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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집사들의 모임 ‘청지기회’ 익명 인터뷰
[332호 사람과 상황] ‘낮은 자리’에서 교회의 민낯을 보다
[332호] 2018년 06월 26일 (화) 14:35:41 청지기회 poemgene@goscon.co.kr
   
▲ 청지기회는 친목과 예배 그리고 선교에 목적을 둔 관리집사들의 모임이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청지기회 임원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1990년 창립한 ‘청지기회’는 교회 안에서 ‘사찰집사’ 또는 ‘관리집사’로 불리는 이들이 만든 모임이다. 스스로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관리하는 종들의 결집 공동체”라고 정의한다. 교파를 초월해 친목, 예배, 선교를 목적으로 정기모임을 갖는다.

6월 4일 월요일, 청지기회 임원 10여 명이 모여 회의하고 있는 자리를 찾았다. 최소 20년 이상, 세 곳 이상의 교회에서 관리집사로 일하며 교회 문을 가장 먼저 열고 가장 마지막에 닫았던 이들의 눈으로 본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떨까?

이들에게 ‘갑질’ 문화가 만연한 교회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켜나갔는지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30년 가까이 된 모임인 만큼 종종 언론에 소개되기는 했지만, 갑질을 주제로 인터뷰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던 그들은 좌담 초반에는 다소 조심스러운 분위기였으나, 한두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마다 속마음을 털어놨다. “목사와 장로들의 갑질은 너무 많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식상할 정도”라는 탄식으로 시작되었다. 모든 인터뷰는 익명으로 처리했다.

― 요즘 한국 사회는 ‘갑질’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  
A: 우리나라 역사가 양반, 상놈 계급사회 아니었나. 그런 문화가 뿌리 깊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데, 사랑이 아닌 갑질하는 목사들이 너무 많다. 목사가 갑질할 때 무조건 인내하는 것은 믿음이 아닌데, 당장의 이익 때문에 참기도 한다.

B: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는 걸 믿는다면서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지 싶은 사람들도 참 많이 만났다. 특히 관리집사에게 막말하고 상처 주는 이들이 많다. 우리에겐 상처를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거나, 상대 입장에서 전혀 생각할 줄 모르니까 그러는 거겠지. 동료들 이야기 들어보면 거의 모든 교회가 그렇다. 자기가 갑질을 하면서도 갑질인지 모르고 하는 목사, 장로도 많다.

― 말들을 들으니 교회에서 관리집사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지지 않는 문제인 것 같다. 
C: 나는 안수집사 투표에서 거의 몰표를 받았는데, 대뜸 사직하라고 하더라. ‘우리 교회에서는 사찰집사가 권사나 장로가 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남선교회, 여전도회 등 집사, 권사 모임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도 많다. 일부러 ‘김 씨’ ‘이 씨’ 이렇게 부르는 장로들도 봤다.

D: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그 불똥은 꼭 관리집사에게 튀고 만다. 만만한 게 관리집사이니까, 큰소리치고 화풀이한다. 그래도 감수하고 참는 거지. 재정을 아껴야 할 때도 만만한 게 관리집사다. 자녀 학비를 지원해주기로 했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없는 형편에 정말 어려웠다.  

―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것인데, 해고에 대한 불안함은 없는지? 
E: 교회가 무리하게 건축을 하다가 재정이 어려워지니까 관리집사를 가장 먼저 자르더라. 다른 교회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교회가 세상보다 더 심하게 사람을 부리고 버린다. 우리야 하나님만 보고 여기까지 왔지만, 그때 청소년이었던 자녀들 상처가 크다. ‘목사’와 ‘교회’에 대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듯하다. 자기 부모에게 함부로 했기 때문에 싫다고 한다.

F: 갑자기 정년을 55세로 줄여서 관리집사를 내보낸 교회도 봤다. 관리집사 처우가 괜찮은 편이라고 소문난 교회도 점차 관리집사를 없애고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한다. 교회 재정 형편에 맞추는 처사라 이해도 하지만, 관리집사들에게는 생사가 달린 생업이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통보할 수는 없을 거다.

