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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와 폭력, 이 시대 교회의 숙제
[332호 커버스토리]
[332호] 2018년 06월 26일 (화) 14:52:52 박유미 goscon@goscon.co.kr

현재 우리 사회는 권력에 눌려 그동안 침묵해야 했던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미투운동이나 남양유업 대리점 갑질 사건, 최근에 또 한 번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한진 일가 갑질 사건 등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억압과 착취의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가부장으로 대표되던 서열에 따른 권력관계가 무너지고 사회가 평등과 인권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징표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교회도 우리 사회의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교회는 한국 사회의 유교적 문화와 성경의 가부장적 문화가 결합한 매우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교회 문화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로 교회 안에 다양한 형태의 위계, 이런 위계로 인한 차별과 폭력 또한 다양하게 이루어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목회자와 교인 사이의 위계, 남녀 사이의 위계이다. 교회는 서로 형제자매로, 서로 지체로 여기기보다는 다양한 위계 관계로 서로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위계 구조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목회자와 교인 사이의 위계, 성별에 따른 위계, 교회 직위에 따른 위계 이렇게 세 항목에 대해서 위계의 성격과 문제들을 다루려고 한다.
 
1. 목회자와 교인 사이의 위계
교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위계 관계이다. 교회에서 가장 큰 권한은 교인으로 구성된 ‘공동의회’에 있다. 하지만 목사가 성찬권과 축복권을 독점하고, 대부분의 설교를 담당하며, 당회의 장을 맡고 있어, 모든 영적 행정적 권한이 담임목사에게 쏠려 있다. 담임목사는 교회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유교적 가부장 사회 속에서 아버지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종종 목사를 ‘영적 아버지’로 교인들을 ‘자녀’로 비유하기도 한다. 물론 청빙받은 담임목사는 당회와 권력을 나누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권위가 가장 높다. 이렇게 가장 높은 권위는 교회에서 권력으로 작동한다.

설교를 통해 목사에게 축복권과 저주권이 있다며 목사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협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직접적인 방법 말고도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라며 죄의식을 심어주기도 한다. 또한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 예배 및 기타 예배의 참석을 강조하고 이것을 못하면 성실한 교인이 아니고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간주하며 죄의식을 심어주며 압박을 가한다. 목사는 그리스도인의 다른 덕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오직 목사에 대한 순종과 교회에 대한 헌신과 헌금만을 신앙생활의 척도로 내세우며 교인들을 조종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말을 못하게 입막음하는 것이다.

더 심한 경우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교인들을 설교로 계속 공격하여 상처를 주고 결국 교회를 나가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내쫓는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교회 내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렇게 목사는 영적 권위를 독점하므로 설교와 기도, 성경공부 등을 통해 교인들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고 협박과 언어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목회자와 교인 사이의 위계는 목사와 장로의 관계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법적으로 보면 목사와 장로는 같은 장로이지만 교회 내에서 목사와 장로의 권위는 분명히 다르다. 행정적인 부분에선 당회에서 같이 의논하고 결정할지 모르지만 목사에게 반대했을 때 설교나 기도를 통해 받는 협박과 언어폭력은 일반 교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권력이 담임목사에게 집중된 결과, 영혼을 살리는 복음이 영혼을 죽이는 무기로 변질되었다.

2. 성별에 따른 위계
교회에서 목회자와 교인 다음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위계가 바로 성별에 따른 위계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잠잠하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여성이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등 성경에 몇 번 나오지 않는 여성 차별적 구절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문자적으로 그대로 사용한다. 다른 본문들은 당시의 문화와 생활 습관 등을 고려하는 문화적·사회적 역사적 해석을 적용하면서도, 정작 여성 관련 본문에 한해서는 문자적 해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해석의 바탕에는 여성을 남성보다 낮게 보는 유교적 가부장적 문화가 있다. 즉 교회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여성 차별적 설교와 말들은 성경의 사상을 반영하기보다는 설교자와 한국 사회 가부장적 문화를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회에서 남녀 차이를 이유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은 설교와 직분과 봉사와 개인적인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행해지는데 다음과 같이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담임목사와 장로는 대부분 남성이고, 여성에게는 목사와 장로 직분을 안 주는 곳도 아직 많이 있다. 이것은 여성은 잠잠하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교리와 여성은 열등하다는 가부장적 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여성이 목사와 장로가 될 수 없거나, 여성이 목사나 장로가 될 수 있기는 하지만 숫자가 매우 적어서 생기는 문제는 여성들이 교회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교회의 실제적인 일은 대부분 여성 교인들이 하는 상황에서 남성들만 모인 당회와 남성 목사는 교회 일을 결정할 때 여성들의 의견은 묻지 않고 결정하고서 여성 교인들에게 결정 사항을 하달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한다. 마치 상사가 부하에게 일을 지시하는 것과 같은 일이 교회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여기서 목사나 당회의 지시에 여성 성도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순종하지 않는다느니 믿음이 없다느니 억세다느니 하는 영적·언어적 인신공격을 가해 그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든다.

