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호 에디터가 고른 책]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현존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토마토와 호박도 필요하고, 겨울철에 땅에 떨어진 씨앗을 즐겨 먹는 기러기와 박새도 필요하다.”
정교회 신학자, 교수, 정원 가꾸기, 사계절, 교회력, 명상, 각양의 인용문들…. 국내 출간된 기독교 서적 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조합의 책이 아니었다. 식물이나 정원을 다루는 도서들이 출판 시장에서 잘나간다는 말을 요근래 여러 번 들었던 터라, 기독교 쪽에서 그런 유의 책이 나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몇 장 훑어봤다. 결국 더 읽고 싶어서, 쓰기 위해 뽑아둔 다른 책을 책꽂이에 꽂았다. 마침 번역자도 맞춤이었다. 옮긴이는 여수 돌산에서 목회하는 목사로, 쉬지 않고 10년을 꾸민 정원에 대한 책 《정원사의 사계》를 출간한 바 있다. 우리말 번역을 정갈하게 한다는 소문도 건너건너 들었다.
계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원 풍경과 함께 버무려지는 문장들을 그야말로 다채롭게 즐겼다. 때론 정원 일을 하는 아저씨의 혼잣말을 듣는 듯하여 킥킥대기도 하고, 때론 심오한 묵상에 무릎을 쳤다. 뭇 생명에 대한 예찬을 보면서는 자연의 경이와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누릴 줄 아는 저자가 부러웠다. 저자의 유년 시절로도 함께 떠났다. 얇은 책인데 참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읽었던 것 같다.
다음번에는 책의 구성대로 교회력에 좀 더 유의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눈이 녹아서 대지가 아직 축축하고 차가운데도, 나는 여러해살이 화초가 심긴 화단의 가장자리에 무릎을 꿇고 크로커스와 수선화의 푸른 첫 움이 돋아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채원(菜園)으로 옮아가서 지난해의 묵은 덩굴들을 걷어내기도 하고 아스파라거스의 잿빛 죽은 순을 내려다보며 한 달 뒤 멋지고 푸릇한 새싹들이 두둑을 뚫고 솟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올봄은 더디게 왔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있다. 채원을 갈아엎어 고르고, 다년초 화단을 담요처럼 덮고 있는 밀짚들도 치우고, 묵은 잔가지도 잘라주어야 한다. 정원사는 봄을 알리는 첫 조짐들을 일종의 저항할 수 없는 초대, 곧 대지를 또 한 번 낙원으로 만들라는 초대로 여긴다.”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