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호 사람과 상황] 맘몬의 시대를 건너는 활동가들의 ‘희년소득’ 실험

왼쪽부터 전해운 간사, 한호민 간사, 송선경 지부장, 김대환 지부장, 박현홍 대표. ⓒ복음과상황 정민호
왼쪽부터 전해운 간사, 한호민 간사, 송선경 지부장, 김대환 지부장, 박현홍 대표. ⓒ복음과상황 정민호

사람들이 소득 중 일부분을 균등하게 공유하면,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될까. ㈔러빙핸즈 박현홍 대표는 이런 상상을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실천하는 중이다. 그는 4년 전부터 소득 중 ‘10분의 1’을 ‘n분의 1’로 공유하는 ‘희년소득’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았다. 현재는 총 세 팀이 희년소득을 진행하고 있다. 러빙핸즈 활동가와 후원가족 그리고 졸업멘티가 참여하는 ‘러빙핸즈 희년소득’에서는 15명, 한국기독학생회(IVF) 간사 모임에서는 52명, 가평 소재 대안학교 샬롬자유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10여 명이 각각 희년소득을 실천하고 있다.

개인마다 입금하는 금액은 다르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금액을 나눠 받는 구조다.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도 크게 벌어지는 경제적 격차를 간접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는 실험이다. 희년소득 취지는 참여하는 이들에게 경제적 안전망이 되어주고, 사회적으로도 주목받는 ‘기본소득’ 개념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데 있다. 따로 5%를 적립해 다른 단체를 후원하거나 무이자 대출 기금을 적립하기도 한다.

성경의 희년사상에 다가가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작은 실천이 과연 현실에서 실제적인 효과를 내고 있을까. 희년소득에 참여하고 있는 전해운 IVF 간사, 한호민 IVF 간사, 송선경 러빙핸즈 광주전남지구 지부장, 김대환 러빙핸즈 대구경북지구 지부장이 모여 그간의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좌담은 1월 6일 초록리본도서관에서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박현홍 대표의 사회로 진행했다.

박현홍 대표. ⓒ복음과상황 정민호
박현홍 대표. ⓒ복음과상황 정민호

박현홍: 희년소득에 참여하게 된 계기부터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전해운: 저는 IVF 전국 간사 수련회에서 처음 제안을 받았습니다. 선교단체 간사 월급이 100% 후원으로 마련되다 보니, 같은 연차라도 사람마다 수입 차이가 크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동기 간사들과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대책을 모색하기도 하고, 제가 속한 지역의 후원금 모금률이 높은 편이라 모금률이 낮은 동기 간사에게 개인적으로 후원하기도 했죠. 그런데 결국 개인적인 해결책이라는 한계가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마음의 짐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수련회에서 ‘희년소득’을 알게 되었고, 다른 간사들과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기들과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호민: 저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동일노동’인데 ‘동일임금’이 아니었고, 비슷한 연차임에도 급여 수준이 너무 많이 차이 나는 게 불편했어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고민하던 차에 박현홍 대표님으로부터 희년소득 운동에 대해 들었고 함께 ‘러빙핸즈 희년소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3년여 전부터는 IVF 간사들과 따로 모임을 꾸렸고, 현재 52명의 전·현직 간사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송선경: 저는 아동·청소년 자립을 돕는 러빙핸즈에서 멘토링 활동을 한 지 1년 반 정도 됐는데, 작년에 박현홍 대표님이 희년소득을 소개해 주셨어요. 멘티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가 와닿았는데, 마음 한편에 걸리는 것도 있었어요.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제 소득이 적어서 오히려 도움을 받게 되더라고요. 그게 부담돼서 참여하기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도 제가 언젠가는 도움을 주는 시점도 올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김대환: 러빙핸즈 박현홍 대표님과 연 소득, 기본소득에 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스터디를 했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지금의 희년소득 구조를 만들게 된 거죠. 저희는 NGO 활동을 하니까 후원 구조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의 구조는 누군가는 주고 누군가는 받는 일방적인 후원 방식뿐이었는데요. 후원받는 대상은 늘 수동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었죠. 희년소득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그러한 일방적인 구조를 넘어서 나눔을 받아온 사람들도 동등한 위치에서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어요.

