하고 나의 권리만 찾을 때 평화는 깨진다.

2년마다 찾아오는 제주평화순례나 여기서 함께 거주하는 활동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고마울 따름이다. 평화순례팀은 조용히 와서 전혀 부담주지 않고 우리와 같이 연대하고, 늘 몸을 사리지 않고, 개개인들이 모두 좋은 에너지를 가진 분들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1년마다 하면 좋겠다. 여기 있는 활동가들은 진짜 보물이다. 각자 자기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면서도, 서로 다른 사람의 역할을 잘 배려해준다. 지금은 ‘진국’들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의지해서, 그가 원하는 곳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라면 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무리에 어떤 자세로 접근할지 생각해보는 거다. 용기를 좀 가지면 좋겠다. 예수님을 존중한다면 그분이 원하시는 행동이 무엇일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이 세상이 좀 더 가치 있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지 않을까. 불편함을 감수하고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내 기준을 내려놓고 예수님 기준으로 전환하는 거다. 그래서 예수님 기준으로 매 순간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후 위기로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하지 않나. 예수님은 당신 살아생전 늘 깨어 살라고 했다. 우리는 깨고 싶을 때만 깨어있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충실해야 한다. 내 식대로 말고 예수님 식대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내 기준을 내려놓고 예수님 기준으로 전환하는 거다. 그래서 예수님 기준으로 매 순간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후 위기로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하지 않나. 예수님은 당신 살아생전 늘 깨어 살라고 했다. 우리는 깨고 싶을 때만 깨어있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충실해야 한다. 내 식대로 말고 예수님 식대로." ⓒ복음과상황 정민호
"불편함을 감수하고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내 기준을 내려놓고 예수님 기준으로 전환하는 거다. 그래서 예수님 기준으로 매 순간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후 위기로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하지 않나. 예수님은 당신 살아생전 늘 깨어 살라고 했다. 우리는 깨고 싶을 때만 깨어있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충실해야 한다. 내 식대로 말고 예수님 식대로." ⓒ복음과상황 정민호

 

진행 정민호·김다혜 기자
정리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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