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호 5070 독자 탐방] 여수 복상지기 김정명 은현교회 원로목사
복상지기 중 가장 고령에 속하는 김정명 원로목사(여수 은현교회)를 찾았다. 김 목사는 12년 전인 2009년에 예순의 나이로 조기 은퇴했고, 현재 여수시장애인종합복지관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은현의 대표이사로 있다. 그가 〈복음과상황〉을 받아보는 ‘평화의집’도 은현이 운영하는 곳으로, 가난한 은퇴 교역자 등을 위한 노인복지시설이다. 인터뷰는 10월 1일 복지관 회의실에서 진행했다.
- 2005년 본지를 발행하던 ㈜지엔커뮤니케이션의 이사장이던 때(〈뉴스앤조이〉와의 합병 시절)부터 꾸준히 구독하고 계십니다. 2017년에 여수 지역 복상지기로 지원해 주셨고요.
코로나가 퍼지기 전에는 여기 회의실에서 모이기도 했는데, 요즘은 모일 수 없으니 기독교인 직원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는 게 다입니다. 복상이 기독교 언론으로서 대안 제시를 더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비판적 시각만 유지할 게 아니라, 대안적 내용도 반 정도는 다뤄야겠지요.
- 지난 30년 동안 쌓여온 복상의 독자층은 매우 다양합니다. 세대나 이념이 다른 독자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온유와 겸손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시하는 모습은 교만에서 온 것입니다. 돌아보면 나도 보수적인 사람을 향해서 ‘꼴통’이라 무시했던 적이 있어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 생각이죠. 저마다 생각이 다 달라서 서로 존중하는 모습부터 세워야 하는데, 진보나 보수 모두 그걸 못 깨닫고 있어요. 대구에서 태어나면 보수적인 사람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이고, 광주에서 태어나면 진보적인 사람이 될 확률이 높은 거잖아요. 교회가 이런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데, 교회가 더 심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예수의 온유함을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예수는 간음한 여인, 삭개오,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 몰려있는 사람들도 온유함으로 바라보셨지요.
- 교회나 사회의 모든 담론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은퇴 목사로서 지역 교회의 현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심각하죠. 교회가 점점 소멸할 것 같아요. 1년에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하는 교회가 엄청 많을 겁니다. 교인은 줄어들고, 전도는 하지 않으니 교회가 없어지지 않겠어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목사들이 전도할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교인들에게 전도를 시킬 뿐이죠. 전도는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은 기도 많이 해, 성경 많이 읽어, 착하고 정직해’라고 말하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동네 사람들이 ‘저 목사 참 겸손하다, 점잖다, 인사성 밝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바른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런데 말씀 안 읽고 기도 안 하는 목사들이 많으니 교회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 혹시 후배 목사들에게 강조하는 것들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교역자로서 너무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들을 강조하죠. 새벽기도 철저히 하고, 매일 성경 읽기 2시간, 기도 2시간, 헌혈, 나라와 한국교회를 위해 오전 금식, 굶주린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매월 1일 금식 등…. 그리고 교회 돈으로 큰 승용차 뽑아 다니지 말고 승합차를 이용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면 쉽게 ‘존경받는 목사’가 될 수 있는데, 그게 참 어려운가 봅니다.
- 오늘이 1일이라서 북한 어린이들을 떠올리면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는 것이군요. 요즘은 ‘먹방 시대’라서 그런지 금식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듣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육의 관점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죠. 교회에서도 내면의 속사람이나 영적인 것은 무시하고, ‘예수 믿고 복 받자’ ‘큰 차 타자’ ‘아파트 사자’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예배당 크기와 교인 수를 판단하는 것도 다 육의 관점이죠.
- ‘성경 읽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을 성경이라는 말씀 필터를 통해 깨끗한 상태로 걸러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생각 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망했어요. 우리도 늘 원한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날들을 보내지요. 말씀의 필터로 우리의 이기심을 걸러내야 하나님 뜻에 합당한 생각에 이를 수 있어요. 물론 쉽지 않아요. 끝없이 내 욕심이 올라오기 때문이죠. 명절 때 친척들이 좋은 차 타고 오는데, 나는 교회 봉고차 타고 가면 솔직히 창피한 마음도 있었어요. 그걸 이겨야 하는 겁니다. 오죽하면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겠어요. 예수의 말씀에 따라 욕심을 버리고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는 기본이고,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겠지요. 앞서 언급한 세대·이념·지역 갈등의 근원에는 우리의 교만과 욕심이 있잖아요. 오늘날 교회가 말씀, 기도, 금식을 실천하면서 자기 부인을 하는 길 외에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어요.
- 기도하고 성경 읽는 시간 외에는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산책하거나 책을 읽어요. 주로 놀아요. 책 보고 놀고, 책 보고 놀고.(웃음) 요즘엔 《레미제라블》을 다시 읽으며 회개했어요. 미리엘 주교와 장발장을 닮고 싶어요.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에게 예수 믿으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장발장이 몇 시간 그의 모습을 보고 감복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훗날 장발장은 더 거듭난 모습을 보여요. 많은 재산을 가졌으면서도 검소한 생활을 하며, 시도 때도 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요. 코제트가 결혼할 때는 모든 재산을 물려주고, 남겨두었던 것조차 쓰지 않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지 않습니까? 많이 베풀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는 모습, 그 자체로 만족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 교인이 1천 명 정도 되는 교회에서 10여 년 전 조기 은퇴하시고, 검소한 삶을 이어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조기 은퇴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줄 알았어요. 예순에 그만둔 사람은 저밖에 없으니까 상 받을 줄 알았죠. 그런데 우리 작은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치고, 큰딸은 뇌종양 수술 후에 후유증으로 실명이 되었어요. 입양한 어린 아들은 사춘기가 와서 집에 안 들어왔고요. 피시방에 가서 잠복하고 있어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어요. 이런 과정을 겪으며 아주 조금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교인들 아픔이 이런 거였구나, 시련이 찾아오고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하나님을 정말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게 쉽지 않구나, 나는 스스로가 꽤 괜찮은 목사인 줄 알았는데 껍데기뿐이었구나….
-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시는데 끊임없이 분투하고 계시는 거군요.
바울도 죽을 때까지 선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잖아요. 넘어지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에요. 예수의 피로 끝없이 씻어야 해요.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은혜를 제대로 안 사람인 것 같아요. 자기 유익이 아니라 “다 하나님 영광 위하여” 한다고 했잖아요. 은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안다면, 그 은혜를 자기가 누리면 안 됩니다. 은혜는 흘려보내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30주년을 맞은 복상에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여러 고비가 있겠지만, 말씀의 지혜로 이 땅의 다툼을 화해시키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루쉰이 〈고향〉이라는 작품에서 이런 말을 하죠.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절망 가운데에서도 먼저 걸어가며 길을 만드는 그런 잡지가 되십시오. 마지막으로,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진행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