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호 2030 독자 탐방] 여러 모임을 운영하고 다양한 후기를 기록하는 박해명 독자
박해명 독자는 모임에 열정을 쏟는 20대 청년이다. 지난해 12월, 그는 전화를 통해 〈복음과상황〉 독자모임을 시작하고 싶다고 문의해왔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던 그는 몇 달 뒤 금세 모임이 잘되고 있다며, 복상 실무자로서 한번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 모임을 잘 만들고 꾸려가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얼마 뒤 포털 사이트에서 ‘복음과상황’을 검색했다가 그의 블로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매월 복상을 꼼꼼하게 읽고 써놓은 후기들 때문이었다. 블로그를 살펴보니 여러 책과 영화를 섭렵하며 블로그 공간 속 서재를 부지런히 채우고 있었다. 그가 꾸준히 복상과 여러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는 열심의 이유와 동기가 궁금했다. 인터뷰는 10월 31일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그의 자취방에서 진행했다.
-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해봤어요. 첫 번째는 마을 활동가입니다. 제가 내일부터 마을 활동가로 일할 예정인데요. 기회가 되면 마을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두 번째는 여러 콘텐츠를 연결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영화와 책을 연결하는 시도를 하려 해요. 세 번째는 예배 크리에이터입니다. 제가 조합한 단어인데요. 예배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자발적으로 할 수 있을지 알아내고 소개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 거창하고 원대한 꿈이죠.(웃음)
- 지금 하는 모임들을 소개해주세요.
일단 첫 번째는 학교 사람들과 복상 독자모임을 한 달에 한 번씩 합니다. 두 번째는 교회 청년부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임인데요. 2주에 한 번씩 누군가를 모시고 강의를 진행하고, 이어서 저희끼리 나눔을 해요. 세 번째는 친구와 둘이서 하는 책 모임이에요. 마케팅 관련 책과 잡지를 봅니다. 그리고 원주시 안에서 모이는 인문학 독서 모임들이 있는데요. 몇 군데 다녀볼 예정입니다.
- 커플 모임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선교단체 사람 중에 3년 넘게 연애한 커플이 저를 포함해서 셋이나 있어요. 다 같이 만나서 연애 관련 책도 읽고 얘기를 많이 하죠. 제가 토론 게임을 준비해가서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보고 논쟁이 될 만한 부분을 가져와서 게임을 했어요. 거기 모인 사람들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서 토론하고 점수를 주는 식이었죠.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 주제가 되었어요. ‘유미의 전 남자친구인 바비가 본인이 운영하는 가게 알바 직원에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카페 직원에게 담요도 챙겨주고 다정하게 보이는 행동을 했는데, 연애하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해도 될까. 바비는 그 사실을 유미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말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까.’
- 논쟁이 되었겠네요.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어요. ‘연애하면서 어떤 행동까지 바람피우는 행위로 볼 것인가’라는 얘기까지요.
- 이 모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나요?
네. 3개월에 한 번씩 모이고 있습니다.
- 그럼 총 4개의 모임을 하고 있고, 또 다른 독서 모임을 알아볼 예정인 건데요. 원래 모임을 좋아하셨나요?
제가 독서를 하다가 어느 순간, 책을 자발적으로 읽지 못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언젠가부터 자발적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았죠. 대신, 사람들과 함께 이걸 지속할 구조를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제가 보고 싶은 책만 보면 어떤 한계가 생길 것 같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저 혼자서는 보지 않을 책들도 볼 수 있겠더라고요. 또, 계속 모임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죠.
- 모임들을 만들고 유지하면서 에너지가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기존에 했던 모임을 문서화하고 정리해두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면 인트로 질문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준비했다면 패턴화해서 매뉴얼로 정리해놓는 거죠. 정리해둔 질문이 많을수록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죠. 다음에 비슷한 모임을 할 때는 처음처럼 힘을 많이 쓰지 않고도 준비할 수 있어요. 이걸 반복하다 보면 감이 생겨서 적합한 질문이 그냥 툭 나오기도 합니다.
- 이렇게 주체적으로 모임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선교단체에 들어가서 2학년이 되었을 때 단체 안에 선배가 없었어요. 전에 선배들이 했던 모임을 떠올리면서 준비하려고 했는데요. 생각해보니 예전 모임들이 되게 형식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예를 들면, 소책자 가져와서 30분 정도 읽은 후 어땠는지 짧게 얘기하고 곧바로 식사하러 가거나 차 마시러 가는 식이었어요. 저는 이런 모임이 바로바로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효율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만족하기 어려운 방식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모임에서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걸 어려워하는 분들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어요. 그중 하나가 미리 준비한 여덟 개 질문 가운데 두 개를 골라 이야기하는 방식이었어요. 이전 모임은 항상 질문 세 개를 적고 그걸 순서대로 답하는 방식이었는데요. 질문이 자기 상황에 맞지 않거나 답하고 싶지 않아도, 원하지 않는 대답을 하게 되었던 거죠. 저희는 오히려 질문의 폭을 넓히고, 스스로 선택해서 말할 수 있게 준비해봤어요.
