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호 커버스토리 프롤로그]
7월 말 2년에 한 번씩 기독 청년들이 제주 강정마을을 중심으로 평화의 길을 고민하고 모색하는 ‘제주평화순례’ 취재에 나섰다. 성서한국을 포함한 복음주의운동단체 14곳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일반 참가자가 아닌 활동가 네트워크 소속의 20명만으로 3박 4일 일정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의 자기소개와 얘기를 들어보니 이미 강정마을을 꾸준히 방문한 이도 있었고, 마을에서 거주하는 현지 활동가와의 친분을 생각하며 온 이도 있었다. 강정에서 평화운동을 이어가는 활동가들(현지에서는 ‘지킴이’라고 부른다)의 이야기도 들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 지 벌써 5년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마을에 남아서 일상을 살아가며 투쟁을 이어가는 이들은 어떤 이유로 떠나지 않고 있는 걸까.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눈길을 끌었는데, 생각보다 간단명료한 이야기에 놀랐다. ‘양산’이라는 활동가는 매일 아침 해군기지 정문에서 묵상 기도회를 하는데, ‘강정이 좋아서’ 이곳에 와서 살고 있다고 했다. ‘여기 있는 친구들, 사람들이 좋았다’는 말에 뭔가 다른 명분이나 동기를 물을 수 없었다. 평화순례 기간 내내 말문을 막은 순간은 그런 것들이었다. 복잡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경찰들과 맞서는 일이 겁이 났을 때 예수님의 용기를 떠올렸다는 평화운동가의 말은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6쪽, ‘사람과 상황’ 정선녀 강정 공소회장 이야기). 활동가들 사이에서 활짝 웃는 이의 해맑은 표정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되었다(38쪽, ‘커버스토리’ 강정 평화활동가 반디). 그리고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지난 3월 철조망을 자르고 해군기지 안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구속 수감 중인 평화활동가 송강호 박사가 있다. 그를 면회한 활동가는 마이크를 잡고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평화순례 참가자들을 직접 맞이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 전하면서. 그의 눈물엔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전후 사정을 다 알지 못해도 눈물이 났다.
문득 ‘이러다 자칫 감상적인 기억으로 흘러갈 수 있는 체험(?)들로만 채워지겠다’ 싶어 정신 차리고 활동가들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들의 말을 통해 강정에서 평화운동을 이어가는 특별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인터뷰는 현지 활동가들뿐 아니라 평화순례에 참가한 기독 활동가들의 목소리도 담으려 했다. 활동가로서의 삶을 지속하는 이유를 묻는 것이 강정마을 활동가들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주평화순례’에 지속해서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독교 사회운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활동가로 계속 살아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고민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강정 지킴이들과 그곳에 온 기독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담아내기에 3박 4일은 턱없이 짧았다. 벅찬 과제였음을 실감하면서 매순간 그들의 행동, 움직임, 말을 하나하나 기록하기 바빴다. 결국, 일정이 끝나고 잠시라도 ‘여행자’가 되는 호사를 누려야겠다는 계획은 계획으로만 끝나고 말았다.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