전해운 간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전해운 간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52명이 참여하고 있는 IVF 이야기 먼저 들어볼게요. 희년소득을 시작하면서 체감한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해운: 심적으로 편안해진 것 같아요. 동기 간사에게 개인적으로 후원하면서 서로 느끼는 미안함 같은 게 있었거든요. 저는 다른 동기들과 같은 노동을 하고 있는데, 제가 급여를 더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했어요. 저에게 후원을 받는 동기 간사도 저에게 미안함을 느꼈고요. 희년소득을 시작한 뒤로는 그런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저는 직업이 간사라서 후원받는 사람 정체성이 강해요. 늘 후원자들이 존재하고, 저는 후원으로 살아가는 모금 운동가라는 인식이 있죠. 후원 흐름의 방향이 늘 고정적이에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죠. 지금 순화된 표현이 생각나지 않은데 뭔가 죄지은 느낌, 다른 사람들에게 빚지고 사는 느낌을 안고 지냈어요. 그런데 희년소득은 내가 특정한 누군가를 후원해주지 않아도 되고, 나도 특정한 누군가에게 후원을 받는 게 아니라 그냥 모두가 같은 풀에 있다는 감각이 좋았어요. 돈의 흐름이 어느 쪽에서 어느 쪽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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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호민: 급여의 ‘10분의 1’을 모아서 그걸 ‘n분의 1’로 나누는 게 큰 원칙인데, 나누기 전에 모인 금액 중 5%를 따로 적립합니다. 이 적립금은 총 세 가지 방식으로 사용돼요. 첫 번째는 대출이에요. 주님이 빌려주신 돈이라고 해서 ‘주빌론’이라고 부르는데요.(웃음) 요청이 들어오면 이유를 묻지 않고 100만 원까지 대출해줘요. 무이자로요. 상환은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두 번째는 적립금 중 10%를 1년에 2회 후원할 곳을 정해서 후원합니다. 세 번째는 전체 IVF 간사 수련회에 간식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물론 공동체에 희년소득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긴 합니다. 이런 원칙들이 공동체 내에서 재정적인 안정감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한호민 간사. ⓒ복음과상황 정민호<br>
한호민 간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소득 없는 사람을 돕거나 대출을 해주는 등 공동기금을 모아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을 것 같아요. 대출과 상환은 잘 이뤄지고 있나요?

호민: 많은 분이 대출을 받아가셨고, 상환도 잘되고 있어요. 3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총 41건의 대출이 발생했고요. 규모가 2,575만 원이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주빌론’을 위해 모은 돈이 현재 800만 원 정도인데 이게 대출과 상환을 거쳐, 돌고 돌아 더 큰 규모의 도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우리가 배우고 가르쳤던 희년정신, 재정과 관련한 성경의 가르침들을 실천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대환: 저는 소득이 낮다 보니 급전이 필요해 은행 대출 과정을 밟을 때 소외되는 계층이었던 것 같아요. 대출이 잘 안 돼서 부담감과 부끄러움이 늘 있었어요. 그런데 희년소득 제도를 통해 대출을 받았을 때는 부끄러움 없이 안전함과 따뜻함을 느꼈어요. 저희 러빙핸즈 멘티 중에는 100-200만 원을 빌릴 곳이 없어서 제3금융권 대출까지 고려했던 친구들이 있어요. 그들에겐 희년소득의 소액 대출 기금이 정말 절실하죠.

