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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세계, 예장 합동
[348호 커버스토리]
[348호] 2019년 10월 23일 (수) 10:10:53 박유미 goscon@goscon.co.kr

지난 9월 예장 합동 교단 총회가 끝났다. 총회는 총대들이 모여 교단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의논하고 해결하는 모임으로, 교단의 현안과 입장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런데 외부인의 시각에서는 현재 교단 총회와 교단의 여러 한계와 문제가 보일 뿐이다. 이 글에서는 이번 총회와 지난 총회에서 드러난 문제들 중 여성차별과 목회자 윤리, 그리고 배타성과 관련된 문제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성 안수 반대와 여성차별 문화 
  이번 총회에서도 작년처럼 교단 내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들이 나왔다. 그중에서 여성의 강도권 허락 및 강도사 고시 실시를 허용해 달라는 안건을 여성사역자지위향상위원회에서 올렸다. 하지만 이 안건은 ‘아직 시기상조이며 신학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은 채 1년 더 연구하라고 반려되었다. 합동 교단의 여성사역자 지위에 대한 논의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합동 교단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와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딤전 2:12)와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딤전 3:2)이어야 한다는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여성 안수를 반대하고 있다.

   
▲ 교단별 여성 안수, 여성 총대 할당 현황.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제공)

현재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여성 안수를 시행하고 있다. 위 본문들에 대해 엄격한 문자적 해석 대신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감안하고, 성경 시대와 달라진 현대 여성들의 사회적 법적 지위와 교육 수준을 고려하여 해석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동에서는 1997년 〈신학지남〉에서 여성 안수는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린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성 안수에 대한 어떤 논의도 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합동 교단의 목사들과 신학자들의 직무태만으로 볼 수 있는데, 지난 20년 동안 신학은 상당히 많이 발전하였고 현재 교회는 성경 시대와는 다른 오늘 이 시대를 고려한 해석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동 교단은 유독 여성 안수에 대한 부분에는 이런 해석의 발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재 한국 사회는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사회적 지위, 법적 지위를 위해 분투 중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지난 3-4년 동안 광풍이라고 할 정도로 여성의 인권과 지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를 위해 여성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합동 교단은 이런 사회적 변화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여성은 잠잠하라며 여성 안수를 금지하고 있다. 

여성 안수 금지는 여성 사역자의 차별을 넘어 교회 여성 전체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여성 안수를 반대하기 위해서 여성이 남성보다 나중에 만들어졌고 남성이 여성의 머리 되는 권위를 가지고 있기에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논리로 확대하기 때문이다. 말로는 ‘존재론적 평등, 기능적 차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목사라는 사역의 자격 문제를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라는 존재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번 총신대에서 벌어진 모 교수의 매춘부 발언은 그동안 총신과 합동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잘 보여주는 예다. 사실 총신 학부나 신대원 강의와 채플에서 성희롱이나 여성 차별 발언이 심심치 않게 이루어져 왔으나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도 어렵고, 한다고 해도 제대로 처리되지도 않았다. 신학과의 경우 남성 교수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로 감싸주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 때문에 이번과 같은 참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교회 안은 어떨까? 목회자들은 여전히 설교에서 여성차별이나 여성혐오적 발언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설교 중에 하는 이런 발언들이 더 심각한 것은 전혀 견제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매우 거룩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 성도들이 목사의 설교를 비판하기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에서 여성을 차별하거나 혐오해도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반면 목사의 설교는 교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러한 설교를 계속해서 듣게 되면 성도들은 여성을 차별해도 되는 존재로 생각하거나 차별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다. 실제로 이런 문화에 익숙한 현재 50대 이상의 성도들 중에는 여성이나 남성 모두 여성 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젊은 세대, 특히 여성들은 이 부분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자 청년들은 성 평등한 문화 속에서 자랐고 페미니즘이 시대의 조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여성이 자기주장을 하는 것도, 지도자가 되는 것도 당연하며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는 것의 부당함을 교육받고 자란 이들에게 여성을 차별하는 교회 문화는 견디기가 힘들다. 실제로 이런 문제로 교회에 남을지 떠날지를 고민하는 혹은 떠나는 청년들을 많이 만난다. 합동 교단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처럼 여성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페미니즘과 성 평등, 젠더 이슈는 비성경적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윽박지르기만 한다면 얼마 후 청년들, 특히 여자 청년들을 교회에서 보기 힘들 것이다. 