― 교회 내 직분이 ‘신분’으로 굳어진 것 아닌가?
G: 예전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이었던 목사가 관리집사 뺨을 때린 일도 있었다. 카센터에서 자동차 수리하고 있는데 같이 있던 관리집사가 가격 흥정을 할 때 자기편 안 들고 가만히 있었다고 때렸다더라. 청지기회에서 피켓 들고 시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모임 원칙 중 ‘권리 주장을 위한 단체행동을 배제한다’가 있어 참고 기도만 했다. 나중에 그 아들 목사가 사과하고 사모님이 무릎 꿇고 빌어서 수습됐다. 나중에 그 목사가 교회를 아들한테 세습했다가 크게 망신당했더라.

H: 자동차 보닛 열어서 관리집사에게 깨끗하게 닦으라고 했던 목사도 있었고. 이런 이야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 앞서 ‘관리집사는 안수집사나 장로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이 있는 교회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뭔가?
I: 행정 차원의 이유도 있을 거다. 교회 직원이 장로로 있으면 여러 가지로 곤란한 일들이 생길 수 있으니….

J: 관리집사를 자기들보다 아래로 보니까 그런 것 아니겠나. 거의 대다수 교회가 그렇다. 관리집사를 편하게 부려야 하는 데 장로이면 그게 좀 껄끄러우니까. 다른 교회에서 장로인 사실을 숨기고 관리집사로 들어갔다가 들켜서 거짓말로 문제가 된 분도 있다. 그분은 교회를 옮겨 아직도 ‘집사’로 있다. 장로가 되어 관리집사를 그만둔 분도 이 모임에 계신다. 

― 청지기 관점에서 교회가 가장 먼저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K: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향해 더 애틋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교회 안에 그런 모습이 몹시 부족하다. 우리끼리만 즐거우면 그게 무슨 교회일까?

L: 목사가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목사가 어깨에 힘주고 뻣뻣하게 다니면 장로, 안수집사들도 닮아간다.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권위 의식을 내려놓고, 교회의 ‘머슴’으로서 거듭나야 한다. 

《교회용어사전》(생명의말씀사)에 따르면, ‘관리집사’는 예배를 위해 교회 문을 여닫는 일을 비롯하여 예배 처소 및 부속 건물과 비품 일체를 유지·보수·관리하는 교회 직원이다. 이어 ‘전기·수도·음향시설(방송실)·차량 운행·주차 봉사·청소에 이르기까지 예배의 거룩함과 교회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교회의 제반 일을 도맡아 담당하는 직책’으로 정의하고 있다. 구약 시대에 성전 제사를 돕고 관리하던 레위 지파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거의 모든 관리집사의 하루는 새벽 3시 30분에 시작된다. 교회 문을 열고 새벽기도회를 준비한다. 종일 교회의 모든 생명과 시설을 돌본다. 20~30년 매일 반복한 일들이다. 그나마 오후 6시에 퇴근할 수 있으면 ‘괜찮은 교회’로 통한다. 화장실도 없고 환기도 안 되는 지하 방에서 시작한 이들이 대다수다. 교회마다 차이는 있지만 부부가 ‘세트’로 일한다. 보통은 남자가 ‘정식’으로 고용되고 여자는 ‘보조’다. 아내가 직업이 따로 있거나 보조 업무를 할 수 없으면 지원 불가능하거나 고용이 취소되기도 한다. 그러나 급여는 한 사람 몫만 지급된다.

이들은 그동안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교회를 위하여’ 참아왔다. 앞으로도 계속 참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모인 대다수 관리집사는 ‘오직 하나님 은혜로 살았다’고 고백했다. 다만, 교회의 청지기로서 벼랑에 몰린 교회를 구하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어렵게 입을 연 것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심층 인터뷰를 청했고, 관리집사 28년 차인 M 집사가 용기를 냈다.

