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호 2030 독자 탐방] ‘무슨 조합인지 알 수 없는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대학생 장성경 독자
장성경 독자는 선후배들과 함께 만든 독서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매달 한 번씩 모이는데,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읽고 싶은 책을 정하고, 책을 정한 사람이 진행을 맡는다. 책을 다 읽지 못하거나 일정이 맞지 않아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여태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유일한 참여자다. 책을 읽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고른 책이 어렵거나 취향에서 벗어나는 경우였다. 호불호가 확실한 편인 그는 학교 선후배에게 〈복음과상황〉을 같이 읽자며 거듭 제안하기도 했지만, 누군가와 복상 읽기를 함께한 적은 없다고 했다.
- 참여 중인 독서 모임을 소개해주세요.
모임 이름은 ‘무슨 조합인지 알 수 없는 독서모임’입니다. 같은 학과 졸업생과 재학생 총 7명이 참여하고 있어요. ‘10학번’부터 ‘17학번’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특이한 점은 지금까지 대면으로 만난 건 첫 모임 때 딱 한 번뿐이라는 거예요. 비대면으로 모이는데, 지금까지 유지되는 게 신기해요.
이 모임은 졸업생 선배가 제안해서 시작되었어요. 졸업한 뒤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싶어서 모임을 꾸리게 되었다고 해요. 돌아가면서 읽고 싶은 책을 정하는데, 순서가 다 돌면 한 기수가 끝납니다. 지금은 ‘2기’ 모임이 진행 중이에요. 졸업생과 재학생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 특별해요. 재학생과 사회생활을 하는 졸업생들의 고민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모임을 통해 각자 고민과 시각 차이를 나눌 수 있었죠. 예상하지 못했던 장점이었습니다.
- 가끔 책을 읽지 않아도 모임에는 꼭 참여한다고 들었는데요.
저는 책을 편식하는 편이에요. 관심 없는 분야거나, 너무 두껍고 설명이 길면 읽기 어렵더라고요. 이번에 읽기로 한 책은 연구 보고서가 실려있어요. 서론을 읽고 ‘이건 내가 읽는 게 불가능하겠다’ 싶어서 반납했죠. 책을 안 읽으면 참여하는 게 좋을지, 안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되는데요. 저는 읽지 않아도 참여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지 않았을 때라도,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이 바뀌어 ‘꼭 완독해야지’ 하고 반납했던 책을 다시 빌려서 읽은 적도 있어요.
- 지금까지 독서 모임에서 어떤 책들을 읽으셨어요?
다양한 책을 읽었어요. 각자 관심 있는 책을 추천해요. 1기 때는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압록강은 흐른다》(다림), 《울지 않는 늑대》(돌베개), 《사랑이 한 일》(문학동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을 읽었어요. 2기인 이번에는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호밀밭), 《인간으로 산다는, 그 어려운 일》(나무의철학), 《사당동 더하기 25》(또하나의문화), 《돌봄선언》(니케북스)을 읽었고요. 덕분에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책들도 보게 되었어요. 이 중 제가 좋아했던 책은 《울지 않는 늑대》,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에요. 이 책들은 빌려서 읽다가 결국 구매까지 했어요.
- 평소 어떤 책을 주로 읽고, 어떤 책을 선호하는지요.
문학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읽다 보면 제 감정을 이해하게 되거든요. 슬픔, 우울, 두려움, 배신감, 행복감, 미우면서도 사랑을 느끼는 모순적인 감정들도 헤아리게 되고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내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는 걸 느낄 때도 있어요.
- 책을 구매하는 장성경 독자만의 기준이 있나요?
‘소장하고 싶다’는 느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독서 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은 모두 대여해서 봤거든요. 빌려서 다 읽고 난 후에, 소장할 만큼 좋다고 느껴지면 구매합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중고로 구매했어요. 근데 거기에 신형철 작가님 사인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되게 행복했어요.
책을 읽다가 좋은 부분이 있으면 필사도 자주 해요. 그 문장이 매력 있고 갖고 싶다는 느낌이 들면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집에 필사를 모아두는 노트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필사할 게 너무 많거나 밑줄까지 치고 싶으면 구매해버려요. 대여한 책으로는 밑줄을 칠 수 없으니까요. 최근에는 《복자에게》(문학동네)를 많이 필사했어요. 그런데 이 책은 소장하지 않고 지인에게 선물했습니다.
- 왜 소장하지 않았어요?
필사를 너무 많이 해서요. 너무 많은 부분을 필사하고 반복해서 읽었더라고요. 제가 사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어요.
