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호 민통선 평화 일기 07]
▲ 은퇴하신 선배 목사님들의 '평화통일순례'는 인생이 엔딩 메시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진: 국경선평화학교 제공) |
출애굽기에서 배우는 평화통일 메시지
철원에 와서 교회를 새로 열었다. 시골 개척교회이다. 분단의 현장 마을에서 개척하는 교회의 목표를 “평화통일을 위해 일하는 교회”로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평화의 씨앗이 되어 살자는 마음으로 교회 이름은 ‘평화의 씨앗들-철원교회’로 지었다. 영적 체험은 깊게, 형식은 간단한 침묵의 예배를 드린다.
교회에 처음 나오는 이들이 있어 처음 수년간은 예수님을 배우자는 마음으로 복음서를 읽고, 교회는 무엇인가를 배우자는 목표로 사도행전을 읽어왔다. 금년부터는 평화, 통일, 생명의 관점에서 성서읽기를 한다. 성경은 평화, 통일, 생명을 어떻게 증언하고 있는가. 이 답변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평화통일 운동은 믿음의 실천 운동이 될 것이다.
오늘은 출애굽기를 읽는다. 노예해방 이야기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평화통일의 메시지를 찾는다.
민(民)의 각성. 출애굽기는 민의 각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예도 주인도 없는 평등공동체 건설 이야기이다. ‘뿌리 깊은 노예의식은 다 씻어 버리고, 쓰라렸던 억눌림의 체험은 새나라 공동체의 기틀로 삼자.’ 이 출애굽 이야기에서 우리는 남북한 분단 70년 노예 시대를 탈출하는 해방의 평화통일 메시지를 배운다.
출애굽기를 읽으며 우리는 히브리 노예들의 발목을 잡았던 장애물 셋을 발견한다. 파라오 군대에 대한 두려움, 배고픔, 분열이 그것이다.
노예 히브리들은 엑소더스(Exodus) 도상에서 추격해 오는 파라오 군대에 대한 두려움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모세를 원망한다(출 14:10-11). 그러나 반전이 있다. 노예들은 파라오 군대가 홍해 속에 수장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제국의 군대보다 더 강한 힘이 실재한다는 체험은 히브리 노예들을 새로운 각성으로 이끈다. 군사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은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짐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길이 있다. 이제껏 사람들이 찾지 않은 새 길이다. 그 길을 찾자. 더 강한 군사력만이 우리를 지켜주는 길이라는 고집은 옛 사고요, 그것이 바로 씻어내야 할 노예의식이다. 이것은 ‘군사력 안보주의 신화’를 맹종하는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메시지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핵무기로 대항하려는 북한,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의 위협 앞에서 사드 배치, 미사일 구입으로 맞서는 남한의 현실을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 그러나 희망의 길 또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출애굽 히브리들이 체험했던 새 체험과 각성, 이 메시지를 발견한다.
군사적 두려움 못지 않은 것이 배고픔의 두려움이다. 노예 히브리들은 해방의 길에 오른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배고픔을 겪는다. 배부르게 먹던 노예시절이 배고픈 해방보다 더 낫다 후회하고 불평한다(출 16:1-2). 그러나 해방의 길은 생명의 길, 죽으란 법은 없다. 단결하고 구하면 살 길은 있다. 만나와 메추라기의 체험이다. 배고파도 같이 배고프고, 매일매일 같이 먹고 남기지 않을 만큼 먹는 것, 이것이 평생 배고픔을 해결하는 길이다. 빈부격차 없이 사는 것이 배고픔을 해결하는 길이다. 자유와 평등, 정의의 삶이 배고픔을 해결한다. 이것 없이 경제 성장만 좇는 경제제일주의 신화는 다시 노예가 되는 망상이다. 출애굽 메시지에서 우리는 남북 평화통일의 길을 배운다. 배고파도 같이 배고프고, 배불러도 같이 배부른, 함께 겪고 나누는 이 따뜻하고 행복한 삶의 길을 우리는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통일의 새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분열. 뒤쫓는 파라오 군대도 없고, 배고픔도 해결되자 히브리 노예들은 서로 다투고 분열한다. 패거리를 만들고 싸우고 욕망껏 누리고 즐기고 지배하고 싶어한다. 급기야 금송아지를 만들어 헛된 이데올로기를 숭배한다(출 32:8-9). 금송아지 숭배는 노예의 의존의식, 사대주의 의식이다. 끝없는 욕망추구이다. 해방의 길에서 마지막 장애물일 것이다. 정신을 매일 다지는 길뿐이 없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모세는 시내산으로 올라간다. 신적 체험이다. 인간 욕망을 초월하는 실체적 진실의 힘과 만나야 한다. 하나임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스스로 자립 자존 자치하는 독립적 정신을 갖는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교육은 광야 해방 교육의 핵심이다. 평화통일의 길은 단순히 정치 경제 사회 통합에 그치는 일이 아니요, 새로운 인간성 형성이라는 정신적 각성의 차원까지 가야 하는 길이다.
동양의 현자 공자는 좋은 나라는 식량, 군대, 민(民)으로 이뤄지는데, 부득이하게 먼저 내버려야 한다면 군대를 없애고, 또 버려야 한다면 식량을 내버리라고 말한다.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민의 믿음이다. 민의 믿음이 없으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民無信不立). 이 가르침은 출애굽의 메시지와 통한다. 민이 평화의 신념, 공평한 경제생활, 스스로 서는 믿음으로 각성되는 사이 우리의 평화통일은 실현되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