김대환 지부장. ⓒ복음과상황 정민호<br>
김대환 지부장. ⓒ복음과상황 정민호

간사를 포함한 활동가들은 후원을 받아서 활동하다 보니, 후원의 일방적인 구조에 대한 고민이 늘 있죠.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명확한 구조 때문에 저도 한계를 많이 느꼈거든요. 예를 들어, 멘티 학생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저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모습이 저는 참 불편했어요. 그래서 성인이 된 졸업멘티를 일방적으로 돕기보다는 희년소득의 일원으로 참여시켰는데, 덕분에 최근 130만 원을 적금할 수 있었다고 해요.

선경: 해보니까 정말 좋은 제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달에는 저에게 들어온 n분의 1(희년소득)을 어디 다른 곳에 우리 이름으로 후원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개인적으로 후원해도 되지만, 1년에 한 번쯤은 희년소득 공동체 이름으로 후원하고 싶었어요. 저는 그동안 희년소득을 통해 받은 것들이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랐죠.

희년소득을 경험하면서 돈에 관한 가치관이 바뀐 점이 있으신지요?

대환: 저는 예전에 큰 자금이 있어야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희년소득을 하면서 그게 아니라, 작은 것들이 모여야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 나라는 변두리에서 작은 사람들로부터 실현된다고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을 희년소득을 하면서 비로소 경험한 것 같아요.

선경: 이 사회에서 돈은 결국 힘으로 연결되잖아요. 돈이 많을수록 힘이 세진다고도 할 수 있는데, 돈이 결국 강한 힘이 되어버리죠. 개인적으로 희년소득을 하면서 돈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돈은 그걸 누가 가졌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데요. 희년소득을 하면서 돈의 부정적인 측면보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배려할 수 있는 도구로 쓰이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돋보였던 것 같아요.

송선경 지부장. ⓒ복음과상황 정민호<br>
송선경 지부장. ⓒ복음과상황 정민호

사실 희년의 정신을 실천해야 할 곳은 교회이지요. 그런데 교회에서도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힘이 모이게 되어있어요. 돈이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는 현실은 사회나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희년소득 구조를 통해 조금이라도 그런 힘의 작용이 무마되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 돈과 관련해서 고민했던 게 있다면 나눠줄 수 있을까요? 그 고민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고뇌도 있을 것 같고요.

대환: 최근 고민은 우리 사회에서 소득이 낮은 사람, 청년, 사회 초년생, 저소득층 자녀가 자산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너무 좁다는 것입니다. 부동산이 자산을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루트인데,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살 집조차 빌릴 수 없는 상황이죠. 빈부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상황이라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로 부르시고 우리가 세상과 다른 길인 대안이 되길 원하시는데, 다들 각자도생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죠. 그 이유를 고민하게 됩니다.

호민: 당장 1년 뒤 어디에 가서 살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1가구 1주택만 소유하면 세상이 조금 바뀌지 않을까 상상해요. 부동산값이 너무 폭락해버리면 많은 사람에게 문제가 생길 테고, 그렇다고 부동산값이 폭등해버리면 집 없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죠. 결국 집값이 안정되려면 누군가 희생하는 이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 희생을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렇게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가질 수 있도록 집을 두 채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만 갖도록 하는 기독교 운동을 해보면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돈이 많건 적건, 신앙이 있건 없건 돈이 늘 우리의 모든 관심을 사로잡는다는 데서 돈의 힘을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해운: 돈에 대한 고민들이 다 비슷하네요. 저도 집이 고민인데, 사실 저는 전에 살던 집에서 전세 사기를 당했어요. 집주인이 〈PD수첩〉에도 나올 만큼 알려진 사기꾼이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제가 보험을 들어놔서 보증금을 다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사기를 당한 당시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잤어요. 아주 작은 전셋집이었는데 전세가 1억 원이었거든요. 누군가에게는 큰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제겐 그 돈의 대부분이 빚이었기 때문에 너무 막막했어요. 10년 동안 매달 얼마씩 갚아야만 빚에서 해방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10년을 사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죽고 싶더라고요. 그때 정말 살도 많이 빠지고 머리도 많이 빠졌어요. 여전히 집이 고민인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서울에서 전셋집에 살고 있지만, 집값이 많이 오르는 걸 보며 내가 여기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어요. 친구들을 만나서 다양한 주제로 얘기를 하다가도 결국 마지막에는 ‘내 집 마련’을 주제로 걱정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집 문제, 돈 문제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호민: 최근에 주식과 부동산 시장 이야기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꼭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뒤처져 있는 게 아닌가 해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해운: 부동산 시장이나 주식 투자가 사실 ‘시드머니’를 어느 정도 가진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는 세계 아닌가요? 솔직히 말하면 다른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바람직한 답변은 아니지만, 저는 이 도시의 메커니즘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어요. 그래서 귀촌을 꿈꾸고 있습니다.