- 책을 선물하는 일이 잦은가요?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서 책 선물을 꽤 많이 받았어요. 이제는 저도 짧은 응원 메시지와 함께 책 선물을 많이 해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주고받는 느낌을 받아요. 책을 선물할 때는 먼저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이 무엇일지 생각해봅니다. 그 사람의 관심사·성향·정서를 고려해서, 제가 읽어본 아는 책 중에 선물할 책을 고르죠. 상대방이 책을 받고 재밌게 읽었다고 하면 정말 기뻐요. 뭔가 제대로 통한 것 같아서요.
- 혹시 책 외에 다른 것도 소장하는 게 있어요?
낙엽을 코팅해서 모아둡니다. 낙엽이 진짜 예뻐요. 이제 곧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데, 예쁜 낙엽을 주워서 말린 다음에 코팅하고 가위로 잘라요. 실로 묶어서 고리를 만들고요. 그걸 선물하기도 합니다. 낙엽은 하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받는 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 세상 낭만적이다. 저도 해보고 싶은데, 예쁜 낙엽을 고르는 방법이 있을까요.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비슷한 낙엽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아요. 그 낙엽이 노란 낙엽일 수도 있고, 빨간 낙엽일 수도 있죠. 엄청나게 큰 낙엽이거나, 약간 흠집이 난 낙엽이기도 할 거예요. 그 사람에 대한 단서를 통해 낙엽을 고르는 거죠.
- 기독교학을 전공하시는데, ‘성경 읽기’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셨을 것 같아요.
기독교학은 실천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성경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 주목해볼 때가 많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기독교는 어떤 의미인지 배우려고 해요.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이 쌓이다 보면, 공부하고 신앙한 것들을 실천할 힘이 생긴다고 믿어요.
제 이름이 ‘성경’이잖아요. 전에는 ‘이름은 성경이지만 성경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어요. 그런데 요새는 성경책을 많이 봅니다. 최근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마음이 맞는 분들과 팀을 꾸려 오디오북을 제작하고 있어요. 아침에 시편, 저녁에 신약 이렇게 녹음해요. 하루에 다섯 장씩 읽으면서 90일에 걸쳐 통독합니다. 한 명이 녹음해서 올리면 다 같이 듣고, 그걸 유튜브에 올립니다. ‘현대인의성경’으로 녹음하는데, 따옴표 안에 있는 말들을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읽는 사람의 목소리 연기도 들어가거든요. 연극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눈으로만 읽을 때와는 다른 경험이라 재미있어요.
- 성경 읽기, 기독교 서적 읽기가 일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요.
저는 원래 꽤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성경을 배우면서 좀 더 이타적인, 착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돼요. 대학교 1-2학년 시절에 ‘파인텍 고공농성’ ‘콜텍 장기투쟁’ 현장을 다니면서 우리 사회 노동문제를 접하게 되었어요. 이윤의 원리로 스러져 가는 상황과 사람들을 직접 보고 만났죠. 그분들 이야기에 함께 분노했어요. 몇 년 전 파인텍 고공농성 현장 예배에서 기도를 맡았는데요. 그때 읽었던 글귀가 있어요. “다 같은 인간이면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또 무슨 권리로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감금하고, 못살게 굴고, 유형을 보내고, 매질을 하고, 죽이는 것일까?”1)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곰곰이 성찰하게 만드는 문장이었어요. 효율성과 이윤을 위해 누군가의 삶을 희생시키는 구조는 꼭 바뀌어야 한다고 깊이 생각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 복상을 학교 사람들에게 몇 번 언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추천하셨는지요.
학교 사람들뿐 아니라 제가 알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자주 소개해요. 제 주변 사람들은 신앙인들이 어떤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구체적으로 행동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복상을 보면 신앙이 우리 사회 안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 어떻게 매력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살게 하는지 알 수 있어요. 특히 인터뷰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글을 보면 안심이 되고 위로를 받아요.
- 복상 외에도 챙겨보는 잡지는 뭐예요?
제가 사본 잡지들은 〈삶이 보이는 창〉·〈녹색평론〉·〈물결〉 정도예요. 제가 왜 이 책들을 직접 샀는지 생각해보면, 이 잡지들에 담긴 목소리가 주류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목소리죠. 귀 기울이지 않으면, 가만히 있으면 저 같은 사람들은 듣기 어려울 만큼 작은 소리이고, 제가 찾아 읽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인 듯해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떤 방향성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 공간을 지탱하는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성찰하게 만든다는 점이 공통점인 것 같아요.
- 개인적인 계획이 궁금해요.
공부를 하고 싶어요. 누군가를 위해 제 삶과 에너지, 돈과 시간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딱 두 번 있는데요. 첫 번째는 해고노동자들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거고요. 지금이 두 번째예요. 최근에 북한이탈주민들 삶에 관심이 생겨 강의를 듣고 있어요. 한반도가 처한 상황, 분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요. 앞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화학과 통일 관련 공부를 이어가고 싶어요.
1) 레프 톨스토이, 김학수 옮김, 《부활 2》(문예출판사, 2014), 145쪽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