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호 커버스토리]
긴 보라색 머리, 스쿠터를 타고 어디서든 등장하는 사람. 강정에서 지킴이로 활동하는 ‘반디’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지켜보니 그녀는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친구들(함께 활동하는 지킴이들을 그녀는 ‘친구들’이라고 부른다)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냐고 묻자, 그건 그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민망해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중간에서 이어주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지만 그건 ‘교회생활’ 오래 하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냐고 반문했다. 평화순례 팀을 안내하며 여러 공간을 소개한 그녀는 팀과 동행하지 않을 때도 팀이 방문하는 곳곳마다 자리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렵사리 인터뷰를 잡았지만,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였다.
인터뷰는 평화순례 3일차, 순례 팀이 묵었던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 옥상에서 진행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얄궂게도 평화센터 건물을 부수는 포클레인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였다. 요란한 소음 사이, 옥상 위 시멘트 바닥에 함께 주저앉아 (결과적으론 즉석 아닌) 즉석 인터뷰를 시작했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지내셨어요?
2013년에 왔어요. 처음엔 ‘제주 한 달 살이’를 할까 하고 온 건데, 지금까지 있는 중이죠. 구럼비 발파 때는 트위터로 소식을 접하고 온 친구들이 다수인데, 여기 지킴이들 대부분 여행 왔던 사람들이에요. 제 경우는 지인이 강정 가면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주는 곳이 있다고 해서 왔고요.(웃음) 서울에서는 나들목교회(현재는 나들목교회네트워크 아래 다섯 교회로 분립-편집자)를 다녔는데 강정 상황을 알고 있었어요. 아, 저기 포클레인이 부수고 있는 건물 보여요? 저기가 2013년도에 지어진 강정평화센터인데, 지킴이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머물던 공간이었어요. 농협에 팔리면서 지금은 강정평화센터가 철거되고 있지만요.
그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뇨. 일단 7월 한 달 정도 머물렀어요. 그런데 이곳 친구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함께 시간을 좀 보내고 싶었어요. 원래는 서울 올라와서 하던 일 정리하고 바로 오려고 했는데, 교회에서 고3 대상으로 교사를 하고 있어서 걔들 수능 끝나고 나서 다시 왔죠.(웃음)
이곳 지킴이들의 어떤 모습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셨어요?
어떻게 신념을 갖고 그걸 유지할까 그게 궁금했어요. 전 어떻게 보면 종교를 갖고 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힘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이 친구들은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 걸까? 자기 자신이 그만큼 강한가? 알고 싶었죠.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이라 같이 했던 시간이 좋았어요. 행운이었다고 자주 생각해요.
함께 지내면서 지켜보니 이들의 동력이 무엇이던가요?
신념이요. 사람은 누구나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요. 이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억울함과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제 친구들이 여기 온 적이 있는데, 백 명 중에 한 명 만날까 말까한 사람이 여기 다 모여 있네, 하더라고요.(웃음) 저는 여기 와서 되게 편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랬나 봐요. 물론 다 친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일상을 나누는 사이도 있지만 어울리는 그룹들이 각자 다르고요. 그럼에도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려고 애써요. 맨날 보는 얼굴이 똑같으면 불만도 생기고 그러잖아요. 지금은 아니지만, 기지가 완공되었던 2016년도까지는 지킴이들이 매주 모여 이야기를 나눴어요.
지킴이들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다고 하셨지만, 그중에서도 굳이 강정 마을에 집중하셨던 이유가 따로 있나요?
큰 의미 없어요.(웃음) 어떤 이슈에 끌려서 가는 경우도 있고, 자기랑 맞는 공간을 만나는 때도 있잖아요. 이전에 속했던 가정교회가 노숙자 사역을 했는데, 그때 저는 직접적으로 뛰어들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보면 마음이 동한 거죠. 평화 활동이라는 게 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지만, 전쟁이 없어져야 한다는 건 명확하잖아요. 그러려면 전쟁의 시발점이 되는 군 기지가 없어져야 하고요. 기독교인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평화=안보’ 프레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많은 토론이 이뤄지면 좋겠어요. 주어지는 것을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세상에 더 귀 기울이면서 하나님 눈으로 상황을 다시 해석하려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에 ‘개척자들’이 8월 17일부터 평화캠프를 해요. 기독 청년들이 평화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이곳에서도 교회를 다니세요?
안 다녔는데 지금은 개척자들 예배 때 함께해요.
