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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메이커의 ‘해피 엔딩’을 소망하며
[323호 민통선 평화 일기 07]
[323호] 2017년 09월 22일 (금) 16:40:46 정지석 국경선평화학교 대표, 목사 goscon@goscon.co.kr
   
▲ 은퇴하신 선배 목사님들의 '평화통일순례'는 인생이 엔딩 메시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진: 국경선평화학교 제공)

출애굽기에서 배우는 평화통일 메시지
철원에 와서 교회를 새로 열었다. 시골 개척교회이다. 분단의 현장 마을에서 개척하는 교회의 목표를 “평화통일을 위해 일하는 교회”로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평화의 씨앗이 되어 살자는 마음으로 교회 이름은 ‘평화의 씨앗들-철원교회’로 지었다. 영적 체험은 깊게, 형식은 간단한 침묵의 예배를 드린다.

교회에 처음 나오는 이들이 있어 처음 수년간은 예수님을 배우자는 마음으로 복음서를 읽고, 교회는 무엇인가를 배우자는 목표로 사도행전을 읽어왔다. 금년부터는 평화, 통일, 생명의 관점에서 성서읽기를 한다. 성경은 평화, 통일, 생명을 어떻게 증언하고 있는가. 이 답변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평화통일 운동은 믿음의 실천 운동이 될 것이다.

오늘은 출애굽기를 읽는다. 노예해방 이야기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평화통일의 메시지를 찾는다.

민(民)의 각성. 출애굽기는 민의 각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예도 주인도 없는 평등공동체 건설 이야기이다. ‘뿌리 깊은 노예의식은 다 씻어 버리고, 쓰라렸던 억눌림의 체험은 새나라 공동체의 기틀로 삼자.’ 이 출애굽 이야기에서 우리는 남북한 분단 70년 노예 시대를 탈출하는 해방의 평화통일 메시지를 배운다.

출애굽기를 읽으며 우리는 히브리 노예들의 발목을 잡았던 장애물 셋을 발견한다. 파라오 군대에 대한 두려움, 배고픔, 분열이 그것이다. 

노예 히브리들은 엑소더스(Exodus) 도상에서 추격해 오는 파라오 군대에 대한 두려움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모세를 원망한다(출 14:10-11). 그러나 반전이 있다. 노예들은 파라오 군대가 홍해 속에 수장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제국의 군대보다 더 강한 힘이 실재한다는 체험은 히브리 노예들을 새로운 각성으로 이끈다. 군사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은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짐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길이 있다. 이제껏 사람들이 찾지 않은 새 길이다. 그 길을 찾자. 더 강한 군사력만이 우리를 지켜주는 길이라는 고집은 옛 사고요, 그것이 바로 씻어내야 할 노예의식이다. 이것은 ‘군사력 안보주의 신화’를 맹종하는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메시지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핵무기로 대항하려는 북한,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의 위협 앞에서 사드 배치, 미사일 구입으로 맞서는 남한의 현실을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 그러나 희망의 길 또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출애굽 히브리들이 체험했던 새 체험과 각성, 이 메시지를 발견한다.

군사적 두려움 못지 않은 것이 배고픔의 두려움이다. 노예 히브리들은 해방의 길에 오른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배고픔을 겪는다. 배부르게 먹던 노예시절이 배고픈 해방보다 더 낫다 후회하고 불평한다(출 16:1-2). 그러나 해방의 길은 생명의 길, 죽으란 법은 없다. 단결하고 구하면 살 길은 있다. 만나와 메추라기의 체험이다. 배고파도 같이 배고프고, 매일매일 같이 먹고 남기지 않을 만큼 먹는 것, 이것이 평생 배고픔을 해결하는 길이다. 빈부격차 없이 사는 것이 배고픔을 해결하는 길이다. 자유와 평등, 정의의 삶이 배고픔을 해결한다. 이것 없이 경제 성장만 좇는 경제제일주의 신화는 다시 노예가 되는 망상이다. 출애굽 메시지에서 우리는 남북 평화통일의 길을 배운다. 배고파도 같이 배고프고, 배불러도 같이 배부른, 함께 겪고 나누는 이 따뜻하고 행복한 삶의 길을 우리는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통일의 새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분열. 뒤쫓는 파라오 군대도 없고, 배고픔도 해결되자 히브리 노예들은 서로 다투고 분열한다. 패거리를 만들고 싸우고 욕망껏 누리고 즐기고 지배하고 싶어한다. 급기야 금송아지를 만들어 헛된 이데올로기를 숭배한다(출 32:8-9). 금송아지 숭배는 노예의 의존의식, 사대주의 의식이다. 끝없는 욕망추구이다. 해방의 길에서 마지막 장애물일 것이다. 정신을 매일 다지는 길뿐이 없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모세는 시내산으로 올라간다. 신적 체험이다. 인간 욕망을 초월하는 실체적 진실의 힘과 만나야 한다. 하나임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스스로 자립 자존 자치하는 독립적 정신을 갖는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교육은 광야 해방 교육의 핵심이다. 평화통일의 길은 단순히 정치 경제 사회 통합에 그치는 일이 아니요, 새로운 인간성 형성이라는 정신적 각성의 차원까지 가야 하는 길이다.