낙태죄에 관한 남성 중심적 접근
합동 교단은 이번 104회 총회에서 반기독교세력대응위원회를 상설화하여 낙태죄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결의하였다. 합동 교단은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일치 판정을 내린 것을 비판하며 낙태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낙태 가능한 기한을 최소로 잡고 그 외에는 처벌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교단의 논의는 남성 중심적 관점이다. 낙태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 오직 여성을 낙태죄로 처벌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혼자와 기혼자들의 성윤리, 피임법, 남성의 책임, 태어난 혼외자녀에 대한 교회의 돌봄, 혼외임신에 대한 인식 전환을 통한 미혼모부에 대한 교회의 수용 문제 등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남성과 교회의 책임과 인식 변화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지 않고 여성에게만 낙태죄를 묻겠다는 발상은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떠넘기겠다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기본적으로 태아는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생명이기 때문에 태아의 생명권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교회의 논의는 태아의 생명권만 보호하고 산모와 태어난 아이의 생존권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또한 남성 목사들은 이 논의에 임신과 낙태 당사자인 여성들을 참여시키지 않는다. 위원회에는 오직 남성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고 여성의 인생이 달린 문제를 당사자성이 전혀 없는 남성들끼리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교단의 태도는 여성들에게 매우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목회자의 윤리의식 부재
총회는 ‘목회자 윤리 강령안’을 상정했지만, 8년째 번번이 거절당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에 말씀을 지키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성경에 나온 말씀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윤리 강령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현재 교회는 목회자의 비윤리적인 행위, 더 나아가 범죄적 행위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대법원에서 성폭행 판결을 받은 목사도, 불법적인 교회 건축을 했다고 판결을 받아도, 논문이나 설교를 표절해도, 학력을 속여도, 교회 돈을 횡령해도, 총회장이 되기 위해 뇌물을 주고 실형을 살아도, 목사는 면직되지 않는다. 특히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목사의 성범죄와 간음의 문제를 교단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 삼는 사람들을 향해 교회를 허무는 세력이라고 공격하며, 회개했으니 은혜롭게 용서해야 한다며 감싼다. 이렇게 교회가 목회자의 성범죄를 감싸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문 직종 성범죄자 1위가 목사인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여성들에게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가 이런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은 심각한 죄이다. 

물론 칼뱅이 이야기한 것처럼 교회에는 죄인과 의인이 함께 있고, 의인이라도 죄성을 가진 사람이기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 교회가 온전히 거룩한 공동체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교회는 기독교 관점에서 일반 사회보다는 윤리의식 수준이 더 높아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좀 더 온전하게 이루어가는 지도자로서 영적 도덕적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하셨고 사도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나를 본받으라고(고전 11:1) 말하지 않는가. 

현재 한국 사회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 이후 부정과 반칙, 거짓의 문제에 예민하게 되었고 사회 전반적으로 공정과 정의, 평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불법과 불평등, 절차의 비공정성을 강하게 비판한다. 또한 미투운동을 통해 성폭력 등 성범죄와 간통 문제는 모든 경력을 잃을 수 있는 심각한 범죄로 여기는 실정이다. 이런 한국 사회의 변화된 눈높이를 교회가 무시하고 우리끼리는 괜찮다며 편법과 불법을 묵인한다면 교회는 한국 국민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얼마 전 사랑의교회 지하 점유가 불법이라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사랑의교회는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상복구를 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 대해 한국교회언론회(교회언론회, 유만석 대표)는 “교회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다면, 이는 종교 탄압이라는 좋지 못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교회와 교단의 내부적 시각에서 보면 억울한 부분도 있고 과하게 비판받는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부의 논리이다. 교회 밖 사람들은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교회의 태도를 결코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교인끼리만 즐겁고 만족스러운 교회를 만들라고 말씀하셨다면 세상의 부정적인 시각을 무시해도 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라고 명령하셨고 세상보다 영적 도덕적으로 뛰어난 대안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교회가 거룩성을 잃어버릴 때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빛도 소금도 아닌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합동은 목회자 윤리강령안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밖 사람들이 상식이라고 부르는 기준에 목회자들의 윤리 의식, 특별히 성윤리 의식을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면 좋겠다.  

