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호 커버스토리]
기독 활동가들로만 구성된 이번 제주평화순례단에서 여러 구성원들을 다양하게 인터뷰하려던 기획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주된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40-50대인데다 ‘전원 남성’이었다. 이 가운데 드물게 30대 초반의 ‘젊은’ 참가자가 둘 있었다. 기독 활동가와 제주평화순례라는 두 가지 열쇳말을 붙들고 공동 인터뷰를 요청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이하 ‘개혁연대’)에서 일하는 박세범 간사(3년차)는 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분쟁에 대한 모든 초기 상담을 받는 것이 주된 업무다. 주최 측 요청으로 영상을 찍은 이명훈 간사(4년차)는 청어람ARMC(이하 ‘청어람’)에서 영상 촬영·편집과 홍보를 맡고 있다. 제주평화순례 2일차 밤,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 세미나실에서 진행한 이 공동 인터뷰는 꼬박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두 분 다 강정을 찾은 게 처음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다시 온 이유는?
박세범(이하 ‘세범’): 6년 전 학생일 때 제주평화순례를 왔다. 같이 간 친구들 만나면 아직도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제주평화순례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많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이미 해군기지가 들어온 상태에서 제2공항, 비자림로 등 난개발에 따른 문제들까지 복합적으로 떠안고 있더라. 더군다나 송강호 박사님도 교도소에 계시고 여러모로 암담한 상황이지 않나. 6년 전과는 달리 지금 대다수 주민들은 자포자기한 분위기라고 들었다. 그래서 가서 뭐라도 도움이 되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명훈(이하 ‘명훈’): 이전에 강정을 방문했을 때는 영화 관련 워크샵에 참여했다. 마을 곳곳에 보이던 평화에 대한 문구들, 강정을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를 걱정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상영한 일, 일상에서부터 평화를 실천하려는 친구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이번에는 연대활동 차원에서 왔다. 기지가 들어서고도 지속할 수 있는 평화운동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이제 이틀째 밤이라 적절한 질문은 아닌 것 같지만, 지금까지 어떤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세범: 제주 시청 앞에서 피켓 들었을 때 한 활동가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다 마음 아픈 내용들이었는데, 다양한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민간공항이 아니라 공군기지로 사용될 수 있는 제주 제2공항 건설은 비자림을 비롯해 수많은 동식물들의 터전을 파괴한다는 것, 관광객들이 더 몰려오면 쓰레기와 하수 처리문제도 더 심각해진다는 이야기가 그랬다. 제주도민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이는 현실에 마음이 안 좋았다.
명훈: 일정 중에 비자림을 방문할 때가 있었다. 길을 걷다가 나무 잘린 곳을 갑자기 마주했는데, 빈 공간을 채우며 자란 풀들에 압도됐다. 이전에 올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평화활동을 이렇게 끈질기게 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지쳐서 포기할 수도 있지 않나. 상대는 한국 정부와 미국이고 기지가 이미 들어온 상황에서 계속 싸운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그게 신앙이고 믿음인가 싶다.
개혁연대 일 중에 교회 문제(분쟁) 관련 상담이 있다는 게 의외였다. 대개 어떤 연락을 해오나.
세범: 개혁연대 부설 교회문제상담소는 상담소장 주도로 운영되는 구조다. 내담자는 교회 문제에 대해서만 말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본인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다. 예를 들면 담임목사가 교회 재정에 손을 댔다거나, 교회 목회자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거나 하는 경운데, 후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소문을 들은 제3자가 얘기하는 사례가 다수다. 매년 단체에서는 교회 상담 통계를 내고 있다. 담임목사에 의한 교회분쟁사례가 전체 사례 중 2019년은 69%, 2018년은 58%를 차지했다. 교회 재정이나 인사, 행정에서 이뤄지는 목회자의 전횡이 다수다. 교회를 개혁해 보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혁 측과 비개혁 측으로 나뉘어서 교회가 분쟁하는 가운데 갈등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개혁 측의 교회개혁 방향성은 좋은데, 절차 가운데 비합리적인 문제들이 발생하자 교회 구성원들에게 환멸을 느껴 가나안 성도가 되는 사람들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개혁하려는 이들에게 있는 비합리적인 문제라면?
