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호 에디터가 고른 책]
근본주의 신앙이 깊이 뿌리내린 가정, 교회, 지역사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저자가 자신의 믿음에 의심을 시작하고 질문을 던지며 믿음을 풀어헤치는 과정을 담았다. 같은 시대와 문화를 경험한, 같은 세대의 저자가 쓴 회고록이기 때문에 더 공감하며 읽었다. (나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라 확신했던 청년이었다.) 재치 있는 문장들이 많아 재밌게 술술 읽히는 듯하더니 좀처럼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거대한 전쟁과 재난을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맞물려,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파고드는 그의 질문들에 한참을 머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많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매일 비슷한 상황에서 자르미나처럼 죽었을지 궁금해졌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이라크 쿠르드족의 가스 학살,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남긴 안경과 신발과 기도숄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끔찍하고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생각났다.”
2005년에는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다. 두 달 뒤 파키스탄 카슈미르에는 지진이 발생해 7만 명이 죽고, 10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인도양 쓰나미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은 1년 뒤였다. 몇몇은 대수롭지 않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쓰나미로 죽은 수십만 명의 남녀와 어린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괴로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편과 아이 사진이 담긴 액자를 붙들고 괴롭게 울부짖는 아름다운 갈색 피부의 여인들 이미지, 불가항력적인 홍수로 폐허가 된 이 마을 저 마을의 영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런 레이첼에게 성경은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기도 하고 계속해서 집으로 불러들이기도 하는 끈질긴 자력(磁力)”이다. 그는 화장실에서 요한계시록을 펼친다.
“20년 동안 세련된 기독교 교육과 변증 훈련을 받아 놓고도 종말론 설교자가 횡설수설한 예언에 마지막 희망을 걸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저자는 후에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년》, 《다시, 성경으로》, 《교회를 찾아서》 등의 책을 썼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