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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에 있다” “왔으면 좋겠다”
[334호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지적장애인 청년 김다영 이야기
[334호] 2018년 08월 27일 (월) 15:40:35 김영준 goscon@goscon.co.kr
   
▲ 김다영 씨. (사진: 이미선 제공)

#01
입술 찢어진 자리는 1cm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전신마취를 했다. 수술실 조명이 낯설었고, 모르는 의사의 시선도, 의사가 쥐고 있는 칼과 가위와 집게 따위도 견디기 어려웠겠다. 수술실의 낯섦과 장비의 불쾌함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 입술 찢어진 자리는 1cm도 되지 않았지만, 국소마취가 불가능했다. 열여덟 살 예쁜 여고생 다영이는 수영장 계단에서 미끄러지면서 앞니 다섯 개를 뿌리까지 다치면서 입술까지 찢어졌다. 앞니를 치료하기 전에 먼저 입술을 꿰매야 했다. 가까스로 수술을 마쳤지만, 마취에서 깨어난 다영이는 꿰맨 입술의 실밥을 손으로 뜯어버렸다. 전신마취를 하며 겨우 꿰맨 입술의 풀린 실밥을 다시 맬 수 없어, 자연적으로 아물게 두었다. 얼른 눈에 띄지 않지만, 엄마는 다영 씨 입술 흉터를 볼 때마다 가슴이 시큰거린다.

1999년생 지적장애인 다영 씨는 이제 스무 살 청년이다. 1975년생 김 목사는 다영 씨에게 같은 20세기에 태어났다며 썰렁한 너스레를 떨었지만 다영 씨는 “네에”하며 예의 바르게 웃어주었다. 스무 살 청년 다영 씨는 집 안에 머무는 것보다 바깥 활동을 좋아한다. 2년 전 수영장에서 큰 사고가 있었지만, 여전히 수영이 좋다. 초등학교 때 사이판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하루 중 11시간을 거의 쉬지 않고 수영장에서 보내기도 했다.

친구들 만나는 것도 좋아한다. 집에 있는 것보다 교회 가거나 발달장애인자조모임 ‘슈퍼스타’에 참여하는 게 좋다. ‘슈퍼스타’는 협동조합 파파스윌에서 운영하는 발달장애인자조모임 중 하나다. ‘슈퍼스타’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제주도 여행을 제안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제주도에 가자고 작정을 했는데, 어머니는 걱정이다. 다영 씨 어머니는 2년 전 사고를 잊을 수 없다. 행여, 또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여행은 부모님이나 가족이 따라갈 수 없는 당사자들이 주관하는 모임이라, 어머니의 근심이 깊어진다. 어머니는 다영 씨의 바깥나들이가 무섭고, 사이판이 좋았던 다영 씨는 집 밖 바다가 그립다.

#02
2018년 8월 2일부터 다영 씨는 발달장애인자조모임 ‘슈퍼스타’ 동료들과 함께 제주도로 출발했다. 2박 3일 일정이다. 집을 떠났다. 어머니의 손을 떠났다. 제주도 일정 내내 다영 씨 발바닥은 공중에 떠 있었다. 선로를 떠서 가는 자기부상열차처럼 다영 씨는 길 위를 붕붕 걸어 다녔다. 걷는 동안 다영 씨는 착지하지 않는 듯, 날아다니듯 걸으면서도, 동료들의 위치를 놓치지 않았다. 동료 장애인들이 행여 길을 잃지 않는지 살피며 걸었다. 길가에 흔한 풀과 가로수로 심어진 두툼한 팽나무 이파리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밭담과 곽지해수욕장의 모래알과 비취빛 물색에 하나하나 반응하고 표현했다. 함께 간 혜련 언니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말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다영 씨를 시끄럽다 핀잔 줄 만큼, 다영 씨는 제주의 모든 것들에 감응했다. “정말?” “진짜요?” “멋지다!” “예쁘다!” “귀여워~” “와우!” “멋있어!”를 쏟아내며 제주를 표현했다.