해군기지가 세워진 후 자포자기하는 주민들이 다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오랫동안 싸우신 분들은 많이 지쳤을 거예요. 트라우마를 치료하지 않고 안고 가는 거니까. 그리고 여긴 정해진 시간 없이 24시간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고요. 현장에서 막는 건 지금은 없으니까, 쉬면서 자신들의 길을 찾는 중일 수 있죠. 무슨 일이든 계속 정점에 있을 순 없잖아요. 처음엔 힘이 빠졌지만 지금은 안타까움이 커요. 친구들이랑 더 많은 것들을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환경이 되었으니까요. 스스로 활동가라는 생각이 확고하면 맞춰서 삶을 살겠지만, 신념이 있어도 활동가의 삶을 사는 일은 다른 문제이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운동의 방향이 바뀐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죠. 그 방향으로 결합할 수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으니까요. 처음엔 기지 공사장을 막는 일과 공론화하는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평화교육과 예술 작업이 이뤄지죠. 저는 그런 것까지 다 포용하는 게 맞다고 봐요. 포용을 한다는 건 지경이 넓어진다는 거고, 지경이 넓어지면 또 흩어지는 부분도 있는 거죠.
평화담론이나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다양한 곳에서 온 친구들이 각자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저마다 평화에 대한 다양한 마음이 펼쳐지니까요. 처음엔 대부분 현장에서 몸으로 막거나 시위에 나서는 ‘몸빵’을 했지만, 친구들이 다양하다 보니 지금은 각자 하는 일을 평화운동에 접합시키는 방식인 거죠. 강정마을이 평화의 메카가 될 거예요.(웃음)
마을 주민들과 사이는 어떠세요?
나쁠 건 없어요. 시골에서 인사하고 지내는 정도예요. 저는 주민들이랑 같이 투쟁해본 적은 없고 지킴이 친구들을 보고 들어온 거라 주민들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진 않아요. 그러다가 주민들이 투쟁했던 모습을 찍은 영상을 봤는데 많은 생각이 들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좀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우리처럼 매일 활동을 하라는 건 아닌데, 정말 필요한 때 잠깐 나타나서 얼굴 비치는 여유조차 없다는 게 아쉽죠. 그분들은 2007년부터 싸웠으니까 그만큼 많이 지쳤겠지만요.
해군기지를 찬성했던 주민들과는요?
좋을 리는 없죠. 그렇다고 째려보고 다니지는 않아요.(웃음) 저는 여기 나들가게 아저씨랑도 인사하는데요 뭘. 누가누군지 애초에 잘 모르기도 하고요. 나들가게 아저씨는 극렬하게 찬성했던 분인데 지금은 해군기지 안 카페에서 일하세요. 처음에 해군들이 군 교회에서 차 끌고 와서 거기서만 사가곤 했어요. 저흰 유치하다 했어요. 이제 이 가게는 문 닫고 아예 그쪽으로 옮긴 형국이에요. 마을운영회 분들한테도 인사는 다 해요. 언젠가 카페를 갔는데 운영회 분들이 다 모여 있는 거예요. 제가 인사했더니 그분들도 ‘아 예, 안녕하세요’ 하시더라고요. 인사를 하면 안 받아주기가 힘드니까.
지킴이들 속에서 반디님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전 주로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 맞이하는 일을 많이 해요. 지금은 개신교가 이 안에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서 힘을 싣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연대하는 이들은 개신교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구조적으로 정리는 잘 안 되어 있어요. 천주교는 신부님이 계시고 공소가 들어와 있으니까 구조적으로 정리가 되어있죠. 임보라 목사님, 임왕성 목사님이 계신 개신교대책위 분들 중에 누가 와서 상주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들은 사역하는 교회가 있으니까 그런 부분이 좀 어렵죠. 여하튼 전 여기서 개척자들과 개신교대책위 분들이랑 친분을 쌓고, 평화순례 팀에 숙소를 제공해준다거나 사람을 섭외하고 장소들을 소개해 드리고 있어요.
현장에서 늘 바쁘게 움직이시더라고요. 침체된 현장에 있다 보면 생각이 많아질 것 같은데….
‘우리가 왜 이걸 하고 있지?’(웃음)하는 생각을 가끔 하긴 해요. 그런데 이곳에서 지킴이들이 직접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계속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몇몇 사람들이 끌고 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와서 함께할 수 있고, 어떤 이슈와 맞물리면 다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계속 견디고 공간을 유지하는 게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 평화순례 팀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나요?
