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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호 시사 잰걸음] 서촌 ‘궁중족발 사건’ 누가 죄인인가?
[335호] 2018년 09월 20일 (목) 15:58:29 박제민 goscon@goscon.co.kr
   
▲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궁중족발 윤경자 사장 (사진: KBS 화면 갈무리)

“음식점 임대료 4배 폭등… 갈등 끝에 건물주 폭행.”

포털사이트에서 흘러가는 기사 제목을 봤다. 아차, 불길한 느낌은 왜 빗나가지 않을까? 서촌 ‘궁중족발’이었다. 2018년 6월 7일에 궁중족발 사장 중 한 명인김 모 씨가 건물주 이 모 씨를 찾아가 망치로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궁중족발 사건
김 씨 부부는 서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서촌에서만 20여 년간 장사를 하며 분식점, 포장마차, 당구장 등을 운영했다. 궁중족발을 연 것은 2009년 5월이었다. 슈퍼마켓이 있던 자리에 권리금 3천만 원에 보증금 3천만 원, 월세 263만 원에 계약했다. 수도, 전기, 가스, 주방시설 등을 설치하는 데도 6,500만 원 정도 들었다.

장사가 썩 잘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큰 문제도 없었다. 5년이 지나 월세를 조금 올려 297만 원에 계약을 연장했다. 다행히 서촌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이제야 장사가 좀 되려던 참이었다. 주변에서는 권리금을 많이 받고 가게를 팔라고 했지만 정든 서촌에서, 애쓴 가게에서 더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2015년 12월에 건물주가 바뀌면서 김 씨의 삶도 바뀌어버렸다. 새 건물주 이 씨는 김 씨 부부에게 남은 계약 기간까지만 장사를 하고 나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남은 기간의 월세를 입금할 계좌도 알려주지 않았다. 연락처도 몰랐다. 힘겹게 알아낸 연락처로 입금 계좌를 알려달라고 했으나 답이 없었다.

그사이 김 씨는 건물주 이 씨가 임대료를 받지 못해 계약이 파기됐다며 건물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한 것을 알게 됐다. 김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월세를 법원에 맡겨 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법원은 김 씨가 월세를 내려고 했지만 이 씨가 받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이 씨는 명도소송 이유를 리모델링 때문이라고 바꿔버렸다.

이 씨는 김 씨에게 리모델링을 한 건물에서 장사를 하려면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1,200만 원을 내라고 했다. 보증금도, 월세도 서너 배 올린 것이다. 낼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동네 공인중개사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리 서촌이 뜬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라고 했다. 김 씨는 무자비한 임대료 인상에 따르지 않기로 했다. 따를 수가 없었다.

2017년 8월에 법원은 건물주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 씨의 행동이 법을 어긴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합법적으로, 김 씨는 그동안 일군 모든 재산을 내놓고 달랑 보증금 3,000만 원만 들고 나가야 했다. 3,000만 원으로는 다시 장사를 할 수 없었고, 장사를 포기하면 살길이 막혔다. 김 씨는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의 도움을 받아 가게에서 버티며 저항하기로 했다.

2017년 10월 10일에 처음 시작된 강제집행은 용역들을 막아섰던 활동가의 이가 부러지고 나서야 중단됐다. 기습하듯 들어온 두 번째 강제집행에서는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집기를 잡고 버티던 김 씨의 네 손가락 끝마디가 찢겨 나갔다. 강제집행은 올해 6월 4일까지 총 열두 차례 있었다. 마지막 강제집행 때는 안에 사람이 있다고 경고했지만, 지게차가 돌진해 벽을 무너뜨렸다.

사건이 일어난 아침, 김 씨는 이 씨의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잘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김 씨는 이 씨와 통화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씨는 통화에서 김 씨를 조롱하며 김 씨와 활동가들을 모두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통화가 끝난 뒤 김 씨는 하던 대로 이 씨의 집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이 씨와 마주쳤다. 그리고 차에 있던 망치를 들었다. 

   
▲ 접합수술을 한 김 시의 손 (사진: 서촌 궁중족발 페이스북)

세상의 법정
김 씨의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국민참여재판은 해당 지역에 사는 만 20세 이상 시민 중에서 무작위로 배심원을 선정해 재판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2008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미국 배심원제도와 달리 우리 배심원들의 평결은 권고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

검찰은 김 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피고인 김 씨가 피해자 이 씨를 살해할 의도로 미리 망치를 준비했고 끝까지 쫓아가 머리 부분을 수차례 가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해진 법을 무시하고 개인적으로 복수를 해도 중형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냐며 상당한 기간 사회와 격리해 재범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씨의 변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공익법센터 무료변론단이 맡았다. 변호인들은 김 씨가 이 씨를 죽일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씨를 찾아가 망치를 휘두른 것은 사실이지만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혼내주고 상해를 입힐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변호인들이 증거로 내놓은 CCTV 영상을 보면 김 씨가 이 씨의 머리를 가격하는 모습은 없었다. 변호인들은 김 씨가 허공을 향해 크게 망치를 휘둘렀고, 김 씨와 이 씨가 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망치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씨가 입은 상처는 망치에 맞아서 두개골이 깨진 것이 아니라, 김 씨의 손에 맞아서 두피가 손상된 것이었다.