곽지해수욕장에서 다영 씨는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튜브를 허리에 두른 채, 튜브 높이만큼 깊이에서 걷고 걸었다. 물속에서도 다영 씨는 30cm 높이를 유지한 채 걷고 싶었을까. 

#03
걷지 못했었다. 일찍 말도 배우고, 걸음마를 뗐던 다영 씨가 주저앉은 적이 있다. 다영 씨가 세 살 되었을 때 뇌수막염 예방 주사를 맞은 날 밤, 심한 발작이 시작됐고 발작과 함께 퇴행이 온 것이다. 다영 씨는 일찍 말을 시작했는데 말이 어눌해지더니 말수가 적어지고 말을 하지 않게 됐고, 변기에 손을 넣기도 했고, 비누를 먹기도 했고, 기저귀를 다시 차야 했고, 유모차를 타면서 다시 걸음마를 해야 했다. 발작을 막기 위한 항경련제의 부작용이 염려되어 한방 치료를 병행하던 중에 18시간 동안 발작이 일어났었고, 뇌의 크기도 작아졌다. 예방 주사로 인한 의료사고인지, 한방병원 오진으로 인한 병세 악화인지, 의료사고 여부를 따질 수도 따질 새도 없었다. 다영 씨 몸에 이상이 왔을 때 다영 씨 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었다. 당시 엄마는 둘째 아이 출산과 동시에 다영 씨의 퇴행을 극복하기 위한 치료에 전념해야 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다영 씨와 어머니는 소아정신과 의사 상담, 발달장애아동 조기 학교, 언어 치료, 발달장애인 어린이집 등을 전전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04
치열한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였고, 다시 기저귀를 떼고 걸음마도 넘고 짧은 단어를 표현할 만큼 자랐다. 초등학교에 갈 만큼 자랐지만, 발달장애인 학생에게 진학은 늘 위험한 모험이다. 수영장에서 첨벙거릴 줄 안다 해서 한강을 건널 수 없듯, 발달장애 어린이가 기저귀를 차지 않고 걷고 말한다 해서 학교에 너끈히 진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발달장애 어린이에게 진학은 물가에서 첨벙거리는 걸음으로 깊은 강 한가운데를 건너가야 하는 것만큼 위험한 작전이다. 따지고 따져 고르고 골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다행히 다영 씨가 좋아하는 게 학교에 있었다. ‘쉴 만한 물가’라고 이름 붙인 작은 연못이 학교에 있었다. 다영 씨는 물이 좋았나 보다. 연못가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연못가에서 다영 씨는 “멋지다!” “예쁘다!” “귀여워~” “와우!” “멋있어!”를 독백하며 서둘러 봄을 맞이하고 있었을까?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학기 초에 다영 씨는 혼자 물가에서 놀다가 그만 빠지고 말았다. 빠진 건지 들어간 건지 분명하진 않다.

다영 씨 본인은 연못의 물속을 기억하지 못하는 성싶다. 몸에도 탈이 없었고, 마음속에 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연못은 두려운 곳이 되었고, 연못가에 안전시설을 마련하지 못한 학교 당국에도 아쉬운 마음이 솟았다. 지금 다영 씨는 스무 살 청년이 되었지만, 어머니에게 ‘물가’는 다영 씨를 위한 ‘쉴 만한’ 곳이 아니다.

어머니가 보호자로 나서지 않는 수영장에서 앞니 다섯 개를 잃었고, 학교 안 연못에 빠져 자칫 저체온증에 걸릴 뻔했다. 어머니와 동행하지 않고, 제주도에 갈 수 있을지 제주도에 가도 되는 건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어머니는 다영 씨를 믿기로 했다. 믿음대로, 다영 씨는 부모님과 동행하지 않고도 제주도에 잘 다녀왔다. 다영 씨는 스무 살 발달장애인 청년이니까.

   
▲ 라디오 게스트로 참여한 김다영 씨. (사진: 강선영 제공)

#05
스무 살 다영 씨를 믿고 제주 여행을 떠나보내기 전에 다영 씨 어머니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다영 씨와 함께 바닷가를 걷고 있었는데, 유조선이 침몰한 것처럼 바닷물 색깔이 새까맸다. 발끝도 담글 수 없는 바닷물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지만 바닷물이 다영 씨와 어머니를 덮치지도 않았다. 꿈속에서 아득하게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내가 너와 끝까지 함께하리라.

