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호 사람과 상황] 남북의 샬롬과 희년을 기도해온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 "우리 민족은 지난 100여 년간 강대국의 갑질에 의해 억울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바로 그 100년 이상 쌓인 민족의 트라우마가 이제야 풀리는구나 하는 기쁨이 아니었나 해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난 4월 27일 남과 북의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손을 맞잡고 남-북을 오간 역사적인 순간,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화면을 지켜보며 뜨거운 눈물을 쏟은 이가 내외신 기자들만이었을까. 그러나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지금, 4·27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의 감격과 환희는 ‘평양냉면’에 대한 열기를 남기고 서서히 식어가는 건 아닐까.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첫 통일부총리(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를 지낸 한완상 장로(81)에게 지난 4월 27일은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 몸소 겪은 일제강점기와 분단, 민족상잔으로 점철된 조국의 수난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분단된 조국에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는”(사 11:7) 하나님 나라의 샬롬이 임하기를 꿈꾸며 기도해온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북미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지난 5월 12일, 한 장로를 만나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의 의미를 차분히 톺아보면서 이 땅의 평화를 위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대해 들어보았다. 현재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인 한 장로는 2018 남북정상회담 자문단 위원이기도 하다.

― 6·12 북미정상회담이 발표된 시점에 이르러 4·27 남북정상회담이 꽤 시간이 지난 듯한 감이 듭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보셨을 텐데, 어떤 소회를 느끼셨습니까?
저도 방송으로 지켜봤는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보고 가슴 벅찬 기쁨과 함께 어떤 회한이 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쏟아지더군요. 스스로 이 눈물의 의미가 뭘까 생각해보았지요.

― 어떤 생각이었는지요?
우리 민족은 지난 100여 년간 강대국의 갑질에 의해 억울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바로 그 100년 이상 쌓인 민족의 트라우마가 이제야 풀리는구나 하는 기쁨이 아니었나 해요. 바빌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뜻밖에 이방 황제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광복과 해방을 맛보았을 때의 그 기쁨과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부총리를 맡게 되었을 당시 주님께 평화의 도구로 사용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면서 노력했던 일들이 20년이 더 지나 이루어질 것 같은 이 상황이 어떤 회한으로도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 회한으로 다가온다 하셨는데, 어떤 배경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시에 미국의 ‘아버지 부시’와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냉전 종식을 선언하면서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었는데, 그 여파가 1990-1992년까지 한반도에도 상륙했습니다. 남북총리급회담이 여덟 차례나 이어지고,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이 줄줄이 있었지요. 1992년에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합의하기도 했었고요. 한반도 평화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제가 통일부총리 임명을 받은 1993년에 북한 종군기자였던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를 북으로 귀환하는 계획을 대통령께 전달하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저도 여러 가지 곤혹을 많이 치렀습니다. 그해 3월에 한미 국방당국이 군사훈련 재개를 발표했는데, 아마 북한 군부도 분개했겠지요. 그 결과, 이인모 씨 송환 결정을 내린 3월 11일로부터 채 하루가 못 되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인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탈퇴 선언을 해버립니다. 나중에 한미 군사훈련 재개 배경을 알고 보니, 미국 네오콘(Neo-Con, 미국 공화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보수주의자들로 기존 보수주의자들보다 대외정책에서 더 강경함-편집자) 세력들이 아버지 부시 정부에 깊이 들어와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제 20여 년의 시간이 흘러 한반도에 평화의 조짐이 만들어지니까 회한이 드는 한편으로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지혜는 인간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그분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과 소망과는 다른 차원으로 작동하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께서 왜 20여 년 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최근의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도 ‘판문점 선언’ 지지 입장 발표들이 나왔습니다. 판문점 선언의 국내외적 의미를 어떻게 보시나요?
무엇보다 판문점 선언 전문에 나와 있듯,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선 안 된다는 의지가 확고합니다.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선 안 된다는 말을 성찰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이 말은 역사적으로 짚어 보면, 한반도 100여 년간 부당한 전쟁이 우리 조국에서 많았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부당한 전쟁은 한반도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갑질에서 기인하고 그 역사는 19세기말로 올라갑니다.

