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호 공간 & 공감]

아파트가 꿈이라니. 내 꿈은 오주아파트였다. 오주아파트가 ‘되고 싶다’는 말은 아니고, ‘갖고 싶다’라는 것이 아직 분명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오주아파트의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우리 동네에서 꽤 높은 건물이었던 오주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경비 아저씨의 삼엄한 수비를 뚫고 잠입에 성공한 날이면 하릴없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무섭기도 했지만, 신기했다. 그렇다고 자주 타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엘리베이터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 아파트 주민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고, 볼 일이 있지도 않은 내가 재밌고 신기하다는 이유만으로 엘리베이터에 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곳은 엘리베이터 말고도 다른 매력이 또 있었다. 바로 놀이터. 위용 있는 로켓 우주선 모양의 미끄럼틀이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네, 시소, 철봉까지 놀이터가 갖추어야 할 기본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놀이터 한쪽에는 등나무가 풍성하게 드리워진 벤치 구역도 있었는데 왠지 그곳에는 우리 엄마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1958년에 준공된 34㎡ 면적의 목조 주택이었다. 그 주택 부엌은 싱크대도 아니고 수돗가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나는 주로 그곳에서 씻겨졌다. 화장실은 그야말로 ‘볼일’만 보는 곳으로 세면을 위한 시설은 없고 배설물 처리를 위한 시설만 있는, 우리 집에서 가장 기능 집약적인 공간이었다. 안방은 주생활 공간으로 밥상을 펴면 다이닝 룸, 책상을 펴면 서재, 티브이를 틀면 여가 공간, 이부자리를 펴면 침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방에 다락이 딸려있었다. 다락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필요한 짐들이 있었고 한국을 빛낸 위인과 세계 동화 전집류가 있었는데, 출신이 미천했으나 실용적인 업적을 남긴 〈장영실〉 편, 딸만 주르륵 있는 우리 집의 운명을 가늠하듯 〈작은 아씨들〉을 주로 읽었다. 방과 다락, 주방과 화장실이 전부인 당시 우리 집은 산업화 열풍 한복판에서 여가와 프라이버시는 사치라 여기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여실히 드러내는 서민의 집이었다.

집의 대문을 나서면 기찻길이 코앞에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시에는 국철이라고 불렸던) 경의·중앙선과 시멘트, 석탄, 심지어는 탱크까지도! 다양한 물자를 실어 나르는 기차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고 갔다.

기찻길과 우리 집 대문 사이 작은 빈터를 동네 사람들은 ‘공터’라고 불렀다. 빌 공(空)에 터.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기찻길과 주택 사이에 있는 널따란 공간인 이곳은 동네의 마당 같은 곳이었다. 규모가 큰 빨래가 널렸고 고추, 가지, 호박, 고사리 할 것 없이 오만 가지 식물들을 나일론 돗자리에 널어 말리는 곳이었다. 떠돌이 개들이 방황하고 있었고, 동네 어르신이 키우던 원숭이는 한쪽에 묶여 사람 구경을 하다가 수가 틀리면 성질을 부리며 돌을 던지기도 했다. 자가용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주차된 차량도 거의 없었다. 주로 생계형 자동차인 택시, 트럭, 봉고차 정도 있었고 그 차량도 저녁이 다 되어서야 공터로 돌아왔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공터 평상에 앉아 부업으로 인형 배 속에 뽁뽁이를 집어넣거나 눈을 꿰매 달면서 아이들을 곁눈으로 돌봐주셨다.