되게 고맙죠.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이곳을 생각하고 오시니까 서로 친구가 된 것 같아요. 여기 있는 저희들도 각자 일들이 많이 바쁘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오셔서 알아서 하시는 부분들이 많았고요. 지금은 조금 더 깊이 연계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제 일을 잠시 접어두고 신경을 쓰는 거예요. 지금까지 참가했던 사람 중에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들도 소수지만 있고요.
쉬고 싶을 때는 없으세요?
친구들도 제발 좀 쉬어라 해요.(웃음) 이번 1월 초에 잠시 나갔다가 말에 들어왔어요. 다시 나가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묶여 있었죠. 그러다가 새로운 평화센터를 짓는다고 하고, 평화순례도 온다니까 나 몰라라 할 수 없더라고요. 새로운 평화센터는 부지만 정해지고 아직 준비 단계에 있는 상황이에요. 또 한 친구는 부산에서 하는 밀양전 전시를 보고 강정에서도 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어찌하다 보니 저도 전시를 같이 하게 됐고요.
문득 궁금한데, 강정에 오기 전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출판 일이요. 강정 오기 전부터 쉬고는 있었는데, 서울 가서 정리하고 왔어요. 지금은 강정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해요. 웹으로 발송하는 신문 작업, 섬들이랑 하는 연대 사업, 마가지 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컨테이너하우스 제작 유지 작업도 하고요. 합창모임이랑 풍물패도 하죠. 이전에는 더 많이 했어요. 2년 전에는 친구들이랑 강정평화센터를 카페, 전시공간, 굿즈샵, 벼룩시장, 자료보존 공간으로 꾸몄어요. 4명이서 2년 동안 운영하고 용돈도 벌었죠.
조금 타격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있는 것 자체가 없어지니까 사람들 마음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고 권술용 단장님이랑 여러 단위에서 돈을 모아서 지은 건물이거든요. 땅은 마을 분이 처음엔 무상으로 주셨고요. 2007년부터 촛불문화제, 집회도 하고 평화학교를 운영해서 사람들이랑 세미나, 음악회도 했던 공간이었어요. 눈앞에서 없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겠지 싶고….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야죠.
이곳에서 벌이는 어떻게 충당하시나요?
저는 처음에 왔을 때부터 쭉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딱 생활비 정도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일을 하거나 빡세게 벌어서 모아둔 돈을 쓰기도 해요. 평화센터 할 때는 수익구조를 만들기도 했고요. 여기 있는 친구들도 밭일도 하고 평화교육도 나가면서 벌이를 해요.
조금 다른 얘긴데, 도착해서 마을을 둘러보니 이상하게 빈 건물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마을 안에 슈퍼가 딱 3개 있는데, 이 정도 규모의 다른 마을들에 비해서 확실히 개발이 안 됐죠. 개발만 하면 다 해군기지와 연결되니까 나라에서 나오는 모든 개발을 하지 않기도 했고요. 2007년부터니까 13년 동안 개발을 못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필요가 아닌 욕망에 의해 마을이 변하다보니 사오층짜리 이상한 건물들이 생겼죠. 그들은 돈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대로 되지 않았어요. 머리 좀 잘 쓰지, 하는 생각도 들면서 씁쓸해요.
변하는 것들 중에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사람이죠. 장소는 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같이하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변화를 보면서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근데 많이 나가긴 했어요. 친구들도 처음에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우정을 나눠왔는데 약간 애매하죠. 공동체도 아니고 긴밀하면서도 긴밀하지 않으니까. 독특한 것 같아요. 개개인의 캐릭터가 강하다보니 어떤 이슈를 마주하면 확 뭉치지만 기본적으론 다 흩어져 있고요.
최근에 생긴 다른 관심사가 있나요?
홍콩 친구들과 연대하는 일이에요. 재작년에 홍콩에 있는 영화제를 간 적이 있어요. 거기 주최한 친구들과 며칠을 보내면서 우정이 생겼죠. 그때는 우산혁명이 지나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었는데, 그들도 침체기였어요. 앞에 보이는 선배들이 없는 상태니까. 오전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저희를 끌고 다니면서 이쪽저쪽 다 보여주더라고요. 이후에 친구들이 제주도에 오기도 하고, 저희도 작년 11월에 다시 홍콩을 방문했어요. 다 잡혀가고 건물이 다 부서져 있으니까 홍콩 친구들이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오라고 말을 못 했어요. 다행히 그때가 선거를 앞둔 한 주라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주일이었어요. 그때 좀 자유롭게 돌아다녔죠.
