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호 커버스토리]

#1. 나는 길냥이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옛 주인이 나를 아마 잃어버렸나 봐요. 안전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여기 놀이터 근처까지 왔어요.
 

#2.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어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까이 들렸어요. 곧 동네 꼬마들이 신기해하며 나를 쓰다듬었지요. 그중 한 아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어요. 나는 코끝을 닿으며 인사를 했어요. 이 아이 냄새가 좋았어요. 그래서 내 멋진 꼬리로 부드럽게 아이 다리를 쓰다듬어 줬어요.

 

#3. 밥만으로는 살 수 없어요

이곳이 마음에 들었어요. 동네 사람들이 나타나서는 내게 먹이를 줬어요. 사료도 주고 물도 주고 아주 친절하게 대해줬어요. 어제 만난 그 아이도 내게 간식 캔을 따줘서 맛있게 먹었지요. 깃털이 달린 놀잇감으로 놀아주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그 아이가 집으로 들어갈 때는 나도 아이를 따라 가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나는 길에 사는 고양이일 뿐이에요.

 

#4. 제발 나를 데려가 주세요

아이를 다시 만났어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만나서 즐겁게 놀았어요. 나는 그 아이가 좋았어요. 아이 신발을 붙들고선 그 앞에서 배를 보이며 이리저리 뒹굴었어요.

 

#5. 사실 나는 많이 아파요

언제부턴가 몸이 무거워졌어요. 사뿐거리던 걸음걸이도 느릿느릿해졌어요. 눈을 뜨고 감는 것도 힘이 들었어요.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렸어요. 사람들이 줬던 사료 그릇에도 물이 가득 찼어요. 사냥을 하기에는 몸이 너무 느려졌어요. 배가 고팠어요.

 

#6. 나를 살려주세요

미끄럼틀 아래로 가서 비를 피했지요. 털은 이미 비에 다 젖었어요.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어요. 이상하게도 잠이 계속 쏟아졌어요. 점점 눈이 감기고 흐려지는 그 사이로 달려오는 아이 모습이 보였어요. 나를 급하게 불러댔어요. 그 목소리가 점점 작게 들렸어요.

 

#7. 이제 당신을 믿어요

눈을 떠보니 집 안이었어요. 부드러운 천으로 나를 감싸고 털을 말려줬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료도 주었고 연어맛 간식도 주었어요. 한결 힘이 났어요. 아이의 가족들도 따뜻하게 나를 안아줬지요. 그러고 나서 나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갔어요.

 

#8. 나를 불쌍히 여겨줬어요

수의사 선생님이 내가 병에 걸렸다고 했어요.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고요. 아이와 엄마는 나를 살리기로 마음먹었대요.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병들었어도 버리지 않아. 이제 너는 우리 가족이야. 우리가 잘 돌봐 줄게.”

 

#9. 사랑해주어서 고마워요

수술한 다음 날, 아이와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어요. 아이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어요. 내게도 가족이 생기다니!

 

#10. 새로운 이름이 생겼어요

아이가 내 이름을 하루라고 지어줬어요. 지금까지 잘 견딘 것처럼 하루하루 잘 살아보자는 뜻이래요.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었어요. ‘하루라고 부를 땐 휘파람소리가 나는 것 같거든요.

 

#11. 나는 지금 안전해요

밖에 있을 때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자주 화들짝 놀랐어요. 그래서 언제나 귀를 열고 있어야 했어요. 하지만 아이와 함께 있는 우리 집은 심장이 쿵!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밥그릇은 날마다 채워 주었어요. , 내가 앉고 싶은 곳 어디든 앉을 수 있고, 자고 싶은 곳 어디든 잘 수 있어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나를 사랑해주는 아이와 함께 있다는 거예요.

 

#12. 나도 기쁨을 주고 싶어요

아이가 잘못을 해서 엄마에게 혼이 났어요. 내가 엄마에게 가서 말했어요. 너무 많이 혼내지 마시라고, 앞으로는 잘 할 거라고요. 엄마는 내 말을 이해하셨는지 혼내는 걸 금방 멈추셨어요.

 

#13. 나는 날마다 고양이다움을 회복하고 있어요

이제 수술 받은 상처도 모두 아물었어요. 새살이 돋아서 딱딱해졌지요. 창가에 앉아서 밖을 보고 있으면 엄마는 내가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는 줄 알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나는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스크래처에 발톱을 뾰족하게 갈아둬야 해요. 그리고 새들을 보며 입으로 사냥연습을 하고 있지요.

 

#14. 나는 고양이, 하루입니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나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있어요. 나는 새로운 시간을 사는 고양이, 하루입니다.

두 번째 가족, 경계심 많은 시오
고양이와의 만남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하루를 데려오고 2년 뒤, 작년 광복절 즈음에 또 다른 길냥이’(길고양이)를 데려 오게 되었다. 어느 여고 운동장 기슭에서 살던 어미 고양이가 다른 동물로부터 공격을 받고 뒷다리를 다쳐서 새끼 고양이를 돌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동물단체에서는 어미를 구조해 가면서 새끼 고양이까지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구조단체에도 돌보는 고양이가 포화상태인데다 태어난 지 4개월이 다 되어가는 아이라 스스로 살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 아이도 그리 안전하지 않았다. 흰색 고양이여서 유독 다른 동물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쉽다고 했다. 그 학교 직원과 나의 지인은 새끼 고양이를 구조해서 나에게 돌봄을 부탁했다. 나는 두 번째 고양이의 집사가 되었다. 한 번 해보니까 두 번째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아이의 이름은 시오. 일본어를 좋아하는 딸이 지은 이름. 소금이라는 뜻이다. 소금처럼 털이 온통 하얗기 때문이다. 발바닥은 선명한 분홍젤리이며 씩씩하고 호기심이 많다. 구조해서 보니 시오도 날카로운 발톱에 할퀸 상처가 있었고 귀에는 진물이 계속 나왔다. 동물병원에서 귀 안쪽 깊이 자란 폴립(작은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치료비도 많이 들었다. 멀리서는 건강한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이 아이도 상처투성이였다. 야생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사진: 필자 제공) 
(사진: 필자 제공) 

요즘 나는 일어나자마자 고양이 화장실을 먼저 확인한다. 집사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깔끔한 환경을 좋아하는 고양이를 위해 매일 감자 캐기맛동산을 치우기 위해서이다. 그러고 나서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주고 다른 일과를 시작한다. 문득 이런 하루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고양이집사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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