동양의 현자 공자는 좋은 나라는 식량, 군대, 민(民)으로 이뤄지는데, 부득이하게 먼저 내버려야 한다면 군대를 없애고, 또 버려야 한다면 식량을 내버리라고 말한다.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민의 믿음이다. 민의 믿음이 없으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民無信不立). 이 가르침은 출애굽의 메시지와 통한다. 민이 평화의 신념, 공평한 경제생활, 스스로 서는 믿음으로 각성되는 사이 우리의 평화통일은 실현되어 갈 것이다.

인생의 ‘엔딩 메시지’
은퇴목사님들이 국경선평화학교를 방문했다. 평생을 일한 목회 현장에서는 물러났지만 평화통일을 향한 열정이 뜨거웠다. 어떤 면에서 목사에게 은퇴는 없다.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목사직이다. 은퇴목사님 가운데 국경선평화학교 개교 때부터 꾸준히 평화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소이산에 올라 평화통일 기도를 해오시는 두 분이 있다. 지역 교회 목회 현장에서는 은퇴했지만, 민족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민족 치유 목회를 시작한 것이다. 칠십, 팔십을 넘긴 나이에도 기상은 청년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시시때때로 경원선 기차를 타고 철원으로 오신다. ‘통일 출발역’인 백마고지역에서 내려 들판 길을 걸어서 소이산을 오른다. 소이산 꼭대기에 오르면 눈 아래로 남북녘 땅이 펼쳐진다. “주여, 이 민족을 구원하소서, 갈라진 남북녘을 하나 되게 하소서, 평화의 나라, 통일의 축복을 허락하소서.” 평소에 하지 않는 통성기도를, 소이산 정상에서는 목놓아 하신다. 이 두 분 목사님 중 한 분이 금년에 은퇴목사회 회장을 맡으셨고, 국경선평화학교 단체 순례여행을 결행한 것이다.    

평화전망대에 올라 바로 눈앞에 있는 비무장지대(DMZ)와 북녘 평강 고원을 보고 국경선평화학교에서 DMZ 평화통일 기원예배를 드린다. 말씀을 증거하는 순서를 맡은 나는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하나, 평생 목회를 해오신 선배 목사님들 앞에서 설교한다는 일이 마음 쓰였다. 노구를 끌고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땅, 분단의 철조망이 쳐진 비무장지대 땅을 밟으러 찾아오는 은퇴목사님들의 순례길 발걸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제는 끝을 예감하며 사는 은퇴목사님들의 방문 소식을 들으며 나는 아름다운 엔딩을 생각했다. 전쟁과 가난과 분단의 땅에서 평생 목회자로 살아 온 목사들의 DMZ 순례길은 감동적인 엔딩 메시지가 아닌가. 예배시간에, 나는 나의 이 감동을 전했다.

“선배 목사님들, 오늘 이곳에 잘 오셨습니다. 이곳은 아벨의 핏소리가 들리는 땅입니다. 분열과 불신과 살육의 이 땅은 민족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거니셨던 갈릴리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체험할 땅입니다. 평화와 통일의 소식을 전할 민족 복음 전도자의 땅입니다. 순교자들의 땅입니다.”

은퇴 목사님들은 마음깊이 뜨겁게 기도했다. 엔딩은 단순히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감동적인 엔딩은 새 시작이요, 희망이요, 부활이다. 철원에서 나 자신도 행복한 엔딩 메시지를 매일매일 쓰면서 살고 싶다. 국경선평화학교는 내 인생의 엔딩 메시지이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영화도 끝나면 엔딩 자막이 펼쳐진다. 슬프든지 재밌든지 혹은 지루했든지 간에 엔딩이 좋으면 전체가 다 좋은 것처럼 느껴진다. 감동적인 엔딩을 보면 영화는 끝났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마음에 남은 진한 여운 때문이다. 그래서 해피엔딩(Happy Ending)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남긴다.