선경: 이 기류를 타지 못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내가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들어 저는 세상을 잘못 살아온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을 자산으로 삼으며 지내왔거든요. 실은 제 남편이 목회자예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목사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해 왔어요.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그들과 나누며 살아야 하기에 돈을 모을 여력이 없다고 말했죠. 늘 잔고가 없었고요. 어쩌다가 통장에 50만 원만 생겨도 어떻게 흘려보낼까 하는 기쁨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돈 없이 살기에 이 세상이 참 불안하다는 게 실감 났어요. 그래서 요즘은 남편과 한 번씩 주식 투자를 하자는 이야기도 해봅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것들이 참 빠르게 변한 것 같아요.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연령이나 성별에 따른 상대적인 불안 요소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선경: 중년 여성으로서 갖는 불안은 자녀들이 독립하는 거지만, 어떻게 보면 부모가 독립하는 일 같아요. 예전에는 자녀들이 부모를 봉양하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부모가 스스로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시대죠. 저는 아이들을 교육하겠다고 모든 힘을 다 쏟고 노후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대에 맞물린 세대예요.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중입니다. 이제는 청년이 된 자녀를 보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들어요. 이 아이들이 언젠가는 독립해서 살아야 하는데 무엇을 해서 서로 독립할 돈을 모을 것인지가 우리 집안의 최대 숙제입니다.

호민: 아이들이 클수록 돈이 필요한 곳이 많아지는데, 제가 지금까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지켜온 재정 원칙들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그래서 아이가 커가는 게 제 불안 요소입니다.(웃음)

해운: 저는 청년 여성으로서, 제 개인적인 불안이라기보다 사회/집단적 불안인 경력 단절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는 여대에 다녔고, 여대에서 사역했기 때문에 제 후원자 대다수가 같이 활동했던 친구들, 여성이에요. 출산과 육아를 하는 나이대에 진입하면 경력 단절을 겪는 분들이 많아집니다. 이건 여대 지부 간사들이 공통으로 겪는 일이에요. 경력 단절로 개인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도 발생하지만, 우정의 공간에서도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몇 년이 있더라고요. 언니들이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일이 반복되는 걸 봤어요. 이게 제 미래인 것 같기도 해서 괜히 더 슬펐어요.

불안한 감정을 극복하거나 해결하는 경제적 방법이 따로 있으신가요?

호민: 예금 정도만 하고 있어요. 제가 아내와 함께 재정 일부를 모으는 통장이 있는데요. 그건 우리가 아닌 다른 곳에만 사용하기로 약속해둔 통장이에요. 저는 오히려 이런 방법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것 같습니다.