세범: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태도가 폭력적이거나 오히려 비개혁 측 못지않은 모습을 보인 사례들이 있다. 그러면 개혁연대는 도울 수 있는 명분이 없어진다. 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게 목표인데, 어떤 이들은 문제 있는 담임목사로부터 교회를 빼앗고 싶은 거다. 그런데 목사를 내쫓는다고 교회가 개혁되는 것도 아니잖나. 단순히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고민스럽다.
교회 관련 힘겨운 얘기를 자주 듣다 보면 회의가 들 것 같은데….
세범: 교회의 행정적·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응대가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의 신앙에 대해서는 도움을 드리는 것이 한계가 있다. 내가 전문 상담사도 아니니까.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듣는 정도다. 사실 교회 문제만 듣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개인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사람이니까 다운이 되고, 상담 후 몇 분, 길게는 몇 시간 동안 일에 집중이 안 된다. 또 어려운 건 교회 내 성폭력 상담인데, 이 경우엔 우리가 전문가가 아니라 외부 단체를 연결해주고 있다. 이외에도 세월호 등 사회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이슈파이팅을 해오고 있다. 명성교회 세습문제라든가, 빛과진리교회의 반인륜적 리더훈련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는데 계속 부정적인 이야기를 접하니까 지치는 면이 있다.
기독 활동가로서 소속 단체의 리더그룹과 젊은 활동가 사이에 운동의 주요 의제에 대한 견해차는 없나?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세범: 단체의 주축이 되는 사람들은 단체를 시작하셨던 분들이지 않나. 당시에는 그분들의 운동 방식이 시대의 흐름에 맞았던 것 같다. 개혁연대가 지금까지 이어져서 이만큼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분들 덕분이고. 하지만 앞으로를 생각한다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지금 청년들은 개혁연대가 다뤄온 교회 문제들, 세습이나 재정횡령 같은 이슈를 넘어서서 젠더 문제나 성소수자 담론 등 다른 새로운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고민하는 이슈들은 적어도 교회를 상대하는 기독단체에서는 다루기가 상당히 어렵다. 교회는 젠더 이슈보다는 지금 당장 사탄에게 교회가 넘어가느냐 마느냐가 이슈니까. 분쟁이 생긴 교회의 담임목사를 지지하는 장로님들의 경우, 담임목사를 반대하는 성도들은 모두 사탄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청년들은 이런 교회 상황을 잘 모른다. 장로님들이 부끄러운 일을 뭐 하러 알려 주냐고 어른들끼리만 공유한다. 청년들과 아이들은 아무 상황도 모르는 채 어른들끼리 싸우는 모습만 보게 되는 거다. 결국 청년들이 교회에 대해서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명훈: 활동가들 사이에서 세대 간 관심 의제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전 세계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 있는 이슈 하나에 나도 관심이 있다. 주로 ‘기후 위기’라고 부르는데 동물들 입장에서는 ‘멸종 위기’다. 지금도 멸종이 진행 중인 동물들이 수두룩하고, 젊은 사람들은 본인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시한폭탄인 셈이니 더 위기감을 느낀다. 그밖에도 각자 관심 있는 주제가 다를 텐데 그런 것들이 충돌할 필요가 있나 싶다. 미국의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는 다양한 소수자 운동 진영이 연대한다. 심지어는 동물해방 운동 진영도 함께하더라. 각자 집중하는 의제가 있지만 연대함으로써 목소리의 힘이 더 커지지 않나.
세범: 운동 방법론의 차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드는 전통적인 네거티브 방식보다는 커뮤니티와 문화콘텐츠로 다가가는, 좀 더 가볍고 포지티브한 운동 방식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교회의 갇힌 이슈뿐 아니라 다양한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독 커뮤니티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어른들도 그건 아니라고만 말씀하시지 말고, 다른 방법도 지지해 주셨으면 한다.
많은 이야기들을 했는데, 실무자들끼리도 이런 얘기를 같이 하나.