어느 중국 크리스천의 질문
중국의 농촌 크리스천 지도자들, 목사, 농업대학 교수, 농촌개발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크리스천들이 국경선평화학교를 방문했다. 믿음의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들이다. 사드 문제로 여러 사람이 못 오게 되었다 한다. 그렇찮아도 중국인들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평화학교 소개와 함께 사드에 대한 질문이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성경적 지식에 관련된 질문이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최후의 날에 전쟁이 예정되어 있는데 평화운동을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평화운동이 신앙 운동이 될 수 있는가?

이 중국 복음주의 크리스천에게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과 한국, 미국의 갈등 문제, 북한 핵실험으로 일어나고 있는 한반도의 전쟁 위기라든가 전쟁 걱정은 크게 문제될 게 없다. 이런 일들은 죄인들의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세상 종말에 있을 최후 전쟁에서 결판날 것이다. 다만 참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일은 그런 세속사에 관심을 끄고, 오직 기도하고 성경읽기를 힘쓰면서, 닥쳐 올 환란을 어떻게 인내하며 믿음을 지킬 것인가에만 열중하면 된다, 그리고 주님의 부름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중국 친구는 이런 자신의 성경적 지식에 따르면, 나의 신앙적 평화운동은 모순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북한이 실험한 핵무기의 파괴력은 2차 세계전쟁 시 히로시마 원자탄의 수십 배에 이른다 한다.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것이 터지는 경우 한반도 전체에서 살아남을 생명은 없을 것 같다. 인간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은 멸망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사드를 빨리 배치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정치인들은 우리나라도 하루속히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중에는 신앙이 돈독한 크리스천도 있다. 만약 국제핵무기 금지조약 때문에 가질 수 없다면, 예전에 배치했다가 철수한 미군의 핵무기를 다시 갖다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갤럽 여론조사는 우리나라 국민 60%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데 찬성이라 한다. 반대하는 국민은 35%라고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이상 우리도 하루빨리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북한이 우리를 향해 핵무기 공격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안보심리 때문일 것이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효과적인 대응 방안일까? 이런 모든 복잡한 갈등과 분쟁들은 최후 전쟁으로 가는 것이기에 관심 끊고 믿음 지키는 일에 열중하자는 저 중국 크리스천처럼 사는 것이 나은 것일까? 성경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크리스천은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서 어떤 태도를 갖고 살아야 할까?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나를 생각한다. 그냥 하늘나라에서 최후의 전쟁 이후에 오는 크리스천을 기다리시면 되지 않았을까? 누가복음은 예수 탄생을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증언한다. 이 땅의 평화야말로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요 이유 아닌가.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주셨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Peacemakers)은 복되다.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게 될 것이다.”(마 5:9)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나는 살고 싶다. 제자로서의 이 소명을 최후 전쟁 때문에 버리고 살고 싶지 않다. 열심히 이 세상 분쟁을 따져보면서, 평화를 만드는 피스메이커의 삶을 살고 싶다. 피스메이커의 원조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정지석
휴전 상태인 한반도를 비롯, 전 세계 분쟁지역을 섬길 ‘평화 일꾼’(peacemaker)을 키워내는 국경선평화학교 설립자이자 대표. 한신대 신대원에서 신학(M.Div.)을 공부했고, 아일랜드 평화에큐메니칼대학원에서 에큐메니칼 평화학 석사(M.Phil in Trinity College), 영국 버밍험 우드브룩 퀘이커대학원에서 평화학 박사(Ph.D in Sunderland Univ.)를 마쳤다. 이후 한신대 신대원과 성공회 대학원에서 평화신학을 강의하고 새길교회 등에서 사역했다. 2010년 새로운 소명의 삶을 찾고자 미국 퀘이커 영성평화학교 펜들힐(Pendle Hill)로 갔고, 기도 가운데 ‘철원으로 가서 남북한 평화를 일구라’는 소명을 받고 2011년 9월 무작정 철원으로 들어와 2013년 3월 1일 국경선평화학교를 열었다. 본지 315호(2017년 2월호)에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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