새까만 바닷물이 일렁거리는 해변은 발달장애인 다영 씨가 여태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 터다. 늘 위태롭다고 느꼈다. 한 걸음도 위태하지 않은 걸음이 없었다. 그럼에도, 믿기로 했다.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렘 5:22)

지나오고 보니 바닷물이 모래를 넘어오지 못한 줄 알겠지만, 굽이굽이, 고개고개마다 모래를 넘어올 것만 같은 기세 높은 파도는 늘 있었다.

#06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다영 씨 담임교사가 특수학교로 전학을 권했다. 왜 애먹이느냐는 투였다. 하루하루 군사 작전하듯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그렇게 4년을 다녔는데, 느닷없이 5학년 때 여기가 아니라며 딴 데로 가라 했다. 발달장애인은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담임교사가 발달장애인 학생을 싫어했지만, 그런 담임교사가 싫었지만, 딴 데로 가지 않았다. 다영 씨가 받고자 했던 통합 교육 커리큘럼에 나쁜 교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포함됐지만, 그래도 버텼다. 발달장애 학생 다영 씨가 이수해야 하는 교과목엔 다영 씨를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는 교사와 함께하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어머니가 꿈에서 본 새까만 바닷물은 늘 현실 가까이에서 일렁였다.

#07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또 진학해야 한다. 도움반이 있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충분하진 않았지만 도움반이 있어선지 교사와의 갈등은 없었다. 그럭저럭 다닐 만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다영 씨는 친구들과 잘 놀고 싶다. 잘 놀고 싶고 적극적인 다영 씨는 도움반 동창에게 자주 말을 걸었고, 친구의 공간에 가까이 접근했다. 친구는 내성적이었을까. 자주 말을 걸어오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자꾸 넘어오는 다영 씨를 받아줄 수 없었다. 하얀 체육복에 친구의 운동화 자국이 찍힌 사연이다. 도움반 친구가 운동화를 신은 채 다영 씨를 찬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들과 다툴 수 있고, 5학년 때 담임교사의 눈총도 무시할 수 있었지만, 같은 반 장애인 학우의 폭력을 해결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폭력을 견딜 수도 없는 노릇이라, 김포에 개교한 특수학교로 중학교 2학년 때 전학했다. 통합교육을 받고자 했던 시도는 부분적으로 성공했고 부분적으로 실패한 셈이다.

#08
김포에 오가면서 발달장애인자조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다영 씨는 자조모임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욕구를 표현할 수 있어 행복하다. 자조모임에선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집에서 귀염받고, 학교에서 보호받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다영 씨를 스무 살 청년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자조모임에서는 누구나 다영 씨를 어른이라 생각한다. 다영 씨는 자기 이름 앞에 ‘씨’를 붙여주는 사람들을 자조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다영이’는 자조모임에서 ‘다영 씨’가 되었다. 사람들이 이름 뒤에 ‘씨’를 붙여주니까 좋았다. 그래서 다영 씨도 사람들 이름 뒤에 씨를 붙이기로 했다. 아무에게나 ‘씨’를 붙여 부르진 않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불렀던 이름에 ‘씨’를 붙여 불러주는 건 당연한 의리다. 자조모임을 하게 되면서, 다영 씨는 엄마를 부르지 않는다. 엄마라 부르지 않는다. 엄마도 어른이니까,
“엄마 씨~” 하고 부른다.

#09
다영 씨는 엄마 씨에게 할 말이 있다. 요새 하기 싫은 게 있다. 하기 싫다기보다 이미 했다. 이미 했는데, 엄마 씨가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똑같은 잔소리를 매번 반복한다. 엄마 씨도 어른이니까, 어른답게 다영 씨의 말을 잘 이해하면 좋겠다. 다영 씨는 학습지를 이미 풀었다. 어제 이미 했다. 어제 공부 다 했다. 어제 끝났는데, 오늘 또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학습지 하기 싫어요, 어제 했어요.” “수학하고 국어, 공부했어, 어제.”