페미니즘에 빗장을 걸고 있는 합동
작년 합동 총회는 청어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성서한국, 교회개혁실천연대, 좋은교사운동, 복음과상황 6개 단체들의 설립목적과 성격을 신학부에서 연구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현재 기독교 내에서 다양한 교단 사람들이 기존 교회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고 복음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 단체들이다. 합동 총회는 올해 이 단체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자신들과 다른 이들의 입장과 그로 인한 부정적인 부분, 긍정적인 부분을 지적하며 당회장의 지도하에 이 단체들과 교류해야 한다는 것이 총회의 결론이다. 

그런데 이들 단체에 대한 비판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청어람과 성서한국이 페미니즘을 소개하는 것을 문제로 삼은 것이다. 이들이 페미니즘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이유는 지난 2016년 강남역 여대생 살인사건과 서지연 검사의 미투 사건을 거치면서,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한국 사회가 여성들에게 안전하지 않으며 매우 불평등하다고 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회 청년들 또한 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고민한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청년들은 남녀평등을 말하는 페미니즘이 옳다고 생각하는 반면, 교회에서는 페미니즘이 반기독교적이라고 비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심각한 갈등을 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교회 문화가 가부장적이며 여성 차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청년들은 현재 교회 문화에 많은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책을 찾고 싶어 한다. 

이런 현실 인식 속에서 페미니즘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 내에서 성경적으로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강의를 한 것이 두 단체이다. 즉 페미니즘을 기독교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소개하여 사회의 이슈를 성경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길을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단체들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부정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교회가 사회의 이슈에 대해 전혀 대화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50-60대 남성 총대들의 입장에선 페미니즘은 이해되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슈이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눌러버리려 한다. 하지만 교회에는 남성 목사와 장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과 청년들, 아이들이 있다. 교회 구성원이자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인 페미니즘 이슈도 함께 공부해야 한다. 
총회가 이러한 사회 담론들을 자세히 연구하고 많이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교회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과 한계점을 제시하며 기독교적, 성경적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해외 교단과의 여성 총대 비율 비교.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제공)

나오는 말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의 공통점은 폐쇄성이다. 교단의 총회 구성원은 모두 50-60대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이들이 의논하고 결정을 내린다. 목회자들은 늘 목회자들끼리 만나고 생각을 나누며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총회는 다른 구성원들인 여성, 청년, 노동자, 사회적 약자 등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총회에서 여성 문제, 청년 문제를 다룰 때도 전부 남성 총대들이 이야기한다. 이렇게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다 보니 목회자가 교회나 교인과 문제가 생기거나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우선적으로 목회자 편을 든다. 가장 일반적인 예가 목회자가 성범죄를 저질러도 목회자를 치리하기보다 피해 여성을 꽃뱀으로 만드는 대처 방식이다. 결국 이런 폐쇄성은 목회자들끼리 감싸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고 나아가 목회자의 윤리 의식을 약해지게 만들었다. 여성의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변했고 여성을 차별하는 교회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고통당하는지, 교회의 여성 차별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그들은 모른다. 

또한 그들은 이런 폐쇄성으로 인해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일단 의심하고 비판하며 가능한 한 입을 틀어 막을 방법을 찾는 것이다. 만약 비판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토론하고 자신들을 변증할 능력이 있다면 외부 사람들의 비판에 당당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합동 교단은 외부의 비판에 대항할 건강한 신학과 교회, 실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 복음의 선한 일도 많이 하지만 사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안 좋은 문제도 많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자신감을 갖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단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열린 마음으로 다름을 수용하는 대신, 비판하는 사람들을 ‘검증’한다. 

현재 교회는 교회를 지키겠다며 세상과 높은 담을 쌓고,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를 지키는 방법이 아니다. 

사사 시대를 보면 이스라엘에게 어려움이 온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이다.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상을 버리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해주셨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고자 애쓸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키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허물 수 없다. 그러므로 합동 교단의 총대들은 외부의 적을 찾기 전에 먼저 내부의 문제를 직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한다. 또한 폐쇄적인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나와 다른 공동체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거룩한 교회의 모습과 세상을 향한 겸손하고 열린 마음, 이것이야말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박유미
총신대학교에서 구약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안양대학교 구약학 겸임교수,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소장으로 일한다. 지은 책으로 《내러티브로 읽는 사사기》《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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