- 이야기 나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겠어요.
모임 전체를 이끌고 조율하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요. 참여자들이 말하는 방식과 패턴을 어느 정도 파악해야 하죠. 그래서 나눔을 할 때 첫 질문이 굉장히 중요해요. 예를 들면 취미가 무엇인지 물으면서 가벼운 이야기를 할 때 바로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죠. 리더는 그것부터 빨리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게 파악하고 나서 빨리 말할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답할 수 있게 하고, 전체 시간을 조율해야 합니다.
- 작년에 일 년 동안 독서 후기를 94개나 게시하셨어요. 영화도 200편 넘게 보셨고요. 어떻게 이 정도로 많이 보실 수 있는지요. 다 구매해서 보나요?
제게 필요한 것들만 사서 봅니다. 우리 사회와 시대를 고민하고 관통하는 책은 웬만하면 사려고 하고요. 어떤 사건과 관련한 책들은 기억하기 위해 구매해서 갖고 있기도 해요. 그래서 후기도 남기는 거고요.
저는 뭐든 책으로 배우려고 합니다. 관심 분야도 책으로 확장해나가는 편이죠. 유튜브로 보고 배우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 책 읽기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되게 관계적인 사람이거든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모임도 꽤 많이 하는 편인데요. 관계로 풀 수 없는 숙제가 너무 많더라고요. 친밀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고, 공감과 소통에도 한계가 있죠. 관계를 통해 아팠던 상처가 낫는 것도 아니었어요.
제 고민은 우리 선교단체에 속한 비기독교인들이었어요. 친구들과 있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함께하는 시간을 자주 보냈는데요. 저는 이 친구들에게 제 신앙을 전달해주고 싶은데 설명을 못 하는 거예요. 신앙을 설명할 언어가 제 안에 없었던 거죠. 그걸 채워보려고 선교단체 방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보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책들을 모두 집에 가져와서 제 키만큼 높이 쌓아놓고 보기 시작했어요. 얇은 책들이니까 한 곳씩 읽어보자는 마음가짐이었죠. 그러면서 다른 책들도 보이는 대로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무작정 책을 많이 읽었던 경험이 되게 좋았어요.
그 후로 학교에서 후배들을 보면 무조건 1년 휴학하고 책을 많이 읽어보라고 권면했죠. 한편으로는 제가 그 친구들에게 되게 무례했던 것 같아요. 누굴 만나면 늘 “안녕. 너 책 좀 읽니?” 이렇게 말했어요.(웃음) 그 친구들은 저를 볼 때마다 당혹스러워했고요. 그때 저는 제가 얼마나 무례했는지 잘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참 부끄럽네요.
- 하루 중 책을 읽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저는 밤에, 자기 전에 책을 읽는 편입니다. 잠이 잘 안 오면 책을 봅니다. 짧게는 10분이 될 때도 있는데 금방 졸음이 와서 잠들면 좋은 거고요. 잠을 못 자고 한두 시간 책을 읽으면 뿌듯하죠.
저는 대신 유튜브나 짧은 영상은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해요. 재미는 있는데 기억에 남지 않을 것들이요. 이게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걸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공유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하죠. 물론 일하고 와서 지칠 때 그런 시간을 보내는 일도 중요한데요.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오히려 불면증도 겪고 잘 쉬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의미 없는 시간을 잘 조율하고 잘 보내려고 해요.
-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는 일에도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처음에는 그저 기록해두려는 목적이었는데, 이것도 하다 보니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이 욕심이 과해지면 본질이 흐려지는 거예요. 제 블로그를 꾸준히 보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부담도 되고요. 간단하게 정리하고 올릴 내용인데 수준을 올려서 쓰려고 하면 자꾸 글이 올라가지 않고 쌓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간단하게 쓰려고 해요. 좋은 책을 잘 소개하는 리뷰는 정말 많잖아요. 저는 그냥 기록용으로 올려두는 데 의미를 두려고요.
- 내일부터 마을 활동가로 일을 시작한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요?
제가 내일부터 마을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도시재생이라고 하면 보통 재개발과 반대되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쇠퇴하고 낙후된 도시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 계획해서 활성화하는 사업입니다. 주로 5년 주기로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 많은데, 제가 가는 곳은 2018년에 사업을 신청했고 내년에 마무리됩니다. 저는 그 과정을 잘 기록해서 모아두고 홍보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노후화하고 쇠퇴한 도시에 주택이나 건물을 짓는 등 하드웨어를 바꾸는 일뿐 아니라 기존 거주자들이 주민협의체나 협동조합 등 커뮤니티를 만들어 마을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해갈 수 있도록 합니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이 분야의 일과 제 경험도 잘 기록해서 글로 남겨두고 싶어요.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