우선, 7년 여에 걸친 임진왜란으로 드러난 일본의 한반도 지배 탐욕은 100년 전부터 오늘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일종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악입니다. 1860년대 무렵 소위 서구 선진국들의 과학 기술과 학문 발달을 단시일 내 학습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 선진문물을 군사적으로 응용했지요. 1860년대에 그 학습을 일단 끝냈다고 보면, 응용한 힘으로 서양 군사기술을 도입하여 19세기말엔 벌서 동양에선 대항할 수 없는 강력한 군사 국가로 올라섰지요. 청일전쟁(1894-1895)에서 예상 못한 첫 승리를 거두며 자신감을 얻었고, 한반도를 발판 삼아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당시 주변 제국주의 열강인 러시아가 허락하지 않았고, 일본은 미국의 도움을 상당히 절박하게 바랐습니다. 지금도 비슷해요. 당시 미국 대통령이 시어도어 루즈벨트였어요. 러일전쟁(1904-1905) 중에 일제가 대한제국 고종 황제에게 제1차한일협약(1904)을 강요하고 중요한 국가 기관들을 일본 관리들이 접수한 사실이 있습니다만, 이는 새로운 대륙강국인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키워야겠다는 루즈벨트의 계획 하에 미국 인정을 받아 이뤄진 거예요. 그가 다음 후계자로 지정한 이가 바로 당시 일본 총리 가쓰라와 밀약을 맺은 태프트입니다. 1906년 9월 러일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7월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필리핀 총독으로 보낸 태프트는,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고 식민지 삼는 것을 미국이 묵인해주는 대신 일본은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드는 정책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밀약을 맺었어요. 남의 나라 땅을 놓고 몰래 서로 나눠 먹은 것이지요. 우리 민족의 본격 트라우마가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 이 역사가 4·27 판문점 선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비극적인 배경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강대국들의 패권 싸움과 이해관계, 특히 미국의 용인 하에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총체적 차별과 억압과 수탈을 당하고, 우리 민족이 기본권은 말할 것도 없이 역사와 언어와 신앙을 모조리 다 빼앗긴 고통의 상처가 외상 내상으로 얼마나 깊이 우리 민족의 삶속에 들어왔습니까. 이런 고통의 역사를 끝내야 한다는 의지, 전쟁이 한반도에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한반도를 상대로 외세가 갑질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4·27 판문점 선언에 들어 있다고 봅니다. 판문점 선언의 정신을 이해하려면 문장 표현 안에 깊이 담겨 있는 우리 민족의 억울한 아픔, 100년이 넘는 우리 민족의 고통을 봐야 해요. 그렇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용기를 내기도, 올곧은 방향을 잡기도 어려워지는 겁니다. 판문점 선언 1항 ①에 보면,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취임사를 주관한 팀장으로서 기억합니다만,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라는 표현을 넣었어요.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말이 뻔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 70년 역사에서 한 번도 스스로 민족 운명을 결정한 적이 없었지요. 부끄러운 일이지요. 판문점 선언은 곧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 역사를 고백한 겁니다. 

   
▲ 남북정상회담 명장면 중 하나로 곱힌 '도보다리 대화'. (사진: 2018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 판문점 선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꼽으신다면요?
1항에 보면, 남과 북은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한다는 문구가 나옵니다. 이 ‘전면적’이고 ‘획기적’이란 말을 주목하게 되었어요. 앞선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의 선언에도 좋은 표현들이 나오지만 하나도 실천이 없었거든요. 중계를 보면서 두 정상이 악수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행동이 바로 그 표현의 실천(행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 같았습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전에 실천 못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겁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약속한다 한들,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것을 고백한 거죠. 김정은 위원장은 할아버지, 아버지와는 다른 뉴 브랜드, 뉴 제너레이션이구나,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2007년 10·4 선언 때 자신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추진했는데 그 내용을 실천 못한 것을 잘 알잖아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국내 냉전세력이 언론과 자본을 장악한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요. 그런데 4·27 선언에서는 ‘이번에는 실천합시다’라는 의지의 표현을 선언문 여기저기에서 감지할 수 있었어요. 이전 정상회담들과는 전혀 다른 점이지요. 두 정상의 높은 수준의 결단을 나타냅니다.