둘째는 여성의 의무만을 강요한다. 매년 5월만 되면 교회에서는 가정의 달이라며 가정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어린이 주일엔 ‘엄마가 잘 가르쳐야 한다’고, 어버이 주일엔 ‘시부모에게 잘하라’고, 부부주일에는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면서 가정에 대한 책임을 전부 여성에게 지운다. 특히 부모에 대한 순종과 남편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며 여성의 헌신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설교가 상당히 많다. 시부모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며느리나, 남편의 학대로 고통 받는 아내는 어려움의 원인이 여성에게 있고 여성만 잘하면 해결된다는 식의 설교를 들으며 죄의식으로 괴로워하거나 상처받고 고통당한다. 학대받는 여성에게 남편을 위해 기도하며 순종하라고 한 페이지 페터슨 미국 남침례회 신학교 총장의 사례는 교회에서 여성을 어떻게 학대하는지 잘 보여준다. 남편이 가정의 머리라고 말하며 남편의 권위만을 강조하고 아내에겐 의무만 강요하는 설교가 여성이란 이유로 받아야 하는 가장 큰 폭력이다.

셋째로 여성은 쉽게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노출된다.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에는 두 가지 위계가 작동하는데 하나는 목회자와 성도라는 위계이고 또 하나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위계다. 남성 목회자가 여성 교인들에게 쉽게 접근하고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은 목회자라는 우월적인 지위 때문이다. 영적 아버지나 조언자라는 권위를 이용해 접근하고 마음을 열게 한 뒤에,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해야 한다거나 여성은 남성을 모성적으로 감싸야 한다는 등의 여성성을 강조하며 관계를 갖게 해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특히 어린 여학생들이나 여자 청년들의 무지와 연약함을 이용하여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성폭력이 들통 나면 여성을 유혹자나 꽃뱀으로 몰며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행세하여 피해자들에게 2차 3차 가해를 하고 결국 교회에서 쫓아낸다. 이런 경우에 교회 공동체가 절대적 지위와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남성 목사의 말을 믿고서 목사에게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 목회자가 저지르는 성폭행은 단순한 충동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인 서열 관계 속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해서 일어나는 범죄이다.

네 번째는 결혼관계 속에서 오는 위계가 교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이다. 주로 시집 식구들과 같은 교회를 다니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결혼하면서 시집 식구들이 다니는 교회에 남편과 함께 나오기 시작한 경우에, 작은 교회는 모든 교회 어른들이 시집 식구처럼 여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평가한다. 여성을 교회에 새로 온 교인이 아니라 어느 집 며느리, 누구의 아내로서 시집과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만 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여성은 가정에서 느끼는 위계를 교회에서도 그대로 느끼고 교회 가는 것이 조심스럽고 두렵게 되고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소외된다.

교회는 본래 하나님께 순종하는 곳이지 목사나 장로와 남성들에게 순종하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교회는 남성의 말을 따르는 것이 곧 신앙인 것처럼 포장하고 여성을 억압한다.

3. 교회 직위에 따른 위계
현재 교회에는 다양한 직위와 직분이 계급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사역자의 경우 담임목사, 부목사, 전임전도사, 교육전도사, 관리집사의 직위가 있는데, 이 직위들은 철저히 계급화되어 있다. 부교역자들은 담임목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담임목사 목회 보조 역할로 한정된다. 또한 부교역자들 사이에서도 부목사와 전도사가 상하관계처럼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사역자를 동역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고 폭언을 하기도 하며 과중한 업무를 부과하고 개인적 일을 시키기도 한다.

또한 부교역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사례비의 불공정성으로 인한 착취이다. 부목사나 전도사의 경우 담임목사에 비해 지나치게 사례가 적은 곳이 많다. 많은 부교역자들이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로 고통받는다. 현재 교회는 교회 안의 경제적 약자를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직위 문제에 있어서 여성 안수를 주지 않는 교단에 속한 여성 전도사의 경우,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는다. 일반적으로 부교역자가 겪는 어려움과 더불어 자신보다 어린 남성 부목사의 반말과 명령과 무시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한 예다. 목사와 전도사를 계급으로 알고 전도사는 목사에게 무조건 존대하고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신대원 선배인 여성 전도사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반말하는 언어폭력을 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목사라는 직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자행된다. 또한 많은 경우 여성 전도사의 사역은 제한된다. 남성 전도사에게는 장년 예배 설교를 맡기지만 여성 전도사에게는 맡기지 않는 차별을 한다.