세범: 함께 현장을 대응하는 사무국 동료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다. 교회 문제, 사회적 이슈, 그리고 개혁연대가 갖고 있는 현재적 고민에 대해서 편하게 이야기한다.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데 지장은 없다. 그런데 사무국을 넘어 집행위원회와 같은 자리에서, 훨씬 먼저 앞장서 활동해오신 분들 앞에서 다른 주장을 펼치기란 쉽지 않다. 우리 단체 안에 젊은 활동가들이 더 많아지면 더 다양한 방식과 의제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명훈: 청어람은 주로 실무진이 기획하고 일하는 곳이라 좀 더 자유로운 것 같다. 내가 제주에 와 있는 동안 사무실에서는 ‘차별금지법 찬성 연대성명’에 참여했다. 80여 개신교 단체들이 연명했고 동료 한 분은 기자회견에서 성명서 낭독에도 참여했다.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단체 강좌에서 꽤 다뤘기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참여 결정도 쉽게 내렸다. 단체가 지향하던 바도 그렇고 후원자들도 함께해주실 거라는 생각이 있다.
젊은 그리스도인이자 활동가로서 지금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나.
세범: 처음 단체에 들어왔을 때는 교회를 좋게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애초에 교회 구조나 교단 법들이 교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게끔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오늘 감리교 전준구 목사 관련 토론회가 있었다.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법에서는 죄과와 책임에 대해 명확히 얘기를 하잖나. 그런데 교회법, 교단법에는 그런 게 없다. 그러니까 전병욱 목사가 성범죄를 일으켜도 다시 목회를 하는 거다. 또 교단법에 명시되어 있다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세습금지법이 있는데도 김하나 목사가 세습 목회를 하지 않나. 교회 문제를 교회 안에서 해결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거다. 또 하나, 교회에 대한 상이 사람들마다 다 다른데 이를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피곤한 것 같다. 한국교회를 아끼고 애정하는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깨어 있는 성도들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명훈: 맞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분들이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만한 공간들이 필요한데 한쪽 주장만 일방적으로 유통되는 게 현실이다. 주변화된 이야기들이 공론장에 등장하여 접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 역할을 우리 단체가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한국의 기독단체에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세범: 우선 돈이 필요하다. 두 달 전에 결혼을 했는데 아내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육아휴직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여서다. 빈자리를 다른 동료들이 메우기엔 사무국 인원이 너무 적다. 그렇다고 파트타임 활동가를 구했다가 나중에 다시 내보낼 수도 없다. 이미 네 명 중 한 명은 파트타임 간사다. 청년들이 지원하려면 적어도 기본적인 복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육아휴직을 줬다는 기독교 단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
명훈: 다양성의 문제도 중요하다. 각 단체들이 다양한 배경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도 어울리기 어색하지 않을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젠더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얘기를 많이 하지 않나. 예를 들어 비건에 이성애자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사람이 있다면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지난해 기독활동가대회를 생각해보면 신청서에 선택할 수 있는 성별이 딱 두 개였다. 그러지 말고 다양하게 넣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없는 거 알더라도 처음부터 그렇게만 쓰는 것보다는 이런 문제에 대해 미리 의식하고 적응할 환경을 만들면 좋겠지 않겠냐는 차원이었다. 마찬가지로 여성 활동가가 왜 이렇게 적은지 이야기하지만 여성 활동가가 잘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인지도 자문해야 한다. 젠더 문제나 소수자에 대한 담론을 다루긴 하는데 실제 내부 구성원부터 다양해진다면 우리 운동도 더 풍성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활동가들이 지속성 있게 일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세범: 교회 문제는 계속 발생하는데 상담하는 사람은 제한적인 게 문제다. 상담 요청이 몰릴 때면,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점점 정신적·육체적으로 한계가 온다. 충전할 수 있는 시간,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으면 한다. 최근엔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까 개인 번호로 주일에도 연락이 오는 상황이 발생한다. 교인들과 계속해서 소통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나, 때때로 부담이 된다. 누군가는 우리 일에 휴일이 어디 있냐고 이야기하지만, 주말까지 상담을 하고 싶지는 않다. 활동가도 노동자다. 각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공감과 노동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내부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명훈: 몇 안 되는 단체들이지만 세대 간 연령 차이가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중간 연령대는 어디 있을까. 청어람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도 젊은 활동가는 본 적이 없었다. 비슷한 연차 혹은 연령대의 활동가들과 어울리고 싶다.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우리부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뿐 아니라 전반적인 실무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여러 단체가 모여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명훈 간사는 실제로 비건(vegan, 엄격한 채식주의)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명훈: 평화순례 참가를 결정하는 데 크게 염려했던 것 중 하나가 식사였다. 비건들에겐 매 끼니가 ‘미션’이기 때문이다. 기독활동가들이 연대 모임을 할 때마다 식사에 대해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걸 기억하셨는지 이번에는 신청서에 비건 항목을 만들어주었는데 반갑고 좋았다. 나뿐 아니라 채식을 하시는 두 분이 더 있어서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혼자일 때는 몰랐는데, 비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소수라도 있으니 동물권과 비건, 생태를 주제로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새로웠다.