구체적인 조언이나 도움을 주기도 하셨나요?
이번에 보안법이 통과되면서 움직이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민이 많더라고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도 크고요. 일상에 대한 투쟁이 무엇인지 저희에게 질문을 하면 저희는 따로 시간을 내서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모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요. 거긴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정말 풀뿌리라서 개개인이 모여서 저희들과 연대하고 있어요. 일상 투쟁이 예술과 조합이 되는 공간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이 공동체에 대한 의문들이 많은 거죠. 홍콩에 있는 친구들이 국제 연대에 대한 고민들도 많이 해요. 다들 개개인이라 한계가 있으니 저희가 알고 있는 것들을 공유해요. 저희들도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고민들로 어렵지만 상황을 무시할 수가 없더라고요. 친구가 됐으니까.
한국교회 안에서는 평화보다는 평안을 빈다는 말을 더 자주 듣는 것 같아요.
저는 기독교가 말하는 평안함이 평화 같지는 않아요. 온전하고 평화로운 느낌 말고 뭔가 살아있는 강한 그릇 안에 채워지는 게 평화 같아요. 이 사람의 평화, 저 사람의 평화 이렇게 채워지는 거죠. 각자 생각하는 평화란 그때그때 달라지기도 하고요.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긴 해요. 또 거저 주어지는 것 같지도 않고요. 평화롭지 않기 때문에 평화를 추구하는 거잖아요.
멀리 있는 사람 말고 바로 옆 친구를 돌보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성소수자 문제도 그렇겠죠. 저는 교회 안에서 이 주제에 대해 더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로 옆 사람이 그런 친구일 수 있는데 모르는 경우도 너무 많고, 그 친구도 숨기고 싶어 하죠. 그런데 교회가 적어도 안전한 공동체라면 말할 수 있잖아요. 말할 수 없는 곳이라면 교회는 뭘까 싶어요. 성소수자는 굉장히 많잖아요. 분명히 옆 친구들 중에 있을 걸요? 모르고 있을 뿐이지. 바로 옆에 있는 사람 챙기고 살면 좋잖아요.
소수자성을 갖고 있으면 대하기 어려울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대해야 하나 싶고, 상처주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가 아는 친구는 소리를 질러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우리가 소리 지르지 않으면 듣지 않잖아”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더 안 들어, 그러면 듣기 싫잖아”라고 했어요. 물론 그래도 저는 계속 들어줘요. 저도 상처 받고 힘들지만 계속 듣죠. 또 제가 경험한 친구들은 저를 시험하기도 해요. 얘가 이만큼까지 할 수 있을까, 하듯이. 요즘 트렌드도 그렇고, 신앙도 그렇고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가잖아요. 내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근데 정말 그런가요? 내가 행복해야 저 사람이 행복할 수 있나 요? 나의 행복이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웃음) 내가 그렇게 존귀하고 특별하다고 하는데 우리 다 특별한데 뭐가 특별해요? 언젠가 성소수자 친구들이 ‘우리가 만나는 때는 축제, 그리고 장례식’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만 만난다고. 되게 미안하더라고요. 아직은 저도 불편하긴 해요. 하지만 불편해도 같이 가야죠. 나는 난데, 내가 아니라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친구를 만난 것도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죠. 친구가 되라잖아요, 하나님이.(웃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하면 웃기지 않아요? 기자들이 항상 똑같은 패턴이라서.(웃음) 저는 진짜 갇혀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 자기들 안에서 아옹다옹하는 게 제일 답답해요. 너네만 좋으면 다야? 이런 마음 때문에요. 사람들이 한국 개신교인들을 ‘개독교’라고 그러는데, 저도 더 이상 탄압받기 싫어요. 지금까진 고민하고 알아서 기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더 이상 나한테 그러지마,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하는 마음이에요. 참긴 참아야겠죠. 우리는 죄진 게 많으니까. 그런데 세상에 나가서 지경을 넓히면 좋을 것 같아요. 교회 안에서의 생활도 중요하지만 믿는 사람들끼리 잘 지내는 것은 너무 기본이잖아요.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옆에 힘든 사람 손을 잡기 시작하는 그때부터겠죠.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