― 판문점 선언은 실무적 조치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정상은 앞선 정상회담을 통해서, 실천 없는 정상회담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어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좋은 내용이 정상회담을 통해 선언이 되어도 실무자 선에서 꼬이면 정상들의 합의는 좌절된다는 사실을 두 정상이 알고 있기에,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실천하려고 할 겁니다. 남북 간 적대행위(대북·대남 방송)가 중지되고 있고, 곧 남북 군사회담도 열립니다. 이런 실천의 의미도 되새길 필요가 있어요.

― 앞서 하나님의 계획과 지혜가 우리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말이죠.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도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갈망한 때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 고생했던 유대 경건주의자들, 율법주의자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에 오셔서 왕으로 다스리는 식의 종말론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기원전 538년 이방 나라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가, 제 나라도 아닌데 귀한 결단을 내려 이스라엘이 해방을 맞지요.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곤혹스러웠을 거예요. 그러면서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당시로서도 놀라지 않았겠어요?

― 장로님이 25년 여 전 기도하신 평화가 이제야 다가오는 듯한데요.
그때 제 기도는 거의 무시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국회에서 정말 고초를 겪었고요. 왜 지금에서야 이 방식으로 주실까 신앙인으로서 생각해보면서 ‘우리의 기도가 잘못되었나?’ 되짚어봤어요. 내 기도도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런데 말입니다. 해방 후 70년이 지난 오늘도 마찬가지지만,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계속 기도해온 게 진짜 해방과 광복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교회가 세상에서 출세해서 권력을 가지고, 부를 쌓고, 더러운 명예를 얻게 해달라는 소위 ‘삼박자 기도’를 하면서 팽창하고 스스로 만족해온 모습을 보니, 그동안 우리가 잘못 기도해왔는데 아직도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걱정이 앞서요. 지난 4·27 정상회담을 통해 흘러오는 평화의 흐름을 막으려는 이들 중에 바로 ‘삼박자 기도’를 했던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평화의 촛불을 들 때 바로 옆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었던 사람들 말이에요. 앞서 북미회담 앞두고 벌써 남북회담이 멀게 느껴진다고 얘기하셨는데, 그 효력을 아예 없애려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을 겁니다. 한반도 평화는 정치적 사안으로만 볼 게 아니라 신앙적이고 교회적인 문제로 봐야 해요. 우리 믿음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성찰하고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어떻게 이 평화를 이어갈까 생각해야 합니다.

―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일까요?

