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호 2030 독자 탐방] 국회에서 일하는 전해정 독자

ⓒ복음과상황 이범진<br>
ⓒ복음과상황 이범진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고민하는 사람. 전해정 독자에게 받은 인상이다. 현재 한 국회의원 의원실에서 2년 차 비서로 근무 중인 그는 첫 월급으로 지인 29명에게 〈복음과상황〉 1년 구독권을 증정한 바 있다(359호 ‘그들이 사는 세상’).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서 매체를 위한 파급력 있는 후원 방식을 헤아린 결과였다. 복상을 돕기 위한 ‘더 좋은 방향’을 고민한 것이다. 그가 어린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미국에 계속 머무르기보다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었다. 그가 품고 있는 고민과 읽어온 텍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10월 28일 서울 국회의사당역 인근 카페를 찾았다.

-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청년도 많은데, 유학을 마치고 곧바로 돌아온 계기가 있나요?

학부 때 잠시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어요.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는 학내 동아리에서 활동한 일이 계기가 되었죠. 제 전공인 외교학은 국가 관점이 많이 개입되는 학문인데요. 그동안 미국 시각에서 국제 관계를 배웠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처음에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지만,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큰 틀에서 공동체에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다른 길을 택했어요. 그게 국회였죠. 21대 총선이 열리고 얼마 안 되어서 지난해 6월 의원실 비서로 근무하게 됐어요.

- 최근까지 국정감사로 많이 바쁘셨죠? 요즘 대선 후보들 관련 이슈가 뜨거워서 상대적으로 묻힌 이야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쉬운 점들이 있어요. 제가 속했던 위원회에서 준비한 내용에는 대선 후보 관련 이슈가 별로 없었어요. 주목받지 못했죠. ‘대장동 개발’처럼 정쟁 이슈도 있고, 경선 중이던 당도 있어서 의원들도 거기에 더 신경 쓰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언론도 대선 후보 관련 보도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이슈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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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이범진

- 개인적으로 최근 주목하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무연고자 장례 문제인데요. 지난해 말부터 많이 고민했어요. 《외롭지 않을 권리》(시사IN북)를 읽고 한국 사회가 여전히 ‘정상가족’ 프레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걸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저자 특강에도 참여했는데, 혈연관계가 아니면 아무리 가까워도 장례를 치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조사하면서 관련 법 개정도 꾸준히 고민했지만, 혈연 중심인 기존 제도를 바꾸려면 단순히 법 하나만 개정해서는 해결하기 어렵겠더라고요. 여러 법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에요. 그래서 계속 고민하던 중에 이번 국감에서도 이 문제가 일부 다루어지고, 언론도 기획 기사를 내면서 이슈가 되더라고요. 저도 구상했던 법안들을 다시 꺼내서 보고 있어요.

- 지금까지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법안이 있나요?

올해 통과된 대체공휴일법이요. 저희 의원님이 초선이던 19대 때부터 계속 관련 법안을 추진해 왔는데요. 올해 공휴일이 다 주말에 있어서 대체공휴일이 이슈였고, 물밀듯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협의 과정에서 축소되거나 빠진 부분도 있어 아쉬움도 남지만, 서로 합의한 규칙들 가운데 우리 사회가 더 유익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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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이범진

- 법률 텍스트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으실 듯해요.

여전히 일본식 법률 용어가 많죠.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한 텍스트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 오경미 대법관 청문회에서 이해하기 쉬운 법률 용어 사용이 필요하다는 질의도 의원실 차원에서 했는데, 대법관님도 공감하셨어요. 개인적으로는 법안 제안 이유만 읽어도 해당 법안의 필요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주요 내용을 존댓말로 풀어서 쓰고 있고요.

- 보좌진 자질 중에 글쓰기 능력이 중요할 것 같네요.

조사 자료를 요약하고, 이에 근거한 해석이나 주장을 내놓는 글쓰기를 많이 하게 돼요. 저 같은 주니어 보좌진이 가장 많이 준비하는 글은 아무래도 축사 같은 메시지이지만요. 같이 일하는 보좌관님이 글을 잘 쓰려면 사람들이 어떻게 의견을 개진하는지 봐야 한다고 조언해주셔서 신문의 오피니언 면을 습관처럼 읽고 있어요. 쓰고 싶은 표현들을 스크랩해 놓기도 하고요.

- 직업 때문이겠지만, 매일 여러 종류의 국내외 신문을 읽으시는데요. 요즘 그런 사람은 흔치 않을 것 같아요.

읽는 게 아니고 ‘보는’ 거예요.(웃음) 일을 시작하고 나서 어떤 이슈가 어떤 중요도로 다뤄지는지 봐야 해서요. 어떤 신문, 몇 번째 면에서 어느 정도 길이로 다뤄지나 살펴보죠. 주로 국제 뉴스에 관심이 있는데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의 국제면 기사들을 읽고 있어요. 〈중앙일보〉도 제가 좋아하는 필자들의 칼럼이 많아서 챙겨 보려 하고요. 사설은 언론사 논조와 편집 방향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칼럼은 그렇지 않기도 해요. 국내 영자신문도 종종 보면서 영어로 업무를 처리할 때 필요한 특정 단어나 고유명사를 참고하고요. 이외에도 〈뉴욕타임스〉나 〈이코노미스트〉를 읽는 영어 스터디에도 참여해 영어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죠.

- 신문이나 시사잡지 외에는 어떤 분야의 책들을 읽으시나요?

