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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은 총회와 어른들을 볼 수 있을까
[348호 커버스토리]
[348호] 2019년 10월 23일 (수) 10:12:00 김자은 goscon@goscon.co.kr

총회는 각 교단의 최고회로서 교단의 중대한 일들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구이다. 의결이란 합의체가 그 의사를 결정하는 행위 또는 결정된 결론을 말하며, 이를 위해서는 합의체를 구성할 사람들과 조직, 결정 실행을 위한 권한이 필요하다. 또 의결기구로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법과 제도를 보장해야 하며 결정과 권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과연 절차에 따른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교단(합동) 총회는 아니었지만, 학생자치회 활동을 하면서 몇 번 참관했던 총회 어른들의 회의는 대형 교회나 노회 소속 목사들의 큰 목소리 자랑과 마이크 쟁탈전이 이어질 뿐 회의다운 회의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회의에서도 이러했으니 총회는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암담하기만 하다. 이를 염두에 둔 건지 작년 총회부터 강단에 라인을 세우고 이번 총회에는 전자 투표까지 도입했지만, 표면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근본적인 개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국 총회는 교단 최고회로서의 위치를 망각하고 권력 다툼과 책임 없는 의결로 얼룩지게 되었다.

‘총신 사태’는 교단 총회에 종속된 결과
총신대학교는 꽤 오랫동안 총장 문제로 몸살을 앓아 왔다. 여기서 늘 빠지지 않았던 것은 ‘직영 신학교’로 정의되는 총회와 학교의 관계, 총장파와 총회파로 나뉘는 권력 싸움이었다. 총회가 학생들의 시위를 열심히 지원하고 지지하기도 했지만, 공동의 적을 두고 있다는 명분으로 다양한 담론을 집어삼켰다. 총회의 방식에 동의하지 못했던 학생들은 빈번히 분열되기도 했다. 특히 작년 ‘총신대 사태’는 더더욱 총회의 결정에, 총회 사람들의 말에 일희일비했던 시간이었다. 어른들의 정치 싸움에 학생들의 목소리는 늘 힘없이 돌아오는 메아리에 그쳤다. 시위 방향이나 학생들의 총회 안건까지도 총회 어른들의 말 한마디에 쉽게 좌우됐고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찾지 못했다. 물론 이 모든 일이 총회만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이런 압박과 이권 다툼 속에서 우리는 서툴렀고 실수와 범죄들을 외면한 채 절차적 정의를 배제한 대의를 좇기 바빴다. 결국 우리는 민주적 자치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 합동 교단 ‘직영 신학교’인 총신대학교 본관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국 문제의 총장은 퇴진했다. 기나긴 싸움 끝에 얻은 승리였기에 더욱 값지기도 했지만, 이후에 세워질 총장과 학교 체제, 총회와 총신대의 관계는 우리에게 가장 큰 숙제였다. 계속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승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총회와의 관계 속에서 학생들이 무기로 사용되지 않기를 원했고 학문의 자유와 민주적 자치를 보장받을 수 있길 원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새로운 총신이 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 기대 속에 최초의 시각 장애인, 비신학 계열 출신의 이재서 총장이 부임하게 되었다. 이재서 총장은 이번 총회에서 “총신대학교의 주인은 총회이므로, 총회 결정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학생들이 끈질기게 시위하고 밤낮없이 싸워 이뤄낸 ‘문제 총장 퇴진’이 무색해지는 말이었다. 총신의 실질적 주인은 학생이고 새로운 총신을 만들어낸 중심엔 늘 학생들이 있었다. 총신 특유의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총신대학교의 주인은 총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런데 총회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겠다니, 무엇을 위해 그 시간을 보냈던가 하는 회의가 밀려온다. 

전 재단 이사들은 총회 총대들 앞에서 사과했고 심지어 사과한 목사 중 3명은 총대의 자격을 회복시킬 예정이며, “총회 지시에 반한 총신대 교수들은 이재서 총장에게 맡겨 지도”를 한다고 한다. 사과의 대상이 잘못됐다. 용역 동원이라는 저열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위협하며 시위를 종결하려 했던 재단 이사들,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리스트를 작성하고 징계를 무기로 학생들을 협박하고 제자들의 위험을 보고도 눈감았던 교수들이 학생들 앞에 사죄해야 한다. 총신의 회복은 이재서 총장이 자랑스럽게 언급한 수시 경쟁률이나 재정 지원 따위에 달려 있지 않다. 마땅히 사죄할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 학생들이 더 이상 위협받지 않고 학문의 자유와 민주적 자치를 보장받는 것에 달려 있다.