   
▲ 후마니타스 펴냄 / 2017년

우리 역사를 보면, 교회가 역할모델 삼아야 할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1948년 4월, 상해 임정 요원이었던 애국지사 두 분이 38선으로 분할된 국토가 영영 두 국가로 분단되는 걸 막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어요. 아시다시피 백범 김구와 우사 김규식 선생입니다. 둘 다 기독교 장로였어요. 제가 지금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이 사실을 다시 회상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 기독교 평신도 중에는 이렇게 훌륭한 신앙 선배들이 있었구나’ 되새기에 되지요. 우사는 1910년대에 새문안 교회에서 장로가 되어 봉사했다고 해요. 관련 자료를 교회 측에 요청해놓은 상태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부패한 지도자들이 가득하고 도대체 신뢰할 인물이 없는 가운데, 역사 속 두 어른의 뜻을 돌이켜봐야 할 때입니다. 큰 테두리에서 민족주의자였던 백범과 우사 모두 오늘의 우리가  따라야 할 민족지도자의 정신과 신앙 선배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 어떤 점이 그러한지요?
두 사람은 당대의 예언자였습니다. 이미 남한에서 이승만이 ‘정읍발언’을 통해 단독정부 수립 의지를 표명한 상태에서 이를 막기 위해 북으로 가서 김일성을 만나 남북 분단으로는 가지 않도록 담판을 지으려 했으나 실패했지요. 이미 김일성도 소련의 도움을 받아 단독정부를 계획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으니까요. 남쪽으로 돌아오면서 우사는 38선에 꽂혀 있던 38선 표시 팻말을 뽑아버렸다고 해요. 그곳이 현재 판문점 근처일 겁니다. 김구 장로는 두 국가가 되면 민족상잔은 불 보듯 뻔하니 자신이 38선을 베개로 베고 죽더라도 민족 분단, 국가 분단을 막아야겠다는 결의를 하면서 돌아왔고요. 하지만 1948년 8월 15일에 서울에선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단독정부가 수립되었고, 25일 후 9월 9일 평양에서는 김일성이 조선인민공화국을 세웠습니다. 분단국가가 되고 난 후 2년 못 가서 두 어른이 예언자적 직감으로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민족상잔이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으로 일어났지요. 그러니 해방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한민족은 다시 강제된 분단의 고통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겁니다. 참 슬픈 역사지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분단을 막으려 한 두 민족지도자의 결단과 용기는 지금 2018년 오늘 현재, 남북 간 평화가 가까이 온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떠올려야 할 역할모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 종전과 평화체제가 현실화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 시점에,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고자 필사적으로 나섰던 두 신앙 선배의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 깊게 와닿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특히 우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사는 일찍 부모를 여의였어요. 6세 때 고아가 되어 언더우드 선교사가 새문안교회에 앞서 세운 고아원에서 돌봄을 받았고, 양자처럼 언더우드의 집에서 신앙과 영어를 함께 배우며 자랐어요. 20대 전에 버지니아 로노크 대학으로 유학을 갔고,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고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조국의 형편이 어렵고 일제가 조국을 삼키려는 현실을 보고는 곧바로 귀국하여 민족의 고난에 함께했지요. (이게 이승만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설치한 1910년 장로가 되었는데, 식민 통치가 점점 더 극심해지니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로 다시 나갔지요. 오늘날 기독교 신자라면, 앞선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행동들을 통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해봐야 해요.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종전 선언을 신앙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화라는 것은 단지 ‘전쟁 없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없을 뿐 아니라, 정의와 공의, 인권이 아름답게 세워지는 상태, 민주공화제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수준을 의미합니다. 그게 진짜 샬롬을 의미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병든 사람이 낫고 정신 질환의 상태에서도 벗어나 치유와 회복을 이루면서, 동시에 자기가 속한 사회와 역사까지도 바뀌는 것, 그게 평화 아닌가 합니다. 