   
▲ 다달이 나오는 청지기회 소식지 ⓒ복음과상황 이범진

  

― 익명 인터뷰라고는 하지만 내용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누구인지 알아차릴 텐데, 그럼에도 시간과 용기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리집사로 28년을 보냈습니다. 은퇴할 나이도 얼마 안 남았어요. 남편(관리집사)도 이제 그만하자고 해요, 질린다고.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좋은 것만 간직하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가슴이 갑갑하다가도 기도원 가서 하나님께 다 쏟아내고 내려오면 마음이 시원해요. 그러면 다시 일하는 거고요. 보잘것없는 제 이야기가 교회에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감사한 일이지요. 특히 이런 고백을 계기로 후임 관리집사를 비롯해 모든 관리집사들의 사역 환경이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 ‘청지기회’ 회장을 두 차례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관리집사들의 모임이 있는지도 몰랐는데요. 청지기회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어요?
그러게요. 저는 여자인데도 두 번이나 회장을 했어요. 청지기회는 교제와 친목, 예배와 교육, 구제와 선교 등을 목표로 하는 관리집사들 모임이에요. 1년 6개월 뒤면 30주년을 맞습니다. 제가 관리집사로 일한 횟수와 비슷해요. 많이 모일 때는 300명 이상도 모였는데, 요즘에는 30명 정도 모여요. ‘노조’ 아니냐면서 아예 모임에 못 가게 하는 목사들도 있는데요. 봉사도 자주 다니고, 개척교회도 꾸준히 돕고, 선교비도 거의 빠지지 않고 20년 넘게 지원하고 있는 모임입니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지난 간담회(임원회의) 때 집사님들의 밝은 모습들 뒤에는 상처가 정말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다들 교회에서는 참다가 청지기회에 나와서 풀고 갑니다. 지난 모임 때 다 들으셨겠지만, 갑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아요. 그럼에도 교인들 중에는 우리의 고생을 잘 알고 챙겨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마음의 위로를 얻지요. 한쪽에서 상처 주면, 다른 쪽에서 위로를 얻고. 그렇게 30년 버틴 것 같아요.

― 직접 겪으신 일 중 기억에 남는 일 하나를 이야기해주신다면요?
한번은 동네 카센터에서 교회 차 수리를 하고 있는데, 장로 한 분이 와서 도중에 차를 갑자기 빼더라고요. 성질을 버럭 내면서, 왜 자기 친구가 운영하는 카센터로 가지 않았느냐는 거예요. 급할 때는 어찌 그럴 수 있나요? 카센터 직원이 얼마나 황당해 했던지 ‘내가 저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 안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일들이 계속 쌓이는 거예요. 남편은 이제 나이도 많은데, 열 살이나 어린 장로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자존심이 상하나 봐요. 나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잖아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현장 상황을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일방적으로 시키니까 더 어긋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전 교회에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관리집사 의견을 묻고 그랬는데, 여기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 ‘현장을 너무 모르고 일을 시킨다’는 것은 예를 들면 어떤 건가요?
지금 당장에 비가 새는 곳이 있으면 그곳을 고쳐야 하잖아요. 그런 데는 돈을 안 쓰고, 건물을 치장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편이죠. 교회가 3년 내 재개발이 될 거 같아요. 허물어질 건물에 돈을 많이 들일 필요가 없잖아요. 자식들은 어렸을 때부터 많은 교회를 다녀봤으니까,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교회 예산을 어디에 쓰는지만 봐도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더라고요.

― 간담회 때 들으니 관리집사 자녀들도 상처를 많이 받고 있던데요.
저도 염려를 많이 했어요. 관리집사인 엄마, 아빠를 보고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하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우리보다 더 신앙이 좋은 것 같아요. 그게 너무 감사한 일이고 다행인 거죠. 아들은 목사가 되어 지금 일본에 선교사로 가 있어요. 누나가 하는 말이 “미친놈아, 할 게 없어서 목사를 하냐”고.(웃음) 그러더니 최근에는 일본에 가서 동생에게 자전거도 사주고 왔더라고요.      