이 공터에서 어린이들은 마음껏 뛰어놀았다. 아무것도 없으니 뭐든 할 수 있었다. 숨바꼭질, 얼음땡, 야구, 고무줄, 줄넘기, 땅따먹기, 다방구, 오래달리기까지. 그러다가도 무료함이 찾아오면 가끔 새로운 재미를 찾아 윗동네에 있던 오주아파트 놀이터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었다. 그곳에는 못 보던 친구들도 있었고, 놀이터를 기반으로 기구를 활용해 기존 놀이에 변주를 주면서 놀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오주아파트 한쪽 구석에 멀쩡해 보이는 장롱과 책상, 프라이팬과 국자, 크레파스와 인형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 줄도 모르고 곳곳을 뒤져 56색 파스텔이며, 실로폰, 자잘한 주방 도구들 같은 것들을 ‘득템’하고는 만족에 겨워했다. 놀이터와 폐기물 더미들을 오가며 놀던 날들이 지나고 아파트 입구에는 차단선이 처지고 사람들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입장이 금지된 이후로 몇 번을 더 기웃거렸는데, 갈 때마다 폐기물을 실어 나르던 트럭에 깔려 납작하게 죽어버린 비둘기들을 보고는 더는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꿈이었던 오주아파트는 무너졌고, 누군가의 꿈이 건설되었다. 주변의 다른 아파트 한두 곳과 함께 재건축한 덕분에 적정한 규모의 부지를 확보하였고, 지하 주차장이 넉넉한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재건축을 할 수 있다. 재건축이란 “정비기반시설은 양호하나 노후·불량건축물에 해당하는 공동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장 2조). 그 지역의 도로, 교통, 환경 등은 괜찮지만, 특정 건축물이 낡아서 생활이 어려우면 그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지어 공급하는 것이 재건축이다. (재개발은 재건축과 달리 동네 자체를 새롭게 기획하고 설계해서 건축물뿐 아니라 도로, 학교 등 그 기반 시설 일체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내게는 꿈처럼 멋져 보였던 오주아파트가 누군가에게는 ‘노후·불량’한 아파트였고, ‘개선’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파트는 더 이상 ‘집’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난 9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관련 기사가 나왔다. 〈서울신문〉(2023.9.14.)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268㎡(평 단위로 환산하면 81평형)의 아파트는 무려 180억 원이다. 기사의 제목은 “‘고소영’ APT 넘은 ‘방시혁’ APT 국내 최고가 아파트 등극”이었다. 이 기사 외에도 유명 연예인이 어느 아파트를 얼마에 샀으며, 그 아파트에 다른 유명인 누구누구와 대기업 총수도 여럿 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는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기사는 그들이 대출 없이 전액 현금으로 사들였다는 사실까지 알리며 읽는 사람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수십억을 넘어 백억 원대 아파트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디 사는 사람, 얼마짜리 집을 대출 없이 현금으로 살 수 있는 사람, 유력 인사들과 같은 수준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계층 상징일까. 개인 신변의 안전과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철저히 기능적인 선택지 중 하나였을까. 어쩌면 그들에게도 그 아파트가 ‘꿈’이었을까.

총선, 대선 같은 정치적 계절이 돌아오면 어느 당 소속할 것 없이 부동산 공약을 들고나온다. 10월 11일에 있었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소속 김태우 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 위촉식에서 “빌라를 아파트로”라고 세 번 외쳤고, “낡은 빌라를 아파트로, 한강변 오래된 아파트들을 초고층 새 아파트로 변모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약속하면서,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빌라를 아파트로”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내걸었다. 아파트에 진심인 것으로 보인다. 빌라가 무슨 죄라고. 핵심은 건축물의 형태가 아니라, 안전하고 편안한 주거 공간 아닌가. 그동안 정치인들이 ‘부동산’을 미끼로 민심을 얼마나 호도하였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마인드마이너 송길영은 그의 책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앞으로는 “답이 있는 문제는 AI가 풀 것이고, 인간은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는 역할로 분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126쪽). 자유로운 개인들의 약속을 기초로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노년은 빈곤해지고, 청년들은 좌절하고, 중년들은 집 하나만 남은 이 사회가 정말 괜찮은 것인지. 상상도 하기 어려운 금액의 아파트를 현금으로 사는 사람들과 수천만 원의 전 재산을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신용불량자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 끝내 세상을 떠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공존하는 사회가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인지 물어야 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중 몇몇은 이런 극단적 사회를 자살로, 비출산으로 탈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개인이 노력해서 얻은 정당한 대가로 고가의 아파트를 사서 상위 1%로 준거집단에 위치하는 것, 기술 발전으로 인한 근로소득의 암울한 미래가 더 선명해지는 시대에 아파트를 생산수단으로 삼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닐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부동산을 토대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이 사회가 괜찮은 건지 질문하지 않는 데 있다. 앞으로 답이 있는 문제는 AI가 풀 테니, 우리는 가보자. 이 혼돈 속으로.

박진영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공인중개사로 일한다. 책 읽기와 걷기, 여행을 좋아하고 “one life, live it”의 줄임말 ‘올리’로 활동하는 자기(self)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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