― 그런데 앞서 한국교회 안에 잘못된 기도를 하면서 평화의 흐름을 막으려는 세력이 나올 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간 남과 북이 분단으로 왜 오랫동안 고통을 당했는지 생각해봅시다. 일본에 고통받고, 해방과 광복을 느낄 여유도 없이 분단되어 동족이 둘로 갈리고, 70년간 서로를 악마화하면서 살아왔어요. 이제 판문점 선언 이후로 그 모든 과거의 악을 끝내야 합니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지금도 계속 트럼프에게 북한에 압박을 가하라고 조르고 있어요. 익히 알려진 대로 아베는, 태평양 전쟁 당시 1급 전범이었다가 미국 정부에 의해 일본 총리가 된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입니다. 아베는 자기 외할아버지의 야망을 실현하는 데 장애 요소는 다 제거하려는 계산이겠지요. 우리 민족에 가한 고통을 치유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고요. 미국과 일본은 남의 나라니까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피해를 당한 우리 민족 내부에서 서로를 적대시 하는 상황은 이제 그만 끝내야 하지 않겠어요? 특별히 우리 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서, 분노해야 할 상황에 전혀 분노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친일, 친미하려는 행위를 하는 것은 당장 그만두어야 합니다. 일부 정치세력들처럼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희석하거나 심각하게 나쁜 방향으로 수정해가도록 충격을 주려는 사람이 교회 지도자 중에 있다면 제발, 제발 좀 멈춰야 합니다. 그들이 과연 하나님 나라 참 샬롬의 새 질서가 우리의 분단 상황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할까요? 만약 그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샬롬의 질서를 훼손하려 한다면, 한국교회에 과연 희망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런 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한국의 ‘예수따르미’들, 기독교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가 말하는 ‘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적 표현보다 실천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실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실천이었어요. 하나님 나라의 내용,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가장 잘 요약된 말씀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눅 10:30-37)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는 우리에게 ‘네가 아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가?’ 묻고 계십니다. ‘네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고 있느냐’를 묻고 계십니다. 복음의 핵심은 행동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이 사도‘행전(行傳)’이 아니라, 사도‘언전(言傳)’인 경우가 많아요.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일구는 사도‘행전’이 한국교회에서도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백범 김구, 우사 김규식, 몽양 여운형 선생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독립운동을 살피다 보면, 이것이 바로 한국적 사도행전 아닌가 합니다. 왜 요즘 한국교회에는 그분들처럼 풍찬노숙하면서 사회의 정의, 평화, 공의를 위해 힘쓰는 행전이 없나요? 왜 그분들처럼 자기를 비우는 케노시스(kenosis)의 실천이 발견되지 않을까요? 실천이 없으면, 그 문자가 상징하는 가치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 오늘 한국교회가 따라야 할 역할모델인 김구(좌)와 김규식

― 이 중요한 시기에 한국의 신학자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요?
우선, 북미회담이 실패하기를 기도하는 이들이 한국교회에 적지 않다는 사실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2018년 현 시점에 우리는 한국적 신학과 신앙의 테두리를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복음의 본질적 가치와 테두리의 넓이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신학계는 ‘평화신학’으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여기서의 평화는 앞서도 얘기했듯 단순히 전쟁을 막는 것만이 아닙니다. 구원을 포함한 평화, 즉 샬롬입니다. 개인 치유는 물론, 사회 치유와 역사 치유까지 포함한 총체적 구원이지요. 지금 내가 맡은 ‘3·1운동 임시정부 100년 기념사업’도 본질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이에요. 치유라는 것은 깨지고 조각난 것을 건강한 하나로, 전체로 다시 회복하는 일입니다. 우리 민족은 샬롬이 없는 가운데 강대국의 갑질로 큰 고난을 당해왔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한국 신학계는 그 고통을 이해하는 평화의 신학을 세울 수 있어요. 우리 민족의 억울한 고통을 신학적 신앙적 컨텍스트 삼아, 온전한 한국의 평화신학을 만들어내야겠지요. 그리고 분열되고 찢긴 이 세계에 샬롬을 전하는 신학을 실천해내야 합니다. 복음의 신학은 그런 것이지요.