주로 인문·사회 분야를 읽어요. 지난해부터 한국 사회에서도 주목받아온 ‘공정’ 문제에 관심이 많아 관련서들을 읽어왔는데요. 그중 《특권》(후마니타스)을 흥미롭게 읽었어요. 이 책은 부유층 백인 중심의 학교에서 소수 인종으로 지냈던 저자가, 이후 연구자로서 모교로 돌아간 뒤 교사이자 사회학자로서 미국 엘리트 학생들 모습을 관찰한 기록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공정·불공정 논쟁, 엘리트 세습 문제를 더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엘리트들이 주어진 좋은 환경 가운데 이룬 성취를 공정한 대가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이들이 어떻게 편안하게 성취를 학습하는지 등을 풀어나가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 지금까지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특별히 영향을 받은 책을 소개한다면요?

성경에서 제가 제일 많이 읽은 책이기도 한데, 어머니 영향으로 어린 시절 한 달에 한 번 ‘잠언’을 읽었어요. 총 31장이라 매일 한 장을 읽으면 한 달이면 다 읽거든요. 요즘은 매일 읽지 않지만 제 삶의중요한 순간에 도움을 준 구절들이 있어서 때마다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싶을 때 찾아보곤 해요. 최근 다시 읽은 말씀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16:9, 새번역)인데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제 생각이나 뜻보다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계획을 다시 기억하고는 해요.

IVP에서 나온 ‘1세기 기독교 시리즈’(전 3권)도 두 번 이상 읽었어요. 교회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 기독교의 ‘시작’이 어땠는지, 모임에 초대받은 사람은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어갔는지, 초대교회 때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볼 수 있었죠. 읽지 않았다면 던질 수 없었던 질문들을 놓고 고민할 수 있었어요.

일반 도서 중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가 기억에 남아요. ‘어떻게 선하고 착한 사람이 혐오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게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쉬운 말로 설명해주는 책이에요. 읽으면서 제 생각이 많이 깨졌어요. 특히 크리스천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크리스천 친구들과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했죠.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관한 얘기도 많이 나눴고요.

사진: 전해정 제공<br>
사진: 전해정 제공

- 생각이 서로 다른 친구들 사이에 충돌은 없었나요?

책을 매개로 하면 각자의 생각이 정제되어 나오더라고요. 처음부터 동성애를 주제로 말을 꺼내지 않았고, 책을 같이 읽어보자고 했어요.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요. 그게 큰 수확이었어요. 모임은 단발성이었지만, 지난해부터 한 달에 한두 번 다른 정기 책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같이 책을 읽으면서 얻는 게 많아요.

- 함께 책을 읽으면 어떤 점이 좋나요?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다루면서 사고가 확장되죠. 제 안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는 훈련도 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진다는 느낌도 받고, 책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요. 제가 참여하는 책 모임은 다양한 전공과 관심사를 가진 또래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예술을 하는 친구, 사회과학을 전공한 친구, 과학을 공부하는 친구,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은 친구 등이 참여하는데, 대화를 나눌 때마다 제가 못 보는 부분들을 볼 수 있게 도와줘요. 지금까지 《특권》,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다산초당), 《규칙 없음》(RHK), 《C의 유전자》(다산북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쌤앤파커스) 등을 같이 읽었어요. 다음 책으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을 골랐죠. 선정한 책들을 보면, 공통점이 없어요.(웃음) 혼자라면 읽지 않았을 법한 분야의 책도 읽는다는 점도 장점이에요.

- 독서 모임 외에 또 어떤 경로로 책의 존재를 발견하시는지 궁금한데요.

국회도서관이나 집 근처 대형 서점을 주로 이용하지만, 주인 취향에 따른 동네 서점 큐레이션에도 도움을 많이 받아요. 정치발전소에서 ‘마키아벨리의 편지’라는 책 구독 서비스도 이용하는데, 매달 정치·사회 분야 책 한 권과 해설서를 보내주면서 같이 보면 좋은 콘텐츠도 알려주더라고요. 최근 읽고 있는 《휠체어를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을유문화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도 서비스에서 추천받은 책이고요. 이외에도 땡스북스, 역사책방을 좋아하는데요. 땡스북스는 제가 주로 읽는 분야의 책들을 큐레이션하지는 않지만, 장소가 좋아서 자주 가게 돼요.

- 국회에서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나 개인적인 계획을 나눠주세요.

언제까지 국회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법안을 만들고 싶어요. 제 생각보다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다만 매뉴얼이 없고, 리소스를 잘 활용해야 해서, 하는 만큼 가능성이 주어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공공은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리거나 소진되는 과정이 있고, 민간 영역에서 사람들 삶을 바꾸는 일이 오히려 더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도 깨달았지만요.

개인적인 계획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서른쯤이면 인생의 답들이 어느 정도 세워질 줄 알았는데요. 전혀 아니더라고요. 선택의 무게가 더 무거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제 선택에 따라 미래가 더 큰 영향을 받는 것 같고, 선택을 번복하기도 쉽지 않은 듯해요. 선택을 잘할 수 있도록, 우선은 주어진 하루하루를 잘 쌓아가 보려고요.

ⓒ복음과상황 이범진&nbsp;<br>
ⓒ복음과상황 이범진 

에필로그

이전 인터뷰에서 전해정 독자는 교회에서 예배는 드리지만 후속 모임에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지속되고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지면서 그는 다니던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유튜브로 듣고 싶은 설교를 찾거나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는 등 매주 예배는 놓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처럼 교회를 떠났지만 돌아오고 싶어 하거나, 교회를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거나, 교회에 있지만 소속감은 못 느끼는 ‘회색 지대 청년들’ 이야기를 잘 다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복상 같은 기독교 매체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현재 받아보고 있는 복상에 아쉬움은 없는지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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