#10
어제 학습지를 이미 공부한 다영 씨는 음악이 좋다. 노래 〈반짝반짝 작은 별〉을 즐겨 부른다. EBS 어린이 방송 〈보니와 하니〉도 여전히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다영 씨는 팟캐스트 지역방송국에서 개최하는 공개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로 했다. 방송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고, 녹음실에서 미리 연습도 했다. 당일 공개방송에선 메인 게스트로 참여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순서가 되어 반주 음악이 깔렸다. 반주 음악이 너무 좋았다. 리듬을 타면서 어깨도 좌우로 흔들렸다. 그런데 다영 씨는 기획회의 때 결정하고 녹음실에서 연습했던 그 노래를 부르진 않았다.

방송 장비를 앞에 두고 떨렸던 건 아니다. 낯선 사람들이 있어서 주눅 들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반주에 맞춰 노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따위가 없었고, 다른 사람이 깔아준 음악에 자기 목소리를 얹기보다 그저 음악을 즐기고 싶었다. 어제 이미 공부한 학습지처럼, 지난주에 녹음실에서 연습한 노래를 굳이 다시 불러야 하는 당위도 없었다. 다영 씨는 공개방송을 위해 노래를 부르기보다, 공개방송을 즐기기로 했다. 즐기면서 반주를 듣기로 했다. 노래는 지난번 녹음실에서 사전 연습하며 이미 불렀으니까.

어제는 지나갔다. 오늘은 오늘을 산다.

#11
다영 씨는 거의 매일 케이블 방송으로 〈도깨비〉를 반복 시청한다. 다영 씨가 〈도깨비〉를 좋아한다고 해서, 김 목사도 닷새 동안 〈도깨비〉 15화를 다시 보기로 시청했다. 김 목사는 ‘지은탁’의 삐죽거리는 입 모양이 좋았고, ‘유인나’의 내치는 듯 당기는 대사가 좋았다. 다영 씨는 칼에 꽂혀 사는 ‘김신’을 연민했을까, 쓸데없이 허옇게 잘생긴 ‘왕여’를 좋아했을까, 발랄하고 당당한 ‘덕화’를 좋아했을까. 누구를 좋아하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환하게 잘생긴 배우들을 좋아하는 스무 살 청년 다영 씨에겐 좋아하는 오빠가 있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자조모임에 함께 참여하는 환하게 잘생긴 오빠 시원 씨를 좋아한다. 시원 오빠는 ‘왕여’만큼 환하게 잘생긴 오빠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갑자기 생각났을까, “시원 오빠 저기 있다”고 한다. 사실 ‘왕여’를 닮은 시원 오빠는 보이지 않지만, “저기 있다”고 했다. 다영 씨가 “저기 있다”고 표현하는 건 “왔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오늘 여기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표현을 “저기 있다”고 했다. 다영 씨의 말이 아름답다.

“저기 있다”는 “왔으면 좋겠다”는 소원이다. “저기 있다”는 여기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다. 발달장애인 청년들에겐 저기 있는 소원이 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가고 싶은 델 가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고,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하는, 평범한 일상들이 발달장애인에겐 특별한 소원이다. 비장애인의 평범한 일상은 발달장애인의 특별한 소원이다.

예수께서 기도하셨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 6:10) 하늘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이 “저기 있다”면, 하늘을 채우고 있는 뜻이 여기로 “왔으면 좋겠다.” 입술을 오므려 성냥불을 훅 불면 저기 있는 도깨비도 소환되어 오듯, 저기에 계신 하나님이 여기로 오시면 좋겠다. 간절한 통곡에도 깊은 속울음으로도 여태 소환되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저기에 있다.” “왔으면 좋겠다.”


김영준
소설을 좋아한다. 그림도 찾아본다. 《그림 속 성경이야기》라는 책을 썼고, ‘문학 속 성경이야기’라는 모임을 진행했다. 발달장애인자조모임에 조력자로 참여하면서,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에서 이사 노릇한다. 주말에는 이주민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달팽이학교’를 열었다. ‘민들레와달팽이’라는 카페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민들레교회’ 목사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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