변호인들은 김 씨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상해죄에 해당하는 사건을, 여론을 의식한 검찰이 무리하게 살인미수로 기소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살인미수는 무죄고 상해죄로 처벌받게 해달라고 했다.

검찰과 변호인들은 배심원들을 향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검찰은 이 재판이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분쟁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피고인 김 씨가 피해자 이 씨를 죽이려고 했는지를 밝히는 자리라며 사건 당일 현장의 증거만 놓고 판단해 달라고 했다. 변호인들은 99를 가진 이 씨가 김 씨가 가진 1마저 내놓으라고 했을 때 느꼈을 절망감과 분노가 이 사건의 범행 동기라는 점을 이해하고 지은 죄만큼만 책임을 지도록 결정해달라고 호소했다.

마지막 재판에는 피고인 김 씨는 물론이고, 피해자 이 씨도 증인으로 나왔다. 둘 사이에는 가림막이 설치됐다. 이 씨는 김 씨가 망치를 들고 쫓아와서 무서웠다고 했다. 월세를 세 배 이상 올린 것은 사실상 나가라는 말 아니냐는 질문에는 “맞다”며 시원하게 인정했다. 건물 계약을 하고 잔금을 치르는 기간에 그 부지에 대해 연구해 봤는데, 이 건물을 개축하든가 아니면 새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 씨는 궁중족발이 있던 빌딩을 48억 원에 매입해 최근 70억 원에 내놨다. 불과 몇 년 사이에 20억 원 이상의 시세 차익이 생긴 것이다.

재판 내내 담담하던 김 씨는 왜 손가락이 절단될 때까지 버텼는지 묻는 질문에 무너져 내렸다. 김 씨는 건물주가 보증금 3,000만 원 가지고 나가라는데 그러면 살 수가 없다며 돈이 없어서, 진짜로 돈이 없어서 그렇게 됐다고 울먹였다. 돈이 있었다면 누군들 그렇게 더러운 꼴을 당하며 버티고 싶었겠냐고 되물었다. 김 씨는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건물주 이 씨에게 완벽하게 졌다면서 이 씨에게 사과하고 최대한 합의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9월 6일에 재판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살인미수에 대해서는 무죄, 특수상해에 대해서는 유죄로 김 씨에게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배심원들도 살인미수에 대해서는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고 특수상해 관련해서 다수가 2년 형을 판결했다. 변호인들은 지은 죄만큼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현명한 결정을 해준 배심원단에 감사를 표했다. 다만 상해죄에 따른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하나님의 법정
사람은 모두 죽는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죽고 나면 하나님의 법정에 서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궁중족발 사건을 다룬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의 법정과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괜한 말이 아니다. 판례가 있다.

사건번호 ‘왕상 21’을 보면 아합과 이세벨 부부의 범죄 사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왕으로서 99를 갖고 있던 아합은 나봇이 가진 1이었던 포도원마저 너무너무 갖고 싶었다. 거듭 설득하고 졸라봤지만 거절당했다. 시무룩했던 아합을 위해 이세벨이 나섰다. 능숙하게 작업을 걸어 나봇을 모함에 빠뜨리고 돌에 맞아 죽게 했다. 나봇의 포도원은 합법적으로 아합에게 등기 이전됐다.

재판장인 하나님이 이 사건에 대해 내린 판결은 아래와 같다.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나는 지난날 나봇과 그의 아들들이 억울한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바로 이 밭에서 원수를 갚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왕하 9:26, 공동번역)

재판장도 재판장 나름이지, 정말로 어김이 없었다.

사람이 죽고 나면 하나님의 법정에 선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이야기다. 믿으면 좋고 안 믿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죽는다.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김 씨도, 이 씨도, 나 같은 박 씨도 결국 죽는다.

· 궁중족발 전체일정 : https://goo.gl/enQLzt
· 궁중족발 뉴스모음 : https://goo.gl/UJ55c6
· 궁중족발 후원계좌 : 국민은행 533325-95-103617 (예금주: 윤경자)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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