최근 청어람에서 연 ‘나의 비건 식당 순례기’라는 이름의 강좌 진행자던데.
명훈: 강좌는 아니다.(웃음) 얼마 전 단체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기초작업을 하면서 나온 단어가 ‘탈중심화’였다. 기존 기독운동 판이 명망가 중심의 운동이었지 않았나. 소수의 기획자가 이끄는 운동을 넘어서면 주변부가 보일 것 같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거다. 이와 함께 청어람이 플랫폼으로서 기능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모임이나 강좌, 세미나 공모전을 열게 되었다. 이 모임은 동물권이나 비거니즘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소수로 모여 비건 식당에 가고, 이후 대화를 나누는 게 포인트다. 동물권이나 기후 위기, 건강 등의 이유로 채식을 하는 분들이 다수고 간혹 신앙을 이유로 하시는 분도 있다. 비건 지향 2년차라 이건 내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모임을 이끌게 되었지만, 부끄럽다. 되게 숨고 싶은 사람이라서.
박세범 간사는 교회 관련 상담을 하다가 본인도 상담을 받는다고 들었다.
세범: 활동가에게 무료로 상담해주는 곳에서 작년 초까지 받았다. 받는 동안은 괜찮았던 것 같다. 교회 상담을 하면서 부정적이 되고 가라앉는 상태를 주변 사람에게 얘기하기는 어렵다. 하루 종일 사람과 씨름해야 하는 직업이다보니 집에 가서 누군가에게 얘기할 에너지도 없고 분출구도 없었다. 번아웃 될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명훈: 3년 전 종교개혁500주년 기념기도회 회식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세범 간사님이 자기소개하면서 두 주먹을 쥐고 “명성교회 사태 제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기독교 단체 활동가 풀이 좁아서 이런 얘기를 안전하게 나누기도 어려울 것 같다.
세범: 정말 어렵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언젠가 그냥 툭 던진 말이 전혀 모르는 제3자를 통해서 다시 들려와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명훈: 내가 그래서 드러나고 싶지 않은 거다. 가끔 다른 단체 분들 만나면 또래가 몇 명 있었다. 친해져서 속 얘기도 하고 고민도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트기가 어렵더라.
그럼에도 활동가로서 계속 일하는 이유가 있다면?
세범: 사람 때문에 힘들다가도 사람 때문에 기운을 얻을 때가 있다. 작년에 개혁연대가 청년들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 이틀 전에 밥 먹고 나가려는데 어머니가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냐고 하시더라. 맞다고 하니까 “그러면 바위에 던질 계란은 남아있어?” 물어보셨다. 계란이 남아있나, 그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런데 청년들을 위한 기도회를 진행하면서 청년들이 교회에서 상처받았던 이야기들, 공감 가는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계란 한 판이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 들더라. ‘이 일이 필요하구나. 누군가는 교회를 포기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교회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돕는 사람이 필요하겠구나.’ 도와드린 교회에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오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이 전화라도 먼저 걸어주시고 후원하겠다 하시면 힘이 된다. 교회를 포기할까 생각하다가도 포기하기 쉽지 않은 것 같고, 교회를 위해서 뭔가 해야겠다 싶다가도 교회를 포기하고 싶다. 그런 과정에서 진로에 대한 고민도 생기는 것 같다.
명훈: 교회만을 위해 일하라고 하면 많이 힘들 것 같다. 청어람은 교회와도 협력하고 사회에도 좋은 담론을 형성하려고 하지만 주로 일반 신자들을 만난다.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기독교권에서 보기 어려운 주제들을 단체가 다루고 있고 거기에 참여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왕 일하는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일을 지속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열 걸음 가면 좋겠는데 ‘한 걸음’이라도 다른 개신교 운동 단체들과 같이 나아갔으면 좋겠다. 용기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먼저 용기 냈으면 한다.
진행 정민호·김다혜 기자
정리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