독신 여성 전도사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성범죄를 시도하는 남성은 담임목사부터 장로나 안수집사, 일반 교인까지 다양하다. 가해자들의 공통점은 여성 전도사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남성이라는 것이다. 피해자는 거부하기도 힘들고 성범죄를 당한 후엔 고소하거나 발설하기가 어렵다. 여성 전도사의 경우 여성 교인보다 더 상황이 불리한데, 교회 내에 여성 전도사의 편을 들어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고, 직급이 낮고, 외부인이기 때문에 여성 전도사가 성범죄의 피해를 당한 경우에 대부분 피해자를 내보내는 것으로 성범죄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래서 독신 여성 전도사의 경우는 사역자 중에서 다층적 폭력에 특히 노출되어 있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그리고 관리집사는 교회 안에서 가장 열악한 지위를 갖는다. 사역자가 아닌 직원으로 교회에서 월급을 받고 있으며, 사역자들과 교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장로나 권사나 집사의 불평뿐 아니라 일반 교인들의 불평에도 관리집사는 영향을 받는다. 목사나 장로나 권사 등 교회의 ‘어른’들의 폭언에 노출되기 쉽다. 연결되어 관리집사의 아내와 가족들은 교회에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담임목사를 제외한 사역자들은 모두 교인들에 대해서는 을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 부교역자들은 모두 임시직으로, 교인들 말 한마디에 따라 언제든지 교회에서 내쫓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시직은 항상 조심해야 하고 수치와 모욕도 참아야 하는 위치다. 자기 교회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그 교회의 전도사가 되는 순간 갑자기 아들의 위치에서 종의 위치로 바뀌었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진담들이 부교역자의 이런 위치를 잘 표현하고 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문제는 사역자의 배우자, 특히 사모의 문제이다. 담임목사의 배우자는 교회에서 그 위치를 잡기가 쉽지 않다. 담임목사와 달리 어떤 권위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일반 교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역자와 같은 봉사와 헌신과 처신을 요구받기도 한다. 그래서 담임목사의 배우자는 적극적으로 교회 일에 개입하여 권위를 취득하거나 아예 교회 일에 관여하지 않고 그림자처럼 지내게 된다. 그리고 두 가지 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비난을 받는다. 여기에 더해 남성 부교역자의 배우자는 직장을 다니는 문제부터 교회에서 행동거지까지 일일이 간섭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편의 위치 때문에 이에 대한 방어를 전혀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교회 안에서 그림자처럼 지내는 경우에는 교회 공동체에 속하여 교인들과 교제를 나누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배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남성 사역자의 배우자는 교회 안에 속한 것도 제외된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교회 생활을 한다.

구약 신명기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이스라엘은 모두를 형제자매로 동등하게 여기며 서로를 존중하고 정의로우며 특별히 약자를 배려하고 돕는 자비가 넘치는 나라였다. 그리고 신약의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형제자매 공동체이다. 그리고 남종과 여종에게 모두 성령을 부어주셨고 모두에게 예수님을 전할 사명을 주셨으며 억눌렸던 자들에게 자유를 주는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곳이었다. 신약 교회는 구약의 왕도, 제사장 제도도 폐지했다. 베드로는 우리가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선언한다.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의 계급적 성직 제도를 비판하며 만인제사장을 주장했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교회를 세우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한국에 처음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도 교회 안에서는 신분의 차별을 없앴고 여성에게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유와 존엄을 찾아주었다. 이로 인해 교회는 여성과 천민들의 해방과 자유의 공간이 되었고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곳으로 존재했었다. 이것이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는 이런 복음의 자유와 해방과 개혁적 성격은 사라지고 종교개혁 이전의 계급적 성직 제도의 모습을 닮았다. 그런 교회 안에서 다양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폭력과 억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역사에서 인권의 전방에 서 있던 교회가 인권의 사각지대로 퇴행한 현실 속에서 교회의 가부장적이고 비복음적인 위계질서와 이에 따른 폭력성을 직시하고 해결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한국교회에 주신 숙제 아닐까.

 

박유미
총신대학교 신학과에서 구약학 박사를 받았다. 안양대 강사, 비블로스 성경 인문학 연구소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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