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호 에디터가 고른 책]

로완 윌리엄스와의 대화 / 로완 윌리엄스·메리 저나지 지음 / 강성윤·민경찬 옮김 / 비아 펴냄 / 16,000원
로완 윌리엄스와의 대화 / 로완 윌리엄스·메리 저나지 지음 / 강성윤·민경찬 옮김 / 비아 펴냄 / 16,000원

“토양과 바다를 오염시키는, 재활용 불가능한 거대한 플라스틱 더미가 우리 경제의 위험성에 대한 암울한 은유인 것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는 말이 쌓이고 쌓여 이제 해체되거나 허물어지지도 않고 건전한 주장과 조화를 이루게 될 수도 없는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말의 무더기에 깔려 질식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바로 지금. 세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 과제는 산적해있고 대화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나하나가 파해법을 찾기 어려운 거대 이슈인 “시리아 난민 위기, 파리 폭탄 테러, ISIS의 공격, 브렉시트, 미국 대선과 총선, 환경 문제, 사회 경제 위기”가 배경으로 깔리는 이 책은 ‘정의와 사랑’이라는 주제로 2015년 4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일곱 차례 진행한 대담을 담고 있다. 주로 철학자이자 영화감독인 메리 저나지가 묻고 전 켄터베리 대주교이자 신학자인 로완 윌리엄스가 답하는 형식이다. 두 사람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고받은 편지가 ‘에필로그’에 수록돼있어 동시대성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정의’ ‘사랑’을 중심 키워드로 놓고 진행하는 대담이니, 콘텍스트와 무관한 현학적 장광설이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이어지진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면 거두어도 좋겠다. 로완 윌리엄스는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주의 깊은 시선을 던지고, 그에 대한 현실적 해법을 찾고자 내외부적으로 깊이 성찰해온 그리스도교 지식인의 면모를 한껏 발휘한다. ‘성숙한 신앙은 어떻게 깊은 공적 대화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을 보는 듯했다.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 셰익스피어, 도스토옙스키, 시몬 베유, 아이리스 머독 등 사상가·문학가·신학자가 다채롭게 인용된다. 사회 현실에 잇닿아 이들의 저작을 어떻게 읽어나가면 좋을지도 숙고하게 만든다.

“우리는 수동적인 태도, 체념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정직한 태도, 상냥한 호기심을 가지고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정직하게 보았을 때 보이는 세계, 내게 다가오는 세계를 받아들인 다음, 그 세계와 조화롭게 노래하기 위해 세계를 파괴하거나 일그러뜨리지 않고 변모시키는 방향으로 내 목소리를 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하지요.”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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