대환: 저희 가정은 잠깐 불편한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해서 보유하던 자동차를 처분했어요. 평소 차를 사용하는 일이 많지 않은데, 가정에서 가장 큰 지출 중 하나가 차량 유지비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의 제안으로 차 없이 1년 동안 뚜벅이로 살기로 했죠. 지금 3개월 정도 됐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아낄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아껴보는 실천을 하면서 제 마음속 불안의 크기가 실제로는 작은 불편임을 경험하며 불안 요소들을 줄이고 있습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저도 그런 불안한 마음 때문에 희년소득을 시작했거든요. 여러분이 만약 희년소득을 어떤 단체나 공동체에 추천한다면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기독교 공동체에 먼저 얘기해주고 싶은데요. 요새 교회 안에서 젊은 세대는 큰 상실감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희년소득으로 어우러질 수 있음을 경험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대환: 나의 이웃들, 그러니까 제 주변과 가까이 있는 사람, 혹은 본인의 공동체 속에 생계의 시드머니가 없는 것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희년소득을 같이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싶어요. 그리고 경제적 나눔을 고민하는데, 구성원들 소득이 다 달라서 무언가 시도해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공동체가 있다면 이런 구조의 실험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선경: 제 주위에 있는 공동체와 제가 공부할 때 함께했던 젊은 전도사님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기존의 경제구조에 너무 익숙한 기성세대가 새로운 도전을 하기란 쉽지 않겠지요. 새롭게 목회 현장에 나가는 젊은 분들이 희년소득을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담사분들에게 제안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자격이나 노동강도는 비슷한데 급여 차이가 큰 직업이거든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희년소득을 실험하려는 공동체에 어떤 실질적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호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한 분들이라면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우리가 식사를 같이하면 ‘n분의 1’을 하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다 똑같이 1만 원을 내는 게 공평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람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1만 원의 가치는 다르잖아요. 이런 점이 공동체 안에서 불편함을 만들기도 하죠. 근데 만약 각자 수입에서 ‘10분의 1’을 모아서 식사비를 낸다면 조금 더 공평해질 것 같습니다. 이런 걸 경험해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시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카카오뱅크 모임 통장 기능을 이용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입출금 내역을 모두가 볼 수 있어서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고, 이름을 닉네임으로 설정하면 익명성도 지킬 수 있고요. 그래서 누가 얼마를 내는지, 누가 대출을 받았는지도 공개하지 않고 희년소득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해운: 저는 현실적으로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는 집단에서 시작하면 문턱이 좀 낮아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간사 공동체도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서로 간에 신뢰도 있고,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희년소득에 참여하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아까 송선경 지부장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경제활동을 너무 많이 하거나 소득 수준이 오랫동안 굳어진 상태라면 이런 시도를 하는데 저항감이 클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사람들이나 학생 단체에서 이런 모임을 만들어보면 더 수월할 수도 있겠네요.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지금까지 희년소득과 돈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우리가 ‘불안’과 ‘희년’ 사이를 오가면서도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이 가장 필요할까요?

대환: 우리가 돈을 버는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늘 기억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 땅에서 청지기로서의 소명과 정체성을 잘 지키는 거죠. 작지만 선한 실천과 실험이 여러 곳에서 시작되면, 강한 힘이 아닌 변방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요?

선경: 그냥 딱 한 단어로 ‘배려’ 같아요. 주변 사람들을 향한 작은 관심, 배려하는 마음만 있어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믿어요. 배려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순간, 돈에 사로잡히는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해운: 어려운 질문인데요. 떠오른 생각은, 제 경험상 ‘공동체로 사는 감각’ ‘공동체로 사는 삶’이에요. 그런 얘기 있잖아요.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세 사람을 보면 나를 알 수 있다는 말이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만나는 세 사람의 평균이 나라고 볼 수도 있죠. 어쨌든 주식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바보이고,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지는 세상에서, 돈이 아니더라도 서로 책임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큰 힘이 되더라고요. 제가 귀가 얇은 편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웃음)

호민: 희년소득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은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예요. 사실 누구라도 소득이 적으면 참여하기 힘들잖아요.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물론 소득이 높아도 부끄러워서 참여 못 할 수 있어요. 어떤 이유든 부끄러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진행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
정리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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