― 관리집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시골의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요. 초등학교 동창 중에 목사가 된 친구가 ‘시골에서 애들 교육 어떻게 할 거냐’고 걱정해주면서 한 교회를 주선해주었어요. 처음 상경해서 방배동에 있는 교회로 갔지요. 그때 시골 교회 목사님이 아버지 같은 분이셨어요. 무척 서운해하셨는데, 떠나기 직전에 용달차 끌고 찾아가 기도를 받았어요. ‘눈 감고 3년, 귀 닫고 3년, 입 막고 3년’ 있으라면서 기도해주시고 10만 원 봉투에 넣어주시더라고요. 1992년이었는데, 저희 부부에게는 정말 큰돈이었어요. 

― 첫 교회는 어땠나요?
7년을 그 교회에 있었는데,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슴엔 좋은 기억들이 주로 남아 있어요.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인데, 제가 늘 교회 식당에 묻혀서 나오질 못하니까 남편이 마음이 아주 아팠나 봐요. 그때 사례비를 (둘이 합쳐) 70만 원 받을 때인데, 자녀들 중학교 들어가니까 아무리 아껴 써도 그 돈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더라고요. 다른 교회 알아보고, 첫 교회에는 사직서를 냈어요. 그랬더니 목사님과 사모님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사직서를 냈느냐고 우시더라고요. 호텔 식당에서 송별회 해주시면서, 친정이라 생각하고 언제든 오라고. 좋은 분들 많았어요. 옮긴 교회 근처에 올 일 있으면, 꼭 들려서 저희 얼굴 보고 가는 교인들도 있었고. 정말 친정 같은 교회였지요. 아들은 거기서 만난 친구들 일곱 명과 의형제를 맺었는데, 그 일곱 명이 지금 다 목회를 하고 있어요. 나중에 저희가 교회 옮긴지 모르는 성도들 수십 명이 안수집사 권사 뽑는 투표에 우리 이름을 썼다고, 한턱 내라는 전화도 받고.

   
▲ ⓒ복음과상황 이범진

― 두 번째 교회는요?
대체로 잘 지냈어요. 사례비도 첫 번째 교회보다는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한 가족이라는 느낌은 많이 못 받았어요. 교회 차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장로들이 보험처리를 안 해주면서 우리 돈으로 다 처리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했죠. 보는 입장에 따라 별일 아니라 여길 수 있지만, 이런 일 하나하나가 스멀스멀 가슴을 조여와요. 교회가 겉보기엔 좋았는데 빚이 좀 많은 상태였어요. 한 번은 우리가 적금 부어서 곧 2천만 원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수석 장로가 와서 그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왔어요. 우리는 당장 필요하진 않았으니까 1천만 원을 빌려드렸죠. 이자도 주는 데 안 받았어요. 급한 일 생기면 그때 원금만 달라고 했죠. 2년이 안 되어서 급히 쓸 일이 생겨 달라고 했더니 돈을 주고, 얼마 뒤 목사가 우리에게 나가라고 하대요. 그날이 우리 딸이 수능시험 보러 가는 날이었는데…. 딸 기도해주려고 부르시나 했는데, 황당했어요. 눈물도 많이 나고. 우리가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않을 줄 알았나 봐요.

― 남들에게 말하기는 뭐 한 치사한 일들도 정말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관리집사들은 주로 참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런 ‘치사한 일’들이 때로는 큰 상처가 되잖아요.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님네 김장을 대신해준 적이 있었는데, 들었던 비용 영수증을 하나하나 다 가져오라고. 써서 가져가면 되죠 뭐. 그 통화하는 걸 들었던 딸이 밖에 나가서 사모에게 전화를 했어요. ‘담임목사 사모면 똑바로 하라고, 김장을 해줬으면 고맙게 여기’라고요. 교회가 발칵 뒤집혔어요.(웃음) 아들이 가서 대신 사과하고. 얼마 뒤 사직서 냈어요. 그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쌓이고 쌓이는 거죠. 그때 초겨울이었는데 목사님께서 저희 떠나 보내주시면서 우시더라고요. 밥 사주시면서 힘들었던 것 안다고, 다 잊어버리라고. 대체로 담임목사님들은 잘 만난 것 같아요. 지금 목사님도 늘, ‘다른 분들이 관리집사님들 힘들게 하니까 나라도 아무 말 안 한다’고 하세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말들이 정말 큰 힘이 돼요. 3년 전에 사직서를 냈을 때는 보는 자리에서 북북 찢어버리시더라고요. 다시 한번 잘 해보자고, 진솔하게 이야기해주시니까 애틋한 마음도 들고…. 식구처럼 정이 들어가는 거죠.