― 앞서 말씀하신 케노시스(비움)가 ‘평화신학’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은 인간 세상 가장 밑바닥으로 오셔서 자기를 비움으로써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새 질서를 만드셨지요. 비움의 신학은 실천하기 어렵고 실천한다고 해도 괴롭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극도의 고통을 느끼는 순간까지도 원수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달고 채찍질하는 이들까지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잖아요. 예수의 그 기도를 들은 로마 장교(백부장)는 ‘당신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교육받고 믿어온, 로마황제가 신의 아들이라는 로마제국의 신학과 신앙고백을 부정하는 엄청난 반체제적 고백이었어요. 예수께서는 이렇게 이데올로기로 세뇌된 사람도 변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케노시스는 원수 사랑의 실천에까지 이르렀고, 마침내 부활의 영광을 입었습니다. 부활은 창조의 연속입니다. 평화가 없는 제자들에게 샬롬의 숨(rûah)을 불어넣으셨고, 이 숨의 힘으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여 샬롬의 새 질서를 세우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완전히 확립되는 새로운 세상은 한맺힌 억울한 눈물도 없을 뿐 아니라 사자가 소의 여물을 먹는 감동적인 새 질서의 세계입니다. 그게 참 평화이고, 제 간절한 꿈이기도 합니다. 제 자서전 제목을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라고 붙인 이유입니다. 부활의 그리스도 예수는 창조의 왜곡된 질서를 재창조하고,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셔서 온전한 공의와 샬롬의 새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4·27 판문점 선언을 목격하고 6·12 북미회담을 앞둔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복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판문점 선언에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전환이 언급됐습니다. 앞으로 열릴 북미회담의 성패 여부와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이 매우 중요할 텐데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평화체제를 확립하는 문제가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회담에서 다뤄질 겁니다. 회담은 판문점 선언을 존중하는 선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절실한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에 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날 거라고 봐요. 트럼프는 철저하게 실리적으로 접근하고 계산할 거예요. 그는 노벨평화상의 경제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절박하게 정상회담을 성공시키려고 하겠지요. 김정은 위원장의 절박함은 트럼프보다는 더 고상한 수준의 절박함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실패한 ‘인민에게 소고기국과 쌀밥 먹이기’를 이제는 정말 성공시켜야 하니까요. 지금 북한이 핵을 얼마나 보유했는지 모르지만, 20-50개의 핵탄두를 개발하고 미국 본토를 향해 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고 해도, 백성들이 굶어 죽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어요. 이런 절박함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은 성공할 것이고, 판문점 선언의 평화 기조를 이어가고 확산할 수 있으리라 봐요. 그러나 트럼프는 워낙 예측불가한 인물이에요. 우방국과 동시 서명한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는 것 보세요. 그런 점에서 북미회담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요.

   
▲ "요즘 같아서는 비록 완벽한 하나님 나라의 그 아름다운 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어렴풋한 윤곽은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지금 이 시기에 장로님은 매일 어떤 기도를 올리시는지요?  
먼저 ‘우리 민족이 진짜 해방과 광복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민족의 쥬빌리(희년)가 오게 해달라고 간청하지요. 통일되는 날 판문점에 모두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와 환희로 찬양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간절히 보고 싶습니다. 요즘 들어,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너무 늦게 해주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동안 기도를 잘못해왔나 싶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제 아버지는 신학의 깊이는 없었을지 몰라도 삶은 참 경건했어요. 아버지는 한국전쟁 중에 우리 9남매가 살기에도 비좁았던 집에 피란민 가족을 데려와 몇 달을 머물게 하셨어요. 그땐 아버지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버지 신앙을 제가 못 따라가니 부끄러울 따름이지요. 그래서, 한국교회에 그런 신앙이 회복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한국교회가 각성하게 해달라고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대형교회 목사들이 주님의 거룩한 몸 된 교회(복음을 ‘실천’하는 교회)를 더럽히는 일을 중단하면 좋겠어요. 아침마다 기독교방송을 통해 목사들의 설교를 접하는데, 그나마 요즘 몇몇 대형교회에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들 설교가 복음적이라서 은근히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새문안교회나 영락교회 같은 ‘마더처치’의 거듭남을 통해 메가처치를 개혁하시려는 건가 싶어요.

끝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이 상처받은 나라와 고난당한 민족에게 샬롬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요즘 같아서는 비록 완벽한 하나님 나라의 그 아름다운 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어렴풋한 윤곽은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하나님 나라가 태동하는 징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요. 조국 강산에서 그 징후를 보면서, ‘죽는 것도 유익하다’라고 고백했던 바울처럼 유익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진행_옥명호 편집장
정리_이범진·오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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