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호 나의 순정만화 순례] 천계영: 《언플러그드 보이》

음악과 함께 떠올릴 결정적인 사랑의 기억이나 일생의 연인 같은 것은 없지만, 대신 갖가지 자투리 일상들이 스미고 짜이고 덧대어지는 중이다. 거기에는 글렌 굴드와 … 제쓰로 툴이 복원해낸 생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누벼져 있을 것이다. 언젠가 세상 끝 날 그 누빈 이불을 덮고 나는 나의 하느님에게로 가게 될까.
― 이소영, 《별것 아닌 선의》(어크로스, 2021), 276쪽.

그날, J가 왜 수업 시간에 교탁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불렀는지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날이 맑고 좋아서 혹은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며 날이 우중충해서, 그것도 아니면 선생님의 첫사랑 레퍼토리가 다 떨어져서? 아무튼 그날,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 1학년 ○반 학생들은 오늘 같은 날 수업을 받을 수 없다며 졸랐고 선생님은 그 청을 받아들여 교탁에서 비켜줬다. 그렇다면 일단 누가 나와서 노래를 해야 하는데 왜인지 우리는 J의 이름을 연호했다. J가 우리 반에서 가장 엔터테이너 기질이 충만했던 친구였나? 이윽고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단발 생머리를 찰랑이며 교탁 앞에 선 J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난데없이 “난 알아요”를 외치며 랩을 시작했다. 그날 랩이라는 걸 처음 듣고 받은 충격으로, 이후 난 10대 시절을 다 바쳐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든 음반을 샀고 모든 노래를 외웠다. 아, 그 당시 중학생은 다 그랬다(아니라도 어쩔 수 없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를 들으며 10대 시절을 건너던 우리에게,

음악과 함께 떠올릴 결정적인 사랑의 기억이나 일생의 연인 같은 것은 없지만, 대신 갖가지 자투리 일상들이 스미고 짜이고 덧대어지는 중이다. 거기에는 글렌 굴드와 … 제쓰로 툴이 복원해낸 생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누벼져 있을 것이다. 언젠가 세상 끝 날 그 누빈 이불을 덮고 나는 나의 하느님에게로 가게 될까.
― 이소영, 《별것 아닌 선의》(어크로스, 2021),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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