여성 안수 반대, 성범죄 대책 고민 없는 교단 총회
“여성 안수라는 보루가 무너지면 성경적 신앙의 보루가 무너진다.” 이 황당한 말은 전 총장이었던 김영우 목사가 했던 말이다. 김영우 총장은 퇴진했지만, 그의 몰상식한 생각은 여전히 총회에 남아있는 것 같다. 총신 신대원 여동문회는 매년 총회 앞에서 여성 안수 허용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이어가고 있으며, 특별히 이번 합동 총회 장소였던 충현교회 앞에서는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주최한 ‘여성 목사 안수식’ 행위극이 열렸다. 여성 목사 안수에 대한 목소리는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합동 총회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헌의안조차 올라오지 않으며 여성 목사는 고사하고 여성 강도사 제도 도입도 ‘1년 더 연구’에 부쳐졌다. 교인의 반수 이상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들에게 폭력적인 공간이다. 그럼에도 신학적 정당성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여성들을 점점 교회 밖으로 내몰 뿐이다. 합동 총회는 지금이 2019년, 21세기라는 점을 자주 잊는 것 같다.

합동 교단은 대형 교회 목사로부터 신학생에 이르기까지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남성 총대들의 목소리만으로 채워지는 총회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전무하며 목회자 윤리 강령은 여덟 번째 무산되었다. “성경에 이미 다 나와 있기 때문”이라는 그들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성경을 무기로 피해자들을 억압해왔던 과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들은 성경을 이용해 여성의 정조를 절대 가치로 강조하며 2차 가해를 일삼고, 고작 목사의 권위와 ‘교회’라는 형식적 틀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았다.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며 구조를 보지 못하도록 눈과 귀를 막았다. 보수 교회의 성범죄자들에게 성경은 늘 자신의 죄를 쉽게 잊게 하는 면죄부였고 피해자들을 재단하고 정죄하는 무기였다. 그런 그들의 성경 윤리는 과연 무엇일까? 교회에서 내몰린,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길 바랄 뿐이다.

성 소수자 배제·탄압과 마녀사냥 
합동 총회에서 성경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하는 칼이었다. 이재서 총장은 총회 인사에서 “총신대학교와 우리 교단 정체성에 위배되는 어떠한 이념이나 사상이나 행동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철저하게 배격해 내겠다”라고 말했으며, 이에 화답하듯 총회는 동성애자 및 지지자의 퇴학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예수님은 누구도 배격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곁을 내주셨는데 합동 총회는 단지 자신들의 정체성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2019년판 마녀사냥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폭력적인 행동을 거듭하며 학생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탄압한다면 총신대학교는 대학의 기능을 잃은 채 폐쇄적 종교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대학교에서 모두가 안전하게 마음껏 사유하고 공부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꿈일까? 고통받고 있는 학우들에게 멀리서나마 지지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이밖에도 동성애 관련 안건을 “총회의 어떤 안건이나 결의보다 더 중요하다”라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목사와 기독교 단체들을 이단으로, 반기독교세력으로 낙인찍었다. 심지어 반동성애 운동을 하다 전과가 생긴 이들에게는 복음과 진리를 위한 행동이라는 이유로 총회 공직에 입후보할 수 있는 자격을 주겠다고 결의했으며, 국가와의 싸움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자신들의 문제는 외면한 채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결집을 다지며 기득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복음과 진리를 위한 행동인가? 

폭력과 혐오는 예수의 언어도, 방식도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의 이름을 스스로 더럽히는 행동은 이제라도 그만두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합동 총회엔 피해자들과 소수자의 자리는 없었다. 단지 자신들의 죄를 가리고 권력을 유지하려 피해자와 소수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세우고 탄압하는 이들만이 있었다. 성범죄자 한 명도 제대로 치리하지 못하는 총회, 여성들의 목소리는 단 한마디도 담을 수 없는 총회, 소수자를 탄압하기 위해 국가와의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총회는 이미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듯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리로, 여전히 ‘정상’을 인정받지 못하여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로, 무엇이 아픈지도 모른 채 그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어떠한 투쟁이든 불사할 수 있는 총회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마땅한 사죄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따라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이 학문의 자유를 누리며 공부하도록 돕고 어떤 모양이든 그들의 앞길을 축복해줄 어른들을 만날 수는 없는 걸까?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는 교회, 자신들의 권력다툼으로 얼룩져 우습기만 한 총회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총대들이 대표하는 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라는 점, 총회는 교회의 대표들이 모여 토론하고 결의하는 장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년들을 포함한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자랑스럽진 못하더라도 제발 부끄럽지 않은 총회가 될 수는 없는 것인가. 

 

김자은
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를 졸업했다. 재학 당시 대의원총회 의장, 총학생회·총여학생회 비상특별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다양한 사건들을 거쳐 지금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총신을 애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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