― 많은 교회가 건축을 하거나, 재개발을 기다리면서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관리집사에게로 가는 것 같습니다.  
무리하게 건축하다가 빚지는 교회 정말 많고요, 재개발만 기다리면서 아무 일도 안 하는 교회도 많아요. 15년 전에 재개발된다고 했던 어느 교회는 아직도 재개발이 안 되고 있어요. 우리가 장로와 안수집사를 뽑는 이유는, 영혼 구원이나 선교를 하기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뒷짐 지고 큰소리나 지르며 헤집고 다니는 것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죠. 그런 교회들은 성도 수도 팍팍 줄어요. 1천 명 교회가 2백 명으로 줄어드는 것도 금방이에요.

― ‘뒷짐 지고 헤집고 다니는’ 이들은 그게 갑질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요즘 부목사들은 자기 옆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분이 많더라고요. 멀리 있는 저보고 주우라고 해요. 어찌 보면 작은 일이지만 그런 게 다 사람 됨됨이를 드러내거든요. 그게 갑질이라고 알려주면 변하는 목사들도 있어요. 환기도 안 되고 화장실도 있지 않은 지하 방을 관리집사 사택으로 40년 동안 쓰고, 다음 후임자에게 넘겨주다가 혼이 난 목사도 있어요. ‘당신이라면 거기서 지낼 수 있느냐’고 따지는 분에 의해 깨달은 거죠. 그때서야 새 사택을 얻어주더라고요. 요즘 부목사님들은 이제 다 아들뻘이니까, 좀 여물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친절하게 잘 알려주려고 해요. 목사 길 걷는 아들 생각하면서요. ‘내 아들도 저렇겠지’ 하면서요. 교역자 세계에 의지했다면 두 달도 못 버티고 그만뒀을 거예요. 하나님만 의지하며 왔으니 30년을 온 거죠.

― 30년을 일하셨으니 나름의 원칙 같은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세 가지인데 첫째는 교인들에게 화내지 않기, 둘째는 교인들 이야기에 ‘네’하고 들어주는 것, 셋째는 근무 시간에 자리 지키는 거예요. 근무 시간 외에 자리에 없는 것을 가지고 ‘너무 사무적’이라고 불만인 분들도 있는데, 원칙을 지키지 않다 보면 모든 일정이 엉키고 다음 날 일정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에요.
 
― ‘화내지 않기’가 원칙이라고 하셨는데,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은 잘 숨겨지지 않잖아요. 불쑥불쑥 올라오는 화를 어떻게 다스리세요?
찬양을 더 많이 더 크게 불러요. ‘힘들어 죽겠네’가 아니라 ‘살겠네~, 살겠네~’ 하면서 찬양해요. 그럼 목사님이 나와서 “또 누가 화나게 했느냐”고 물어요.(웃음)

― 물질적으로 항상 부족하게 살아왔을 텐데요. 물질관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하나님께 드리면 채워주셨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간 남을 때 폐지 모아서 동주민센터 가져가 휴지로 바꿔서 교회 물품으로 쓰기도 하고, 폐품 수집한 거 팔아서 돼지저금통에 넣어 다 차면 헌금으로 내고 그랬어요. 저금통 하나에 20만 원 넘게 들어 있을 때도 있었거든요. 이렇게 하면 꼭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더 큰 은혜를 주시니까. 재정적으로 쫓기면서도 자식들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킬 수 있었어요.

― 곧 은퇴를 앞두고 계신데요.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우리 다음에 오는 관리집사들은 ‘다 같은 교회 집사님이다’ 생각해주세요. ‘월급 받고 일하는 머슴’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똑같은 교회 집사님으로 대해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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